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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속노조 여성운동사
    공장과 거리에서 만난 조금 다른 목소리
    [책]『여성노동자, 반짝이다』(전국금속노조/나름북스)
        2021년 10월 16일 09:0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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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퍼센트의 여성, 노동운동의 역사를 가로지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온 여성노동자들의 증언

    18만 명 중 1만 명. 자동차, 조선, 철강 노동자들이 포진한 국내 최대의 산업별 노동조합인 민주노총 산하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의 여성 조합원 숫자다. 비율로는 6퍼센트다. 대공장, 남성, 정규직노조를 대변한다고 여겨지는 금속노조가 창립 20주년을 맞아 여성 조합원들의 말을 책으로 펴냈다. 노조 여성위원회가 각 지역과 기업노조에서 추천한 69명을 인터뷰했고, 그들이 왜 노조에 가입했고 어떻게 싸웠는지, 여성으로서 얼마나 힘겨웠고 혹은 당당했는지 시대와 주제에 따라 조밀하게 엮었다. 한국에서 여성으로 태어나 노동하고, 노동조합을 만나고, 인간답게 살고자 싸워온 이들의 이야기가 가난과 노동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걷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노조의 바람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등장인물 중엔 한진중공업 해고 노동자인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처럼 이름난 이도 있지만, 대다수는 그저 제조업 생산라인에서 일하다 불의를 겪고 노조에 가입해 쟁의를 경험한 후, 노동자의 권리와 단결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평범하면서도 지극히 특별한 여성들이다. 그들은 자동차를 조립하고, 배를 용접하고, 공장 식당에서 밥을 짓고, 핸드폰을 생산하고, 범퍼를 운반한다. 여성노동자들은 모든 일을 할 수 있고 이미 하고 있지만, 남성노동자와 똑같은 대우를 받지 못한다. 그리고 그들은 여자도 정규직이 되어야 한다고, 똑같은 월급을 받고 승진도 하고 싶다고, 성희롱하지 말라고 싸웠다. 그러면서 여성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인지하며 삶을 긍정하게 된다.

    ‘여성노동자의 이름을 호명한다’는 기획 의도대로 1959년생부터 1994년생까지인 그들의 이야기 앞에는 이름과 일터가 나란히 적혔다. 자동차부품 제조, 휴대폰 등 전자제품 조립, 반도체 생산, 조선소 용접 등 제조업 생산직 노동자는 물론 자동차회사 구내식당 조리, 렌탈 가전 방문 관리, 노조 법률원 변호사 등 다양한 직종의 여성이 이 기록에 목소리를 보탰다. 책을 대표 집필한 권수정 부위원장은 “각자의 사연과 개성이 다르지만, 각각의 모양과 색깔이 엮여 커다란 조각보처럼 보이길 바랐다”라며 “그들이 아름다운 것은 노동자 그 자체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점점 더 극심해지는 불평등과 차별 속에서도 우리가 더 나아진 세상에 살고 있다고 한다면, 이는 책에 나오는 이들처럼 한순간도 멈추지 않은 여성노동자의 실천 덕분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치열했던 노동운동을 여성노동자의 증언으로 기록한 이유이자 의미다.

    87년 노동자대투쟁에서 비정규직 시대에 이르기까지
    불의와 차별에 늘 맞서온 사람들

    노조의 역사는 20년이지만, 여성노동자들의 기억은 80년대부터 시작된다. 80년대에 공장에 들어가 ‘공순이’라는 멸시를 받았지만, 87년 노동자대투쟁을 경험했고 그 힘으로 노조를 세웠으며 30년 넘게 공장에서 일했다. 김진숙은 의류 공장에서 각성제를 먹고 미싱 바늘이 부러지도록 일했다. 첫 생리를 시작한 여자아이들은 철야 중 치마 아래로 흐르는 피를 보고 ‘왜 코피가 아래로 나오지?’라고 했다. 야학에서 근로기준법을 배우고 노조 대의원까지 된 김진숙이 87년 노동자대투쟁을 증언하는 부분은 벅차도록 생생하다.

    여성노동자들은 공장 안에서 일상적으로 겪는 불의와 차별에 맞서 내내 싸웠다. 코리아에프티 김지현은 관리자에게 반말하지 말라고, 대륙금속 서인애는 식당 음식을 개선하라고 싸웠다. 노조를 만들거나 노조에 가입한 후론 변화를 체감했다. 현대중공업 김혜숙은 상여금 차등 지급이 개선됐다고 했고, 앰코 고미경은 사무직과 식사 메뉴가 같아졌다고 했다. 성진CS 정영희는 “노조를 만들고 나니까 늘 우리를 아래로 보던 전무가 90도로 허리를 꺾어 인사하더라”며 놀라워한다. 싸운 이후에야 산전산후 휴가와 수유 시간이 보장됐다. 임금이 인상되고, 휴일에 쉴 수 있고, 자판기와 휴게 공간이 설치되는 등 노동자 단결의 위력은 이들에게 노동자로서의 자긍심을 심었다. 노조 가입과 활동에 따른 탄압이나 부당노동행위도 여성들의 강인한 마음을 꺾지 못했다.

    IMF 외환위기 사태를 겪고 신자유주의 재편에 따른 구조조정, 광범위한 비정규직화, 현재까지 이어지는 자본의 노동 탄압에 이르기까지 제조업 생산직 남성 노동자들에 가려졌지만, 야만의 시대를 지나는 동안 항상 열심히 일했고 싸움에 나설 땐 주저하지 않은 여성들이 늘 존재했다. 금속노조 역사를 넘어 여성노동자의 역사라고 할 만하다.

    해고, 직장폐쇄, 노조 탄압…
    가장 먼저 희생되었지만 강인하고도 따뜻했던

    시대는 물론 주제에 따라서도 여성노동자들의 말을 묶었다. 가난하고 평범한 여성노동자가 노동조합을 만나는 순간, 거친 남성들 속에서 더 거칠게 살아남은 센 언니들인 ‘학출’의 이야기, 폐업과 구조조정으로 공장에서 쫓겨난 사연들,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가 처한 조건과 싸움의 과정, 노조 활동으로 인한 수배와 구속 등 고루 억울하고 부당한 국가와 자본의 탄압 속에서 놀라운 증언들이 시대의 정의를 묻는다.

    ‘노조는 빨갱이, 학출은 불순 세력’이라고 공격받던 시절에도 학생운동 출신 활동가들은 현장에서 조직하고 투쟁하며 노동자의 친구가 아닌 노동자로 살았다. 최윤정은 “내가 학출이고 돈 벌러 왔다”고 내질렀다. 헐값으로 노동자를 부리다 폐업해버린 회사를 상대로 한국산연 노동자들은 25년이나 철수 저지 투쟁을 벌였다. 한국산연 김은형은 정말로 회사가 어려워서 폐업한 게 아니라고 했다. “여성이 노조 위원장이 되고 민주노조를 만드니까 자본을 철수한다는 거죠.” 직장폐쇄를 한다며 파업하는 노조원들을 몰아내고 대체인력을 투입해 공장을 돌린 KEC의 노동자들 이야기도 있다. “우린 일 잘하는 사람 필요 없다, 말 잘 듣는 사람이 필요하다”라는 회사를 상대로 업무방해 배상금 70억 원을 꼬박 3년간 갚아나가면서도 조합원들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

    대규모 정리해고 사태에서도 여성노동자는 제일 먼저 희생됐다. 현대자동차 정영자는 식당 여성조합원, 맞벌이 중 여자, 가족 2인 이상이 직원인 경우의 여자 순서로 통보된 희망퇴직 순서에 반대하며 버텼다. 불법파견 사내하청 등 비정규직이 범람한 시기에도 여성들은 남성 비정규직보다도 적은 임금으로 제조업 현장을 떠받쳤다. 기아자동차 김미희는 집까지 찾아와 “당신 딸이 남자들 틈에서 정규직 되려 한다”고 말한 회사를 상대로 싸워 정규직이 됐다.

    현대차 사내하청업체 권수정은 월차 내겠다던 동료가 관리자에게 칼에 찔린 일을 계기로 노조를 만들고 해고되고 구속까지 됐다. 하지만 여성노동자들은 해고에 반발해 복직투쟁, 천막농성을 하면서도 서로를 돌보았고 함께 웃었다. 기륭전자 유흥희는 용역깡패에게 얻어맞은 날에도 “추석이니 송편도 빚고 전도 부치자”고 했다. 한국시티즌정밀 이은선은 결혼이나 병에 걸리거나 다들 자기 일처럼 도왔다며 ‘언니들’이 많은 노조를 좋아했다.

    이중의 굴레가 만든 ‘센 언니’이자 주변을 끌어안는 따뜻한 연대자

    성평등에 관한 이야기도 여러 장에 할애했다. 공장에서의 고된 노동과 더불어 여성이기에 더해진 차별과 폭력은 삶에 고단함을 더했다. 일터에서도 집에서도 성별에 따라 겪는 차별이 어떻게 구조화되었는지, 성별에 따라 구분된 산업에서 여성노동자들이 어떤 인권 침해를 당하는지 고발한다. 반성폭력운동, 특히 노조 내부에서 발생한 사건이나 성별과 위계에 따른 차별의 실상도 가감 없이 드러냈다. 노조 사무처 여성 활동가들의 이야기는 조직적 성찰이 필요하다는 오늘의 고민을 잘 보여준다.

    대륙금속 서인애는 “여자라서 못 한다는 말이 너무 싫어서 남자들 일도 다 하려고” 한다. 하지만 남성을 기준으로 설계된 생산 라인에서 기아자동차 김미희는 불편하고 힘들다고 호소한다. 성별에 따른 노동현장의 차별은 다양하고 광범위했다. 한 사업장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남성의 일로 간주되는 업종과 여성의 일로 간주되는 업종 사이에 발생하며 한국 산업구조의 차별로 확장했다. 삼화 이동훈은 남성 신입사원 월급이 여성 기장 월급과 같았다고 말한다. 여자는 30년 넘게 다녀도 대리, 남자는 몇 년 만에 과장이 되었다. KEC 황미진이 왜 여성은 승급이 안 되냐고 물으니 회사는 “남자는 가장이라서 승진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남성이 다수인 노조에서도 여성노동자의 투쟁은 어렵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변주현은 “경비에게 맞는 것도 두렵지 않고 삭발도 할 수 있는데 생리통이 심해서 농성장에선 불편하다”고 했다. 관리자의 폭언과 성희롱, 고객의 성추행, 심지어 노조 내부에서 벌어지는 성폭력 사건도 있다. 노조 교육 시간에 ‘야동이나 틀어라’고 하는 이가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노조는 끈질기게 성평등 교육을 하고 성폭력 사건 대응 매뉴얼을 만드는 등 적극적으로 변화하고 또 고민하고 있다. 사무처 상근활동가들은 왜 여성만 회의록 작성 업무를 하는지 문제를 제기하며 조직적 성찰을 추동한다.

    남성보다 더 부지런하고 살뜰해야 했고, 약해 보이지 않도록 대차야 했던 이들은 자본주의와 가부장제라는 이중 고난의 자리, 일터와 가정에서 굴레를 깬 ‘센 언니들’인 동시에 내 옆의 여성을 응원하고 연대하는 따뜻한 동지로 성장했다. 여성과 비정규직, 이주노동자 등 조직되지 않은 노동자들을 모아내려는 금속노조는 마지막으로 필리핀 여성 마디오와 실라의 이야기를 실으며 이들이 ‘우리가 껴안아야 할 미래’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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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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