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21세기 사회주의’는 비전
    2006년 12월 11일 04:3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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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차베스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21세기 사회주의’는 비전이다. 현재 완성돼 있는 것도 아니고, 20세기 사회주의와 같이 현실적으로 만들어졌다가 무너져버린 경우도 아니다. 앞으로 그 방향으로 나아가겠다고 하는 철학이고, 구체적인 전략과 정책을 펼치고 있는 중이다.

오늘의 패권적 신자유주의 정치 경제 지형에 대응하고, 중남미 역사 속에 이미 존재했던 시몬 볼리바르와 그 밖의 사상가들의 이상과 사회주의 이념에 입각하여 ‘모든 사람이 인간적으로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쿠바 독립의 아버지인 시인 호세 마르티는 이런 말을 남겼다 “단 한사람이라도 불행한 사람이 있다면 그 누구도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는 권리를 누릴 수 없다”

미국 견제를 위한 강력한 중남미 국가연합

시몬 볼리바르는 단순한 독립운동가가 아니다. 우리의 안중근 의사가 그렇듯이 깊은 정치사상이 없으면 그런 혁명가가 되지 못 한다. 그는 프랑스 혁명을 모델로 한 자유민주주의는 물론이고, 사회민주주의적 신념이 있었다.

   
  ▲ 볼리비아 건국의 아버지이자 중남미 독립 영웅인 시몬 볼리바르장군. ⓒ볼리비아 대통령궁
 

그는 1819년에 “가장 완전한 정부 체제는, 가능한 가장 큰 행복과 사회보장과 정치적 안정을 만들어내는 데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강력한 미국에 대한 견제를 위한 중남미 국가간 연합을 이상으로 가졌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이같은 중남미 통합의 이상은 하나의 꿈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12월 6일에 볼리비아의 코차밤바에서 ‘민중 통합을 위한 사회포럼( Foro Social de Integracion de los Pueblos)’이, 그리고 12월 8일부터 ‘제 2차 남미국가 정상회의(Cumbre Sudamericana de Naciones )’가 열린다. 베네수엘라가 띄운 통신위성의 이름도 ‘시몬 볼리바르’이다.

이들 회의의 가장 큰 구호가 바로 ‘FTA 반대’다. 사회포럼에는 남미 20여 개 이상의 국가에서 60여 개의 노동, 원주민, 여성, 농민, 사회단체 대표 2,500명이 모인다. 그리고 각 테마별 분과 토론은 80여 개가 넘는다. 남미 통합을 위한 정상회의에는 12개 나라의 국가원수가 모인다.

반FTA로 뭉치는 중남미 국가와 민중 

지금 존재하는 신자유주의를 그대로 따라가겠다는 게 우리 정부라면, 차베스 정부는 미국 유일의 단극적 국제 정치 경제 체제를 바꿔 다극적 체제로 만들고 중남미도 그 중의 하나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꿈만 꾸고 있다면 몽상가일 것이다. 그들은 이를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현재 진행형이기에 애매함도 많다. 예를 들어 베네수엘라의 혁명적 실험은 ‘21세기 사회주의’ 이외에 ‘볼리바리안 혁명, 신사회주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 유토피아 사회주의, 적도 사회주의, 인간적 사회주의, 대안적 사회주의, 사회 경제, 아름다운 혁명, 저성장의 철학’ 등으로도 불리고 있다. 하나하나의 단어들이 함축하고 있는 정치적 은유는 실제로 복합적인 베네수엘라 혁명과정의 어느 일부를 상징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적 선거를 통해 당선된 사람이 사회주의를 하겠다는 것은 국민을 속이는 포퓰리즘이거나 사회민주주의자가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1970년에 칠레의 아엔데 정부는 합법적 선거를 통해 사회주의 체제를 수립하고 있었다. 그러나 기득권층의 사보타지와 미국의 지원 하에 일어난 1973년 피노체트의 군사 쿠데타가 이 정부를 무너뜨렸다. 중남미 정치인, 지식인들이 이런 역사를 어떻게 잊고 살 수 있겠는가.

얼마 전, 노 대통령이 언급한 ‘좌파 신자유주의’란 말 때문에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바로 베네수엘라에서 테오도르 뻬꼽이란 정치인이 ‘좌파 신자유주의’란 말을 썼다. 그는 원래 좌파 정당의 창당 멤버였고, 차베스가 집권하기 전 라파엘 깔데라 정부에서 경제 장관을 역임했다.

남미에도 ‘좌파 신자유주의자’가 있다

가난은 실업에서 오는 것이고, 실업 즉 고용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제성장을 해야 하고, 성장을 통해 고용이 늘면 가난은 저절로 없어진다는,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다. 물론 그는 대중에게 인기가 하나도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1989년의 ‘카라카스 대사건’을 분기점으로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을 시행하는 정부가 정통성을 잃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후, 반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을 공약하고 1993년 12월 라파엘 깔데라 정부가 들어선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는 정부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 경제 체제의 문제이다. 쉽게 신자유주의의 압력을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리하여 베네수엘라는 1996년, IMF에 구조조정의 요청을 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인이 뭐라 해도 믿을 국민이 있겠는가. 석유붐으로 베네수엘라가 잘 나가던 때인 1975년의 빈곤층과 극빈층을 합하면 국민의 약 47% 정도 되는데, 1997년의 위기상황에서는 그 비율이 90%를 넘는다. 그리하여 1998년 차베스가 집권하게 된다.

차베스는 집권하자마자 헌법을 새로 제정했다. 이 헌법 내용을 보면 사유재산제와 시장경제를 유지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 나라 헌법에는 없는 조항들이 많다.

‘참여 민주주의’ 구현한 헌법

예를 들어, 제 5조에 “주권은 양도할 수 없게 국민에 존재한다. 국민은 이 헌법과 법률에 예시된 형태로 직접적으로 주권을 행사한다. 국가기관들은 국민주권에서부터 나오는 것이고, 거기에 종속되어 있다”고 되어 있다. 차베스 자신도 국민소환을 위한 국민투표를 통해 재신임을 받은 바 있다.

   
  ▲ 최근 3선에 성공한 우고 차베스 대통령
 

제 62조에 “모든 시민은 공공적인 일에 직접 또는 선발된 대표를 통해 자유롭게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 공공행정의 형성, 집행, 통제에의 시민의 참여는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나 그들의 완전한 발전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다”라고 되어 있고, 이에 따라 ‘주민위원회’가 5만 개나 조직되어 있다.

제 70조에 “모든 국민은 주권의 행사로서 공직의 선출, 국민소환, 국민투표, 입법청원, 시민의회 등을 통해 정치 참여의 권리가 있다. 경제 사회적 차원에서 시민 요구의 청원, 자주경영, 공동경영, 금융 성격을 포함한 모든 형태의 조합, 신용금고, 공동체 기업 및 기타 조합들에 상호 협력과 연대의 가치에 기반해 참여할 권리가 있다”고 되어 있다. 다양한 형태를 띤 이런 조합의 숫자는 10만 개에 이른다.

현재 ‘노동자 공동 경영’은 5개 기업에서 실시되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INVEPAL이라고 하는 제지회사가 대표적이다. 전에는 Venepal이라고 하는 개인 기업이었는데, 기업주가 공장을 폐쇄하려 했고, 여기에 노동자들은 저항을 하였다.

2005년 1월 파산상태인 회사를 복구하고 노동자들의 고용을 위해 의회 결의를 거쳐 국유화시킨 후 공무원을 파견하여 노동자들과 공동으로 경영을 하고 있다. 정부가 51%, 노동자들의 조합이 49%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정부 51%, 노동조합 49%

노동자들이 이사회에 단지 참여하는 것만이 아니라, 국가가 파견한 이사들 3명과 노동자 대표 3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정상적 경영 상태의 일반 회사를 국유화시켜 공동경영을 추진하지는 않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민간기업의 비중이 더 큰 부르주아 시장경제 체제를 가지고 있다. 국영기업과 민간기업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각각 31%, 69%라고 한다. 그러나 국영기업인 석유회사가 베네수엘라 경제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시 말해 시장과 국가의 관계에서 국가의 힘이 전통적으로 크다고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다른 대부분의 중남미 국가들과 다르고, 21세기 사회주의 정책을 펼칠 수 있는 기반이라고 보인다. 물론 국영 석유회사의 힘이 막강한 사우디 같은 나라는 그렇지 않지만.

21세기 사회주의라고 불리우는 이유는 또 있다. 다름 아닌 대규모의 대안적 매스 미디어 네트웍을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적으로 소개하고 싶은 프로는 국영 Venezolana 텔레비전에서 매주 일요일 차베스 대통령과 대화할 수 있는 ‘안녕하세요 대통령’이다.

국민 누구든지 전화를 걸 수 있다고 한다. 이 프로는 인터넷, 케이블 TV, 국영 라디오 채널로도 들을 수 있다. 그리고 볼리바리안 혁명의 사회적 공공성 프로를 주로 소개하는 국영 Vive TV가 있고, 카라카스시 대안 방송 Avila TV도 있다. 이외에 의회의 활동을 중계하는 케이블 TV도 있다. 여기에 텔레수르가 가세함은 물론이다.

21세기 사회주의는 TV와 함께?

그리고 앞서 언급했던 주민위원회가 컴퓨터 네트웍으로 모든 정부기구, 의회, 주정부등과 연결되어 있어, 국민들이 실시간으로 입법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고 한다. 이처럼 매스미디어를 중시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2002년 4월의 기득권층 쿠테타와 2002년 12월부터 2003년 2월까지의 석유파업, 사보타지의 과정 중에 상업TV들의 차베스 비난과 공격이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석유 파업은 베네수엘라의 국부의 핵심을 이루는 석유 생산에 심대한 타격을 가했다. 앞에 이야기한 기득권층에는 기업인들 이외에 노조도 포함된다. 실패한 쿠데타 주역 두 명 중 한 명은 상공회의소 의장이었고 다른 한명은 CTV라는 전국노조의 지도자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그 기원을 찾기 위해서는 1959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AD와 COPEI라는, 사회민주주의 이데올로기를 가진 두 개의 정당이 서로 평화적으로 정권을 교체하면서 기득권을 나누어 가지기로 타협하였다. 이를 Punto Fijo 협약이라고 한다. 이들은 CTV라는 노조 지도부를 같이 끌어안고 간다. 이런 형식이 상당수 중남미 국가들의 포퓰리즘이다. 약간의 사회보장 정책을 펼치기는 했지만.

위의 두 정당 야합 체제는 80년대에 들어와 석유수입이 감소하면서 흔들리게 되었고, 무엇보다 80년대 후반 미국의 베네수엘라 길들이기 전략과 이에 대한 시민의 저항에 따라 무너지게 된 것이다. 위의 야합적 체제에 들어가지 않은 좌파 세력은 60년대의 무장혁명 노선이 실패한 뒤에 일부는 노동자, 학생, 도시빈민, 지방으로 들어가 새로운 헤게모니 구축 전략을 기획, 실천하여 일부 성공하기도 한다.

자연적 존재에서 역사적 존재로

그 예가 오늘날 차베스 정부를 밑에서부터 받치는 정치 세력중의 하나로, 70년대에 출범하여 80년대와 90년대에 걸쳐 급진적 민중지향성을 보이며 정치적으로도 성공했던 실험적 소수 정당인 LCR이다.

차베스 정부의 정책 중 우리 상황에 덧붙여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다. 베네수엘라는 쿠바, 볼리비아, 에콰도르 등과 함께 중남미에서 유전자 조작 농산물을 거부하는 정책을 적극 추진 중이다. 2002년부터 법으로 유전자 조작 농산물의 유통을 금지시키고 있으며, 토종 종자의 보호에 나서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1999년부터 중남미 농민단체, 원주민, 환경단체, 시민단체들이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은 미셀 발리보의 말을 인용하고 싶다. “인간이 가져온 모든 사상사를 보면 독단주의, 근본주의에 맞서 창의성, 자유로운 사상이 다른 한 축으로 싸워온 것을 알 수 있다. 전자는 인간을 자연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반면 후자는 인간은 자연적 존재가 아니라 역사적 존재임을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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