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노동당 '부동산 좌파' 분명히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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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12월 11일 12:5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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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동산 문제는 복잡하다. 경제학자 조순은 현재의 부동산 문제가 “유동성 증가와 인플레 심리, 인구 및 경제활동의 수도권 집중, 금융 낙후와 직접금융 미발달, 교육 평준화와 학군제, 구제금융(IMF) 이후의 저성장과 양극화, 저금리 정책과 주택 담보대출 정착, 택지개발에 관한 토지개발공사·주택공사 등의 불투명한 관행, 행정도시·혁신도시·기업도시 지정과 전국적인 땅값 상승, 정부 정책의 상호 모순 등 많은 문제가 복합되어 있다”고 말한다.(한겨레, 2006년 11월 22일)

    한마디로 부동산 문제에는 압축성장 시대의 문제점들이 압축되어 있다. 수많은 문제점들이 뒤엉켜 있고, 해법들도 수없이 많다. 복잡한 문제에 대한 복잡한 해법, 그 이면에는 복잡한 입장들이 있다.

    난장(亂場). 과거를 보는 마당에서 선비들이 질서 없이 들끓어 뒤죽박죽이 된 곳을 난장이라 불렀다. 부동산은 입신양명이 아니라 로또를 꿈꾸는 수많은 자들이 얽힌 난장판이다. 우리는 이 판을 다시 보고자 한다. 우왕좌왕 헤매게 만드는 군중심리 너머에 있는 원칙들을 다시 확인하고 때로는 상식처럼 굳어진 말들을 다시 의심할 것이다.

    <레디앙>은 앞으로 수차례에 걸쳐 ‘공간연구집단’과 공동으로 주택 정책을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하고 보다 근본적인 대안 모색을 위한 글을 연재한다. ‘공간연구집단’은 기존의 공간 담론들이 특정 집단들의 배타적 이익을 숨기는데 반대하고, 이론과 실천을 아우르는 학문을 탐구하기 위해 도시계획, 도시설계, 건축, 지리학 등의 전공자들이 함께 연구하는 곳이다. <편집자 주>

    경실련은 주택정책의 방향성이 갈리는 분기점에 있다. 시민단체 경실련, 이들은 시민을 대변하는가? 쓸데없는 질문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부르주아 ‘시민성’이 결여된 한국 ‘시민운동’이 서구 유럽처럼 ‘부르주아’ 성격을 더해간다는 점에서 본다면 중요한 질문이다.

    시민단체 경실련과 좌파의 주택정책

    경실련은 세금문제, 참정권 문제 등등 현 사회체제를 유지하는 데 당연히 굴러가야 할 미덕들을 보호한다. 경실련이 대변하는 ‘시민’은 사회에서 억압받는 소수자, 체제에 의해 죽어갈 수밖에 없는 빈민들이 아니다. 경실련 홈페이지에는 ‘비정규직’ 관련된 논평이 없다.

    2000년 4월과 2003년 1월 비정규직 토론회 소식과 자료만 있다. 그들을 비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경실련은 사회에서 나름대로의 좋은 역할을 수행한다. 필자는 단지 그들의 존재 이유에 대해서 환기하고자 할뿐이다.

    그러한 그들이 현재 부동산 정국의 선봉에 서있다. 그 흐름 속에 뛰어난 활동가도 있고, 국민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훌륭한 선언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움직이는 장과 그 성격은 일치한다. 그 동안의 부동산 위기와 현재의 위기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이제부터는 경실련이 대변하는 집단들까지 위험하다는 것이다.

    부르주아 시민들조차 집값의 위기에 휩싸이기 시작했다는 것, 혹은 이전의 프티 부르주아들이 더 이상 그 위치를 지키기 힘들어졌다는 것, 필자는 후자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다.

    분양원가 공개, 정치적 히트 상품이지만 처방전 못돼

    경실련에서 얘기했던 부동산 이슈들을 추적해보자. 첫 번째, 분양원가 공개. 정치적 히트상품이다. 언론에서 회자되고 많은 사람들이 ‘분양원가 공개’를 써먹었다. 그러나 분양원가 공개가 주택정책의 처방전인가? 아니다.

       
      ▲ 아파트 값 거품빼기 캠페인을 하고 있는 경실련 (사진=경실련 홈페이지)
     

    ‘분양원가 공개’라는 화살표는 과거의 ‘비리’와 ‘폭리’에 맞추어져 있다. 내장재가 비싼 주상복합이나 땅값이 비싼 곳에서 벌어지는 고가 주택과는 거리가 멀다. 집값의 반을 건설사가 가져갔다고 할 수는 있어도 앞으로 집값이 반으로 떨어지지는 않는다.

    왜냐고? 집을 파는 쪽은 대기업이지만 이미 집을 가진 사람들은 쪼개진 개별자들이다. 집 가진 사람들, 대출받아 집 샀던 사람들의 자산 감소를 정치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한 집값은 떨어지지 않는다. 경실련이 ‘분양원가 공개’를 주장하고 이후 계속 ‘건설사’의 폭리를 폭로하지만 이것이 주택정책을 해결하는 처방전이 될 수 없다.

    그럼에도 정치권에서 ‘분양원가 공개’를 안 받은 이유는? 건설업의 정치자금이 정치권을 지배했기 때문이다. 정치자금의 출처가 다양하게 분산되었다면 분양원가는 공개되었을 것이다. 이미 평균수익률을 조금 상회하는 이익만 먹어가는 선진국 주택시장에서도 빈민들은 쫓겨나고, 집값은 뛴다.

    두 번째, 분양가 상한제. 뉴타운 등 분양가가 폭등하자 경실련은 분양가 상한제를 얘기했다. 한마디로 다시 10년 전으로 돌아가자는 말이다. 그 문제는 주택정책을 연구하는 학자라면 누구나 다 안다.

    분양가 상한제, 10년 전으로 돌아가지는 말

    새집이 싸고 헌집이 비싼 상황에서 벌어지는 로또의 광풍, 개발이익을 전유하는 집단의 탄생. 이는 주택시장에서 고분양가 아파트가 집값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지만, 저분양가 주택이 집값을 끌어내리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시장의 특성 때문이다.

    또한 주택은 원가대로 가격이 결정되는 상품이 아니다. 독점적인 위치들의 특성(지대에서의 지력)에 따라 주택가격은 현실화되고, 원가 중의 한 요소인 토지시장과 주택시장은 제도적으로 불일치 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세 번째로 경실련은 ‘후분양제도’와 ‘환매수조건부’ 분양을 말한다. 그들이 말하는 ‘후분양제도’는 다 지은 다음 원가에 맞춰서 시세보다 싸게 내놓으라는 것인가? 또한 다시 팔 때는 공공기관에 시세보다 ‘싸게’ 팔라는 것인가?

    생각해 보았는가 그 혼란을? 시세는 ‘2억’인데 싸게 ‘1억 5천’으로 팔았고, 집은 ‘3억’까지 뛰었는데 ‘1억 오천+알파’로 싸게 다시 팔라고 했을 때 각각의 경제주체들이 서로 치고받고 싸울 일들을 상상해보았는가?

    정책적으로 무책임한 경실련 해법

    주택시장에서 경실련이 10년간 보여준 활동을 존경한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은 주택문제를 이슈화시키고 사람들을 동원하는 정치적 이벤트로는 성공이지만, 정책적으로는 무책임하다. 끊임없이 “이것이 해법이다”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그것’은 답이 아니다. 경실련은 새로운 해법을 끊임없이 주장하는 것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슈의 계열로 움직이는 ‘시민’ 단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경실련이 말하는 ‘정책’들의 방향성은 공교롭게도 단 한 곳을 찌르고 있다. 바로 집을 갖고 싶은 프티 부르주아들, 혹은 프티 부르주아에 속한다고 믿는 가상의 집단이다. 그들은 지난 개발시대에 중간계급, 중산층으로 불려왔던 이들의 자식들(30대)이자 고임금이라는 대가로 생산라인에 배치되었던 포드주의 하의 숙련노동자들(40대)이다.

    경실련이 자리 잡은 위치는 바로 이 지점이다. 한국 중간계급의 정치세력화인 90년대에 출발했던 경실련은 중간계급을 붕괴시키는 지금의 상황에서 최전선의 전사로 싸우고 있다. 자산을 가진 ‘소시민’들을 붕괴시키는 거대한 경제 구조조정 속에서 ‘부동산’이라는 공격지점을 잡고 맞선다. 단 한사람의 아이디어와 개인경력에 의해 이 싸움이 시작되었을지는 몰라도 경실련은 놀랄 만큼 정확하게 그들 문제의 핵심을 짚어냈다.

    사람들은 민주노동당을 보고 ‘경실련보다도 못한 당’이라고 한다. 현재의 모습을 보면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현재의 부동산 판을 그대로 둔다면 ‘경실련만큼 할 수 없다.’ 지금의 부동산 문제는 연봉 5천~6천만 원을 받는 중간층까지 건드렸기 때문에 벌어지는 이슈화이다.

    “아니 내가 이렇게 돈 버는데도 집 사는 게 힘들어?” 중간계급으로 착실하게 성장해서 지켜낼 수 있을 것 같던 사회적 지위가 집값으로 순식간에 무너져버리는 충격 속에서 현재의 부동산 위기가 발전했다. 빈민들의 주거 환경은 예나 지금이나 나아진 것이 없고, 집값이 반 토막 되어 2000년도의 집값으로 돌아간다 해도 집을 못사는 사람들이 말 그대로 태반이다.

    "민주노동당은 ‘비정규직 주택 우리가 책임진다’ 말해야"

    오히려 문제는 ‘경실련과 함께 할 수 있을까?’이다. 더 나아가 비리 폭로전, 정치 이벤트, 무엇 하나 시민단체와 다를 바 없어지는 정당이 되어가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민주노동당은 좌파 정당인가?

    ‘좌파’라는 말로 논쟁을 벌이고 싶지는 않다면 다르게 말할 수 있다. 민주노동당은 누구를 대변하는가? ‘서민? 국민?’ 경실련이 대변하는 자와 민주노동당이 대변하는 자가 같을 수는 없다. 그럼에도 ‘서민’이라는 말과 함께 정작 중요한 지점을 놓쳐버리고 경실련의 ‘훈계’ 앞에 얼굴을 숙인다. 정작 반성해야 할 것은 자신의 존재 이유도 까먹는 나태함이다.

    현재의 부동산 문제에서 민주노동당은 “비정규직의 주택 정책은 우리가 책임진다.”라는 정치적 선언을 해야 한다. 경실련, 언론, 정치권 등에서 ‘집값’이라는 말에 매몰되어 있을 때 아주 예전부터 집과 관련되어 아무 희망이 없었던 사람들, 집에서 쫓겨나 생존권을 박탈당한 사람들을 직접 찾아가고, 그들의 삶을 같이 느끼고 함께 살아갈 방안을 찾아야 한다.

    바로 거기서부터 출발해서 민주노동당의 존재 이유가 되는 사람들을 넓혀 가야 한다. 즉, 프티 부르주아의 위기에서 불길이 번진 주택문제를 좌파의 맥락 속에 재위치 시키고 현재의 권력관계들을 비틀어야 한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은 현재 철거당해 고생하는 사람들이 전국 어디에 박혀있는지 조사조차 하지 않았었다.

    또한 ‘비정규직’은 고사하고 ‘당원’들의 주거조건에 대한 상황 판단조차 할 수 없다. 무엇을 알아야 근거를 갖고 싸울 것이 아닌가? 집값을 낮추자는 정치적 행위들, 부동산 오적이라고 비난하는 성명들, 그 모든 것들이 정당으로서는 공허하다. ‘당의 정책이 부재인가 아니면 기획의 부재인가?’ 둘 다 아니다. 정책도 기획도 ‘누구’와 함께 해야 하는지를 모르면 헛발질이고, 저 혼자 하면 ‘생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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