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대, 청소노동자에게
    “건물명 영어로 써보라”
    50대 청소노동자 사망, 노조와 유족 “갑질 등 직장 내 괴롭힘이 원인”
        2021년 07월 07일 10:2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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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학교에서 일하던 50대 여성 청소노동자 이 모 씨가 휴게실에서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유족과 노동조합은 열악한 노동환경과 직장 내 괴롭힘이 그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노총 민주일반노조와 유족은 7일 오후 서울시 관악구에 있는 서울대 행정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대학교는 청소 노동자 죽음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노동환경을 즉시 개선해 노동인권을 보장하라”며, 오세정 서울대 총장을 규탄했다.

    이하 사진은 민주일반노조

    노조에 따르면, 지난달 26일 청소노동자 이 씨가 서울대 기숙사 건물 청소노동자 휴게실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직접 사인은 급성심근경색으로 스트레스가 주요한 원인으로 꼽힌다. 앞서 2019년 8월에도 서울대 청소노동자가 폭염 속 창문과 에어컨도 없는 휴게실에서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노조와 유족은 서울대 측의 갑질, 군대식 업무 지시, 강도 높은 노동으로 인해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 것이 고인의 사망과 무관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씨가 근무한 925동 여학생 기숙사 건물은 학생 수가 가장 많은 곳인데다, 엘리베이터도 없어서 매일 100L 쓰레기봉투 6~7개와 음식물과 재활용 쓰레기를 직접 날랐다. 유족 측은 “병 같은 경우 무게가 많이 나가고, 끌어서 운반하는 경우 깨질 염려가 있어 들고 날라야했다. 항상 손가락이 아프고 손이 저릴 정도의 노동 강도에 시달려야만 했다”고 전했다.

    더 큰 문제는 서울대 측이 청소노동자를 상대로 갑질을 하고, 모욕감을 주는 행위 등을 일삼으면서 고인이 상당한 스트레스에 시달려왔다는 점이다. 서울대 청소노동자는 서울대에 직고용하고 있다.

    노조에 따르면, 지난달 초 부임한 안전관리팀장 B씨는 청소노동자들의 근무 질서를 잡겠다는 이유로 시작한 매주 1회 회의에선 복장 통제까지 했다. B씨가 보낸 메시지를 보면 업무 특성상 편한 복장으로 출퇴근을 하는 청소노동자들에게 “남성은 정장 또는 남방에 멋진 구두, 여성은 최대한 멋진 모습”으로 회의에 참석하라고 했다. 노동자들이 요구하는 복장을 갖추지 않은 채로 회의에 참석하면 모욕감을 주기도 했다.

    노조 등은 “지난달 초 새로 부임한 안전관리팀장은 청소노동자들이 회의에 볼펜이나 수첩을 가져오지 않으면 1점 감점하겠다며 협박하는 등 일방적으로 인사권을 남용하고, 2차 회의 때부터는 청소 노동자들에게 시험까지 강요했다”고 지적했다.

    더 나아가 B씨는 청소업무와 무관한 필기시험까지 보게 한 것으로 드러났다. 시험은 ‘관악학생생활관’을 영어로 쓰게 하거나, 기숙사 첫 개관년도 등을 묻는 내용이었다. 시험 점주는 다음 회의에서 모두에게 공개됐고 고령의 청소노동자들은 이로 인해 상당한 모욕감과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한다.

    청소노동자들이 가장 힘들다고 여긴 제초작업도 B씨가 부임하면서 시작됐다. 회의 중 청소노동자들이 제초작업의 어려움을 호소하자 B씨는 평일 근무 시간을 단축해 남은 인건비로 제초작업 외주를 주겠다고 맞받았다. 회의에 참석한 조합원 C씨는 “임금 문제는 노조와 합의해서 해야 하는 거 아니냐. 그런 식으로 임금을 깎는다는 말은 협박으로 들린다”고 항의했다.

    청소노동자에게 제시한 시험 내용

    드레스코드 강요한 톡 대화 내용

    서울대는 이 씨의 사망 사건에 대해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노조는 유가족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와 고인의 죽음과 관련된 관리자 처벌, 재발방지대책 등을 요구하고 있다.

    노조는 “서울대학교 내에서는 2년이 채 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또 다른 청소 노동자가 일터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산재 사망의 진짜 원인은 서울대학교의 겉보기식의 조사와 대책, 관리자들의 직장 내 갑질, 증가하는 노동 강도에 대한 무책임이 원인”이라고 비판했다.

    노조는 ▲산재 공동 조사단 구성을 통한 진상규명 ▲직장 내 갑질 자행한 관리자 파면 ▲강압적인 인사관리 방식 개선 ▲노동환경 개선 및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협의체 구성 등을 요구하고 있다.

    회견에 참석한 유가족은 “노동자는 적이 아니다. 강압적인 태도로 노동자들을 대우하지 말아 달라”며 “일을 하러 왔지 죽으러 출근 하지 않았다. 서울대학교는 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을 배려해 꼭 집으로 돌아 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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