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성민과 이준석,
    부당대립의 대안은 뭘까
    [기고] 주거·교육·의료·일자리 등 사회주의 수준의 강력한 공공성 필요
        2021년 06월 28일 09:3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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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민을 청와대 1급 비서관에 임명한 것을 두고 논란이 많다. 청와대는 이철희 정무수석까지 나서서 적극 방어하는 형국이며, 고대 동문들을 중심으로 박탈감닷컴이라는 커뮤니티까지 생겼다.

    청와대로서는 예상 외의 반응에 당황스러울 수 밖에 없고 억울한 면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또 지금 여당과 청와대가 공격 받는 적지 않은 측면은 박성민 비서관의 문제라기보다는 정부 여당의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박성민 비서관은 청와대의 들러리 역할 이상을 하기 힘들 것이다. 박비서관은 20대 청년들이 조국사건에서 느꼈던 불공정과 박탈감을 대변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최고위원으로서 박성민의 발언은 민주당의 태도 변화에 손톱만큼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박성민은 민주당 안에서 상대적으로 페미니즘적 시선을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하기도 했다. 블랙핑크 간호사복 논란에서도, 서울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기 위한 당헌 개정 투표 때에도, 박성민의 주장은 당 주류와 달랐지만, 그의 의견은 당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았다.

    박성민이 그간 취해온 입장의 상대적 진보성에도 불구하고 그의 생각은 당의 판단이 되지 않았고, 이 상황에 반전을 가져올 어떤 조직적인 준비나 정치적인 액션도 뒤따른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청년들에게 민감한 대학등록금, 학자금대출, 주거정책 등 분야에서 의제를 선도하지도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박성민이 영향력이 더 큰 청와대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기대하는 일이 쉬운 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박성민 임명을 통해 청와대가 필요한 만큼의 권한을 보장하여 획기적이고 실질적인 청년정책을 추진할 의도라기보다는, 공정과 청년 담론의 파고 앞에 영혼 없는 한 수를 둔 것에 불과하다는 판단에 대해, 나는 반박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정치권에 ‘공정’ 이슈를 전면에 들고 나선 것은 민주당이었다. 이들의 공정론은 무슨 적극적인 이념도 아니고, 다수의 정책 패키지로 뒷받침되는 구체성 있는 변화의 아이템도 아니었다고 평가한다. 그렇다면 민주당과 청와대에 공정론의 효용은 무엇이었는가. 내가 보기에 그것은 ‘평등의 요구’를 무마하기 위한 것이었다.

    대학서열화를 폐지하기 위해 국공립대학부터 통합네트워크를 만들자든지, 대학교육 무상화를 추진하자든지, 청년기초자산제를 도입하여 만20세 청년에게 3천만원을 지급하자든지, 주거공급은 정부가 책임지자든지 하는 평등이념에 입각한 구체적인 요구를 공정한 출발과 공정한 시험제도로 틀어막고, 비정규직 정규직화 같은 불가피했던 공약을 파기할 근거로 삼았던 것이다.

    평등한 나라를 만들자는 광장의 요구와 자신들의 약속을 비틀어 촛불인 듯 촛불 아닌 정부를 빚어낸 것은 민주당이었다. 시민들은 분노하기보다는 체념했다. 촛불의 온기가 다 식기도 전에 여당의 잘못을 이유로 그토록 애써서 밀어냈던 국민의힘에 힘을 실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당장은 민주당의 힘을 뺄 수 없었던 시민들이 찾은 말이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소확행이었다.

    오직 나만을 믿을 수 있다. 나의 노력만이 확실하고 그것이 비록 소소하더라도 확실한 길이었다. 정치를 믿지 못하게 된 시민들이 소확행의 길을 가려는데, 배반 당하지 않는 노력들의 경쟁에서라도 아빠/엄마 찬스 같은 이물질은 제거해 주는 것이 공정한 정부의 최소한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렇게 공정은 시대의 화두가 되었다.

    그런데 그 공정의 본질이 ‘공정함’에 있다기보다는 공정한 ‘경쟁’에 있다는 것을 알아챈 이준석이라는 영민한 보수논객이 제1야당의 대표가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준석은 민주당식 정치의 결과라 할 수 있다. 대처의 진정한 후계자가 토니 블레어라는 평가가 있는데, 이 경우도 같다.

    결국 ‘평등한 나라’ 비전을 회피하기 위한 민주당 대항논리였던 ‘공정담론’, 그것의 화신이 되어 버린 이준석이라는 결과에 대해 다시 민주당과 청와대가 대응전략을 구사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 상황의 가장 적절한 방책이 ‘박성민’인가? 박성민식 공정과 이준석식 공정이 맞붙으면 되는가?

    그들의 왼쪽 서랍엔 무엇이? 하지만 감당하지 못하는 것들

    논리적으로 민주당이 이 상황에서 꺼내야 하는 화두는 굳게 잠궈 놓았던 왼쪽 서랍에 있다. 그러나 그 서랍은 열지 못할 것이다. 왼쪽 서랍을 열면 붉은 귀신들을 가둬 놓은 호리병이 튀어나와 감당할 수 없는 혼란이 올 것이라는 신앙적 미신이 이들의 종교가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민주당은 그 왼쪽 서랍의 열쇠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 진즉에 어딘가에 던져버렸다. 왼쪽 서랍은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한 번씩 만져보고 냄새만 묻히면 되는 용도로 쓰임이 변경된지 오래.

    다음 대선을 포함한 이제부터의 정치 구도는 정의당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왼쪽 서랍 속 무지개빛깔 무기들과 보수이념이 맞대결을 펼치는 상황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안된다. 민주당은 국민의힘과 전투를 치를 수 없다. 다시 말하지만 저들의 축구는 언제나 친선경기일 뿐이다.

    비록 아직은 주전 선수들도 약하고, 대기하는 후보선 수가 두텁지는 않더라도 이 그라운드에서 평등한 세상을 만들고야 말겠다는 불굴의 의지를 가진 사람들의 땀에 박수를 보내기 시작해야 한다. 정의당은 그 박수를 불러올 준비를 해야 한다.

    3기 신도시를 추진할 당시에 이 공급정책/부동산부양책 앞에 왜 망설였는가 평가해야 한다. GTX ABC노선이 이야기될 때 이것이 정말 광역교통정책이라고 믿었는가에 대해 고백하고 반성해야 한다. 정의당의 그린뉴딜을 왜 성장전략으로 제시했는지 지금도 그러한지 물어야 한다. 우리 당 전직 의원들에게 지금도 이 정부가 보내는 추파에 대해 왜 단호하지 못했고 결국 부역하게 했는지 절절하게 내보이고 반성해야 한다.

    당연히 후회하고 반성하고 고개를 조아리기만 해서는 안될 일이다.

    코로나 재난의 한 가운데를 통과하면서도 민주주의를 성숙하게 하고 민중의 힘을 키워왔던 칠레라는 나라도 있다. 독일 녹색당의 약진도 눈여겨 보아야 한다. 이들이 자신들의 색깔을 버리고 민중의 선택을 받은 것이 아니었다. 더 선명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대안이 되고자 했다. 정의당의 혁신과 변화는 이준석보다 한 살이라도 더 적은 정치인을 찾아내는 것에서가 아니라, 왼쪽 서랍을 자신있게 열어 젖히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주거, 교육, 의료, 일자리 문제 만큼은 사회주의 수준의 강력한 공공성 강화 정책이 필요하다.

    택지소유상한제법이 있었듯 주택소유상한제법을 제안하자. 대학서열화와 입시중심 교육을 완전히 개혁하고 통합네트워크 대학과 대학무상교육 시대로 나가자. 건강보험 보장성 100%를 목표로 삼자. 일자리국가보장 시대를 만들어 우리들의 도시를 완전고용도시로 다시 건설하자.

    1987년에 시작된 6공화국 헌법은 이제 낡았다고 이야기하자. 완전히 새로운 나라를 다시 설계하자고 말하자. 그 시절에는 스마트폰도 없었고 인터넷도 없었으니, 사라질 권리를 말하는 사람도, 무상와이파이 인터넷 접근권을 주장하는 사람도 없었다. 대학은 소 팔아서 보내는 곳이라고 생각했지 어떤 나라는 아무것도 내다 팔지 않고 나라가 대학에 보내준다는 것을 알지도 못했다. 20세기 낡은 헌법으로 21세기 시민의 행복을 담보할 수 없으니 새로운 나라를 새로운 헌법으로 재설계 하자.

    건국 이래 단 한 사람의 대통령도 평온하게 노후를 보내지 못했다. 도망가고 총맞아죽고 감옥에 가고 스스로 떠났다. 제왕적 대통령제 하에서 제왕의 운명은 늘 그랬다. 이제 제왕이 아니라 공화국의 총리가 시민의 뜻을 받드는 나라를 생각할 때가 왔다.

    이 모든 변화의 역동을 자신있게 제안하고 주도할 정치가 필요하다.

    * 본인의 페북에 있는 글을 동의하게 게재한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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