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감독 켄 로치, 다른 미래를 꿈꾸다
    [책소개] 『비주류의 이의신청』(박홍규/ 틈새의시간)
        2021년 06월 26일 07:33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칸영화제가 가장 사랑한 감독’ ‘현대 유럽을 대표하는 좌파 감독’ ‘블루칼라의 시인’이라 불리는 켄 로치의 작품을 소재로 영국과 한국의 사회를 넘나들며 국가, 인권, 자유, 노동, 가족, 복지 등 인간 삶의 주요 가치와 이슈를 되짚는다. 스크린에 갇힌 현실을 해방하여 공감의 스펙트럼을 넓힌 것이다.

    눈여겨보아야 할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은 켄 로치 영화에 대한 ‘깊고 친절한 안내서’라는 측면이다. 일반 사람들이 켄의 영화에 좀 더 쉽게 다가가고, 그의 영화를 좀 더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라는 뜻인데, 가령 <토지와 자유>를 이야기할 때는 그 배경인 스페인혁명에 대해,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을 이야기할 때엔 아일랜드 독립전쟁에 대해 상세하게 안내하는 식이다.

    세 번째 장점은 켄 로치의 영화를 감상하면서 인류 지성사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짧게나마 조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윌리엄 모리스, 조지 오웰, 레이먼드 윌리엄스를 비롯하여 레온 트로츠키와 E. H. 카 등이다. 이들은 모두 켄에게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준 인물인데, 이들의 사상을 이해하면 켄 로치의 영화세계를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다. 평생을 노동당 당원으로서 살아온 켄 로치는 그 누구보다 평등하고 자유롭고 수평적인 사회를 꿈꾸어온 사람이다. 그리고 그의 영화는 정치 권력이나 자본 권력이 서민을 착취하는 이 세상에서 반세기 이상, 비주류의 이의신청 수단으로 기여해왔다. 이 책은 평생 노동자처럼 글을 써온 저자가 평생 노동하듯 영화를 만들어온 거장 켄 로치에게 바치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헌사다.

    384

    지금과 다른 미래는 가능한가?

    켄 로치는 1964년에 만든 <캐서린>부터 2019년의 <미안해요, 리키>에 이르기까지 55년 동안 거의 매년 영화를 찍었다. 이 책에 실린 작품은 1960년대부터 2010년대 후반까지 그가 작업한 것들이다. 그중 함께 고민하고 싶은 주제를 담아낸 영화를 바탕으로 영국과 한국 시민사회의 이모저모를 견주고, 그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보통사람의 삶을 조망한다.

    가족과 함께, 이웃과 함께, 조국에서,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었던 이들의 일상은 과연 무엇 때문에 무너지고 상처받아야 했을까? 거장의 따뜻한 시선은 이 같은 질문 아래 시종일관 진지하게 그러나 더 자주 유쾌하게 ‘보통이고 싶은 삶’을 탐색한다.

    가령 <스위트 식스틴>에서는 가족 때문에 조금도 달콤하지 않은 청소년의 일상을, 불후의 명작 <토지와 자유>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에서는 국가와 개인, 그리고 혁명의 의미를 살핀다. <빵과 장미> <자유로운 세계>에서는 노동의 의미를 새겨보고,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는 사회보장법이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를, 그리고 <미안해요 리키>를 통해서는 시간의 노예가 되어버린 21세기 택배 노동자의 안전은 과연 가능한지를 묻는다. 켄의 영화 속 세상과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사이엔 60년 이상의 간극이 있다. 그러나 두 세계는 정말 다를까? 우리는 정말 과거의 상흔 위로 지금과 다른 미래를 쌓아갈 수 있을까?

    『비주류의 이의신청』 이렇게 읽어보자

    이 책의 묘미는 영화와 함께 시대상을 읽고, 보통사람의 일상을 통해 오늘 우리의 삶을 읽는 데 있다. 60~70년 전의 영국 사회를 읽는 것이 21세기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데 과연 도움이 될까, 라고 의아하게 생각할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세월을 건너뛰고 대륙을 가로질러 비교하는 두 사회엔 놀랍게도 공통점이 많다. 해결이 요원한 문제가 산적해 있고, 인류의 정신은 이제 기계문명의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자본 권력 아래 인간성은 피폐해졌고, 수평과 연대의 삶은 전설이 되거나 혁명이 되어버렸다. 켄 로치의 영화가 종종 ‘웃픈’ 배경이다.

    이 책은 총 아홉 개의 장으로 구성되었다. 첫 세 개의 장은 1960년대, 1970년대, 1980년대를 배경으로 초기 작품의 의미와 시대상을 다룬다. 초창기부터 삼십 년 동안의 작업에는 텔레비전 드라마나 다큐멘터리가 많은데, 우리가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작품이 많지 않아 비교적 간략하게 다루었다. 켄 로치가 세계적으로 알려진 것은 1990년대와 2000년대부터다. 이 시기는 각각 두 개의 독립된 장으로 나누어 총 네 개의 장으로 다루었다. 걸출한 영화들을 1990년대 전반과 후반, 2000년대 전반과 후반으로 소개했다. 이후 켄의 전성기라고 부를 만한 2010년대 작품은 전반에 찍은 작품을 하나의 장으로, 2010년대 중후반에 작업한 작품들을 하나의 장에 모아 다루었다. 한 꺼풀 벗겨내고 보면 ‘이것이 바로 나의 이야기’가 되는 읽기의 즐거움을 독자 여러분도 함께 누렸으면 좋겠다.

    필자소개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