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 '알뜰 기초연금' 합의안 도출
    2006년 11월 24일 07:4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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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국민연금 제도는 10년 이상 보험료를 납부한 사람에 한해 65세 이후부터 연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그렇다보니 10년 이상 보험료를 납부할 형편이 안되는 저소득층은 이 제도의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었다.

그런데 앞으로 이들도 연금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보험료 납부에 관계없이 65세 이상 국민 누구에게나 연금을 지급하는 기초연금제 도입의 물꼬가 트였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와 열린우리당, 민주노동당, 민주당이 23일 기초연금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국민연금 개편안에 전격 합의한 것이다.

기초연금제 도입 물꼬를 트다

보건복지부와 3당이 이날 합의한 내용은 크게 세 가지다.

먼저 현 국민연금 제도의 사각지대 해소방안이다. 앞서 언급한 기초연금제 도입이 골자다. 2008년 국민연금 가입자 평균소득의 5%(급여율 5%)에서 출발해 2028년 15%까지 기초연금 도입 범위를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내용이다. 현 국민연금 가입자의 평균소득 159만원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2028년 대략 24만원 수준의 기초연금을 65세 이상 국민이면 국민연금 가입에 상관없이 지급받게 되는 셈이다.

그러나 지급대상을 어디까지로 할 것인지는 이날 결론내지 못했다. 복지부와 여당의 안은 65세 이상 인구의 60%를 연금 지급 대상으로 놓고 있고, 민주노동당은 80%로 늘려잡고 있다.

복지부와 3당은 또 국민연금의 재정안정화를 위해 국민연금 보험요율을 높이고, 급여수준을 낮추기로 합의했다. 즉, 국민연금 재정의 고갈을 막기 위해 연금 가입자가 보험료를 조금 더 내고 연금을 조금 덜 가져가도록 하겠다는 얘기다.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국민연금 급여율을 현행 60%에서 50%(장기적으로 40%)로 인하하고, 보험요율은 현행 9%에서 12.9%까지 단계적으로 높이기로 했다.

끝으로 이와 같은 내용이 포함된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오는 30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처리하기로 했다.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의 이중체계

이 같은 합의안에 따라 기초연금제가 도입되면 앞으로 국민연금 체계는 ‘국민연금'(10년 이상 보험료를 납부한 사람이 연금을 받는)과 ‘기초연금'(보험료 납부에 상관없이 받는)의 이중체계로 운영된다. 이 경우 현재 60% 급여율의 연금을 받고 있는 국민연금 가입자는 2028년 이후 ‘국민연금’ 40%와 ‘기초연금’ 15%를 더해 55% 명목급여율의 연금을 받게 된다.

국민연금 가입기간 40년을 채우는 가입자는 많지 않다(현행 국민연금 급여율 60%는 40년 만기를 채울 때를 기준한 것으로, 가입연한이 줄어드는 것에 비례해 연금 수령액도 줄어든다). 현재 평균적인 국민연금 가입기간은 21.7년이다. 이를 기준으로 현재와 2028년 이후의 실질급여율을 다시 비교하면, 현재 급여율 32.6%(60*21.7/40), 2028년 이후 급여율 36.7%(15+40*21.7/40)로, 실질급여율은 지금보다 높아지게 된다.

‘민주노동당안’과 ‘유시민안’의 절충

이번 국민연금 개편안은 사실상 ‘민주노동당안’과 ‘유시민안’을 절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를 이해하려면 지금까지 진행된 국민연금 개정 논의의 약사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당초 재정안정화(고갈되는 국민연금 재정을 어떻게 확충할 것인가)를 중심에 두고 진행되던 국민연금 개정 논의의 축을 기초연금제 도입 문제로 급반전시킨 건 한나라당이었다. 보험요율을 현행 9%에서 7%로 깎고, 급여율도 60%에서 20%로 대폭 낮추는 대신 급여율 20%의 기초연금안을 들고 나온 것이다.

이는 액면만 놓고 보면 민주노동당안(급여율 15%)보다도 급진적인 안이다. 한나라당이 이렇게 치고 나온 데는 노인층의 지지를 얻으려는 정치적 의도가 작용했다.

지난 대선에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는 노인에게 지급되는 정부보조금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가 노무현 후보로부터 "노인 용돈을 깎자는 얘기냐"는 공격을 받았다. 이 때문에 노인층의 상당수가 노후보쪽으로 돌아섰다는 게 한나라당의 평가였다. 기초연금제란 이렇게 떠나간 노인층을 회복하려는 정치적 의도를 깔고 시작됐다. 그리고 실제 이 문제를 이슈화하면서 한나라당은 상당한 정치적 이득을 챙기기도 했다.

문제는 재원. 민주노동당이 작성한 ‘연금 관련 분석 자료’에 따르면 한나라당의 안대로 시행할 경우 연간 8조1,000억원(2006년 불변가격 기준)의 추가재정이 소요된다. 당초 한나라당은 부가세를 높여 필요재원을 충당한다는 안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는 기업과 당 내부의 반발에 밀려 없던 일이 됐고, 결국 현재 한나라당의 기초연금안에는 재원확보 방안이 전혀 나와 있지 않다. 감세 당론과 기초연금제 도입 사이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처지에 놓인 셈이다. 민주노동당이 "공갈 기초연금제"라고 비판하는 이유다.

민주노동당은 기초연금제, 유시민은 재정안정화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내놓은 안은 보험요율을 현행 9%에서 2017년까지 13%까지 단계적으로 인상하고, 급여율을 현행 60%에서 2028년 40%까지 낮춰 국민연금의 재정 고갈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월 7~10만원씩 65세 이상 국민 45%에게 기초노령연금을 지급하는 내용을 얹었다. 기존 국민연금제도의 뼈대를 유지하면서 기초연금제의 요소를 극히 제한적으로 수용한 형태다.

‘유시민안’을 토대로 만들어진 법안이 강기정 열린우리당 의원이 제출한 이른바 ‘강기정안’이다. 보험료율은 현행 9%를 유지하고 급여율만 50%로 인하하는 내용이다. 기초노령연금제를 도입하되 적용 대상을 65세 노령 인구의 60%까지 확대했다.

민주노동당안은 재정안정화와 관련, 보험요율은 현행 9%를 유지하고 급여율은 장기적으로 40%까지 낮추자는 안이다. 이와 함께 기초연금제를 급여율 15%수준까지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내용이다.

결국 23일 복지부와 3당이 합의한 내용 가운데 ▲보험요율 12.9% 인상 ▲급여율 40% 인하 등은 ‘유시민안’에서, ▲기초연금제 급여율 15% 단계적 확대안은 ‘민주노동당안’에서 각각 취한 것이다.

요컨데, 이날 합의를 통해 유 장관은 재정안정화 방안을, 민주노동당은 기초연금제를 각각 얻어낸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큰 틀에서 보면 한나라당이 기초연금제로 논의의 축을 돌린 다음 자기모순으로 뒤로 나자빠진 사이 민주노동당이 빈 공간을 치고 들어가 합의안을 도출해낸 것으로 볼 수 있다.

28일 4당 협의가 1차 고비

물론 이 같은 합의안이 그대로 지켜질지는 미지수다. 뚫어야 할 난관이 한 둘이 아니다.

무엇보다 한나라당의 태도가 변수다. 또 여당의 실용파가 이런 내용의 합의안을 추인해 줄지도 확실치 않다. 정부 내부의 기류도 썩 호의적이진 않다. 특히 기획예산처의 경우 기초연금제 도입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건복지부 내부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들린다. 보험요율 인상 문제에 대해 가입자단체들이 어떻게 반응할지도 변수다. 아직 합의안을 도출하지 못한 기금운용체계 문제도 당별로 입장이 갈린다.

일단 한나라당도 참석하는 가운데 28일 열리는 4당 협의테이블이 1차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오건호 민주노동당 정책전문위원은 "기초연금제 도입이라는 큰 줄기를 잡았다는 데 주목해달라"면서 "추후 논의과정에서 많은 변수가 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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