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회주의적 태도 우익만 강화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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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11월 21일 03:2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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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실험과 ‘일심회’ 사건은 민주노동당 내 정치 경향들을 시험대에 올려놨다. 특히 우파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자율과 연대’는 국정원의 탄압에 대해 두드러지게 기회주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국정원의 마녀사냥이 한창이던 지난 11월 7일, ‘자율과 연대’의 지도적 회원인 주대환 전 정책위의장은 인터넷 언론 <레디앙>에 “난 김정일 군사독재 정권에 반대한다”는 글을 올려 ‘소신’을 밝혔다. 그의 글이 발표되자, 일부 당원들은 아예 ‘김정일 독재정권 반대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주 전 의장과 그 지지자들은 이러한 행위가 ‘구당 운동’이라고 말한다. 민주노동당이 ‘친북좌파’로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 민주노동당을 구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대응은 민주노동당을 구하기는커녕 더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다. 그는 국가보안법의 칼날이 여전히 우리 운동의 활동가들을 치고 있는데도, “민주노동당은 대한민국 법질서를 잘 알고 그 안에서 활동하는 공당”으로서 법질서의 “무게를 인정”한다며 그 칼날을 정당화해 주었다.

이것은 지배자들의 마녀사냥에 도전하기를 회피한 채 운동의 일부를 속죄양 삼는 전형적인 기회주의이다. 이런 실천이 효과를 발휘할수록 우익은 자신감이 높아져, ‘친북․연북’을 빌미로 한 정치적 공세를 강화할 것이다.

게다가 <조선일보> 등의 우익 언론들은 주체주의자들을 마녀사냥하기 위해 당내 분열을 이용하고 있는데, 기회주의자들은 이런 야비한 이간질에 날개를 달아주고 있다.

이에 대해 주 전 의장은 “잘못된 노선으로 수백만 인민을 굶겨 죽이고도 물러나지 않는 뻔뻔한 김정일 정권을 비난”해야 한다며 “왜 난 그들을 비난하면 안 되는가?” 하고 항변한다.

주대환 씨 자신은 2002년 2월 ≪이론과 실천≫에서 “‘조선로동당 반대’라는 선정적이고 조야한 방식으로 표현되어서는 안 된다”며 사회당을 비판하기도 했다. 이 비판은 현재의 그 자신에게로 향할 필요가 있다.

옛 동유럽 스탈린주의 체제 붕괴 직전인 1989년 봄쯤 주대환 씨는 ‘꼴통’ 스탈린주의자였다. 그가 지도하던 인민노련은 천안문 항쟁을 비난했다(특히, 당시에 간행된 <노동자의 길>에 실린 최윤희(가명)의 글).

그와 인민노련은 북한 체제 자체는 전혀 비판하지 않은 채 주체사상만 비판했다. 마치 사상이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문익환과 임수경 등 방북자에 대해서 노태우 정권의 탄압으로부터 방어하기는커녕 그들을 ‘감상적’, ‘쁘띠부르주아적’이라고 비판만 했을 뿐이다.

이제 주대환 씨는 자신의 옛 종파주의는 고스란히 유지한 채 스탈린주의 정치사상만 사회민주주의 정치사상으로 바꾸고 우리 앞에 나타났다. 시장경제와 사유재산을 반대하지 않겠다고 안기부에 각서를 쓴 그가 반신자유주의 운동을 충심으로 지지할 리 없으니 그는 영락없는 우파 사회민주주의자이겠다. ‘자율’과 ‘연대’는 무엇으로부터의 자율이고, 무엇과의 연대일까?

북한 체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주 전 의장은 북핵 문제나 ‘일심회’ 사건 등에서 미국 등 서방 제국주의와 남한 정권 비판보다 북한 정권 비판에 더 치중해 왔다. 이것은 그가 북한 체제를 서방 자본주의보다 더 열등한 체제라고 보기 때문인 듯하다. 그는 “북한의 김정일 군사독재 정권은 우리가 경험한 70년대 유신체제와 80년대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보다 더 지독하고 적나라한 군사독재 정권”이라고 말한다.

북한이 억압적 체제라는 것은 말할 나위 없다.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가 제약돼 있고, 정치범 수용소와 공개처형의 존재는 북한 당국조차 인정하는 바다. 노조 결성권과 파업권 등 노동권도 제약돼 있다.

따라서 우익이나 주체주의자들의 규정과 달리, 북한은 맑스가 말한 사회주의와 아무 관계도 없다. 정치적․시민적 자유와 기본권도 보장되지 않고, 노동자들의 자주적 행동도 제약되는 체제가 사회주의적일 수는 없다. 북한 체제는 당 관료와 군부가 주민들의 생활과 노동을 집단적으로 통제하는 억압적이고 착취적인 체제다.

그럼에도 주 전 의장처럼 서방 자본주의 체제가 북한 체제보다 근본적으로 우월하다고 보는 것도 맞지 않다. 서방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자들도 자신의 노동을 통제하지 못하고 착취당하기는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심각한 불평등을 겪고 있다.

또, 오늘날 서방 자본주의 국가들은 ‘테러와의 전쟁’을 빌미로 시민적 권리를 제약하고 인종차별을 부추기고 있다. 더구나 남한은 사상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국가보안법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서방 자본주의 나라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구현되고 있는 것은 노동자 대중이 아래로부터의 행동을 통해 쟁취한 것이다.

따라서 서방 시장자본주의와 북한 국가자본주의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는 없으며, 우리가 어느 한 편을 지지해야 할 이유도 없다. 둘 사이에는 외형상의 차이들만이 있을 뿐이다.

다른 한편, 서방 자본주의 국가들은 북한 국가보다 제국주의 위계 체제의 사다리에서 더 높은 위치에 있다. 그들은 북한, 이란 등의 ‘인권’, ‘대량살상 무기’ 등을 핑계로 제국주의적 압박과 군사적 개입을 정당화한다. 따라서 주 전 의장처럼 북한 체제의 열등함을 강조하다 보면, 제국주의 위계질서의 논리에 타협할 여지가 생기게 된다.

진정한 맑스주의자는 위계 체제에서 더 높은 위치에 있을수록 자본주의 세계 체제에서 수행하는 억압적 성격이 더 강화된다는 점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북한 관료는 자국민 2천만여 명을 고통에 빠뜨릴지 몰라도 미국과 남한은 전 세계의 수십억 명을 고통에 빠뜨리고 있다.

제국주의에 대한 이러한 맑스주의적 이해가 있어야만 주 전 의장이나 ‘자율과 연대’, NGO, ‘전진’, 사회당 등이 북한 핵실험에 대해 양비론에 빠진 것과 달리, 북한 국가를 지지하지 않으면서도 미국 같은 제국주의 국가의 대북 압박에 일관되게 반대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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