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보정당이 삼국지에서 얻어야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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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11월 20일 06:2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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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지의 마지막으로 가 보자. 유비의 아들인 유선은 환관 황호의 말만 듣고 지력과 용맹을 겸비한 드문 인물인 강유를 불신한다. 강유는 이에 실망해 낙향해 있으면서도 둔전을 만들어 사마소의 침공을 대비하는 준비를 한다.

    사마씨가 대군을 몰고 촉을 침범하자 유선은 변변히 싸워보지도 않고 수도를 내준다. 신하들은 분노하여 황호의 살을 씹어 먹었다고 하지만 이미 대세는 기울었다.

    더욱 가관인 것은 대의명분을 무엇보다도 중시했다는 유비의 아들은 속절없이 항복하였고, 촉나라 백성들은 꽃을 들고 위나라 군대를 맞이했다니 조조를 피해 힘없는 유비를 따라 죽음을 불사하던 대중들의 모습은 온데 간 데 없다.

    유선은 사마소가 개최한 잔치에서 위나라 무희들을 춤을 추는 것을 보고 웃었다고 하니 촉을 위해 죽어간 사람들의 목숨은 정말로 덧없어 보인다. 심지어 사마사는 이를 보고 저런 자가 황제이니 제갈공명이 살아나도 어찌 이길 수 있었겠는가하면서, 강유 정도로는 어림도 없었을 것이라고 비웃는다.

       
     ▲ 강유 초상
     

    이에 반해 위에서 투항하여 공명에게 등용된 강유는 대세가 이미 기울었고, 성도가 점령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기회를 노린다. 위나라의 주요 장수인 등애와 종회를 이간질시켜 다시 한 번 촉의 부흥을 꾀하다가 전투 중 사망하여 위나라 병사들은 그의 쓸개를 빼어 내어 씹었다고 한다.

    끝까지 충성을 지키는 사람들은 역사에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사태가 이미 종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번 계략을 써서 기회를 노린다는 것은 일반적으로는 기대하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강유가 마지막으로 계략을 사용하려고 한 것은 상당히 드문 경우라고 하겠다.

    이런 상황은 거의 모든 사람에게 아마도 가장 피하고 싶은 상황일 것이다. 한 개인과 집단의 의지와 무관하게 역사적, 사회적 조건이 이러한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러한 역사적, 사회적 조건의 변화에 둔감한 사람들이 최후를 자초하는 것이 정확한 것인지도 모른다.

    유선의 길은 언제라도 열려 있는 길일지도 모른다. 지나친 악행을 일삼지 않았고, 아버지의 후광까지 있으니 항복하더라도 좋은 대접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강유의 최후는 훨씬 더 어려울 뿐만 아니라 비장하다.

    끝까지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면서 상황을 반전시키려고 하는 것,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도 상대의 허점을 파고들어 승리를 이끌어 내려고 하는 것, 사실 이러한 태도는 인적, 물적 자원을 독식하고 있는 보수 세력에게 그다지 필요한 것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이러한 태도가 필요한 것은 진보정당일 것이다.

    역사투쟁이 가장 중요한 목표인 듯이 이야기하는 분들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그것은 자신의 무기력함과 무능력 때문에 현실에서 도피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현실에서 무언가 변화의 동력을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정치의 본령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강유 또한 그것을 알았기에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상황을 반전시켜 보려고 했던 것이다.

    글을 마치며

    역사는 결국 승자와 패자의 기록이다. 승자의 관점에서 교묘하게 치장되지만, 인간의 집합적 이성은 패자가 가졌던 의기와 이상을 일부나마 전해주기도 한다. 그 감추어졌던 역사를 대변하고자 했던 것이 한국의 진보세력이나 속칭 좌파일 것이다.

    삼국지는 결국 강유의 죽음과 유선의 투항으로 마무리되고 말았지만, 아마도 유비 삼형제와 제갈공명이 보여준 의기와 역사는 허구로나마 각색되어 이어진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는 근거 없는 생각을 해 본다.

    지금 한국의 진보세력은 위기이다. 위기의 원인은 다른데 있지 않다. 능력이나 전략, 정책, 스킬도 모두 부족하지만 한국의 진보세력은 보다 근본적인 문제에 부딪히고 있다. 기본적으로 자신의 노선에 대한 확고한 확신이 없으니 새로운 환경에서 이리 저리 부유하는 시행착오를 무수히 겪고 있다.

    혹자는 부패사건이 문제라고 하지만, 역으로 엽기적인(?) 부패 스캔들을 터뜨린 룰라와 노동자 등이 재집권에 성공한 것은 하루 세끼를 먹지 못하는 층이 20%가 넘는 남미 최대 국가인 브라질에서 “밥 굶는 사람이 없도록 하겠다”(소위 ‘Zero Hunger Policy’)의 시행이 브라질의 없는 자들을 단결시켰던 것이다.

    진보세력이 삼국지에서 얻어야 할 영감은 어찌 보면 하찮은 계략 따위가 아니다. 당장에 이해관계에 연연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철학과 대의에 확고했던 유비와 그 일당들의 확고한 입장이었는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유비 삼형제가 정당했던 것은 시대적 한계와 계급적 한계를 고려하더라도 그들이 백성을 위하고 명분을 중시하여 가벼이 움직이지 않았다는 데에 있다. 마찬가지로 무엇보다도 진보정당이 정당했던 것은 일부 교조에도 불구하고 인민의 삶이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역사적 대의가 아니었을까 한다.

    그러나 일정한 결과를 달성하기도 이전의 이러한 대의는 희미해져가고 있다. 인민들은 수년 간의 경험으로, 민주노동당에게는 인민의 삶이란 부수적인 요인일 뿐이며, 조국의 통일과 반미, 사회주의라는 용어가 더욱 중요한 집단이라고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실 민주노동당이 공안기관의 무리수임이 명백한 소위 ‘간첩단’ 사건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도 다른 데에 있지 않다. 그 동안 민주노동당이 인민의 호민관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였다면, 이러한 일이 발생하였더라도 우리의 지지층은 흔들림이 없었을 것이고, 국정원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13만 가구가 움막과 비닐하우스와 같은 주거형태에 산다고 한다. 도시가구 하위 10%는 월평균소득이 47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영아가 굶어죽고, 혼자 사는 아이가 개에 물려 죽으며, 장님 부부가 불에 타 죽은 일이 발생하는 나라가 반도체와 자동차를 만드는 대한민국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진보정당 외에는 불가능하고, 유비 삼형제가 신야에서 도피할 때, 그 많은 백성들이 이들을 따랐던 것도 그 백성들은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지자들조차 진보정당의 진의를 의심하는 상황에서 삼국지에서 진정으로 얻어야 할 것은 계략이 아니라 인민의 삶과 그에 대한 사랑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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