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성’ 노동자와 사장 ‘아들’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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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11월 20일 06:1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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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의 영화가 작은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있다. 이송희일 감독의 퀴어 멜로 <후회하지 않아>! 여느 영화들처럼 수백 개 극장에서 개봉하는 것도 아닌데, 인터넷 검색순위와 예매순위를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관객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것 참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전국 7개 극장(서울 5곳, 지방 2곳)에서 개봉하는 영화치고 대단한 관심과 화제를 불러 모으고 있는 것이다. 첫날 흥행 성적이 무려 2,500명이라고 한다. 이 수치는 못나가는(어쩌면 대부분 운좋게 개봉하는) 독립영화가 2주 동안 기록하는 관객 숫자이다.

    그렇다! 모든 것이 수치로 환산되는 요즘 작은 영화들조차도 한 개의 극장이라도 더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첫날 관객 숫자에 일희일비한다. 블록버스터급 영화들의 흥행노름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지만, 결국 조바심내면서 규모가 다른 같은 게임이 빠져드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웃기는 일이지만 안타까운 현실이다.

    열혈 관객들 홍보도우미로 나서

    부산국제영화제 이후부터 개봉 전까지 그렇게 입소문을 탔건만, 이 영화는 웬만한 상업영화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규모로 작게 개봉을 하게 됐다. 뭐 어차피 큰 기대를 하지 않았기에, 감독과 제작자는 남 탓하지 않고 이 정도라도 만족스러워 하는 것 같다.

       
     ▲ 영화 <후회하지 않아>의 부산국제영화제 당시 포스터
     

    앞으로의 성적에 기대를 걸면서 개봉관수가 조금 더 늘어날 수 있기를 그리고 가능하면 롱런하기를 기대하는 눈치이다. 일단 첫 출발은 좋다. 관객들의 반응도 그리 나쁘지 않아 보인다. 폐인을 자처하는 열혈 관객들이 자발적으로 영화 홍보 도우미로 나서서 스스로 관객들을 조직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일반적인 독립영화나 예술영화 상영작에선 볼 수 없는 풍경들이 벌어진다. 대부분의 독립영화나 예술영화 극장들에선 쌍쌍이 온 관객들보다 혼자 오는 관객이 많다. 누군가 함께 갔다가, 영화 재미없다고 난처한 꼴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아>가 상영되는 극장에선 두세 명이 아니라, 마치 단체 관람 온 것처럼 여러 명이 함께 극장을 나오는 풍경을 볼 수 있다. 낯설고 반가운 현상이다.

    어떻게 이런 현상이 일어났는지 참 궁금하다. 커밍아웃한 게이로써 지속적으로 <슈가 힐 Sugar Hill>(2000년, 16mm) <굿 로맨스>(2001, DV), <동백꽃>(2004, DV) 등의 퀴어 영화와 사회적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해온 이송희일 감독의 이름이 한 몫을 했다고 보인다. 물론 영화의 힘이 주된 요인일 것이다. 노동자와 부르조와의 계급을 넘어선 통속적이고 비극적인 사랑이야기. 게다가 그들은 남자이다. ‘본격 퀴어 멜로’라는 다서 낯선 홍보문구까지.

    노동자와 부르조아의 통속적인 사랑 이야기

    그런데 우리나라에 평론가들이 퀴어 영화 혹은 동성애 영화라고 부른 영화는 있었지만, 홍보문구를 퀴어 영화, 동성애 영화라고 명명한 경우는 흔치 않다. 심지어 평론가와 관객들이 그 영화는 퀴어 영화라고 불러도 감독이나 제작자들은 굳이 이 영화는 퀴어 영화나 동성애 영화가 아니고, 그저 사랑이야기라느니, 소통에 관한 이야기라느니 둘러대는 경우가 많았다.

    <브로크백 마운틴>이나 <해피투게더> 같은 영화들도 퀴어 영화라고 명명되는 것을 거부했었다. 감독의 입장에서 고정된 이미지로 해석되는 것이 부담스럽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고, 제작자에게는 퀴어 영화라는 인식이 상업적으로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처럼 보인다. 최근에 흥행에 성공한 <왕의 남자> 같은 경우도 동성애적 코드가 많이 나오지만, 굳이 퀴어 영화나 동성애 영화로 불려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후회하지 않아>는 스스로 한국최초의 본격 퀴어 영화라는 타이틀을 내걸었고, 그렇게 불리는 것은 일견 타당해 보인다. 더구나 이 영화가 수백만 관객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니니, 더 많은 이성애자 관객들을 위해 영화의 원래 의도를 슬그머니 가리는 일도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암튼 이 영화는 원래 이반커뮤니티에서 나름의 팬 층을 유지하던 감독의 유명세와 적극적인 관객들의 자발적인 참여 그리고 영화에 호평까지 이어지면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이뤄내고 있는 중이다.

    70년대 유행 ‘호스티스 영화’의 차용과 천박한 자본주의

    고아원에서 자란 수민은 공장 노동자로 일하면서, 밤에는 부업으로 대리운전을 하고 컴퓨터 그래픽을 배우며 나름의 꿈을 키우고 있다. 대리운전 중에 자신에게 관심을 보인 재민의 유혹을 받지만, 수민은 거절한다.

    그런데 그를 공장에서 다시 만난다. 그는 공장의 이사이며, 사장 아들이다. 재민의 도움으로 수민은 정리해고에서 제외되지만 도움을 거절하고, 공장을 뛰쳐나온다.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그는 접시닦이를 견디지 못하고, 짧은 시간에 목돈을 쥘 수 있는 게이 호스트바에 취직한다.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비극적인 이야기이다.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한 게이 청년들이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몸을 파는 이야기인 것이다. 게이뿐만 아니라 이성애자들도 게이 호스트바에서 몸을 판다. 이성애자인 정태는 게이 손님들을 경멸하듯 말하지만, 자신의 여자친구를 위해서 열심히 일한다.

    그런데 왜 그들은 다른 노동을 하지 않고, 호스트바에서 일할까? 이것은 일종의 장르의 차용이다. 1976년 작 <영자의 전성시대>는 시골에서 올라온 영자가 버스 차장을 하다가 팔이 잘려 창녀촌에서 일하면서 남자와 사랑을 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30년이 지난 2006년 게이 청년들은 비정규직으로 이유 없이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접시를 닦던 식당에선 멸시를 당한다. 그들은 손발이 묶인 상황에서 결국 호스트바를 찾아오는 것이다. <후회하지 않아>는 1970년대 한국영화에서 유행했던 호스티스 영화의 장르를 그대로 차용하면서 화려함 이면에 변하지 않은 천박한 자본주의의 이면을 그리고 있다.

    그 안에서도 이송희일 감독은 이들의 하층계급 정체성을 각인시키고자 노력한다. 수민이 대리운전을 하다가 재민을 만난 직후 노동자들은 하드를 먹으면서 족구를 한다. 이 장면은 명백히 노동조합을 결성하기 위한 투쟁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던 독립영화 <파업전야>에 대한 ‘오마쥬’이다.

    고아, 비정규직 노동자 그리고 게이

    이 장면 이후 수민은 아무런 이유 없이 공장에서 해고를 당한다. 그의 동료는 노조를 만들었어야 했다고 외친다. 재민이 사과하면서 수민을 구해주려 하지만, 그는 도움을 거절하고 공장을 나온다. 이것은 도움이 아니라, 한낱 동정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수민은 이미 재민의 유혹을 거절했고, 그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주인공은 매순간 자신이 고아라는 것을 자신이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것을 그리고 게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감독은 그것을 등장인물들에게 끊임없이 주지시키고, 관객에게 이들이 비극적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사회적 조건을 환기시킨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자신의 젊은 날을 소진하면서 부단히도 사랑을 꿈꾼다. 정태의 여자친구는 자신의 남자친구가 남자에게 몸 팔아서 모은 돈을 몽땅 가지고 나른다. 재민의 간절한 구애를 받아들였던 수민은 재민이 곧 결혼할 것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수민을 짝사랑했던 가람은 자동차 사고로 죽는다. 이렇게 게이들의 사랑은 끝없이 배신당하고, 끊임없이 좌절한다. 그래서 이들의 모습은 슬퍼 보이고, 영화는 비극을 향해 치달아간다.

    여기서 이상한 것은 노동자인 수민보다 사장 아들인 재민이 더 슬퍼 보인단 점이다. 아무 가족도 없는 고아이면서 비정규 노동자이면서 게이이고, 돈을 벌기 위해 게이 호스트바에 나가는 삼진아웃 인생인 수민보다 공장 이사이며 예쁜 여자와 결혼을 앞둔 재민의 표정이 더 슬프다.

    더 이상 잃어버릴 것이 없는 사람보다 아직 잃어버릴 것이 많이 남았지만 결코 잃어버리지 않을 인생이 더 불안하고, 선택의 기로에서 더 갈등하는 모습은 불편하게 보이기도 하다.

    재민은 부르조아이고 이중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인물이다. 그는 결혼을 앞둔 상황에서 수민에게 빠져든다. 하지만 그는 가족들의 요구 앞에서 갈등할 뿐이다. 노동자인 수민은 사랑 앞에서 망설일 수밖에 없다. 사랑을 하는 순간 그는 자신이 하던 일을 그만둔다. 그에겐 사랑과 일은 선택의 문제이다.

    하지만 재민에겐 단지 사랑이 단지 전부이다. 회사에서 너무 일을 오래 일하는 거 아니냐는 수민의 질문에 그는 해외여행을 같이 가기 위해 사이트를 찾아 헤맸다고 고백한다. 먹고살아야 하는 노동은 그의 고민이 아니다.

    후회하지 않는 삶의 불행

    이것이 수민과 재민이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그는 언제든 배신을 할 수 있고, 돈으로 그것을 대신할 수 있다. 재민은 영화 속 인물들에게 얼굴만 허연 놈으로 불린다. 그에겐 오직 사랑에 대한 동경만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영화에선 재민의 내적 갈등과 이중성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는 자해를 일삼을 뿐이다. 때문에 수민이 결국 재민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고통 받는 모습이 크게 부각되지 못하는 한계로 작용한다.

    재민의 배신에 복수를 하려던 수민과 정태의 계획은 결국 수포로 돌아가고, 재민과 수민은 다시 한번 사랑을 꿈꾼다. 이것은 게이들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익살스럽지만 진심어린 감독의 바램일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엔 그들의 삶이 너무 처절해 보인다. 해피 엔딩처럼 보이는 결말은 영화가 진행될수록 무채색으로 변해가는 화면을 통해 그들의 불투명한 미래를 상기시킨다. 수민은 이 사회에서 계속 불행한 삶을 살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이미 자신의 삶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반과는 다른 ‘이반들의 삶’을 보여주는 이 한편의 작은 영화가 지속적으로 작은 화제를 불러일으키길 기대한다. 그래서 독립영화를 필연적인 선택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걸고 있는 많은 창작자들이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기를 기대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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