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수처 수사대상 1호가 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그의 삶
    [기고] 이 시대 실천적 교육자, 조희연 선생이 걸어온 길
        2021년 05월 17일 02:0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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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희연 선생은 70년대 대학 재학 당시 박정희 유신 체제에 저항하는 학생운동을 실천했다. 이 땅에 ‘민주주의’를 뿌리내리기 위해 대학생 신분으로 유신헌법과 긴급조치 9호에 정면으로 맞섰다. 히틀러에 버금가는 유신체제에 정의로운 청년의 기백으로 당당히 맞서 싸웠다. 그러니 대가는 혹독했다. 70년대 동안 전국적으로 600명이 넘는 대학생들이 퇴학당했다. 조희연 선생 역시 학생시위와 유인물 제작 배포로 학교에서 쫓겨나고 구속돼 징역까지 살았다. 2013년 헌법재판소에서 긴급조치 9호가 위헌이라고 판결함에 따라 조희연 교육감은 35년 만에 재심을 신청해 서울고등법원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박정희 정권 시절 억울하게 옥살이한 것에 대해 국가로부터 5,600만원을 배상받았다. 그리고 그 배상금 전액을 아시아 민주주의와 정치적 난민 지원을 위해 기부했다.

    80년대 조희연 선생은 비판사회학자로서 소장학자들이 중심이 된 학술운동을 이끌었다. 군부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민주화된 사회로 한국 사회를 변혁시키기 위해 지식인의 실천적 고민들을 응축시켰다. 87년 6월 항쟁은 음습한 군부독재를 저만큼 물리쳤다. 거대한 장벽 같은 어둠이 일시에 사라지고 사람을 존중하는 사회 분위기가 조금씩 움터 올랐다.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누렸고 자주적인 노동조합도 우후죽순 결성되었다. 그와 함께 사상과 학문 분야에도 숨통이 트였다. 왜곡되거나 은폐된 진실이 학술운동을 통해 세상에 조금씩 알려지고 대중화되었다. 그 학술운동의 중심에 조희연 선생이 있었다.

    참여연대 총회에서의 조희연(왼쪽에서 두번째)

    조희연 선생은 성품만큼이나 차분하고 이지적이다. 80년대 한국 사회 변혁을 위해 치열하게 전개되던 사회구성체 논쟁을 깊이 있게 이론적으로 정리해 낸 탁월한 연구자였다. 『한국사회구성체 논쟁』은 당대 한국 사회 변혁을 꿈꾸던 청년 학생, 그리고 젊은 교사들에게 주목을 받았다. 90년대 들어 조희연 선생은 비판사회학자로서 오롯이 시민운동에 헌신했다. 87년 6월 민주항쟁은 42년 (군부)독재를 청산하고 시민사회를 향해 첫 발을 내딛게 했다. 그 결과 90년대 한국 사회는 시민 사회로 이행돼 시민민주주의가 한국 사회를 풍미했다. 나아가 시민운동이 사회운동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경실련에 이어 1994년 참여연대의 탄생은 그런 노력의 결실이었다. 그 중심에 역시 조희연 선생이 있었다. 참여연대 초대 사무처장을 역임하며 한국 사회 최고의 NGO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90년대 후반 이후 조희연 선생은 다시 연구자로서, 그리고 비판사회학자로서 한국 사회 민주주의를 진전시키기 위해 골몰했다. 성공회대학교에 NGO대학원이 생긴 것도 조희연 선생과 뜻을 같이 하는 여러 학자들이 보인 수고의 결실이었다. 살아생전 한국 사회 ‘시대의 지성’으로 존경받았던 인물들이 있다. 바로 신영복 선생과 김수행 선생이다. 두 분은 7-80년대 리영희 선생만큼 한국 지성계에 미친 영향이 자못 컸다. 신영복 교수와 김수행 교수에게 배우려는 숱한 시민사회운동가, 노동운동가, 교육운동가들이 성공회대로 몰려들었다.

    마찬가지로 조희연 선생에게도 실천적 학문에 뜻을 두고 수많은 제자들이 몰려들었다. 그런 점에서 조희연 선생은 시대의 지성이자 실천적 교육자였다. 한국 사회를 명징하게 분석하고 민주주의를 진전시키기 위해 수많은 논문과 저서를 남겼다. 그런 측면에서 ‘한국 사회 시민운동과 민주주의’를 언급할 때 조희연 선생을 빼놓을 수 없는 것이다. 조희연 선생은 90년대와 2000년대 한국 사회 민주주의와 시민운동의 핵심 이론가였다. 자신의 학문을 바탕으로 한국 사회가 좀 더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로 변모하는 데 혼신을 다한 참된 지식인이자 실천적 지성이었다.

    2014년 세월호 희생을 딛고 전교조 교사 출신 교육감과 조희연 선생을 비롯해 14개 시도에서 진보교육감이 대거 당선되었다. 교육감으로서 조희연 선생은 장학사와 교장직 매관매직의 대명사! 공정택 교육감이 저지른 고교서열화를 없애기 위해 자사고 지정 취소 등 특권교육 폐지와 평등교육 실현을 위해 애썼다. 공정택이 2010년 학교선택제를 전격 도입함으로써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는 해를 거듭할수록 슬럼화 되어 갔다. 조희연 선생은 교육감으로 당선된 이후, 무너진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고 안간힘을 썼다. 이른바 일반 인문고 전성시대를 위해 정책적으로 노력했다.

    무엇보다 조희연 선생은 교육감으로서 잘못된 교육정책으로 상처 받은 아이들, 소외된 아이들을 기억하고 정책적으로 배려했다. 대안교실, 희망교실, 오딧세이 학교 등은 모두 그런 정책적 노력의 산물이다. 입시경쟁교육으로 양극화된 학교현실에서 끝없이 소외된 채, 상처 받고 변두리로 내몰린 아이들을 배려한 교육프로그램이었다. 나아가 소외되고 뒤쳐진 학생들의 꿈을 되찾아주기 위해 헌신했다. 서울 교육의 수장으로서 그리고 교육자로서 교실에서 소외된 채, 잠만 자는 아이들의 고통을 직접 체험하기도 했다. 또한 기간제 교사와 교육공무직의 안정된 신분을 위해 노력한 것도 조희연 교육감이 남긴 업적이다. 역대 어느 교육감도 하지 않은 참된 교육행정가 다운 면모이자 진정한 교육자로서 행보였다.

    특히 혁신교육을 통해 ‘교육의 본질’을 회복하려는 시도는 수많은 교사들에게 지지를 받았다. 아이들에게 창의체험활동을 통해 자주성을 길러주고 민주시민으로 성장하는 데 조희연 교육감은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그러나 해방 후 한국 사회에 깊이 착근한 입시경쟁교육은 ‘교육의 본질’인 혁신교육조차 변방으로 밀어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특히 입시경쟁교육 속에서 이기적인 출세를 욕망하며 괴물로 성장한 기득권 집단들은 조희연 교육감의 혁신교육을 헐뜯고 훼방 놓기에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일부 언론들조차 사학집단과 한통속이 돼 조희연 교육감의 교육개혁을 무질러버리곤 했다. 최근 조희연 교육감이 지정 취소시킨 자사고들이 다시 법정에서 하나씩 되살아나는 모습들은 그것을 반증한다. 검찰개혁을 비롯해 사법개혁이 지지부진한 속에서 법원은 통속적인 판결로 특권교육 폐지와 평등교육 실현을 위해 고군분투한 진보교육감을 좌절시켜버렸다. 게다가 검찰개혁-사법개혁을 위해 탄생시킨 공수처마저 이젠 조희연 교육감에게 수사의 칼날을 들이밀었다. 기가 막힌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서초동과 광화문 촛불시민들의 힘으로 탄생시킨 공수처가 그 수사의 칼날이 엉뚱한 곳을 겨냥한 것이다. 검사-판사 등 법조계 비리와 범죄를 겨냥한 게 아니라 거꾸로 공수처를 탄생시킨 촛불시민들의 열망을 무질러버렸기 때문이다. 특히 공수처는 1996년 참여연대에서 맨 먼저 입법 활동을 통해 추진했던 시민운동의 소중한 결실이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에서도 검찰집단의 반발로 좌절됐고 노무현 정부에서도 검찰개혁은 검찰집단의 반발로 또다시 좌절됐다. 노무현 대통령은 공수처 설치를 대통령 공약사항으로 내걸고 당선되었음에도 검찰 개혁의 좌절과 실패는 부메랑이 되어 참담한 결과를 초래했다. 이명박 검찰 권력과 그에 야합한 언론들은 “논두렁 시계”니 “봉하마을 아방궁”이니 하면서 전직 대통령을 인격적으로 짓밟았고 망신주기를 서슴지 않았다. 명백한 허위 보도임에도 결과는 인간 노무현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검찰개혁이 좌절된 현실은 너무도 비극적이고 참담했다.

    2016년 20대 국회에서도 노회찬 의원이 공수처법을 발의했지만 좌절되었다. 오히려 수구언론들과 특검은 별건수사를 통해 노회찬을 불법정치자금을 수수한 비리정치인으로 규정했고 인간 노회찬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정치인 노회찬은 평생 가난하고 검소하게 살았다. 그리고 ‘6411번 버스’로 상징되듯이 정치인 노회찬은 정치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정치를 했던 참된 정치인이었다. 17층 아파트 창문 난간에서 뛰어내릴 때 노회찬의 심정은 과연 어떠했을까? 지금도 그 장면을 떠올리면 가슴이 저며 온다.

    21대 국회 들어 촛불시민의 힘으로 공수처를 어렵게 탄생시켰다. 한 마디로 진통 끝에 난산이었다. 그런데 공수처는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절, 탄압 끝에 해직된 전교조 교사 4명의 특채를 문제 삼았다. 해직교사 그 분들은 과거 군사정권 시절 민주화운동을 전개한 민주화운동 관련자들이다. 이명박 정권 시절 교육공공성 강화와 평등교육 실현을 위해 수고했던 존경 받는 교사들이다. 무너진 교육정의를 바로 세우는 차원에서 조희연 교육감이 특별채용으로 복직시킨 사안을 ‘특혜 채용’으로 몰아가며 범죄시했다. 특히 일부 언론들은 말할 것도 없고 공수처조차 수사대상 1호로 삼겠다고 결정했다. 그러나 특별채용은 교육공무원법 제12와 제33조에 명기돼 있듯이 교육감에게 위임된 권한이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절, 교육 공공성을 강화하고 입시경쟁교육으로 일그러진 교육을 바로 세우겠다고 용기 있게 나섰던 해직교사들에게 상을 주지는 못할망정 다시 문제를 삼은 것이다. 그 칼날이 조희연 교육감을 겨냥한 것이지만 실은 전교조를 겨냥한 것으로 느껴진다. 공수처가 수사한 뒤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사건을 넘기는 순간, 조희연 교육감과 전교조는 ‘부도덕한 존재’로 낙인찍히게 될 것이다. 또한 일부 언론들은 이전처럼 그렇게 도배하며 그 ‘부도덕성’을 크게 부각시킬 것이다.

    공수처의 존재 이유는 비리를 저지른 검사-판사 등 검찰과 사법 권력을 수사하고 기소하는 데 있다. 무소불위의 검찰권력-사법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기 위해 탄생된 것이다. 부디 공수처는 그 탄생의 역사적 의의를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 검찰개혁이라는 시대의 책무와 시대정신을 망각한 채 수사의 칼날을 마구 휘두르는 것은 공수처를 탄생시킨 촛불 시민의 열망을 저버리는 것이다. 나아가 촛불시민과 함께 이 땅에 검찰개혁과 사법정의가 바로 서기를 열망하는 모든 국민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다. 참교육자이자 참된 교육행정가였던 조희연 교육감을 수사대상 1호로 결정함으로써 공수처는 온갖 비난을 감수하지 않을 수 없다. 비록 이미 엎질러진 물이지만 그래도 어렵게 탄생시킨 공수처가 검찰개혁이라는 제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국민들로부터 뒤늦게나마 찬사를 받을 수 있길 기대한다.

    * 필자가 <한겨레 온>에도 기고하여 실린 글이다.

    필자소개
    <우리역사에서 왜곡되고 사라진 근현대 인물한국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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