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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경제의 성장 둔화와
    장기 침체···새로운 성장체제는?
    [논문] 선진국으로의 진입과 위기를 중심으로③
        2021년 04월 22일 10:1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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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 이후 한국 제조업의 전개과정, 그 장점과 단점, 성과와 위기적 요인들에 대한 남종석 경남연구원 연구위원의 연구논문이다. 공공상생연대 [상생과 연대를 위한 사회개혁비젼 연구 2]의 경제부분 일부이다. 도덕적 당위가 아닌 현실에 대한 구체적 분석, 우리가 서있는 자본주의의 구체적 전개양상과 현실을 읽는 것이 우리의 실천을 고민하는 기반이 된다는 점에 진지한 일독을 권한다. 글을 3~4차례에 나눠 연재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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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 회의 글 “IMF·세계금융위기 이후 한국자본주의의 변모와 그 양상들”

    3. 한국 경제의 성장 둔화와 장기 침체

    1) 경쟁 압력 심화와 자본생산성 하락

    2009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세계자본주의는 장기침체 국면으로 진입했다. 무역수요는 감소했고, GDP에서 교역재의 비중은 감소했다. 세계의 공장인 중국의 GDP 성장률도 2009년 이전 9%대에서 위기 이후 6%로 하락했다. 한국 경제의 성장률도 꾸준히 하락했다. <그림 26>는 세계GDP 성장률과 한국 경제성장율 추이를 나타낸다. 2000년대 세계경제성장율은 세계금융위기 이전 2003~2007년 사이 2% 중반대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가 2008~2009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1% 후반대의 성장률로 하락한다. 2003년 이후 한국경제성장율은 세계경제성장률과 거의 동조적 관계를 유지하지만, 경제성장율 하락폭은 더 크게 나타난다. 2000~2007년 사이 한국경제성장율은 5%대를 유지하다가 2011년 이후 2% 후반대로 크게 하락하며, 2018년에는 세계경제성장률을 하회한다.

    <그림 27>은 부분별 경제성장율 추이를 나타낸다. 그림에서 보듯이 경제성장율의 변동폭은 서비스업보다 제조업에서 훨씬 크게 나타나는데, 이는 제조업은 주로 교역재를 생산하기 때문에 세계시장의 변화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하는 특징에서 비롯된다. 세계무역의 정체, 감소는 한국 경제의 정체에 큰 영향을 준다는 의미다. <그림 26>과 <그림 27>이 함께 나타내는 바는 세계경제의 변동이 한국 제조업 산출에 영향을 주고, 이는 다시 한국경제성장률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경제성장이 세계시장에서의 점유율을 확대하면서 이뤄진 것이기 때문에 세계시장의 축소는 한국 경제의 침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한국 경제성장율 하락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후발주자인 중국 등 저비용 경쟁자들의 세계시장 진입이다. 특히 한국의 대중국 무역 성장률은 급속히 하락한다. 2000~2003년 대중국 무역 수출증가율은 40%를 기록하지만 2005~2007년은 10% 중후반대의 성장률을 기록하다가 2012~2018년 사이에는 0% 성장률 내외에서 파동치고 있다(관세청, 2019)(이는 <그림 15>에 제시된 관세청 대중국 수출자료에 근거하여 필자가 계산한 값).

    중국 수출 성장률 감소는 중국경제의 성장률 둔화와 중국 내부로부터 중간재를 조달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나타난 결과이다. 덧붙여 중국기업들의 기술력 상승과 현저히 낮은 비용 경쟁력을 통해 한국 기업이 선도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던 여러 산업들에서 세계적인 경쟁자로 진입한 결과이기도 하다. 한국 제조업은 비정규직 등 사내하청 노동자의 사용, 아시아 등 역외투자를 통한 비용 절감 노력을 지속하고 있지만 후발 경쟁자들의 진입으로부터 자유로울 만큼 높은 기술력을 갖고 있지 않다. 이는 미국, 일본, 독일도 마찬가지다. 한국이 세계시장을 점유했던 바로 그 원리를 후발주자들이 활용한다는 점이다. 다만 후발주자들은 한국이 갖지 못하는 그들 나름의 제도적 특성을 통해서 말이다.

    자료) World Bank(2020); 한국은행경제통계 시스템(2020. 05) (단위, %)
    주) 2020는 세계경제성장율과 한국경제성장율은 IMF(2000.04)월 추정치임

    한국경제의 성장률 하락은 세계시장의 정체와 경쟁 심화로만 설명할 수 없다. 보다 근원적인 요인은 자본생산성 하락이라 할 수 있다. 한국 경제는 투자주도 성장을 지속해왔는데 투자성장은 장기적으로 자본생산성을 하락시킨다. 투자가 증가하면 노동자 자본집약도( )도 상승하고 노동생산성( )도 상승한다. 그런데 자본집약도는 투자만큼 증가하지만 자본의 한계생산성은 체감하기 때문에 노동생산성 상승률은 자본집약도 상승률만큼 증가하지 않는다( ). 그 결과 자본생산성( )은 하락한다. 총부가가치 중 자본의 몫의 비율을 나타내는 자본소득분배율( )이 일정한 수준을 유지한다면, 자본생산성 하락( )은 이윤율( )을 하락의 원인이다. 이것이 마르크스의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의 요지다. (Foly, 2015; 윤소영, 2009)(‘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면 ‘자본생산성 하락은 이윤율 하락의 원인’이라는 것이 수많은 논쟁의 대상이 되었고 지금도 되고 있는 마르크스의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의 핵심 내용이다(Foly, 2015; 윤소영, 2009)

    (Y총부가가치, K자본, L노동, P-k자본새산성, P-l노동생산성, k자본집약도, r이윤율, Π총이윤, π자본소득분배율)

    <그림 28>과 <그림 29>는 제조업과 비제조업의 기업 규모별 자본생산성 추이를 나타낸다. 기업 규모에 상관없이 제조업, 비제조업 모두 자본생산성이 하락한다. 자본생산성은 유형자산 1원당 부가가치의 비율로 계산된 값이다. 제조업 대기업의 경우 2005년 자본생산성은 0.28에서 2018년 0.15로 하락한다. 비제조업은 2005년 0.274에서 2018년 0.185로 하락한다. 제조업의 하락폭이 더 크게 나타나는 것은 제조업의 고정자본 소비가 비제조업보다 많기 때문이다. 중소기업도 제조업에서 하락폭이 더 크다. 그러나 비제조업이라고 해서 자본생산성이 하락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자본생산성이 하락하는 것은 시장에서 상품의 ‘과잉’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고정자본의 과잉’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전제했듯이 자본주의 하에서 기업들은 고정자본 소비를 노동력 소비보다 더 많이 하려는 경향 즉 편향적 기술진보를 추구하고, 이 과정에서 고정자본의 상대적 과잉이 발생하게 된다. 노동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고정자본 소비를 더 많이 할수록 자본생산성 하락폭은 더 크다. 이는 이윤율 하락 ‘압력’으로 작용한다. 실질임금이 꾸준히 상승하는 국면에서 ‘이자율(자본비용) 하락’은, 기업들에게 추가 부담을 경감시켜주기 때문에 고정자본 소비는 더 확대된다.

    세계시장에서의 경쟁 압력으로 인한 수익성 하락에서와 마찬가지로 고정자본 과잉으로 인한 이윤 하락 압력 역시 기업의 비용절감 노력을 강제한다. 자본간 경쟁의 압력은 한편으로 기업들로 하여금 기술진보를 촉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에 대한 공격을 통해 비용절감을 강제한다. 이것이 바로 사업장 단위에서 자본에 의해 수행되는 ‘계급투쟁’이다.

    그런데 마르크스는 이윤율이 하락하면 기업들의 투자 회피가 일어난다고 했지만 이는 개별국가 단위에서는 맞는 말이지만 세계시장에서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세계수준에서는 상대적 자본 과잉이 존재하더라도 국가 단위의 신규 진입자들이 꾸준히 세계시장으로 진입한다. 중국 자본들이 세계시장에 진입하고 동유럽,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뒤를 따른다. 이는 다시 가격의 하방 압력으로 작용함으로써 기업들의 수익성을 낮춘다. 이것이 불균등결합발전의 의미다.(Brenner, 2002; Smith, 1999)

    자료) ㈜한국기업데이터 2005~2018(단위, 비율)
    주) 자본생산성= 부가가치/유형자산(유형자산 1원당 부가가치)

    2) 경영지표를 통해 본 한국 기업의 위기

    세계시장에서의 경쟁 압력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는 한국 기업들의 경영성과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그림 30>과 <그림 31>는 기업유형별 매출액성장률과 업종별 대기업 영업이익률을 나타내고 있다. <그림 30>에서 선도기업은 각 산업별 최종재를 생산하는 대기업을 의미하며 이에 공급하는 중간재를 공급하는 협력기업 1차 협력기업, 1차 협력기업에 중간재를 공급하는 기업은 2차 협력기업이다. 제조업, 건설업, 전력산업, 음식숙박업, 유통서비스업, 지식서비스업 등이 포함되어 있다.

    그림에서 보면 2011년 이전 대기업의 매출액성장율은 13% 내외에서 움직이다가 2011년 이후 급속히 감소하며 2013부터 매출액성장율은 2% 내외에서 움직이고 있다. 자본주의 하에서 음의 성장이 공항이라고 표현된다면 대기업들의 매출액성장율이 보여주는 바는 한국 경제가 장기 불황에 진입했음을 나타낸다. 시차가 있기는 하지만 대기업 매출액성장율 하락은 1차 협력기업, 2차 협력기업으로 이어진다.

    <그림 31>는 대기업의 영업이익율 추이다. 제조업 영업이익율은 2011년 이전 6% 내외에서 움직이다가 2013년 3~4%로 감소한다. <그림 31>에 나타난 제조업 대기업 영업이익율 추이는 유사하지만 그 값은 한국은행의 집계적 데이터와는 다른데 그 이유는 집계데이터는 대기업 영업이익 총액과 대기업 매출액 총액으로 비로 표시되는 반면 <그림 31>는 대기업 영업이익율의 산술평균이다. 한국은행 자료는 한국 대기업의 전체 영업이익과 매출액의 비를 알 수 있게 하지만 이는 가중치가 적용된 값이다. 가중치가 적용된 값은 전체 대기업의 현실에 대한 착시효과를 낳을 수 있다. 집계데이터에서는 소수의 대기업들의 영업이익이 전체 영업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기 때문에 이들 소수의 대기업들을 제외한 대기업, 중견기업 다수의 경제적 현실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

    반면 <그림 31>는 한국 대기업, 중견기업 영업이익율의 평균적 추이를 보여줌으로써 다수의 기업들이 어떤 상황에 직면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게 한다. 그림에서 보듯이 제조업 대기업의 영업이익율은 2011년 이전 5~6%대에 있었으나 2012년 이후 4% 미만에 머물러 있다. 비교역재인 유통업에서 2011년 이전 6~8%의 영업이익율은 점차 감소하여 2015년 이후 5% 후반대에서 움직인다. 건설업 영업이익율은 매우 급격히 감소하는 추세였으나 2015년 이후 급속히 회복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박근혜 정부 시기 아파트 경기부양의 결과다.

    자료) ㈜한국기업데이터 2005~2018

    매출액성장율 하락과 영업이익율 하락은 적자기업 비중의 증가와 궤를 같이한다. <그림 32>는 기업규모별 적자비율을 나타낸다. 적자비율은 중기업이나 소기업보다 대기업 비중이 더 크다. 대기업 적자비율은 2009년이전 15% 내외에서 움직이다가 2012~2015년 사이 16~17%로 상승한다. 2016년 이후에는 더 급속히 상승하여 2018년 18.8%를 기록하고 있다. <그림 33>은 기업유형별 적자비율을 나타낸다. 2012~2015년 사이 선도기업들의 적자비율은 <그림 32>의 대기업 적자비율보다도 더 높게 나타나다. <그림 32>의 선도기업은 한국의 일반 대기업보다 해외시장에서의 경쟁에 더 많이 노출된 기업들로 구성되어 있다(김종호 외, 2019). 세계시장의 경쟁압력을 더 많이 받고 있기 때문에 적자비율이 더 크게 나타난다는 의미다. 2019년 한국 GDP 성장률 추정치가 2%인 점을 감안하면 2019년 적자비중 기업은 더 많이 증가했을 것이며, 코로나19 상황인 2020년은 그 비율이 폭증했을 것이다.

    <그림 32>와 <그림 33>이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다. 많은 진보적 경제학 연구자들은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갑질이 한국 사회의 주요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그림 32>와 <그림 33>이 나타내는 것은, 한국 대기업들이 공급생태계를 활용하여 다른 어떤 국가들보다 비용절감 노력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자비율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는 점이다. 협력기업들을 활용해 비용절감 노력을 하는 것 자체가 대기업들의 경영활동이며 그와 같은 비용관리가 ‘효율적’으로 되지 않았다면 대기업 적자비율은 훨씬 커졌을 것이고, 한국 경제의 불황은 더 심화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더 많은 실업과 불안정 고용을 만들어내었을 것이다. 그리고 적자누적으로 인해 대기업의 퇴출이 증가하면 중간재를 공급하는 중소기업들의 파산 역시 더 증가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 하에서 시장경쟁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경쟁압력과 수익성 저하 국면이 기업들에게 비용절감 노력을 강제하는 것이 ‘자본간 경쟁’의 핵심 조건이다. 이 상황에서 중소기업과의 상생협력이 얼마나 이뤄질지 의문이다. 그 보다는 중소기업들이 경쟁력을 길러야 힘의 균형이 이뤄진다는 점을 냉정하게 직시하는 게 필요하다. 불법적인 기술탈취, 계약에 명시되지 않은 일방적인 단가인하, 구매계약의 임의적인 변화 등 대기업의 불공정 관행에 대한 법률적 규제는 매우 세부적으로 구체화 되었고, 처벌 수위도 올라가고 있다. 그러나 대기업이 수요독점적 지위를 누리는 이상 중소기업에 대한 우월한 협상력은 변하지 않는다. ‘갑질’의 근원은 중소기업의 경쟁력 부족이라는 의미다.)

    자료) ㈜한국기업데이터 2005~2018
    주) 적자비율 : 영업이익이 0 이하 기업 비율

    매출액성장율 하락과 수익률 하락 및 적자기업 비율의 증가는 투자율 하락으로 귀결된다. <그림 34>와 <그림 35>는 미시데이터로부터 생산된 기업 투자율이다. 기업 투자율은 당기의 유형자산액의 순증가분과 감가상각액의 합을 전기유형자산액으로 나눈 값의 비율이다. <그림 34>는 제조업 기업규모별 투자율을 나타내며 <그림 35>는 비제조업 기업규모별 투자율을 나타낸다. 2010년 이전 제조업 투자율은 15% 내외에서 움직이다가 2012~2015년은 10% 초반, 2015년 이후는 5%대로 급속히 감소하고 있다. 중기업과 소기업의 투자율이 대기업의 투자율보다 높은 것은 투자율 계산의 분모의 값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유형자산이 압도적으로 크다는 의미다. 비록 투자율에서의 차이는 있지만 추세는 정확히 동일하다.

    <그림 35>는 비제조업 투자율 추이를 나타낸다. 건설업, 유통업, 음식 및 숙박업 등 서비스업의 유형자산 규모는 제조업에 비해 큰 차이가 나기 때문에 투자율은 제조업보다 훨씬 크게 나타난다. 뿐만 아니라 비제조업 가운데 다수를 차지하는 서비스업은 제조업만큼 해외시장에 의존도가 높지 않기 때문에 경쟁 압력이 덜하며 수익성도 제조업보다 높게 나타난다. 그 결과 투자율의 하락규모도 제조업에 비해 작다. 그러나 전체 투자율의 추이는 제조업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2015년 이후 투자율은, 그 이전 30% 중반대에서 20% 초반대로 하락하고 있다. 이는 기업규모에 상관없이 동일하게 나타난다. 물론 과거처럼 유형자산투자율이 기업투자의 유일한 요소는 아니다. <그림 13>에서 보았듯이, 한국의 투자율에서 지식재산생산물 투자율도 일정한 규모에서 꾸준히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식재생산물 투자율도 2015년 이전 5% 내외에서 2015년 이후 2~3%로 하락하는 추세에 있다. 수익성 하락의 결과이다.

    2015년 이후 투자율 하락의 또 다른 이유는 해외직접투자의 급속한 증가와도 관련이 있다. <그림 16>에서 보았듯이 2015년을 전후해서 한국 기업들의 해외직접투자는 아시아뿐만 아니라 유럽, 미국에서 급속히 증가하는데, 그 추세는 2019년까지 지속되고 있다. 그런데 베트남 등 아시아의 해외직접투자는 제조업 등 생산기반 확장을 위한 투자이지만 미국, 유럽으로의 투자는 금융 및 보험, 부당산업 투자가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기획재정부, 2019)

    반면 <그림 34>와 <그림 35>는 금융 및 부동산 투자가 아니라 한국 법인들의 유형자산 투자율 추이를 나타낸다. 국내에서의 유형자산투자를 줄이고 해외에서의 금융 및 보험, 부동산 투자를 증가시키는 것 역시 ‘투자율’ 하락과 같은 맥락임을 알 수 있다. 이 글 전체에서 논의하는 투자란 포트폴리오 투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총고정자본 형성’(Gross Fixed Capital Formation)으로서의 ‘투자’이며 전자의 증가는 후자의 감소로 나타난다. 이는 한국경제의 금융화의 또 다른 증표 가운데 하나다.

    투자율 하락은 장기에 있어서 한국 경제의 성장률 하락의 요인이 될 수 있다. 한 국가의 경제성장은 기술진보율과 인구성장율로 결정되는데, 투자는 기술진보의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앞서도 썼듯이 한국이 일본이나 유럽을 빠르게 추격할 수 있었던 것은 투자율에 앞섰기 때문이다. 미국은 일본이나 유럽보다 기업들의 투자성향이 더 높을 뿐만 아니라 인적자원의 생산능력에서도 다른 모든 국가들보다 우월하기 때문에 유럽 주요국과 일본보다 경제적으로 훨씬 역동적인 힘을 갖고 있다. 2000년대 이후 일본기업들의 투자에서의 보수화는 일본의 노동생산성 상승률 정체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앞서도 한국 기업들의 투자에서의 보수적 성향은 높아지고 있음을 보았다. 한국 기업들이 유럽이나 일본 기업과 같지는 않지만 투자에서의 보수적 성향이 높아지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투자의 위험성도 점증한다. 세계시장의 상대적 축소와 경쟁압력만이 요인은 아니다. 추격성장 과정에서 한국 기업들은 선진국에서 검증된 기술을 모방하며 변용한 것에 집중했지만 이미 다양한 분야에서 선두주자로 올라선 한국 기업들에게 모방의 대상은 사라졌으며 이제 스스로 새로운 제품들을 개발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개념설계라 알려진 제품개발 전 과정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하지만 이는 단시일 축적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 기업들은 선두주자가 치러야 할 대가 즉 ‘선발성의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이정동, 2019)

    자료) ㈜한국기업데이터 2005~2018
    주) 투자율 = , 는 유형자산, 는 감가상각율

    5. 새로운 성장체제의 모색?

    이 글에서 필자는 마르크스주의자인 로버트 브레너, 캘러니코스 등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제시한 결합불균등발전론에 토대를 두고 2000년대 이후 한국자본주의의 전개를 분석했다. 필자는 이 글에서 한국 경제의 제도적 특징인 재벌집단과 (준)계열화된 공급생태계는 후발주자로서 한국이 선진국을 추격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제도적 특징이라고 제시한다. 많은 이들이 재벌중심이 한국 경제 양극화 체제의 원인이라고 제시하는 데 필자는 동의하면서도 재벌 중심으로 구축된 독특한 공급생태계가 한국 경제 성장의 주된 동력이었음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의미다.

    상대적으로 저발전 국가였던 한국이 선진국들을 추격하는데 과정에서 제도적 특징으로 자리 잡은 것이 재벌 중심의 경제체제였다. (준) 계열화된 공급생태계를 통해 재벌기업들은 거래비용을 내부화하고 비용효율성을 달성했으며 모듈화와 자동화를 통해 급속히 생산성을 상승시킬 수 있었다. 더불어 전투적 노조주의로 요약되는 한국의 노동체제는 재벌 중심 자동화를 촉진하는 매개 역할을 담당했으며 노동자들은 그 과정에서 실질임금 상승의 혜택을 누렸다. 이와 같은 공급생태계와 노동체제가 한국 자본주의의 빠른 성장을 촉진하는 ‘제도적 특징’이었다. 그러나 한국 경제의 놀라운 성과를 낸 바로 그 요인이 동시에 우리가 직면한 사회적 모순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또한 이 글은 대기업은 한편으로 중소기업에게 ‘갑질’을 하며 수탈적 체제를 만들어왔지만 동시에 중소기업에게 성장의 기회를 제공한 양가적 측면이 있음을 밝혔다. 대기업들은 준계열화된 협력기업들에게 최종재라는 플랫폼을 제공함으로써 중소기업의 성장을 촉진했으며, 중소기업들이 공급생태계 내부의 제한된 경쟁구조 속에서 기술개발과 공격적인 투자를 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동시에 대기업이 제공하는 중간재 시장에서 중소기업들은 기술혁신에 따른 ‘지대’를 누릴 수 있는 여지가 크지 않기 때문에 높은 수익성을 실현할 수 없었으며 이는 중소기업들이 대기업으로의 성장을 제약하는 요소이기도 했다.

    더불어 중소기업 노동자들도 생산성 향상만큼 실질임금이 상승했지만 생산성 상승률 자체가 대기업에 뒤지기 때문에 실질임금 상승에서도 대기업 노동자들의 상승액에 미칠 수 없었다. 그 누적적 결과는 대·중소기업 간 임금격차 확대였다. 이 글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거래관계에서 나타나는 협상력의 비대칭성이 중소기업이 ‘갑질’을 당하는 핵심 요인이며 대기업이 제공하는 중간재 시장에만 중소기업이 의존하는 한 이는 극복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2010년대 이후 선진 자본주의국가와 마찬가지로 한국 자본주의 역시 장기 불황에 진입했음을 여러 자료를 통해 제시했다. 진보적 개혁을 주장하는 많은 연구자들은 재벌 중심의 경제구조를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많이 해 왔지만 경쟁압력의 증가와 수익률 저하가 어떻게 한국 기업들의 선택을 강제하는가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덜 주목해왔다.

    한국의 성장을 이끌었던 힘은 고정자본 투자였는데, 고정자본 투자는 자본생산성 하락으로 귀결되었으며, 이는 기업들에게 이윤율 하락의 ‘압력’을 가했다. 뿐만 아니라 세계시장의 정체국면에서도 저비용 신규진입자들이 꾸준히 경쟁자로서 등장하면서 한국 기업들이 선도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던 산업들에서 시장점유율이 잠식당했다. 한국이 선진국을 추격했던 바로 그 논리에 의해 후발주자들도 한국이 누리는 세계 경제의 지위를 위협하게 된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그 결과 기업들의 수익성은 악화되고 성장률은 하락했으며, 점차 세계 평균성장률보다도 하향하는 추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수출 주도 대기업들은 생산기지의 이전, 사내하청 대규모 활용을 통한 비용 절감, 하도급 기업들에게 위험의 일부 전가하면서 경쟁력을 유지하려 했다. 자본간 경쟁압력의 증가와 수익성 하락에 직면한 기업들은 노동에 대한 공격을 통해 비용 절감 노력을 계속하고 있고, 이것이 대기업 고용비중 감소, 불안정 고용이 증가되는 주된 요인이다. 이와 같은 추세는 한국 제조업이 항구적인 구조조정 시대로 진입했음을 시사한다. 이는 미국이 1980년대 이후 직면한 현실이고, 유럽과 일본이 1990년대부터 계속 진행해온 일련의 구조조정 과정에 이제 한국 기업들도 진입했다는 의미다. 이상이 결합불균등발전론의 함의다.

    진보적 구조개혁 세력이 직면한 문제는 한국경제의 항구적인 구조조정을 어떻게 실현함으로써 보다 평등한 경제적 질서와 지속가능한 사회체제를 만들어 내는가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 자본주의 개혁과제를 도출하는 것에 앞서 한국 경제가 직면한 현실을 냉정하게 평가가 우선되어야 한다. 도덕적 당위는 때론 현실에 대한 인식의 장애 요소가 될 수 있다. 기업 수익성 하락과 항구적인 구조조정 상황에서 한국 경제는 어떻게 변모할 것인가를 적극적으로 토론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이는 재벌로의 경제력 집중, 산업 조직의 변화, 공급생태계 새로운 구성, 노동시장과 임금구조 변동, 불평등의 문제를 아우른다. 우리는 쟁점을 구체화함으로써 대안의 모색이 가능하도록 해야하며 이 글은 그런 노력의 일부이다.(끝. 각주 생략)

    필자소개
    경남연구원 연구위원. 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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