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경부의 부상과 청와대 개혁파의 몰락
        2006년 11월 14일 04:3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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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동안 건교부가 (부동산 정책의) 중심 역할을 해 왔는데, 최근 종합적 시각으로 정책을 마련하기 위해 재경부가 부동산 정책을 총괄하도록 했다" (한명숙 국무총리, 13일 국회 대정부질의 답변 중)

    "부동산 대책을 총괄하는 기능이 청와대에서 재경부로 이관된다고 들었다. 잘 된 일이다" (강봉균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 14일 고위정책조정회의 모두 발언 중)

    재경부 부동산 정책을 장악하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 주도권이 재경부로 넘어갔다. 건설교통부 관계자의 말로는 "앞으로 부동산 정책은 재경부에서 발표하며, 건교부는 어떤 브리핑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이런 흐름은 지난 9일 정부 내 ‘부동산 관계부처 특별대책반’의 반장으로 박병원 재경부 차관이 임명되면서 예견됐다. 우석훈 성공회대 외래교수는 최근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에서 ‘특별대책반’을 "(재경부의) 경제 쿠데타 이후 형성된 임시 ‘경제정부’의 지휘부"로 규정하면서 "이제 그 어느 때보다 강도높은 부동산 총공급 작전이 시작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재정경제부 장관인 권오규 경제부총리
     

    현 정부에서 재경부의 정책적 대척점은 청와대의 개혁적 보좌진이다. 부동산 정책에 국한해서 보면, 재경부의 공급확대론과 청와대 개혁파의 ‘조세를 통한 투기억제론’이 길항했다. 청와대 개혁파가 내놓은 대표적인 정책이 부동산 보유세다. 이정우 전 정책실장, 김수현 현 사회정책비서관 등이 주도했다.

    그런데 이제 재경부가 정책적 주도권을 쥐게 되었다는 것은 이들 사이의 힘의 균형이 완전히 깨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재경부의 부상은 곧 청와대 개혁파의 몰락이다.

    정태인 전 청와대 비서관은 지난 4월 <레디앙>과의 인터뷰에서 "이정우 선생을 마지막으로 이른바 개혁파가 다 쫓겨났어요. 그 다음부터는 재경부를 통제할 데가 없게 된 거죠. 재경부 사람들은 처음부터 그랬어요. 인수위에서 우리가 그리 갈 때 1년 안에 너희들 다 쫓아내겠다고 했어요. 그래도 2년 버텼으면 잘 버텼죠, 뭐. 정확히 2년 반 버텼네요"라고 말한 바 있다.

    이번에 김수현 청와대 사회정책비서관의 정책적 영향력이 완전히 무력화된 셈이니 실제로는 현 정부 집권 이후 청와대 개혁파가 완전히 몰락하는 데 대략 4년이 걸린 셈이다.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은 이번 재경부의 주도권 장악을 두고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기조가 완전히 파탄났음을 공식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심 의원은 "청와대 개혁파가 내놓은 종부세 등 정책은 부동산 투기를 막기에는 한계가 있었지만 재경부의 개발논리에 맞서 주거복지의 관점에서 접근했다는 의미는 있었다"면서 "재경부의 부동산 정책 주도권 확보는 역대 정권에서 영향력을 유지해온 부동산 개발세력이 완전히 승리했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여당과 한나라당이 합심해 개혁파를 몰아내다

    사실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론이 거론될 때, 그 칼 끝이 처음부터 겨냥했던 건 청와대 개혁파였다. 결국 ‘조세를 통한 투기억제책’을 포기하고 ‘공급확대론’으로 선회하라는 요구였던 셈이다. 이 점에서 여당 주류와 한나라당은 이해관계를 공유했다. 심상정 의원은 "여당과 한나라당이 공조해서 청와대 개혁파를 몰아냈다"고 말했다.

    이는 경제정책의 총괄 부서인 재경부가 왜 부동산 실패 책임론에서 비껴났는지를 설명해준다. 여당과 한나라당 의원들은 청와대를 집요하게 공격하면서도 재경부에 대해서는 이상하리만치 침묵을 지켰다.

    정장선 열린우리당 비상대책위원은 14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부동산 정책에서) 재경부는 조세를 맡았고 권오규 부총리는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지 않았느냐"며 재경부 책임론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대신 "청와대 전체, 비서진들의 문제가 많기 때문에 많은 변화가 있어야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청와대 보좌진 인책론을 제기했다.

    그는 "(부동산 정책은) 청와대가 모든 걸 다 주도해왔고, 예를 들어 지난번에 지방선거가 끝났을 때 거래세를 인하하지 않았느냐? 거래세 인하하는 것도 청와대로부터 간신히 정말 어렵게 얻어냈다고 할 정도로 모든 걸 청와대가 주도했다"면서 "핵심적인 건 대통령이 했을 거고, 그 다음에 김병준 실장이나 경제수석, 경제보좌관, 이런 분들이 많은 역할을 했다"고 덧붙였다.

    이병석 한나라당 원내부대표도 이날 국회 대책회의에서 "부동산정책 실패의 원초적 주역 가운데 한명이 청와대 이정우 특보"라면서 "이러고도 특보로서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이 특보의 해명과 실패 자인을 정식 요청한다"고 청와대 개혁파를 정조준했다.

    그렇다면 최근의 부동산 값 폭등세에 재경부의 책임은 없는가? 심상정 의원은 "현재 형성된 부동산 거품은 수 년간 지속되어 온 개발주의 정책의 산물"이라며 "재경부를 비롯해 개발주의 정책을 추구해온 정책 담당자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우석훈 교수도 "스스로 만들어낸 것과 마찬가지인 부동산 가격 폭등을 구실"로 재경부가 쿠데타를 일으켰다고 했다.

    재경부의 정책 우선 순위는 부동산 투기 억제가 아니라 경기부양

    재경부는 부동산 값을 잡을 수 있을까?

    김상조 경제개혁센터 소장은 "재경부의 정책 우선 순위는 부동산 투기를 잡는 것이 아니라 경기를 부양하는 데 놓여질 것"이라며 "재경부가 금리 인상을 반대하는 것이 단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김 소장은 "금리를 인상하는 것은 시중은행의 대출 금리를 올리는 효과보다 부동산 투기를 잡겠다는 강력한 정책 신호를 시장에 던진다는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면서 "박병원 차관처럼 금리인상에 반대한다는 신호를 주게 되면 시장이 정부의 부동산 정책 의지를 신뢰하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홍종학 경실련 정책위원장도 "부동산 가격 안정과 경기 부양은 동시에 잡을 수 없는 목표"라며 "부동산 투기 심리를 잠재운 다음 경기를 부양하더라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 위원장은 "재경부는 경기부양에 무게를 실을 것"이라며 "재경부는 금리를 올리면 경기가 침체될 거라고 하는데, 경제성장율 1% 올리기 위해 금리를 인하하면 부동산 값 상승으로 소비자 실질소득이 20-30% 줄어든다"고 재경부의 경기부양론을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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