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공명과 레닌 그리고 좌파의 숙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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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11월 02일 04:1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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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을 건설한 후, 내정이 안정되자 제갈공명은 북벌을 단행한다. 공명의 유지를 이은 강유 또한 많은 원성에도 불구하고 북벌을 감행한다. 그 유명한 출사표도 그 때 나온 것이다. 당시 중국의 전쟁이라고 하는 것은 전 연령대의 남자를 모두 소집하는 것이었으니 잦은 전쟁은 필연적으로 백성의 원성을 살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게다가 물자와 군량을 수송하는 인원까지 합친다면 그야말로 전쟁은 예나 지금이나 전체 인민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밖에 할 수 없었다.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은 촉나라가 이렇게 전쟁을 자주 벌였으니 그것은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다.

심지어 출사표를 올린 직후 촉나라의 태사(太史)는 공명에게 북쪽을 맡은 별이 배나 밝고 왕성하기 때문에 지금은 일을 도모할 때가 아니라고 반문하면서 천문을 잘 아는 공명이 왜 무리를 하려 하느냐며 비난한다.

그러나 공명의 답은 걸작이다. 바람의 방향까지 바꾸었다는 그가 하는 답변은 천도(天道)는 항상 변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어찌 한 때의 현상만을 고집하겠느냐고 반문하면서 출병을 강행한다.

공명에게는 이미 사망한 유비, 관우, 장비가 도원결의에서 주창하였던 천하만민의 삶을 안정시키겠다는 높은 대의가 이어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 뜻을 궁중에서 편안히 지내는 일개 태사가 어찌 알았겠는가. 아니 그것은 유비의 통렬한 유언과 뜻을 이어 받은 공명의 숙명이었을 것이다.

   
  ▲ 레닌과 제갈공명 
 

촉이라는 작은 테두리에 안주할 경우, 그것이 무너지는 것은 사실 시간문제였기 때문이다. 인재와 자원이 집중되어 있는 화북을 장악하고 있는 위의 승리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분명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어떻게 하든 기회를 만들지 않으면 아무리 개인기가 뛰어나더라도 공명과 촉에게 시간과 기회는 많지 않았다.

공명이 이러한 숙명을 알았듯이 레닌 또한 이를 알았을 것이다. 인구의 절대다수가 농민이고 자본주의는 일부 도시지역에서만 발전한 러시아의 혁명은 결국 유럽에서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 한 유지되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독일의 혁명이 실패하였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해서든지 세계혁명의 이상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레닌 사후 코민테른은 세계혁명을 촉진하기는커녕 오히려 방해를 했으며, 소련이라는 개별 국가의 안전만 도모하여 세계혁명은 단순한 수사로 전락하고 말았지만 말이다.

그 현명한(?) 공명의 어찌 보면 무모해 보이는 북벌의 이면에는 좌파의 숙명이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된다.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마치 예수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수천 명을 먹인 것과 마찬가지로 어려울 뿐만 아니라 험난한 길이다.

자칫 조그마한 성과에 취한다면 그것은 일신의 영달을 위해 인민의 이름을 팔아 사기를 치는 여느 소인배와 다를 바 없어질 수도 있는 노릇이다. 전략 없는 소영웅주의도 문제지만, 천하를 도모하여 인민의 호민관이 된다는 포부와 의기가 없어진다면 이 또한 크나큰 문제이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의 논란 속 방북은 이런 풍모가 보이기도 한다. 소위 ‘간첩단’ 사건의 역풍 속에서도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방북을 하는 모습은 세파에 흔들리는 않고 끊임없이 도모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통일 문제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영역에 대해서도 이러한 모습을 보여준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통일과 북한 문제를 제외하고 인민의 복리와 안전을 위해, 그리고 천하의 도모를 위해 흔들리지 않으면서 끊임없이 북벌을 감행하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과연 있었는가 말이다.

민주노동당은 황우석이라는 거대한 광풍이 한반도를 휩쓸 때도 이에 부화뇌동하며 부유했으며, 빈곤과 양극화 속에 인민의 삶은 도탄에 빠져갔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영역에서 행한 “북벌다운 북벌”은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다.

당 대표와 대선후보로 거론되는 권영길, 노회찬 의원 등 당내 모든 간판스타들이 동원된 행사가 방북이라는 것은 민주노동당의 앞으로의 진로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큰 것이다.

서유럽에서 드물게 노동당이 10% 대의 지지율 밖에 획득하지 못하고 한국처럼 보수양당이 지배하는 나라가 아일랜드이다. 아일랜드 노동당은 사회경제적인 문제보다는 우리의 북한 문제와 유사한 북아일랜드 문제만 줄기차게 제기한 정당이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에게 아직 12척의 배가 있습니다”로 시작하는, 진정한 북벌을 위해 출사표가 공표되는 날을 상상해 보는 것은 필자의 헛된 기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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