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은 왜 '대추리 전쟁'의 상영을 막았을까
By tathata
    2006년 10월 27일 07:51 오후

Print Friendly

지난 10월 25일의 일입니다. 경찰은 수십 대의 전경버스를 동원해 경찰청 청사 앞을 둘러막고 수백 명의 전경을 동원해 보도 위를 빽빽하게 채워 시민의 자유로운 통행을 봉쇄하는 부산을 떨었습니다. 그 이유는 황당하게도 다큐멘터리 영화의 야외 상영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영화 한 편의 상영을 막기 위해서 수십 대의 버스와 수백 명의 전경을 동원해야 했던 것에는 무슨 사정이 있었을까요? 궁금해 하실 분들을 위해서 저간의 사정을 간략하게 알려드리겠습니다.

자초지종은 이렇습니다. ‘서울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이하 서울 평통사)은 평화와 평택미군기지 확장을 반대하는 평화영화제를 기획했고, 지난 8월 경찰청 인권보호센터에 영화제 장소 대여를 요청했습니다.

인권보호센터는 평화영화제가 경찰청 인권보호센터에서 개최되면 ‘인권 경찰’이라는 의지를 홍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아주 단순하게 판단하고 영화제 대관을 허락하였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단순하게 끝나지 않았습니다.

인권 경찰을 홍보하기 위해 평화영화제의 개최를 약속해 주었는데 서울 평통사에서 뽑아온 상영작 목록 중에는 ‘인권 경찰’이 감추고 싶어하는 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영화가 한 편 있었습니다. 평택 미군기지 확장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저항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대추리 전쟁>이 개막작으로 예정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제서야 문제의 심각성을 파악한 경찰청 인권보호센터는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 운동을 하는 평통사도 부담스럽고 <대추리 전쟁>이라는 영화도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영화제 진행을 위한 장소 사용 허가를 번복하게 됩니다.

   
 ▲ 영화 <대추리 전쟁>의 포스터
 

이에 서울 평통사는 장소 대관 번복이라는 방식으로 영화 상영을 검열하는 경찰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경찰청 앞에서 진행하고, 영화제는 민주노총 교육원으로 장소를 옮겨 진행하기로 합니다.

그리고 경찰청의 표리부동한 행동을 규탄하기 위해 영화제 전야제 형식을 빌어 경찰청 앞에서 그토록 경찰이 상영을 저지하고자 한 <대추리 전쟁>의 야외 상영을 진행하기로 합니다.

이에 경찰은 이 작품의 상영을 막기 위해 무지막지한 대응을 한 것입니다. 25일 밤 경찰청 앞에서 벌어진 황당한 사건은 이런 저간의 사정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이런 일은 이미 예상할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인권을 최고 가치로 존중하겠다는 인권 경찰의 직무 풍토는 사실 말잔치일 뿐입니다.

경찰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거나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기는커녕, 권력의 하수인으로 사회적 약자를 폭력적으로 탄압하고, 여전히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구태를 여전히 반복해 왔습니다.

다른 이야기를 굳이 끌어오지 않더라도 ‘인권 경찰’이라는 표현이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것은 뻔히 드러납니다. 남영동 대공분실이 경찰인권센터로 바뀌었는지는 모르지만, 남영동 대공분실에 있던 경찰청 보안3과는 보안4과인 홍제동 분실과 통합해 홍제동으로 이전하였을 뿐이며 이 과정에서 인원이 더욱 확충되었다고 합니다.

인권의 탈을 썼지만, 그 탈 아래에는 여전히 인권을 탄압한 대공분실의 역량(?)은 유지되고, 오히려 확대되었던 것입니다. 2005년 11월 농민대회에서 2명의 농민을 사망하게 한 것, 많은 노동자 투쟁에 대한 폭력적 탄압, 그리고 평택에서 있었던 무자비한 폭력은 경찰에게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인권 경찰’에게는 투쟁하는 농민, 노동자, 평택 민중은 보호해야할 국민은 아니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렇게 경찰청의 인권 경찰 선언이 허울뿐이라는 것을 만천하가 다 아는 마당에 경찰은 영화 한 편의 상영을 막으면 국민들이 여전히 속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상영을 저지하기 위한 갖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상영을 저지하기 위해 최종적으로 선택한 논리는 정말 구차한 것이었습니다.

경찰이 <대추리 상영>을 저지하기 위해 들고 나온 논리는 “심의를 받지 않은 영화를 상영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 논리는 지난 80년대부터 독립영화를 탄압하기 위해 영화를 통한 사회 변혁 운동을 막기 위해 정부가 동원한 논리였습니다.

1984년 서울영상집단의 영화 <파랑새>를 탄압한 논리도, 1990년대 장산곶매의 <오! 꿈의 나라>, <파업전야>, <닫힌 교문을 열며>, 그리고 영화제작소 청년의 <어머니 당신의 아들> 등 독립영화의 상영을 저지하기 위해 동원한 논리도, 90년대 서울인권영화제와 서울퀴어영화제, 인디포럼 등 독립영화제의 영화 상영을 저지하고 탄압한 논리도 바로 ‘심의를 받지 않은 영화를 상영하는 것은 영화법 위반’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과거의 망령이 ‘국민의 정부’를 거쳐 ‘참여 정부’가 열렸다는 21세기에도 재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표현의 자유를 확대하기 위한 오랜 투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영화(영상물)의 표현의 자유는 여전히 억압되고 있으며, 심의 제도는 여전히 표현을 억압하는 장치로 작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검열을 철폐하기 위한 오랜 투쟁의 성과로 헌법재판소는 1996년 행정기관에 의한 모든 사전 심의제도를 사실상 검열로 간주하고 영화법의 사전심의 규정이 위헌이라고 선고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영상물의 공개를 강제적으로 차단하는 검열적 요소는 잔존해 있었습니다.

1999년 김대중 정부가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전면적으로 보장하고 등급분류제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전향적’으로 정책을 조정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영화 상영은 원칙적으로 심의를 받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심의를 받지 않아도 되는 예외조항이 존재하긴 하나 그 폭은 매우 제한적입니다. 등급분류 면제에 대한 판단은 문화관광부 장관이나 영화진흥위원회 등 행정권을 가진 주체들만이 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고, 등급분류를 받지 않은 영화의 공개는 엄격하게 금지하도록 강제하고 있어 여전히 심의제도의 검열적 요소는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2007년 가을, 경찰은 이 조항을 악용하여 특정 영화의 상영 여부를 검열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영화의 상영을 위해 등급분류가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주장엔 동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모든 영화가 상영되기 위해서 등급분류를 받아야 한다는 것에 동의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영리적 상영을 전제로 만들어진 영화에 대해 관람 연령의 가이드라인을 제공해주는 등급분류가 필요하다는 것에 동의하는 것입니다.

상업적 목적으로 불특정 다수를 향해 무차별적으로 영화를 상영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굳이 상영을 위해 등급분류를 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더구나 창작자의 예술적, 정치적 신념에 따라 등급 분류를 거부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등급을 받지 않을 권리가 존재해야만 검열이 아닌 완전등급제가 시행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미국의 경우에도 등급제가 엄격하게 시행되지만, 모든 영화가 상영을 위해 무조건 심의를 받도록 규정되어 있진 않습니다. 제작자의 판단에 의해서 등급심의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고 있을 뿐입니다. 등급 심의를 받지 않은 작품의 경우 일정한 상영에 대한 제약이 있긴 하지만, 상영 자체가 불법이라는 이름으로 금지되지는 않습니다.

표현의 자유는 단순히 창작자의 창작 과정의 자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표현의 자유는 창작 과정과 그 과정의 결과물인 창작물이 공개되는 과정을 모두 포괄해야만 완성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영화의 상영이라는 창작물 공개 과정을 행정권에 의해 강제하는 현행 영화진흥법의 제한 규정은 표현의 자유를 제약시키는 것이며, 이는 헌법이 규정한 표현의 자유에 여전히 위배됩니다.

현재 우리 사회의 영상물의 표현 자유는 법적인 제한과 함께 경제적 제한이라는 이중의 장벽 아래 갇혀 있습니다. 문화의 진흥이 표현의 자유에 따른 다양성에 근거 한다면, 영화 예술의 진흥을 위해서는 불필요한 법적 제약은 없애고, 경제적 제한을 제어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최근 문화관광부는 영화진흥법과 음반 및 비디오, 게임에 관한 법률 중 비디오 진흥과 규제에 관한 내용이 통합하는 영화법 개정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산업을 진흥하는 새로운 정책도 발표하기도 하였습니다. 법 개정과 제도 개선에서 심의 제도의 개편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도록 악용될 소지가 있는 제도는 반드시 개혁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에야 영화진흥정책의 효과가 제대로 발현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