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먹거리 누가 독점하고 어떻게 망치는가
    [책소개]『푸도폴리』 (위노나 하우터/ 빨간소금)
        2020년 12월 05일 04:0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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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도폴리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대부분 소비자(먹거리를 먹는 사람들)는 먹거리를 생명 유지에 가장 중요한 요소로 본다. 하지만 대기업은 우리의 부엌과 위장을 이윤 창출원으로 여긴다.”

    《푸도폴리》 1장은 이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 문장에 이 책의 전체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2010년 현재 카길, 타이슨 푸드, JBS, 내셔널 비프가 미국 육우의 80%를 생산한다. 그리고 스미스필드, 타이슨 푸드, JBS, 엑셀이 미국 돼지의 66%를 생산했다. 이들 업체를 비롯한 공장식 농장에서 사육되는 돼지의 비율은 1992년 30%에서 2007년 65%로 늘어났다. 육계 산업도 비슷한 상황이다. 2010년을 기준으로 지난 10년 동안 5대 가금류 생산업체였던 타이슨 푸드, JBS/필그림스 프라이드, 샌더슨 팜, 콕 푸즈가 현재 미국에서 소비되는 육계의 70%를 차지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답은 “수직통합화”다. 전통적인 개별화 방식과 달리 지금은 먹거리의 생산-가공-유통이 한 회사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타이슨 푸드가 공장식 비육장에서 소를 기르고, 자체 도살장에서 도살·정육한 뒤 맥도날드에 공급하는 식이다. 이러한 수직통합화는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한 생산업체의 전략에 따른 것이면서. 맥도날드 같은 패스트푸드업체들의 요구가 낳은 결과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맥도날드, 버거킹, 웬디스가 햄버거를 포함한 패스트푸드 판매액의 73퍼센트를 차지한다. 단일 구매자 가운데 쇠고기를 가장 많이 구매하는 업체인 맥도날드는 1년에 45만 4,000톤을 구매하고 약 13억 달러를 지불한다. 이러한 패스트푸드 체인들의 시장 지배력 때문에 쇠고기 산업의 통합이 더욱 심화되었다.

    그리고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이 농산업-금융자본-정치권력의 동맹이다. 이들은 “커지든지 꺼지든지”라는 구호 아래, 소농을 없애고 기업농 중심의 독점 체제로 농업을 바꾸기 위해 돈을 만들고 법을 바꾸었다. 지은이 위노나 하우터는 이러한 “식량독점체제”를 푸드(Food)와 모노폴리(Monopoly)의 합성어인 푸도폴리로 표현한다.

    미국 농업의 역사를 한마디로 ‘독점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 《푸도폴리》는 이러한 독점화의 과정을 농산물 산업과 유기농 산업, 축산업을 비롯한 육류 산업, 생명과학 산업에 대한 “세심한 연구”를 통해 밝혀내고 있다.

    유기농 식품의 역설

    유기농 식품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에서 유기농 식품은 소규모 가정 재배에서 식품 기업들이 지배하는 연매출액 약 300억 달러(2011년 기준)의 산업으로 성장했다. 대기업이 통제하는 먹거리 체계의 대안으로 인기를 얻은 유기농 식품이 이제는 초대형 식품 회사들의 통제를 받는다. 오늘날 20대 식품가공업체들 중 14개가 유기농 브랜드를 매입하거나 자체적인 유기농 브랜드를 출시했다. 홀 푸드 마켓이 미국 자연 식품 소매 부문을, 유나이티드 내추럴 푸드가 유통을 지배하고 있다.

    유기농 식품과 자연 식품이 수지맞는 사업이 되자 월마트 또한 행동에 착수했다. 극도로 효율적인 유통망으로 유명한 이 괴수는 2006년에 자사가 판매하는 유기농 제품의 숫자를 늘리고, 유기농 제품을 관행 제품보다 10% 높은 가격에 판매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월마트가 이야기하는 유기농은 많은 소비자가 유기농 제품에서 기대하는 것과는 다르다. 대형 식품 회사들과 제휴해 이미 월마트 매장에서 판매하고 있는 가공식품들의 유기농 버전을 만드는 것이다. 또한 고과당 옥수수시럽을 사탕수수로 만든 설탕으로 대체하고 방부제를 없앰으로써 가공식품을 유기농으로 만드는 것이다.

    월마트의 신선 식품 담당 임원은 유기농 시장 진출이 단순한 마케팅 전략에 불과하며, “유기농업은 단순히 다른 농법에 불과한 것으로, 다른 것보다 더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라고 털어놓았다.

    이런 모든 일은 농무부가 국제무역과 상거래를 위해 “간소화된” 인증 과정을 마련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유기농 식품 부문에서도 역시 농산업-금융-정치 권력의 동맹이 힘을 발휘했다. 《물은 누구의 것인가》를 쓴 모드 발로는 이렇게 간파한다. “하우터는 먹거리 위기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것은 바로 대기업이 지배하고 있는 먹거리 체계에서 이익을 얻는 정치 및 농산업계 지도자들이다.”

    개인적 선택뿐만 아니라, 정치적 변화가 필요하다

    식량 생산 시스템의 구조와 문제점을 밝히는 책은 여럿이다. 《푸도폴리》 역시 여기서 이야기를 멈추었다면 그리 매력적이지 못했을 테다. 하지만 이 책은 한 발 더 나아가 누가, 왜 이런 일을 벌이는지를 거대 독점기업들의 실명을 제시하며 밝힌다. ‘해제’에서 정치학자 채효정은 이렇게 일갈한다. “악의 구조만 말하고, 악행의 주체를 묻지 않는 운동은 구조도 개선할 수 없다.”

    지은이 위노나 하우터는 현재 버지니아주 더 플레인스에서 유기농 가족농장을 운영하며 로컬푸드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먹거리운동가의 한 명으로서 하우터는, 로컬푸드운동이 먹거리 위기와 생태 위기를 해결하는 데에는 충분치 않다고 생각한다. 좋은 생산자와 소비자가 되는 운동만으로는 푸도폴리를 해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농업 및 먹거리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완전한 구조적 변화, 즉 개인적 선택뿐만 아니라 정치적 변화가 필요하다. 푸도폴리가 이미 농산업-금융-정치 권력의 동맹체이므로, 이에 맞서는 운동 또한 매우 정치적이어야 한다.

    푸도폴리의 반대편에 선 사람들

    그러나 《푸도폴리》는 아주 급진적인 노동정치나 농민의 정치세력화로 나아가지는 않는다. 1930년대 뉴딜 시대의 독점 해체와 금융자본에 대한 강력한 규제에 준하는 수준을 요구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때의 대중적인 요구가 지금은 급진적 소수의 요구로 들린다. 시장의 자유를 사실상 무제한적으로 허용하고, 기업의 자유를 위한 규제 철폐를 정부가 앞장서서 노골적으로 말하는 시대에는 ‘반독점법’조차 급진적 주장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것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의 목표가 아니라 공황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한 ‘정상적 시장경제’에 대한 요구였고, 시장을 안전하고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 자유시장주의자들이 추구한 목표이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식품 산업 체제를 반식민주의 관점에서 비판하는 반다나 시바나, 인간중심주의에 반대하는 급진적 동물권과 반자본주의적 생명권 운동의 관점과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그 차이가 지금까지의 논의에서 종종 포기되었던 주체를 반독점운동의 주체로 불러온다. 그것은 푸도폴리의 반대편에 선 산업국가의 소농과 가족농을 비롯해 푸도폴리 체제에서 억압당하고 있는 노동자와 위험에 빠진 시민이다. 푸도폴리에 대항하는 반독점 전선은 선진국의 농민, 노동자, 시민을 연결하는 새로운 연대의 전선을 만들어낸다.

    책을 읽다보면 미국 중심의 관점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미국이 푸도폴리의 심장이기 때문에, 그리고 이들이 개발한 독점과 통치의 기술들이 전 세계적 표준(global standard)이 되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푸도폴리 심장부의 지배 구조를 정확하게 아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해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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