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당실패론'은 정계개편 알리바이?
        2006년 10월 24일 03:3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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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은 지난 22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을 당선시킨 지지자들은 우리의 정치적 기반이자 참여정부의 주동세력이 돼야 하는데 그분들에게 실망을 드렸다"고 말했다. 그는 ‘민주당의 분당이 여당 비극의 씨앗이 됐다’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언급과 관련,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이 같이 말했다.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도 지난 13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열린우리당의 창당은 시대정신을 담고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다"며 "민주세력의 분열이 초래된 데 대해 책임감을 통감한다"고 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지난 9일 <경향신문>과의 단독 회견에서 "분당을 했는데, 그 분당한 게 표 찍어준 사람들에게 승인받은 적이 없다. 표 찍어준 사람들은 그렇게 바라지 않았다"며 "(민주당 분당에) 오늘 여당의 비극의 원인이 있다"고 주장했다. 

    김근태 의장과 정동영 전 의장은 열린우리당 창당의 주역이자 양대 주주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의 정치적 대부다. 이들의 공개적인 자기(혹은 후계자에 대한) 부정은 ‘열린우리당 창당실패론’이 여권 내의 지배적 견해로 굳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 열린우리당 정동영 전 의장과 김근태 의장 (사진=연합뉴스)
     

    열린우리당, 창당 3년만에 실패 자인

    물론 이런 진단에 이견이 없는 건 아니다. 열린우리당 창당의 당위론을 강조하는 쪽은 주로 여당 내 친노직계다.

    이들의 주장은 창당 이후의 오류를 문제삼는 것은 몰라도 창당 자체를 원죄삼는 건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것이다. 즉, "분당의 책임은 보스정치, 지역정치에 매몰된 민주당 말기의 부패와 한계에도 있다. 결과적으로 창당정신에 맞게 해오지 못한 것은 잘못이지만 분당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김형주 의원)"는 논리다.

    백원우 의원도 24일 "당시의 창당은 지역주의, 권위주의, 금권정치로 대표되는 3김정치를 탈피해 달라는 국민적 요구를 실현한 것"이라며 "이런 요구가 지난 3년간 어느 정도 실현되고 나니까 이제 국민적인 새로운 요구가 등장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도 ‘과정의 실패’는 인정한다. 창당의 ‘원죄’건 ‘과정’의 실패건, 열린우리당은 지금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창당한지 꼭 3년만이다. 내달 11일은 열린우리당이 창당한지 만 3년째 되는 날이다. 

    "열린우리당은 엘리트 정당, 국회의원과 보좌관들의 정당"

    조현연 성공회대 교수는 여당의 실패 원인으로 ‘원인 진단의 오류’를 꼽았다. 조 교수는 "여당이 창당 목표로 내세운 지역주의 극복과 반부패는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라며 "보수 독점의 정치체제를 극복하지 않고는 지역주의와 부패의 근원적 치유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손호철 서강대 교수는 "열린우리당이 당내 민주주의와 관련해 일정한 성과를 거둔 것은 사실"이지만 "민주당을 그대로 유지했다고 해서 그런 성과가 불가능했는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손 교수는 "국민경선제 도입과 상향식 공천 명문화 등 당시 민주당 내에도 3김정치를 벗어나려는 기류는 형성되어 있었다"며 "분당 과정에서 지지기반의 와해만 불러왔다"고 지적했다. 손 교수는 당시 분당의 배경에는 탈DJ, 탈호남 전략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의 정당을 만들려는 정략적 의도가 있었다고 말했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주간은 "애초에 당을 만든 이유가 명확치 않았다"고 지적했다. 새로운 정당을 만들려면 미래지향적인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데 기존 정당에 대해 부정적 낙인을 찍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근거를 삼았다는 것이다. 박 주간은 또 열린우리당이 원내정당화와 지구당 폐지 등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대중적 기반 없는 엘리트 정당, 국회의원과 보좌관들의 정당으로 변질되어 버렸다"고 비판했다.

    김대중, 김근태, 정동영, 천정배 vs 노무현

    현재 여권에서 제기되는 ‘창당실패론’은 대선용 헤쳐모여식 정계개편을 합리화하기 위한 알리바이의 성격이 강하다. 분당이 잘못되었다는 평가는 ‘통합정당론’에 대한 옹호로 직결된다. 김대중 전 대통령, 김근태 의장, 정동영 전 의장, 천정배 전 법무장관 등이 한 배를 타고 있다.

    ‘통합’에 대한 옹호는 분당 주도세력 배제론으로 연결된다. 당시 분당을 전면에서 주도한 것은 이른바 ‘천신정’으로 불리는 여권의 신흥세력이었지만 이런 흐름을 기저에서 강제한 것은 노무현 대통령과 영남에 기반을 둔 그의 측근들이다. 때문에 ‘헤쳐모여식 통합정당’에는 이들 친노파가 설 자리가 없다. 이들이 ‘진보적 실용주의론’을 기치로 현 여당 중심의 정계개편을 주장하는 건 정치적 생존논리상 당연한 귀결이다.

    양측의 대립을 한층 첨예하게 만들고 있는 게 북핵사태다. 북 핵실험 이후 햇볕정책에 대한 평가 및 대북정책 방향을 놓고 김대중 전 대통령, 김근태 의장, 정동영 전 의장, 천정배 법무장관 등이 자연스럽게 하나의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이와 관련, 김형주 의원은 "우리당 내부에 DJ와 뜻을 같이하는 세력이 DJ의 최근 북핵 관련 발언을 정계개편의 근거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며 "노 대통령의 대북 포용정책 수정 시사 발언이 정계개편 과정에서 노 대통령과 거리를 두는 구실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창당실패론-통합정당론’은 또 다른 ‘실패’를 예고하는 것

    특히 PSI 참여 확대 문제는 이들의 대립을 폭발시키는 뇌관이 될 가능성이 크다. 김근태 의장 등은 연일 PSI 확대참여 반대론을 강도높게 주장하는 반면 정부측에서는 확대참여 기류가 완연하다.

    민병두 의원은 "이런 중요한 문제에서는 긴밀한 당정협의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며 "당정간에 고도의 조율이 필요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김근태 의장이 최근 "당정분리가 여당의 무력화 배경"이라고 비판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여기에 10.25 재보선 패배에 따른 책임론까지 맞물릴 경우 여당은 극심한 내홍에 휩싸일 가능성이 크고, 이것이 조기 정계개편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편 여당 다수파의 ‘창당실패론-통합정당론’은 또 다른 ‘실패’를 예고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시각이 많다. 열린우리당이 실패하게 된 본질적인 이유는 정략적인 이유에서 당을 만들었기 때문인데, 대선을 앞두고 또 다른 ‘정략정당’을 만들려 한다는 것이다.

    손호철 교수는 이들의 논리를 "타살당하지 않으려고 자살하는 격"이라고 꼬집었다. 박상훈 주간도 "대선을 위해 또 다른 기성정당을 만든다면 열린우리당의 실패를 되풀이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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