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의 '춤'과 민주노동당
    2006년 10월 21일 11:2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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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 열린우리당 전 의장은 반듯한 사람이다. 특히 팔순을 넘은 노모에 대한 효심은 각별한 것으로 알려졌다(정 전 의장의 모친은 지난 5월 작고했다). 그런 그가 지난 2004년 총선을 앞두고 "노인들은 투표소에 나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가 호된 곤욕을 치렀다.

당시 정 전 의장측 사람들은 "정 의장이 뭐에 씌워도 단단히 씌운 게 분명하다"고 황당해했다. 평소 그의 성품으로 미뤄볼 때 도저히 터질 수 없는 ‘사고’라는 것이다. 결국 그는 의원직도 던지고 당의장직도 던졌다. 이 문제는 앞으로도 정치적 고비마다 정 전 의장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

‘진의’가 ‘진의’대로만 전달된다면 정치는 덜 어렵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정치인의 언행은 늘 해석되게 마련이고, 그 과정에서 발췌와 확대, 왜곡이 발생할 개연성이 상존한다. ‘진의’는 버려지고 ‘지엽’과 ‘말단’이 뉴스가 되는 일이 비일지재하다. 때문에 정치인은 이해와 오해의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 정치라는 게 그래서 어렵다.

   
  ▲ 20일 개성공단을 방문한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이 개성 봉동관에서 열린 개성공단 관계자들과의 오찬장에서 공연을 하던 북측 여성 접대원의 손에 이끌려 분위기를 맞추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김근태 의장이 개성공단을 방문한 자리에서 춤을 췄다고 시끄럽다. 김 의장이 춤을 추게 된 정황은 뻔해 보인다. 화기애애한 오찬장에서 북측 여성 안내원의 강권을 거절하기가 난감했을 것이다. 김 의장의 평소 신중한 언행으로 볼 때 이 엄혹한 시기에 무슨 신바람이 나서 춤을 췄을 것 같지는 않다.

물론 김 의장의 ‘진의’는 ‘진의’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21일자 1면에 김 의장이 춤추는 모습을 큼직한 컬러 사진으로 박은 <조선일보>는 이날 사설에서 "김정일 정권이 마침내 핵을 만들어 남을 협박하며 체제를 연명하게 된 것이 대견하고 뿌듯해서" 춤을 췄냐고 힐난했다. 한나라당은 "국제사회로부터 고립을 당하고 있는 김정일위원장을 위무하기 위한 위무사절단임을 스스로 입증한 것 아니냐"고 정치공세를 퍼붓고 있다.

여당 내에서도 김 의장의 신중하지 못한 처신을 비판하는 여론이 비등하다. 일각에선 "본인이 책임져야 하는게 아니냐"고 거취 문제를 언급하기도 한다. 김 의장은 "잘 다녀왔는데 마지막에 내가 실수한 것 같다"며 이해를 구하고 있지만 파문은 쉽게 가라앉을 것 같지 않다. 북 핵실험 이후 김 의장의 공세적인 ‘햇볕행보’에 반감을 가진 여러 세력들은 이 문제를 ‘햇볕세력’의 부도덕성을 공격하는 고리로 물고 들어갈 태세다.

이 모든 사태의 책임은 어디에 있는가. 김 의장의 ‘진의’를 왜곡한 언론과 햇볕 반대파인가. 그러나 우리 정치에서, 혹은 모든 정치에서 언론과 정치적 반대파의 ‘왜곡’은 상수다. 결국 이런 모든 가능성을 고려하지 못한 김 의장의 ‘신중하지 못한 처신’을 탓할 수밖에 없다.

이번 일은 하나의 해프닝일 뿐이지만 해프닝이 정치적 국면을 돌리는 변수로 작용하는 경우는 많다. 지금이 어느 땐가. 북 핵실험이라는 미증유의 사태를 두고 대북강경론과 대북대화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국민 여론도 반분되어 있다. 사소한 실수 하나 때문에도 여론의 추가 반대편으로 기울 수 있고, 그 결과는 한반도의 미래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달 말 방북을 앞둔 민주노동당은 김 의장의 실수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대북 대화 채널이 꽉 막힌 상태에서 세계의 여론이 민주노동당을 주시할 것이다. 정치적 반대파들은 방북단의 ‘실수’를 찾기 위해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할 것이다.

혹여라도 그들에게 ‘선물’을 안겨준다면, 그건 민주노동당에만 재앙이 되는 것이 아니라 국내 진보진영, 나아가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바라는 사람들의 정치적 위상에도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다. 그건 ‘범죄’다.

일이 터진 다음에 "선의와 진의가 잘못 전달됐다"고 해선 안 된다. 그 말을 담는 순간 스스로 정치적 집단이기를 포기한 것이라고 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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