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조출연자 집단성폭행
    2차 가해 경찰 처벌 촉구
    ‘단역배우 자매 자살사건’ 피해자 호소, 외면하고 압력, 강제로 종결시켜
        2020년 09월 24일 06:4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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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년 전 보조출연 관리자들이 보조출연 여성을 집단 성폭행한 사건인 ‘단역배우 자매 자살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지장을 억지로 찍게 해 사건을 종결시키는 등 ‘2차 가해’를 저지른 경찰을 해임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왔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한빛센터), 전국보조출연자노동조합, 정의당 광명갑지역위원회, 한국여성노동자회 등 40여개 시민사회단체와 정당은 24일 오전 경기 광명경찰서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조사 과정에서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저지르고도 여전히 광명경찰서에서 현역 경찰로 근무 중인 조 모 씨를 해임·처벌하라고 촉구했다.

    사진=한빛미디어센터

    이 사건은 2004년 보조출연 관리자 10여명이 보조출연 일을 하던 여성을 성폭행한 사건이다. 대학원생이었던 피해자 양소라 씨는 방학을 맞아 용돈을 벌기 위해 보조출연 일을 하던 ‘일터’에서 이 같은 피해를 겪었다. 양 씨는 경찰에 가해자들을 고소했지만 가해자들과 경찰의 2차 가해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다 2009년 8월 28일 목숨을 끊었다. 언니에게 보조출연 일을 소개했던 양소정 씨도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6일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단체들은 사건을 전하며 “4명의 보조출연배우 관리자들이 포함된 다수의 가해자들은 협박과 위력을 동원해 피해자를 괴롭혔고, 피해자가 용기를 내 경찰에 고소했지만 경찰 조사과정 역시 피해자에게는 ‘참사’였다”고 말했다.

    당시 성폭력 피해 조사 과정에서 피해자와 함께 한 유가족 장연록 씨는 조사를 맡은 경찰이 처음부터 ‘이런 건 사건이 되지 않는다’는 태도로 일관했다고 증언했다. 이들에 따르면, 경찰은 피해자에게 ‘가해자들의 성기 크기, 색깔 등 구체적으로 그려보라’고 하고, 얇은 가림막만 사이에 둔 채 장시간의 대질조사를 진행했다. 술에 취한 경찰은 피해자가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아가씨가 12명이랑 잔 아가씨야?’라는 2차 가해까지 저질렀다는 증언도 나왔다. 특히 담당 경찰은 1년 반 동안 성폭력 사건의 책임을 묻기 위해 싸워온 피해자에게 ‘성인에게 이런 건 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며 합의를 종용했다. 피해자가 합의를 거부하자 강제로 합의서에 지장을 찍게 해 수사를 종결시켰다.

    두 딸이 세상을 떠난 후 아버지마저 지병이 악화된 2개월 만에 숨졌다. 현재 어머니 장 씨만 진실규명과 피해자의 명예회복을 위해 싸우고 있다.

    당시 피해자가 제기한 고소를 담당하며 사건을 강제 종결시킨 경찰 중 1명인 조 씨는 여전히 경찰로 근무 중이다. 그는 광명 철산 지구대장이던 올해 4월 철산 지구대 앞에서 1인 시위 중이던 장 씨에게 “진작 네 년을 죽였어야 했다”며 폭행해 논란이 됐다. 현재 이 사건은 검찰로 송치된 상태인데, 조 씨는 이후 감봉돼 광명경찰서에서 일하고 있다.

    장 씨는 이날 회견에서 “성폭행 당했다고 다 죽지 않는다. 그때 경찰이 제대로 수사만 했으면 지금 이 자리에 있지 않았을 것”이라며 “앞으로도 계속 싸울 것이고 용서하지 않을 거다. 제가 숨 쉴 때까지 우리 딸들의 유언을 지키려 한다”고 말했다.

    경찰의 2차 가해가 피해자 양 씨의 죽음에 큰 영향을 줬다는 것이 유가족의 주장이다. 전문가들도 같은 의견이다.

    직업환경전문의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는 “이 사건은 특별한 직무인 보조출연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많은 노동현장에서 여성들이 겪는 문제다. 직장 내 성폭력은 남녀 간의 문제가 아니라 고용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노동자에 대한 인권침해, 건강권 침해”라며 “이 사건에서 경찰의 2차 가해처럼 직장 내 성폭력 피해자들이 2, 3차 가해 때문에 피해가 더 심각해지는 경우도 흔하다”고 말했다.

    그는 “직장 내 성폭력 있다고 해서 (모든 피해자가) 생을 포기하지 않는다. 회사가 조치를 취했다면 경미한 피해로 넘어갈 것을 주변에서 제대로 대처하지 않고, 조사하는 경찰도 도와주지 않을 때 비극으로 이어진다. 사건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이어지는 문제들이 더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방송사나 제작사들 역시 사건에 대해 전혀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특히 양 씨를 성폭행했던 가해자들은 여전히 방송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한빛센터 등은 “모든 방송 노동자들이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면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문제다. 그러나 공영, 민영을 막론하고 방송사들은 방송 노동환경을 개선을 등한시했다”며 “외주 제작사도 손을 놓고 있기는 매한가지였다. 이따금 언론을 통해 사건이 보도되고 여론이 들끓어 오를 때만 바뀌는 척 할 뿐, 실질적인 변화 없이 무려 15년의 세월을 허비했다”고 비판했다.

    한빛센터 등은 2018년 이 사건의 재조사를 요구하는 청와대 청원이 20만 명의 동의를 얻어 재조사가 진행됐으나 요식행위에 그쳤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같은 해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서 진행한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치유 : 방관자에서 조력자로’라는 주제의 포럼에서 경찰의 재조사 보고서를 검토한 신경아 한림대 교수는 “(경찰 보고서) 그 자체가 피해자를 모욕하는 내용들이었으며, 경찰 조사가 완수되지 못한 책임을 여전히 피해자에게 돌리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실제로 재조사를 맡은 경찰은 피해자가 생전에 고소를 취하했고 가해자 대부분이 조사에 불응하자 그들에 대한 조사 자체를 진행하지 않았다.

    이 단체들은 ▲2차 가해 경찰 해임·처벌 및 2차 가해 예방을 위한 교육과 정책 공표 ▲방송사와 제작사는 성폭력 예방 교육 실시 및 가해자 현장 배제와 피해구제절차 마련 ▲정부는 방송 노동자 실태조사와 노동환경 개선위한 정책 수립 등을 촉구했다

    필자소개
    유하라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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