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균 사망한 태안화력서 또 참변
    하청과 위탁 맺은 노동자, 기계에 깔려
    “위험업무 홀로 하게 하는 기형적 고용형태가 원인”
        2020년 09월 11일 11:4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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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김용균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은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하청업체 노동자가 또 사망했다.

    10일 오전 9시 50분 태안화력발전소의 하청업체와 계약을 맺은 화물노동자 A씨가 2톤짜리 스크류 기계(배에 있는 석탄을 들어 올려 옮기는 기계)에 깔려 숨졌다.

    A씨는 제1부두 하역기에서 지게차를 이용해 원형으로 된 스크류 기계를 화물차량에 2단으로 쌓은 후 고정 작업을 하는 중 스크류 기계가 굴러 떨어져 깔림 사고를 당했다. 원형의 기계를 적재할 때엔 굴러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화물을 크레인으로 잡아줘야 하지만 이러한 안전 조치는 없었다고 한다.

    A씨는 사고 직후 태안의료원에서 응급조치를 받은 후 닥터헬기를 타고 단국대병원으로 이송했으나 오후 12시 39분 사망했다.

    태안화력발전소는 지난 2018년 고 김용균 노동자가 혼자 컨베이어 벨트에서 일하다가 참변을 당한 사업장이다. 고인이 된 A씨 또한 태안화력 하청업체와 하루 단위 고용계약을 맺은 특수고용노동자였다.

    스크류 기계 정비는 태안화력발전의 업무이지만 외주업체에 맡겨졌고, 이 외주업체는 A씨와 위탁계약을 체결해 스크류 기계를 옮기는 업무를 맡겼다. 스크류 기계를 화물 차량에 옮기고 결박하는 일련의 업무는 노동자 1명이 하기 위험한 업무이지만, A씨는 모두 혼자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태안화력발전소는 이번 사고의 책임을 노동자 개인에게 돌리고 있다. <레디앙>이 확보한 내부 보고서에 따르면, 귀책 사유를 ‘본인’이라고 적시하고 있다. 지난 김용균 노동자 사망 이후에도 태안화력발전소는 “가지 말라는 곳에 가서 하지 말라는 일을 하다가 죽었다”며 귀책 사유가 고인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사고 현장(방송화면 캡쳐)

    박준선 공공운수노조 조직국장은 “사고가 나면 무엇이 문제인지를 판단하기 전에 책임을 모면하기 위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김용균 노동자가 죽은 후에도 서부발전은 안전사고 문제에 대한 기본적인 태도가 바뀌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용균 노동자 사망 이후 반복되는 산재 사고의 가장 큰 원인이 위험업무를 외주화한 데에 있다는 ‘김용균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의 조사 보고서가 나왔고, ‘위험의 외주화’ 문제 해결을 위해 위험 업무를 정규직화하는 사회적 합의가 도출됐다. 그러나 원청인 서부발전은 합의사항을 이행하지 않고 기형적인 고용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이번 사고의 배경에도 복잡하고 기형적인 다단계 하청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

    공공운수노조에 따르면, 스크류기계 반출정비업무는 서부발전이 발주해 신흥기공이라는 하청업체가 하는 업무다. 하청업체인 신흥기공은 해당 설비를 반출하기 위해 화물노동자와 위탁계약을 맺고 운송 업무를 맡겼고, 화물 상차는 또 다른 하청업체가 장비를 이용해 적재했다. 스크류 기계를 화물차에 싣는데 3개 하청업체 노동자와 특수고용노동자 신분의 화물노동자가 함께 작업을 한 것이다.

    노조는 “이 복잡한 고용구조는 책임과 권한의 공백을 만들어내고 결국 특수고용 노동자가 다시 목숨을 잃는 참극이 벌어지고 말았다. 위험의 외주화는 그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책임의 공백을 불러온다”고 지적했다.

    김용균재단은 11일 성명을 내고 “28번의 위험개선요구가 묵살당하는 비정규직 고용형태가 김용균을 죽음으로 몰아간 것처럼, 특수고용 위탁노동자는 그 죽음의 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며 “컨베이어벨트로 몸을 집어넣어야했던 작업구조가 김용균을 죽인 것처럼, 어떤 안전 장비없이 스크류를 혼자서 결박해야 하는 작업구조가 또 한 명의 노동자를 죽인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죽음이 반복되는 한국서부발전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위험의 외주화가 유지되는 한, 왜곡된 고용구조가 유지되는 한, 작업자의 과실로 몰아가는 한 지금 같은 죽음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며 “한국서부발전은 고 김용균의 죽음 이후 제시된 개선책과 약속을 지금 당장 이행하라”고 요구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운동본부도 “위험한 업무를 홀로 하게 만드는 이 기형적인 고용형태가 문제의 원인”이라며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 이후 원청과 하청업체 책임자 14명이 기소되었으나 제대로 처벌받고 있지 않다. 그러다보니 그들은 위험을 계속 방치하고 안전을 무시하며 비정규직 고용구조를 계속 유지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본부는 “노동자가 떨어진 자리에서 또 떨어지고, 죽어간 자리에서 또다시 죽는 일을 언제까지 반복해야 하나. 경찰과 고용노동부가 이 죽음의 구조적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기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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