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실험, 남한을 산산히 분열시켜 놓다
    2006년 10월 13일 09:2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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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핵실험이라는 초유의 위기상황을 맞아 우리사회에 내재되어 있던 대립과 분열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사태를 보는 시각의 본질적이 차이뿐 아니라, 대북정책의 기조 변화와 제재의 수준과 내용을 놓고 정부와 여당이, 여당과 야당이, 전직 대통령과 현직 대통령의 입장이 갈리고 있다.

상황의 심각성에 따라 현재는 잠복돼 있는 것으로 보이긴 하지만 각 정당 내 입장차도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민주노동당도 예외가 아니어서, 이 문제를 둘러싸고 내부적인 갈등을 겪고 있는 중이다. 이런 현상은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북핵실험을 놓고 부시 정책을 둘러싼 내부 논쟁이 곧 다가올 중간 선거를 앞두고 격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보다 심각한 것은 이견과 갈등이 존재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점을 찾아내지 못한 채 증폭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삐걱대는 정부와 여당

   
▲ 열린우리당 의원총회 (사진 = 연합뉴스)
 

최근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대북포용정책을 공세적으로 옹호하고 있다. 김근태 의장과 김한길 원내대표는 연일 관련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이는 한나라당뿐 아니라 노무현 대통령을 겨냥한 것이기도 하다.

노 대통령은 북한의 핵실험이 있던 지난 9일 기자회견에서 다소 격앙된 모습으로 대북 포용정책의 기조변화를 시사한 바 있다. 그에 대응해 여당의 대권 주자 가운데 한 명인 천정배 전 법무장관은 11일 현 정부의 오락가락 대북정책이 북핵 사태의 악화를 불러왔다며 노 대통령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대북 제재의 수위를 놓고도 정부와 여당의 입장차가 드러나고 있다. 여당 지도부는 PSI(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 참여 확대는 절대 불가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김근태 의장은 12일 "유엔 결의안이 채택도 되기 전에 PSI 참여 확대 방침이 정부 당국자의 입을 통해 거론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라고 최근 정부 당국자들의 발언을 비판했다. 그는 "만일 이번 사안에 대해 불성실하거나 안이한 태도를 보이는 공직자가 있다면, 집권당인 우리당과 상황을 긴밀히 협의치 않는 공직자가 있다면, 국민의 대표로서 합당한 책임을 추궁하겠다"고 강력하게 경고했다.

김한길 원내대표도 "한반도에 무력 개입이 예상되는 어떠한 조치에도 우리는 동의할 수 없다"고 PSI 참여 확대 방침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했다. 천정배 전 장관도 11일 "핵개발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물자의 교역을 금지하는 것"으로 PSI의 범위를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정부는 유엔 안보리의 조치에 따라 PSI 참여를 확대할 수 있다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은 12일 PSI 참여 확대 문제에 대한 정부의 입장과 관련, "지금 정부의 입장은 여러 번 말했듯 국제적 조율이 중요하고 유엔 결의가 우리 정부 방침의 준거가 된다는 것"이라며 "결의가 나오는 과정에서 우리 정부의 의견이 적절하게 반영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최근 PSI 참여 확대 가능성을 시사한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 유명환 외교통상부 제1차관 등의 발언과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윤 대변인은 이날 "(PSI에 대한 정부의) 의견이 있지만 공개하는 것이 오히려 혼선을 가져올 수 있어 밝힐 수 없다"고 했다.

접점이 안 보이는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북핵 문제를 둘러싼 모든 쟁점 분야에서 양당의 입장은 극단적으로 다르다. 열린우리당은 대북포용정책의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한나라당은 완전폐기를 주장하고 있다. 북핵 사태의 해법으로 여당이 ‘대화’에 무게를 싣고 있다면 한나라당은 완연히 ‘제재’에 기울어 있다.

대북 제재의 수위를 놓고도 양당은 극단적으로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PSI의 참여 확대는 "군사적 충돌의 뇌관이 될 수 있다"며 절대 불가하다는 입장인 반면 한나라당은 "현재로선 강력한 대응이 유일한 길"이라며 대북제재와 PSI 동참을 촉구하고 있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문제와 관련해서도 열린우리당은 정경분리 원칙을 들어 지속돼야 한다는 입장이나 한나라당은 전면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오락가락하는 대통령

북핵 위기의 원인과 해법을 두고 양당은 이렇게 평행선을 긋고 있지만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노 대통령은 불안정한 오락가락 행보로 오히려 혼란을 부채질하고 있다.

대북포용정책의 궤도 수정을 시사한 9일 기자회견에서 노대통령은 북에 대한 배신감과 그에 따른 정서적 동요를 여과없이 드러냈다. 이날 노 대통령은 "지난 날 한국 정부가 북한에 대해 인내와 양보를 해왔다. 이제 뭘 하든 수용하는 식은 더 이상 해나갈 수 없다"며 ‘대북포용정책’의 기조 변화를 강력하게 시사했다. 

그러나 바로 이튿날 노대통령은 5당 대표 및 원내대표와의 오찬에서 "핵실험의 결과로 포용정책을 재검토할 수밖에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포용정책이 핵실험을 가져왔다는 지적들은 여유를 갖고 인과관계를 따져봤으면 좋겠다. 포용정책이 남북관계 긴장을 해소해서 국민의 불안도 해소시켜 준 측면이 있다. 경제안정에 대한 믿음도 줬고 활력에 도움을 준 측면도 있다"며 전날과는 발언의 톤을 달리했다.

북 핵실험은 정치적 핵폭탄

북한의 핵실험은 정치적 핵폭탄이 되어 한국의 정치 지형을 흔들고 있다. 최근까지 햇볕정책을 상찬하며 ‘서진정책’을 추진하던 한나라당은 언제 그랬냐는 듯 연일 햇볕정책 때리기에 나서고 있다.

한나라당의 대표적인 공안통인 정형근 최고위원은 12일 "북한의 목표는 미국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남한을 북핵의 볼모로 잡아 적화통일을 시키겠다는 것"이라는 오래된 논리를 다시 꺼냈다.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은 김정일에게만 햇볕정책이었고 북한 주민에게는 한겨울 삭풍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 최고위원은 지난 2월 어느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김 전 대통령이 역사적인 6ㆍ15 남북 정상회담을 이끌어 낸 점은 적절하다"고 평가해, 진행자인 장성민 전 의원으로부터 "야, 정형근이 살아남기 위해서… 정말 무섭다 무서워"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었다.

노 대통령의 대북정책이 강경으로 선회할 움직임을 보이고 그에 대한 여당의 반발이 거세게 나오면서 ‘이제 대북정책에서 노 대통령의 파트너는 열린우리당이 아니라 한나라당이 아니냐’는 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KSOI의 12일 여론조사에선 북한의 핵실험 이후 한나라당과 노대통령의 지지율이 동반 상승한 것으로 나오기도 했다.

반대편에선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옹호하는 이른바 ‘민주평화세력’의 응집력도 날로 강해지는 양상이다. 이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전개될 것으로 보이는 범여권 정계개편에도 적지 않은 변수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북핵 문제를 둘러싼 정치권 내 입장 차이는 각당의 대선 전략과 맞물려 더욱 첨예해질 가능성이 크다. 그러는 가운데 위기의 시간은 점차 다가오고 있다. 위기 타개 방안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전망이 극히 불투명하고 그를 끌어내기 위한 통합의 구심력이 완전히 실종되어 버렸다는 점이야말로 현재의 상황을 심각한 ‘위기’로 규정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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