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행의 원인, 위기의 대안
사회불평등 해소를 위한 새로운 모색
[평등의길] 사회연대와 자주적 방식으로 길 모색해야
    2020년 08월 17일 03:2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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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조 활동가들의 현장조직 <노동자가 여는 평등의 길> 소식지 7호에 실린 글을 게재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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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회적 대화의 정치적 성격

미국의 뉴딜⋅사민주의적 합의주의(Corporatism)와 한국의 사회적 대화 비교

코로나19 글로벌 팬데믹 위기는 전대미문의 위기상황으로 1930년대 대공황과 비교를 한다. 그리고 대공항 이후 미국의 뉴딜정책과 사민주의적 합의주의를 우리나라의 사회적 대화와 같이 비교하기도 하는데 내용을 보면 성격이 전혀 다르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30년대 대공황 후 미국의 뉴딜과 사민주의적 코포라티즘의 정치적 의미는 완전시장경제에서 반복되는 주기적 경제공황의 위험을 해결하기 위해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새로운 전환을 구현했다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의 모든 진보학자는 전후에 더 큰 대공황을 예상하고 그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대표적으로 조지프 슘페터는 전후 재건이 불가능하며 이미 자본주의 몰락이 진행되었다고 평가했고 전후 불황에 대비하여 구성된 스웨덴의 ‘뮈르달위원회’는 전시통제 경제의 지속과 효율적인 물가조정을 위해 국가의 개입과 부문별 구조조정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후 자본주의 경제는 미국의 세계경제 패권 아래 30년에 가깝게 황금시대를 누렸다.

대공황 이전에는 야경국가로만 존재했던 국가는 대공황이라는 참사를 경험하면서 시장경제에 개입하는 행위자로 등장하였다. 국가는 조세개혁으로 국가재정을 확충하고 공공부문 일자리정책과 복지정책으로 임금과 복지 그리고 노동시장에서의 노동권을 제도화하여 유효수요를 창출하는 새로운 시장경제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정리하면 미국의 뉴딜과 사민주의적 합의주의는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노⋅사⋅정 3자간의 정치적 빅딜을 통해 대공항 이전의 자유방임적 완전시장 경제체제에서 국가개입을 기반으로 자본투자(축적) → 완전고용 → 경제성장이라는 새로운 경제성장 체제로 재편했다.

반면 우리나라의 사회적 대화의 정치적 성격은, 코로나19 위기에 몰린 사회 취약계층 긴급지원대책을 명분으로 노사정 간의 실리적 교환을 시도했다고 볼 수 있다. 자본의 목표는 재난을 명분으로 정부로부터 거액의 지원을 정당화하고, 정권은 노동조합의 협력에 기반해서 지배구조 안정과 권력재창출을 목적으로 하였으며, 노동(민주노총)은 사회개혁의 주체로 위상변화를 도모하려는 노⋅사⋅정의 실리적 타협의 공간이었다. 잠정합의안의 내용이 정부가 이미 발표했거나 준비하고 있는 내용을 옮겨놓은 것에 불과하다는 지적은 사회적 대화가 노사정 간의 실리적 교환이 본질이었다는 것을 비판적으로 설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무튼 실리적 타협의 공간이라 하더라도, 민주노총이 중앙집행위원회 의결을 거쳐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 제안은 사회개혁의 주체로서 기층대중의 절박한 요구를 대변하려는 시도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민주노총 2019년 대의원대회 사진(사진=노동과세계)

2. 사회적 대화의 파행 원인

판세에 대한 이해 부족

경사노위 불참을 결정했던 민주노총이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를 추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정부가 K-방역을 통해 위기관리에 성공하고 전국민 재난소득 지급 등 예상을 넘는 정책을 추진하면서 사회적 대화에 대한 낙관이 크게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3차 추경(안)과 정부의 한국판 뉴딜정책을 보면 대기업, 재벌 중심의 산업정책에 기초한 기업지원 정책이라는 것이 확인되었으나 위기상황에서 민주노총은 자본에 대한 전면대응이 어려운 조건임을 인정하고 대신에 해고금지와 고용안정, 고용보험의 전면적 확대, 공공의료 확충 등에서 성과를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막상 사회적 대화에서 자본이 보인 태도는, 지난해 노사정대표자회의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대화’가 그다지 절실하지 않았고 노동의 협력 여부에도 큰 관심이 없었다. 코로나19 경제위기에서 해고금지, 고용보장과 같은 부담을 떠안지 않아도 정부 지원을 받아낼 수 있는 자신감이 있었기에 민주노총 협상단은 타협점을 찾기 대단히 어려운 상태였다. 자본에 대해 강제력을 갖지 못한 정부도 ‘노력한다’는 선언적 수준에서 민주노총 협상단을 설득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총 협상단은 협상으로 요구를 관철하기 어렵다는 점을 빨리 판단하고 자본의 공세적 협상을 상대할 대응방안을 세워야 했다. 그러나 민주노총 협상단은 요구(안)만 가지고 협상장에 들어갔고 별도의 협상전략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사회적 대화 협상 시작부터 파행까지 전체 과정을 보면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의 긴장감은 잠정합의안이 나온 막판에 증폭되었다. 중앙집행위원회는 초기 낙관에 기대어 협상단의 결과보고에만 의존하여 보완협상만을 반복적으로 요구했다. 결과적으로 협상과정을 협상단에게만 맡겨놓고 적극적 개입을 하지 않았던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어설픈’ 타협이 부른 위기

민주노총 9차중집(6/26) 최종 잠정합의안이 나오자 큰 논란이 벌어졌다. “해고금지, 고용보장이 분명하게 구체적으로 내용을 담지 못했다”는 비판과 “부족하지만 최대한 내실있게 보완했다”는 협상대표단 사이에 설전이다. 그러나 양쪽의 입장은 모두 같은 오류를 범하고 있다.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해고금지, 고용보장을 약속받아야 했다는 주장은 비현실적이었고 “부족하지만 내실있게” 담보했다는 주장도 거짓이었다.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코로나19 경제위기 상황에서 잠정합의안 조항으로 해고금지, 고용보장 조항이 구속력과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었는가 대해 냉정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는 코로나19 위기의 충격이 얼마나 크고 오래갈 것인지 예상할 수 없다. 다만 위기가 최소한 내년 말까지는 지속될 것이며, 그 강도는 갈수록 커질 것이고, 그 결과 위기 이전의 고용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

코로나19 위기 이전부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심각하고 장기적인 경제침체로 한국경제는 노뉴멀이라는 저성장 국면에 들어섰다. 저성장 국면에서 이미 많은 대기업이 은행부채의 이자도 못 갚을 정도로 부실해졌고, 기술변화와 기후위기로 주력 산업의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어서 중소사업장의 광범위한 도산과 휴폐업이 예고되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지금의 고용위기 상황을 노사정 합의서 조항으로 예방하겠다는 것은 대단히 비현실적인 거짓 주장일 수밖에 없다. 잠정합의안을 아무리 관대하게 보더라도 산업구조조정으로 발생하는 대량실업과 정리해고를 예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잠정합의안의 해고금지, 고용보장 조항은 산업(고용)안정자금이 투입되는 사업장과 사회적 거리두기로 한시적으로 고용불안이 발생하는 사업장의 고용보장 책임을 적시하고 그 외의 사회적 실업과 대량해고에 대해서는 충격을 상쇄할 수 있는 촘촘한 고용안전망과 새로운 고용창출 방안이 제시되어야 했다. 선언적 해고금지와 고용보장을 조건으로 자본에게 노동자의 고통분담을 제공할 것이 아니라 정부로 하여금 고용안정자금 지원사업장에 대한 체계적 관리감독과 고용안전망, 고용창출 방안 강화를 조건으로 노동의 협력을 제시해야 했다.

이번 사회적 대화 파행의 가장 큰 원인은 협상전략이 없었다는 것이다. 민주노총 협상단이 고용안전망에 대한 정부 책임에 비중을 두고 대응하기보다는 노사정의 원만한 합의에 집착하여 어설픈 타협을 시도한 것이 잘못이었고 협상단은 잠정합의안을 설명하면서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역설적 상황을 연출하였다. 소위 한국판 뉴딜정책에 ‘노동’이 없고 코로나19 경제위기 상황에서 가장 큰 국민적 이슈인 고용보험도 2025년까지를 목표로 하여 차기 정부과제로 넘겨 놓은 것을 보더라도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가 성과를 남길 가능성은 대단히 적었다고 예상된다.

협상전략의 부재는 잠정합의안 내용만이 아니라 중앙집행위원회 논의과정에도 큰 파행을 조장하였다. 6월 내 합의일정을 이유로 조직적 검토과정을 압박한 것이나 중집의 보완요청이 있었음에도 오히려 이행점검 경로를 경사노위로 추가한 것, 6자 합의 공식일정을 공개하지 않은 채 긴급 중집을 소집하는 위원장의 행태, 다수 중집의 반대를 무릅쓰고 대의원대회 소집을 강행한 것 등에서 억지스러운 타협시도와 ‘권위적 태도’가 더해져 큰 불신과 분노가 조직의 파행을 야기했다고 할 것이다.

권위적 의사결정과정 문제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를 민주노총이 제안하여 시작하였음을 감안할 때 파행과 갈등을 겪으면서 대외적 명분도 없이 잠정합의안을 부결한 것은 정치적으로 큰 타격일 수밖에 없다. 총연맹 위원장을 포함한 중앙집행위원회의 대응(7/2)은 민주적 의사결정의 원칙을 훼손하는 과정이었다. 민주노총은 코로나19위기 상황을 맞아 전문가들과의 토론에서 미온적인 정부정책의 문제를 확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엄중한 정세인식으로 사회적 대화에 임하지 못했다. 자본이 일관되게 ‘고용유지 조건부 임금양보’를 요구하는 태도에 대해 전략이 없던 민주노총 협상단은 적극적인 사회여론화 대응보다는 합의문 문구로 조율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만일 노사정 간의 입장 차이를 명확히 확인하고 취약계층 긴급지원에 대한 원포인트 협상답게 ‘고용안전망 확충과 공공의료, 병상수당 도입 등’가능한 최소범위에서 합의하되, 해고금지⋅고용보장 등에 대해 소극적인 정부에게 후속 대응을 결의하는 과정으로 대응했거나 아니면 6월 합의는 시기상조임을 판단하고 사회적 공론화와 지속적 대화를 통한 합의 노력을 선언하는 유연한 대응을 강구했다면 어땠을까?

여러 가지 가능성을 배제하고 잠정합의안에 대한 찬반만을 결정하게 된 원인은 민주노총 협상단과 중앙집행위원회 모두가 범한 권위적 태도가 결정적이었다. 찬반 논쟁에 빠져 적절한 현장토론과 민주적 의사결정과정으로 이어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예측불허의 위기상황에서 집행부의 역할은 여느 시기와는 명백하게 달라야 한다. 예측이 불가능하고 준비된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해법은 조합원들의 동의와 자발성에서 나와야 한다. 경제 성장기 또는 안정기의 임금단협투쟁, 노동기본권보장투쟁, 구조조정 저지투쟁과는 다르게 새로운 방식의 대응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위기의 시기에는 현장토론과 민주적 의사결정에 충실해야 하며 리더십은 현장토론 공간을 만들고 촉진하는 역할이 되어야 한다.

만일, 총연맹 위원장이 중집의 부결에 즉각적 대대를 강행하지 않고 좀 더 안정적인 현장토론과 의견수렴을 거쳐 대의원대회에서 최종 결정을 했다면 결과는 어떠했을까? 반대 61.7% 찬성 38.3%라는 결과는 파행적 상황을 감안할 때 찬성률은 결코 낮지 않았다. 반대의견 중에는 잠정합의안에 대한 판단 보다 위원장의 권위적이고 비민주적인 의사결정과정, 대외적으로 공공연하게 정파활동을 비판하는 태도에 대한 불신도 큰 몫을 했다. 민주노총 중앙위원회가 현장토론에 충실했다면 잠정합의안에 대한 찬반이 아니라 여러 가지 다양한 대응방안이 나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위원장의 독선 반대를 명분으로 욕설이 난무하는 물리적 행동을 벌인 것도 민주노조가 용납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중앙집행위원회는 가능한 현장토론과 의견수렴을 전제로 한 대의원대회 결정이라는 민주적 의사결정의 원칙을 지키려는 적극적 노력이 부족했다.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한 민주노총

잠정합의안이 일부 주장처럼 굴욕까지는 아니더라도 코로나19 위기에 따른 경제충격, 대량실업과 정리해고에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중앙집행위원들의 강한 반대의견이 있었다. 이에 위원장은 직권으로 대의원대회 소집으로 맞서고 중앙집행위원회 반대입장을 민주적 의사결정을 저해하는 정파조직행위로 간주했다. 이런 위원장의 행태를 민주노총 밖에 있는 취약계층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지키고 나아가 민주노총이 사회개혁의 주체로서 위상을 확보하려는 위원장의 결단으로 볼 수 있을까?

첫째, 대의원대회를 왜 그렇게 급하게 서둘렀는가. 정부가 노사정 합의를 6월 임시국회에 상정하여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 명분이었지만 잠정합의안을 보면 그렇게 서둘러야 할 만큼의 내용적 무게감 있지 않았다. 결국 7/23 대의원대회 표결이 시행된 것을 보면 6월 내 합의는 사회적 대화에서 결정적 요인은 아니었다. 둘째, 협상 막판에 한국노총의 요구로 추가된 경사노위에서 이행점검을 논의한다는 조항이 추가되었다. 민주노총은 경사노위 불참을 결정한 상태에서 원포인트 합의안에 끼어서 처리할 수는 없었다. 경사노위를 명시하지 말고 산업별, 업종별 이행점검에 대한 원칙으로도 정리해야 했다. 이후 경사노위 참여 여부는 이행점검에 대한 실효성을 보면서 판단하는 것이 맞는 수순이었다. 셋째, 민주노총의 사회적 위상을 높이고 취약계층 노동자들의 긴급지원을 목표로 한다고 하면서 민주노총 안의 정파문제를 도마에 올려 공공연하게 공격한 것은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다. 사회적 위상은커녕 민주노총의 위상을 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 만일 그렇게 해서 찬성으로 잠정합의안을 통과했다면 이후 상황은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위원장이 즉각적인 대의원대회 소집을 선언(7/2)했을 당시에 공공운수노조는 안정적인 현장토론과 의견수렴을 위해 대의원대회 소집을 뒤로 미루자는 제안을 했다. 이를 거부했던 위원장이 정파에 맞서 현장조합원들의 뜻을 대의원대회로 모아내겠다는 논리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 민주노총이 정상화되려면 이에 대한 실사에 입각한 공식적 평가를 반드시 수행해야 한다.

3. 성찰과 모색

성찰

“지금 전 세계 자본주의 문명은 지구적 거시적 규모에서나 지역적 미시적 규모에서나 ‘지도에 나와있지 않은’ 영역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러한 ‘불확실성’에서 가장 해로운 것은 어제의 세계에서나 통용되던 상식들 – 균형재정, 규제완화, 최소국가, (금융)시장의 완전성 등등 – 에 머리와 손발이 묶이는 것이다. 지금은 과감한 상상력과 대담한 행동이 필요한 순간이다.” (홍기빈, 코로나19 사태와 사회경제 정책 전환의 제언)

앞으로 코로나19 경제위기를 통해 시장⋅국가⋅민주주의 질서는 어떻게 변화할까? 코로나19 경제위기에서는 정부와 자본에 대한 규탄만이 아닌, ‘우리는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라는 전략적 성찰이 필요하다. 3월 말 본격화된 취업자 감소분은 실업인구보다는 비경제활동인구로 이동해, ‘경제활동인구의 비경활화’가 진행되어 오히려 실업률이 줄어드는 착시를 보이기도 했다. 특히 고용불안 추세는 청년, 여성, 고령층에서 뚜렷하고 소득 중하위층의 빠른 빈곤화가 진행되고 있다. 5월 기준으로 확진자 수 대비 취업자 증감률을 보면 확진자 한 명 당 취업자가 92.8명씩 감소하였다.

자본권력이 압도적으로 우세한 조건에서 민주당의 지배구조 안정화와 재집권전략은 불확실한 위기를 맞아 친자본적 경향이 강화될 것이 확실해 보인다. 세계경제가 L곡선이 장기화되거나 위기가 더욱 심각해지면 민주적 거버넌스가 취약한 우리나라의 경우 신자유주의적 규제완화 + 권위적 국가통제 강화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21대 총선에서 정치개혁이 실종된 상황에서 사회개혁에 역행하는 반동적 국가통제가 강화되고 불평등은 더욱 악화된 [빈곤⋅위험사회] 도래 가능성은 점점 높아질 것이다. 사회적 대화 파행으로 민주노조운동은 사회개혁의 주체로 위상을 확보하는 데 실패하였고 민주노조운동의 위기는 한국사회 전반의 위기로 이어질 공산이 높아졌다.

현재 한국사회는 복합적이며 고강도의 위기 요인들이 겹쳐서 나타나고 있다. 심각하고 장기적인 경제침체 × 코로나19 장기화 × 미중 패권경쟁과 남북관계 악화 × 인구절벽 × 기후위기 등 사회위기가 총체적으로 발화되는 상황이다. 게다가 세계경제체제에서 반주변부에 위치한 한국은 자립적 출구전략 수립도 한계가 분명하다. 이처럼 불확실성의 위기에서 노동조합은 최악의 상황을 방지할 수 있는 <과도적⋅과정적 전략>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일각의 경고처럼 실제 위기는 이제부터 시작일 수도 있다.

민주노조운동은 사회적 대화를 통해 기층대중의 요구를 대변하고자 했던 우리의 정당성을 입증하고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정부의 한국판 뉴딜 정책에는 기업만 보이고 국민은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이 거세고 자본에 대해서도 재난을 명분으로 기업의 이윤만을 챙기는 이기적 집단이라는 언성도 높지만 반면 민주노총이 사회적으로 더욱 고립되는 상황에서 관성적이고 투쟁일변도의 대응은 실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번 사회적 대화 의제보다 좀 더 근본적이고 구조개혁적 방식의 이슈와 실천투쟁으로 사회적 지지기반을 확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회불평등 해소를 위한 새로운 모색

문재인 정부는 출범 초기 사회불평등과 저임금 해소에 역점을 두고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과 최저임금 인상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정책의 타당성에도 불구하고 불평등과 저임금 해소라는 정책목표를 달성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정규직 전환과 최저임금 대폭 인상 혜택을 볼 수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공공부문과 300인 이상의 대기업군에 속한 노동자들이다. 100인 이하의 영세중소사업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 전환이나 최저임금 대폭 인상 혜택을 받기 어려운 구조에 처해 있다. 우리나라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는 2017년 기준 약 820만 명이다. 300인 이상 대기업에 속한 비정규직 노동자는 약 192만 명이고 공공부문 비정규직 약 31만 명을 더한다면 약 220만 명으로 약 25% 정도 된다. 공공부문과 대기업에 속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사회보험 가입률은 정규직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정리하면, 정부가 추진한 정규직 전환과 최저임금 대폭 인상 정책은 비정규직 중에서도 상위 25%에만 혜택이 집중되는 정책이었다. 사회불평등과 저임금으로 고통받는 약 70% 비중의 영세중소사업장 비정규 노동자와 약 680만 명 규모의 특고, 자영노동자는 정부정책의 사각지대에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복지 이중구조 해결은 사업장 울타리를 넘어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사회불평등구조를 개혁하기 위한 계급적 단결과 사업장에서의 ‘하후상박 연대임금’이라는 목표에 동의한다. 그러나 사업장 수준의 하후상박 연대임금만으로 사회불평등을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임금소득 노동자의 격차가 10대90 또는 20대80로 심각한 상태에서 하후상박 연대임금으로 노동시장의 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을까? 반실업을 포함한 청년층의 실업률은 30~40% 사이에 있고 대기업 공공기관 정규직 청년연봉이 3천~4천만 원 정도 된다. 상위 20%와 하위 80%의 현격한 임금격차를 해소하려면 하위 80%에 대한 전폭적인 임금인상을 강제해야 하는데 사업장 안에서 가능한가? ‘하후상박 연대임금’을 통한 노동시장의 불평등 해소를 위해 꾸준히 노력하더라도 사회적으로 조세개혁과 보편적 사회보장을 통한 해결에 더 무게를 실어야 한다. 노동시장 안에서의 이중구조도 문제지만 심각한 실업, 반실업 상태에 있는 노년세대와 청년세대의 문제 그리고 40대 실업의 증가추세 문제는 연대임금으로 해결할 수 없는 노동시장 밖의 문제라는 점에서 사회보장 개혁은 더욱 절실하다.

두가지 제안

분배와 재분배 (윤홍식)

분배는 시장에서 이루어진 생산에 대한 정당한 몫을 어떠한 외부적 강제 없이 각자의 기여에 따라 자연스럽게 나누는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고, 재분배란 시장이 아닌 다른 기제(국가)에 의해 다시 분배하는 것으로 사회적 생산에 대한 기여 여부와는 관계없이 이루어지는 분배를 의미한다. 하지만 시장에서나 시장 밖에서나 외부적 강제라고 불리는 국가의 개입 없이 이루어지는 분배와 재분배란 존재하지 않는다. (마르크스) 역시 생산관계와 분배관계는 본질적으로 동일한 것이라고 인식했다. (자본론III, 1164-1166)

이제 민주노조운동은 사회연대방식과 자주적 방식으로 사회적 위상을 확보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한 두 가지 방안을 제안하다.

첫째, <소득기반 전국민 사회보험제 요구투쟁>. 정부는 2025년까지 2,100만명 노동자를 포괄하는 전국민 고용보험제 완성하겠다는 정책목표를 발표하였다. 이는 경제활동인구 전체에 대한 소득 파악이 가능하므로 사각지대가 큰 기존의 고용기반 고용보험을 소득기반 고용보험으로 전환하겠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현재 국세청은 소득 관련 전산화, 디지털화가 발전하면서 특고노동자와 플랫폼노동자의 소득파악은 물론이고 600만 명 이상의 자영업자 매출자료도 이미 확보하고 있다. 여기에 근로장려금제도(EITC) 데이터를 가공하면 조만간 전체자영업자 소득파악도 가능해진다.

정부는 앞으로 5년간 준비과정을 통해서 고용형태, 노동형태에 따라 소득신고 주기가 제각각인 현행 제도를 <월 단위 소득신고 방식>으로 일원화하여 사각지대 없는 고용보험을 제도화를 추진할 것이다. 복지 불평등과 사각지대 해소는 고용보험뿐만 아니라 건강보험, 산재보험, 국민연금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정책과제이고 소득기반 고용보험 실현은 곧 사회보험 전체 통합징수와 사회보장으로 확대 적용할 수 있다. 우리의 대응은 소득기반 사회보장 제도개혁을 보수적인 정부정책에 맡겨두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촘촘하고 든든하게 불평등을 해소하고 사각지대 없는 사회보장 구조개혁이어야 한다. 체제전환기에서 사회개혁의 의제를 주도하느냐, 끌려가느냐는 민주노조운동의 승패를 가르는 기로가 될 것이다.

둘째, <노동조합 주도의 사회연대기금 조성>. 캐나다 제1노총 퀘백노동자총연맹(FTQ)의 노동연대기금(Fonds deSolidarite)(1) 과 제2노총 전국신디케이트연맹(CSN)의 행동기금(FondAction)(2) 사례를 보자. 퀘벡의 노동조합은 68년 총회에서 의결한 ‘제2전선(second front)’ 전략을 수립하고 “노동조합의 투쟁이 대중들의 삶과 관련된 일반 시민들의 시대적 투쟁과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조합원의 고용과 권익보장에 머물지 않고 적극적인 사회연대전략,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으로의 전환을 시도했고 그 정신이 바탕이 되어 평화운동, 국제연대운동, 양성평등운동 등 다양한 사회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2006년에는 목표를 더욱 발전시켜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 포괄적인 사회연대경제를 이루기 위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일에 앞장선다.

– 사회적 필요를 충족하기 위한 사회적 경제를 지향하는 일
– 정부가 규제와 재분배 정책을 시행하도록 요구하는 일
– 개발과 투자부문에서의 민주화와 기업 운영의 민주화
– 고용을 증진하고 소외된 계층을 돕는 일
– 공공 서비스가 잘 운영되도록 하는 일
– 지역 사회 공동체 내 연대를 이루고 사회통합을 이루는 일

현재 공공기관노동조합들이 2017년 조성한 연대기금(공공상생연대기금)은 6백억 원 정도 된다. 매년 중앙공공기관(130여개 공기업, 준정부기관)은 경영평가 성과급으로 약 1조 5천억 원가량 집행한다. 2020년 올해 공공기관도 코로나 19위기로 정상적인 기관운영이 불가능했고 예년과 같은 경영평가와 성과급 지급이 곤란한 상태이다. 공공운수노조 소속 공공기관노조로 한정하여 경영평가 성과급에서 기금전환 가능금액을 추산해 보면 어림잡아 최대 5천억원 (중앙공공기관 약 3천억, 지방공기업 약 2천7백억) 정도가 가능하다. 현장의 여러 가지 현실적 어려움을 고려하여 보수적으로 잡아서 2021년도 기금조성액을 1천억 원 정도를 목표로 현장의 결의를 조직해 볼 만하다.

노동자연대기금은 사회적 필요가 절실함에도 자본이 돈벌이가 안 된다는 이유로 배제하거나 폐기한 사업을 노동자 자주관리 방식 또는 사회연대방식으로 재생하고 시도할 수 있다. 코로나 19위기의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고용보험 지원, 지역의료, 육아⋅요양 사회서비스 그리고 사회적 투자로서 사회연대경제 육성, 중소기업 재생, 공영플랫폼사업, 정부와 MOU방식의 사회임대주택, 도산위기에 처한 쌍용차, 항공산업 살리기 등도 기획이 가능하다. 우리도 성찰과 모색을 통해 캐나다 퀘백노동조합처럼 노동의 탈상품화와 생산수단의 사회화로 나갈 수 있는 한국판 제2전선(second front) 전략을 수립할 수 있기를 바란다. (서울평등의길 현광훈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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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8년 5월 말 기준 노동연대기금의 순자산은 143억 캐나다 달러(한화 약 12조1천6백억 원)로, 매우 빠르게 수익률이 증가해 왔다. 지난 2001년부터 2017년까지의 수익률 변화를 살펴볼 때, 2000년대 초반과 2008∼9년 금융위기를 제외한 수익률은 평균 5∼10%로 매우 양호한 수준을 보인다. 특히 2010년대에 들어 투자에 대한 수익률이 더욱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Fonds de Solidarite, FTQ, 2010; 2017). 노동연대기금은 또한 2018년 5월말 기준 총 194,746개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성공하였다(Fonds deSolidarite FTQ, 2018).

2) CSN은 1930년대 가톨릭 사회운동으로부터 시작되었다. FTQ가 미국의 실용적, 경제주의적 노동운동과 유사한 데 반해, CSN의 노동운동방식은 보다 더 급진적이다. 1980년대 초 경제위기로 FTQ가 노동연대기금 만든 후, CSN에는 다른 차원의 기금을 만들자는 논의가 시작되었고, 그 결과 퀘백 주의 지속가능한 경제발전을 위한 행동기금 관련 법안을 1996년 마련할 수 있었다. 2018년 현재 CSN의 행동기금은 20억 달러(한화 약 1조 7천억 원)의 자산과 함께 14만 명의 주주를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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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조 현장활동가 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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