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차라리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By tathata
    2006년 10월 02일 06:39 오후

Print Friendly

“추석이 제발 오지 않았으면…”하고 바라는 이들이 있다. 고향에 내려갈 차비도, 부모님에게 드릴 용돈도, 차례상을 지낼 여윳돈마저 허락되지 않는 이들이 있다. 내년 설에는 반드시 ‘승리의 기쁨’을 안고서 고향의 부모님을 뵙기를 그들은 간절히 소망한다.

장기투쟁 사업장의 노동자들에게 추석은 풍요롭고 넉넉한 명절이 아니다. ‘해고의 아픔’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하는 ‘가혹한 시절’이다. 추석이 다가올수록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은 곱절이 되고, 끝이 보이지 않는 이 싸움에 넌더리가 쳐진다. 따스한 고향집이 아닌 차디찬 농성장에서, 컨테이너 박스에서 한가위를 맞이하는 그들은 “가슴 아픈 추석은 올해가 마지막이기를…”희망한다.

“명절이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

하이닉스 – 매그나칩 사내하청비정규직지회의 이경환 조합원(41)은 이번 추석에도 고향에 내려가지 못한다. 한 달 후면 정리해고 700일이 된다. 그동안 고향에 내려가지 못한 명절만도 이제 손으로 꼽을 정도다.

“다음 명절에는 그리고 또 다음 명절에는 꼭 고향에 내려가야지, 하던 것이 벌써 몇 년째인지 모르겠네요.” 그는 힘없이 웃으면서 말했다. ‘투쟁’을 하는 동안 집안의 경조사는 물론 친척의 장례식도 찾지 않았다.

“명절이 차라리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추석이 되면 괴로움이 더 몰려듭니다. 노령의 부모님을 모시기는커녕 찾아뵙지도 못합니다. 남자로서, 가장으로서, 그리고 아들로서 차례도 쇠러 가지 못하는 이 심정이 비통합니다.”

하이닉스-매그나칩 사내하청 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은 추석에 청주공장의 천막 농성장을 지키며 이야기를 나눈다. 풀어도 끝이 없는 회한들을 소주잔을 기울이며 서로를 다독거려주는 수밖에.

중학교 2학년 딸과 초등학교 4학년 아들을 둔 이 조합원은 최근 눈물이 쏟아질 뻔한 일을 간신히 참았다. 딸이 수개월째 학교 급식비를 내지 못하자, 학교에서 가정통신문을 보내 ‘독촉장’을 보내왔다. 아빠의 사정을 들은 딸의 얼굴에는 충격이 서려 있었다. "옷을 사 달라"는 아이의 말에 장롱에 있는 옷을 다 꺼내 맞춰보았지만 맞는 옷이 하나도 없었던 일도 그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남들보다 뛰어나게 해주지는 못하더라도, 남들보다 뒤떨어지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인데… 빨리 이 싸움이 끝났으면 하는 바램뿐입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내년 설에는 기쁜 마음으로 고향도 가고, 가족들과 오순도순 지내고 싶습니다.”

   
코오롱해고노동자의 노숙투쟁현장

“고향에 내려갈 명분이 없습니다”

코오롱정리해고분쇄투쟁위원회(정투위)의 황인수 사무장도 올해로 2년째 고향을 찾지 못한다. 고향에 찾아가 부모님을 뵐 자신이 없다. 요즘에는 우울증에 무기력증까지 겹쳐 한 시간 전에 일어난 일도 기억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부모님 용돈을 못 드린 지가 1년이 넘었습니다. 고향에 내려가고 싶어도 명분이 있어야 내려가죠. 부모님을 뵈면 ‘당장 (투쟁을) 관두라’고 성화이실텐데. 안 내려가는 게 차라리 낫죠.” 그는 말끝을 흐렸다.

정투위의 일부 조합원들은 추석 연휴에도 코오롱 구미공장과 과천 코오롱 이웅렬 회장 자택 앞에서 농성장을 지킨다. 행여나 있을지 모를 경찰과 구미시청의 농성장 침탈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추석이 끝나는 오는 13일이면 이 싸움도 ‘600일’을 맞는다. 기념하고 싶지 않은 이 날에는 ‘노동문화제’가 열린다. 50여명 남짓한 조합원들이 추석 이후에는 새로운 싸움을 시작해보자며 결의를 다지기 위해서다.

“스물네살에 코오롱에 들어가 꼬박 18년을 일하고 하루아침에 잘렸습니다. 노조와의 합의를 휴지처럼 뭉개버리고, 청춘을 바쳐 일한 회사에서 내팽겨쳐지는 분노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모릅니다. 그 세월이 너무 억울하고, 아까워서 도저히 이대로는 멈추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제 추석이 지나면 ‘2차전’을 시작할 것입니다.”

KTX여승무원 130여명은 이번 추석을 서울역과 용산역에서 보낸다. 귀성길과 귀경길에 오르는 승객들을 향해 노동부의 적법도급 판정의 부당함을 알리는 선전홍보전을 열 계획이다. 다가올 국감준비도 연휴 기간동안 단병호 의원실과 함께 부지런히 준비할 참이다.

박말희 KTX승무지부의 조합원은 “승리할 때까지는 고향에 내려가고 싶은 마음을 참을 수밖에요”라고 말했다.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