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 활동을 통해
내면의 충만 느낄 때 뿌듯
[어쩌다 노학연대 ②] ‘노학연대 프로젝트 나침반’ 김서룡
    2020년 08월 04일 09:3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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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학생 연대의 새로운 방향을 고민하는 노학연대 프로젝트 ‘나침반’이 노학연대 학생 활동가들의 생각을 듣는 인터뷰를 연재합니다. 노학연대에 속해있는 학생들은 무슨 고민을 할까요? 그들은 왜 노학연대 활동을 할까요? 대학이라는 공동체와 그 너머의 사회를 배제와 분리가 아닌 이해와 공감, 연대로 다시 정의하는 그들의 항해에 주목해 주세요. <나침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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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운동,
그리고 스스로를 놓지 않기 위해 필요한 고민에 대해서”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용인에 사는 대학생 김서룡입니다. 정치외교학과 3학년으로 재학 중이고요. 현재는 ‘노학연대 프로젝트 나침반’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나침반은 어떤 단체인가요?

나침반은 대학을 비롯하여 우리들의 삶에 존재하는 수많은 노동의 연결고리를 찾고, 노학연대를 더욱 평등한 방식으로 할 수 있도록 하는 노동자-학생 연대 프로젝트예요. 저희는 노동자와 학생이라는 두 주체의 소통과 만남을 통해 서로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것이 목표입니다. 나침반은 노동자와 학생들을 위한 ‘노동권-인권 가이드북’을 제작하는 가이드북 제작팀과, 영상 제작과 오프라인 행사기획을 주로 맡은 행사 기획팀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노동자-학생 연대 프로젝트 <나침반> ⓒ <나침반> 페이스북 페이지, @skclaqks

나침반에 어떻게 가입하게 되셨고, 가입 후 어떤 일을 하시는지 궁금해요.

어떤 조직에 가입해야 할지, 어떤 활동을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어요. 그러던 중 SNS에서 나침반에서 팀원을 모집한다는 글을 보게 되었는데요. ‘신중하게 생각하고 지원해야지.’ 하고 좀 더 자세히 찾아보니 민주노총에서 진행하는 활동이더라고요. 그렇다면 활동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원했어요. 참여하고 나서도 어떤 사람들이 모일까 좀 걱정했었는데, 막상 와보니 다 좋으신 분들이었어요. (웃음).

나침반에서는 가이드북 제작팀에서 일하고 있어요. 가이드북 중에서도 ‘노학연대’ 파트를 다루고 있습니다. 노학연대의 역사를 다루며 배운 점이 많아요. 1970~1980년대는 사람들이 ‘노학연대 해야지!’라고 다짐해서 노학연대를 만들었던 때라기보다, 직접 공장과 같은 노동현장에 투신하거나 야학이라는 형태로 이루어졌던 때거든요. ‘노학연대’라는 개념이 있었다고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는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그 당시 대학생들이 가졌던 의식을 보면서 한계와 의의를 찾는 과정이 재밌었어요.

오, 어떤 점들인가요?

당시 대학생들의 위계적이고 계몽적인, 엘리트의식 같은 거요. 저는 누구나 무궁무진한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적절한 배움/교육의 계기가 주어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낮은 대학 진학률로 인해서 노동자와 학생의 경계가 너무 명확했다는 시대적 조건이 위계를 설정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어요. 역사를 살펴보면서 노학연대라는 것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 고민이 돼요.

활동하면서 얻어가는 고민이나 깨달음이 많은 것 같네요.

나침반 활동하면서 새로운 고민을 많이 얻어가요. 청소노동이나 경비노동같이 대학 내 노동으로 대표되는 것들이 사실 살펴보면 노동환경이 좋다고 보기 어렵고 노동의 강도가 대단히 높잖아요. 제가 군대에서 수행했던 노동이 따지고 보면 경비노동인데, 그때 그 일이 몸에 진짜 안 좋다는 걸 느꼈거든요. 제 경험을 통해 밤과 낮이 바뀌는 활동이 생체리듬을 망가트린다는 것을 느꼈는데 이 완전히 망가지는 일을 대학 내 경비노동자분들은 몇 년을 계속해서 하시고, 심지어 적절한 휴게권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잖아요.

또 한편으로는 경비노동이 무인노동으로 대체되는 흐름도 있고. ‘이런 흐름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라는 고민을 많이 해요. 문제의 해결을 대학본부에 요구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교육의 공적 기관인 ‘교육부는 왜 가만히 있을까?’라는 생각도 있어요. 사학재단이더라도 ‘대학’ 자체가 공적인 영역이라고 생각하는데, ‘교육부는 왜 가만히 있을까?’, ‘우리가 정확히 어디에 어떻게 요구해야 할까?’ 같은 고민을 나침반 하면서 얻게 됐어요.

이전에도 관련된 활동을 하셨나요?

1학년, 2학년 때는 세미나를 많이 했어요. 입학했을 때가 한창 세월호 참사 1주기라 학내 분위기가 달아오르기도 했고, 당시 정권에 대한 불만도 많았을 때였어요. 학교에서 대자보도 작성해서 게시했고요. 그때 만난 사람들이 학습을 제안해서 같이 공부를 했어요. 나름 커리큘럼이 잡혀있었어요. 마르크스 공부, 자본론 공부도 하고, 교육 봉사도 가고, 포럼도 열고 그랬죠.

포럼은 어떤 포럼이었어요?

2016년 여름과 2017년 겨울에 한 번씩 포럼을 기획했어요. 16년에는 ‘사회주의 포럼을 열어보자!’ 해서 ‘소셜리즘 2016’이라는 포럼을 기획했어요. 포스터도 만들고 굿즈도 만들고. 저는 청년실업 분야를 맡아서 청년실업의 원인이 뭔지 조사도 하고, 발제도 하고,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발표도 하고, 자료집도 올리고 했죠. 17년에는 부산의 한 카페에 초청을 받아서 포럼을 기획했어요. 아무도 안 왔지만. (웃음).

소셜리즘 2017 포스터 ⓒ proleloque@gmail.com

기획팀에서도 일하셨었네요!

(웃음). 나침반에서는 제가 더 도움이 될 수 있고 잘할 수 있는 게 가이드북 제작일 것 같아서 가이드북 제작팀에 들어갔어요. 제가 지금까지 해온 여러 기획이라는 게 결과가 좋든 안 좋든 어쨌든 행사를 준비하는 것부터 준비하는 사람들의 주체적인 역량을 축적하는 거니까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후에 오프라인 개강을 하게 되면 학내 세미나도 열어볼까 생각 중이에요. 학습이라는 게 굉장히 유용하고 여러 방면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해서요.

노동인권과 관련한 일도 하셨었나요?

노동인권 관련해서는 2016년 학교에서 인권축제라는 것을 할 때 청소노동자 휴게권 실태조사를 한 적이 있어요. 학교를 둘러봤는데, 노동자들이 머무는 장소 자체가 보이지도 않고, 접근성도 안 좋고, 공간도 너무 협소했어요. 보통 청소노동자들은 새벽에 출근해서 노동 중간 휴식을 취할 때 잠을 취할 수도 있어야 하는데, 휴게공간이 비좁아서 눕기 어려운 곳도 있었고, 에어컨도 잘 안 나오는 장소도 있었어요. 그런 공간에서 식사와 휴식을 다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보고 여전히 이 사회에서 어떤 노동자들에게는 기본적인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걸 명확히 알 수 있었어요. 그리고 휴게공간이 주차장 근처에 있어서 먼지, 소음 속에서 휴식을 취해야 하는 분들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돈이 없어도 물론 그러면 안 되지만, 학교가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그런 기본적인 것조차 안 지키더라고요. 한편으로는 교수휴게실이랑 비교해보면서, 대학 공간 내에 같은 노동자인데도 ‘노동에 위계가 있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2016 인권축제 당시 휴게공간 개선을 위해 진행된 캠페인 소개 ⓒ 모다깃비

실태조사 진행 이후 청소노동자 휴게공간에는 변화가 있었나요?

아니요. 성명선전과 실태조사만 했지 실제로 바뀐 건 없었어요. ‘신축건물에 휴게공간을 명확하게 표시하겠다.’ 같은 약속은 받아냈지만 ‘기존 공간 개선’에 관한 약속은 못 받았어요. 인권축제 행사의 일환이라서 구체적으로 나아가지 못한 것도 있고요.

2016년 당시 제작된 카드뉴스 ⓒ 모다깃비

학내 다른 학생들은 ‘노동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아예 관심이 없어요. 노조에 대해서도 일반적인 사회적 통념을 습득하는 경우가 많았고요. 최근 인천국제공항공사 정규직 전환과 관련된 학내여론도 압도적으로 안 좋아요. ‘보수화’라는 단어가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서울지역 대학의 기반 자체가 좀 그런 것 같아요. 제가 하는 활동들이 공감을 받고 지속적으로 이어지기에 오늘날의 대학은 한계가 있어요. 인권축제 때 휴게권 실태조사 했던 것도 많은 공감을 받았지만 한시적이었어요. 진짜로 ‘연대’를 생각한다기보단 시혜적인 태도였고요. 물론 그것 자체도 의미가 아예 없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어쨌든 제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과는 다르죠. 이런 부분에서 고민이 많아요.

학생들이 이런 사안에 별로 관심이 없군요.

네. 투쟁하는 것도 그냥 연례행사 보듯 하는 것 같아요. 그래도 입학했을 때는 박근혜 퇴진운동도 하고, ‘자유전공학부 폐지 및 미래대학 설립’이라는 학교의 정책에 대한 반발의 움직임으로 학교 본관 점거를 하기도 하는 등 꽤나 활동이 활발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열기가 많이 사그라들었어요. 총학생회의 정치적 성격도 점점 옅어지는 것 같고, 활동 범위가 복지위원회 정도로 축소되는 추세고요. 학내에서는 활동할만한 기반을 찾아보기 힘들고요. 이러다 보니 정치적 문제의식이 있던 사람들도 점차 회의감을 갖게 되는 것 같아요.

박근혜 정부 퇴진운동 참가 사진 ⓒ 김서룡

대학 입학하고 만났다던 분들이랑은 이제 같이 활동 안 하시는 건가요?

자주는 못 만나지만, 각자 다른 공간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제가 나침반 활동을 하는 것처럼. 다들 워낙 바쁘다 보니까 예전처럼 같이 활동하거나 만나지는 못해요. 대학 생활 4년을 벗어나면 활동 범위가 달라지니까, 그런 부분이 아쉬워요.

대학에서 여러 활동을 하셨네요. 노동인권이나, 관련 분야에 처음 관심 가지게 된 때는 언제예요?

노동인권이라고 딱 말하긴 어렵지만, 진보적인 의제라고 말하는 것들에 처음 관심을 가진 건 고등학생 때예요. 입시에 고통받다가 학급 문고 책을 자주 접하게 되었고 그중에서 홍세화 선생의 <생각의 좌표>를 읽게 됐는데, 그게 계기가 된 것 같아요. 그 책을 읽으면서 ‘아, 이게 맞는 것 같아’라고 생각하면서 비슷한 다른 책들도 찾아서 읽어봤고요. 그러면서 생각들이 정제되지 않은 상태로 있다가, 대학에 와서 구체화 됐어요. 얽혀있는 자본주의 문제들을 접하면서 ‘노동인권’에도 관심이 생겼어요.

구체적으로 노동인권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 아까 말했던 ‘청소노동자 휴게 실태조사’였던 거 같아요. 현실을 마주하니까, ‘왜 이런 거지?’, ‘왜 지금까지 아무도 알려고 하지 않았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위 참여도 하고, 성명 받는 것도 하고, 연대 집회에 가서 발언도 하는 등 구체적으로 노동인권 관련 활동을 하게 된 건 2016년이에요.

‘대학’에서 구체화 된 것들이 많네요.

‘대학’이라는 공간에 두 가지 생각이 있는데요, ‘대학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과 ‘대학은 중요한 공간이다.’라는 생각이 충돌해요. 회의감이 들 때도 있지만 대학은 마냥 포기할 수는 없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대학은 활동가의 재생산을 위한 공간, 교육의 장이 되는 공간이잖아요. 걱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대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나침반 활동을 선택한 것도 있어요. 다른 대학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서요.

활동하면서 ‘이런 게 뿌듯했고, 이런 게 힘들었다’하는 경험이 있다면 어떤 건가요?

뿌듯할 때는 되게 많았죠. 막연하게 느껴졌던 것들이 대학 입학 후 여러 활동을 하면서 구체화 될 때 뿌듯했어요. 특히 연대 활동을 하면서는 ‘이런 게 연대구나’라는 걸 느낄 때가 있어요. 그러니까 내면의 충만함이라는 걸 느낄 때가 일상에서는 느끼기 어려운데 연대 활동을 통해서는 그러한 내면의 충만함을 느낄 때가 이따금 있어요. 또 활동을 통해 타인과 좋은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한다고 느꼈을 때 뿌듯해요.

한계를 느낄 때는 내가 기대했던 것만큼 성과를 못 얻었을 때. 또 투쟁이라는 게 늘 승리할 수는 없는 거니까요. 아까 언급했던 것처럼 행사에서 진행한 성명선전에 대한 학생들의 호응과 열기가 구체적인 투쟁에까지 이어지지 않아서 그들과 심리적인 거리감을 느꼈을 때 한계를 느끼고 힘들었어요.

그래도 나침반 활동을 하기로 했다는 건 서룡 님께 아직 희망이 있다는 것 같아요.

그렇죠. 다른 학교 상황들도 궁금했고요.

희망을 놓치지 않게 한 원동력은 뭔가요?

여러 이유가 있는데, 제 선택들이 누적되고, 스스로 안 거죠. ‘이미 되돌리긴 늦었다.’ (웃음). 스스로 기대하는 게 있으니까, 그거에 어긋나게 살기는 어려우니까. 성과가 안 나더라도 어쨌든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축적해야 하는 게 있으니까요. 5, 6년째 이런 고민을 안고 가다 보니까 몸이 울리는 것 같아요. 이미 되돌리기엔 너무 늦었어요. 아직 열정도 있고, 군대에 있을 때 전혀 활동을 못 했던 것에 아쉬움도 있고요.

물론 현실에서 사람들과 여러 관계를 맺으면서 조금씩 후퇴하는 지점은 있어요. 그렇지만 아예 뒤로 돌아설 수는 없죠. 이런 점들이 원동력이기도 하고, 이젠 어쩔 수 없는 점이기도 해요.

대학의 한계나 활동가들의 재생산에 대한 고민을 말씀해주셨는데요, 다른 고민이 또 있나요?

일단은 먹고 사는 게 제일 고민이에요. 사람들이랑 활동하며 배운 것 중 하나는 ‘내 한 몸 건사해야 운동도 의미 있다.’였어요. 누군가에게 의지하거나 의존하면서 운동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운동이 안 될 것 같아서요. 건강한 방식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운동하고 싶다고 생각해요.

또 장기적으로 지치지 않고 운동을 하고 싶다는 고민이 있어요. 되게 오래된 고민인데요, ‘만약 내가 80세까지 산다면, 그때까지 건강하게 운동할 수 있는 방식은 뭘까?’라는 생각을 해요. 신념과 반대되지 않는 방향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방법을 찾고, 그 방법으로 일하면서, 운동하기.

그리고 한편으로는 언젠가 정당에서 활동할 텐데, ‘언제, 어디서 하지?’라는 생각도 있어요. 어떤 활동을 해야 할지, 또 활동하기 위한 역량을 어떻게 잘 쌓아갈지. 지금 당장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그래서 여러 가지 계기를 만들려고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세미나도 많이 하고,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연대할 사람들도 계속 만나려고 해요. 일단 혼자서 활동하는 건 크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혼자서 활동하다가는 쉽게 지칠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 점에서 나침반 활동은 어쨌든 희망을 잃지 않게 하니까 좋아요. 열심히 하는 사람들도 많이 만나게 되면서 배움도 많이 얻게 되었고요.

고민을 말씀하시면서 자연스럽게 앞으로의 목표도 말씀해주셨네요.

‘신중하게 선택을 하고, 내가 한 번 선택한 것엔 책임감 있게 행동해야지.’라는 생각이 있어서 고민이 깊어요. 본인이 선택했으면 책임을 다하는 게 중요하다고, 그게 의미 있고 멋있다고 생각해요. 목표라면 ‘책임감 있게 행동하기’가 되겠네요. 뱉은 말에 대한 무게감을 잘 느끼면서 살려고 해요. 그래서 책임감과 무게감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또 진부하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천지신명이 다 안다.’ 이런 말 있잖아요. 스스로 후회할만한 말과 행동을 하지 말고 책임감 있게, 양심을 지키면서 살고 싶어요. 잘 할 수 있겠죠? (웃음)

[어쩌다 노학연대①] ‘연세대 비정규 공대위’ 이연재 대표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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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진행: 이시원 임선진

기사 작성: 이시원

책임편집자: 박혜리

필자소개
노학연대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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