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 때되면 스크린독점 비판 "넌 잘했니"
    By tathata
        2006년 09월 23일 12:5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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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이슈가 된 스크린 독과점 논란이 제기된 이후, 꽤나 많은 매체와 인터뷰를 하게 되었습니다. 스크린 독과점이 국내 영화의 문화 다양성을 저해한다는 논란은 곧바로 국내 저예산 영화, 독립영화가 상영되지 못한다는 오랜 주제와 연결되었고, 많은 매체들은 독립영화 진영의 입장이 궁금하다며 인터뷰를 요청해 왔습니다.

    인터뷰 요청을 받으면서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이런 인터뷰 요청이 ‘참 익숙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스크린쿼터 축소 논란이 있을 때마다 이런 요청이 있어왔고, 2년 전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 <말죽거리 잔혹사>가 스크린 독과점 논란을 불러왔을 때도, 그리고 최근 스크린쿼터가 존재하지만 국내 영화 문화의 다양성에 기여하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때도 같은 종류의 인터뷰 요청이 있어왔습니다.

    매체들이 독립영화가 상영의 기회를 가지지 못한다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보도하는 것은 지금의 현실을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필요한 보도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인터뷰가 반복되면서 조금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기본적으로 독립영화의 상영 배급 환경이 나아지지 않아 매번 비슷한 종류의 대답을 해야 하는 상황이 지겹기도 하고 사람을 지치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른 한 축으로는 이렇게 매번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데도 크게 바뀌는 것은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들었던 또 하나의 생각은 방송사의 태도가 참 이중적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 최근 스크린 독과점 문제를 불러 일으킨 영화 <괴물>  
         

    스크린독과점 논란이 있은 이후 방송사들의 여러 프로그램에서 이런 저런 인터뷰 제안이 들어왔고, 독립영화가 상영되지 못한다는 인터뷰가 보도되었지만, 정작 이런 보도를 하는 방송사들은 독립영화를 소개하거나 편성 방영하는 일에 얼마나 적극적이었을까요?

    영화 상영 시장이 편향적이라고 보도하고, 토론도 진행하는 방송사 역시 독립영화나 저예산영화를 소개하거나 방송하는 일은 외면해 왔고, 현재의 영화 상영 시장 양극화를 만들어낸 책임의 일부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쉽게 망각되어 왔습니다. 정말 그랬을까요? 하나하나 짚어봅시다.

    영화 문화에 대한 방송의 기능들

    방송은 영화와 함께 영상 문화를 구성하는 중요한 한 축입니다. 영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문화적, 예술적 역할이 낮게 평가받아왔고, 보도 기능이나 오락 기능이 강조되어 왔지만, 분명 방송은 영화가 해온 영상 문화의 역할을 다른 방식으로 혹은 유사한 방식으로 해 온 것은 사실입니다. 특히나 방송은 영화를 아우르기 시작했습니다. 방송의 시장 규모는 영화의 시장규모를 압도하며, 영화를 방송을 구성하는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포괄해 왔습니다.

    영화를 편성 방영하는 일은 영화에 대한 방송의 주요한 기능이자 역할이 된 것입니다. 방송에서 영화를 보는 일은 그리 낯선 일은 아닙니다. 지금은 상대적으로 인기가 낮아졌지만, 주말 밤의 영화 프로그램은 방송사의 대표적인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방송의 영화에 대한 역할은 편성 방영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방송이 영화에 대해 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기능은 영화를 프로모션하는 기능입니다. 직접적으로 예를 들면, KBS2TV의 ‘토요영화 탐험’, MBC의 ‘출발! 비디오 여행’, SBS의 ‘TV 박스 오피스’ 등의 프로그램이 개봉하는 영화나 DVD가 출시되는 ‘볼만한’ 영화들을 소개하는 것은 방송이 영화 시장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매우 중요한 기능입니다.

    최근 3년간 영화진흥위원회가 조사한 영화관객 성향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관객이 영화의 정보를 취득하는 경로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방송이었습니다. 2005년 인터넷에 그 자리를 내주긴 하였지만, 방송은 영화 정보를 얻는데 매우 큰 역할을 해온 것입니다.

    최근 들어 영화 정보 취득 경로로 방송의 역할이 낮아졌다고는 하나, 방송의 영화 프로모션 기능이 약화되었다고는 보기 어렵습니다. 방송이 영화를 프로모션하는 방법은 단순히 영화 소개 프로그램만의 기능이 아닙니다.

    모든 방송사가 매주 1회 방영하는 연예정보 프로그램 역시 개봉 영화를 소개하는 역할을 해왔고, 최근 몇 년 사이에는 방송사의 토크쇼 프로그램들은 개봉 영화를 홍보하는 장으로 이용되어 왔습니다. <야심만만>, <상상 플러스>, <놀러와> 등 방송사의 인기 토크쇼 프로그램들의 주요 게스트는 주로 곧 개봉을 앞둔 영화의 배우들입니다. 그들은 방송 출연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곧 개봉할 영화를 홍보하며 방송의 프로모션 기능을 극대화시켜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방송의 프로모션 기능의 백미는 뉴스 보도입니다. 주로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소개되어온 영화가 뉴스 보도를 타게 되면, 전혀 다른 프로모션의 기회를 갖습니다. 뉴스 보도를 통해 영화가 소개되는 것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소개되는 것, 몇 배의 영향력을 갖는다는 것이 영화판의 속설입니다. 예능프로그램을 보지 않는 사람들에게까지 영화가 ‘돈 안들이고’ 소개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뉴스 보도의 영향을 받아 흥행에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서편제>입니다. 그리 많은 관객이 들지 않던 <서편제>의 흥행은 청와대에서 <서편제>를 보았다는 뉴스 보도로 롱런의 기틀을 마련했고, 한국영화 사상 최고의 흥행을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1천만 관객 동원을 둘러싸고 진행되는 경마식 보도 관행은 관객들의 관람을 부추겨 기록 경신을 앞당기는 기능을 합니다. 최근 <괴물>을 둘러싼 스크린 독과점 논란이 오히려 <괴물>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을 더욱 불러일으켰다는 사실은 매우 역설적입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개봉 후 점차 관객이 줄던 <괴물>은 MBC <100분 토론>을 통해 더욱 촉발된 스크린독과점 논란이 각종 보도에 오르내리면서 오히려 주말 관객이 늘어났다고 합니다. 스크린 독과점 논란이 영화의 감독과 배우에게는 곤혹스러운 일이었겠지만, 배급사에게는 행복한 일이 되었던 셈입니다.

    방송사의 영화 문화에 대한 왜곡된 역할

       
       ▲ 8월 18일 민주노동당 천영세의원이 주관한 ‘문화다양성 확보를 위한 영화진흥법 개정안’ 관련 간담회  

    그러나 방송의 이런 프로모션 기능은 상업영화들에만 해당될 뿐, 정작 프로모션의 기회가 필요한 독립영화에게는 제공되지 않습니다. 상업영화의 경우 평균 15억원의 홍보마케팅 비용을 지출하며, 블록버스터 영화의 경우 20~30억원에 달하는 홍보마케팅 비용을 집행하며 영화를 프로모션합니다.

    반면 독립영화는 많아야 2~3천만원의 홍보비용을 쓸 수 있을 뿐입니다. 이런 경우도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을 받은 경우나 홍보 마케팅 비용을 투자를 받은 경우에나 가능한 행복한 경우입니다. 그러나 방송의 프로모션 기능은 거액의 홍보비를 쓰는 영화들에 이중삼중으로 집중됩니다.

    홍보비를 많이 써 홍보의 기회가 많은 영화가 더 많은 방송 프로모션의 기회를 가지게 되고, 홍보비가 없어 홍보의 기회를 적게 가진 영화는 방송 프로모션의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결국 방송의 이런 편향된 선택과 역할은 자연스레 관객들의 영화 선택에 영향을 미치게 되며, 방송에서 프로모션하는 몇 편의 영화에 관객이 집중되는 흥행의 양극화 현상으로 이어집니다. 방송사들이 뉴스 보도 등을 통해 영화 흥행의 양극화를 제기하고 독립영화가 관객의 관심밖에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정작 이런 상황을 조장한 것에는 방송사의 일정한 책임이 있었던 것입니다.

    유감스럽지만 편향된 방송의 프로모션이 단순히 프로모션의 문제로 끝나지 않습니다. 앞서 언급한대로 방송사의 편향된 프로모션은 관객 선택의 편향성을 낳고, 관객 선택의 편향성은 영화 상영 시장의 편향성을 낳고, 영화 상영 시장의 편향성은 다시 방송사의 영화 프로그램 편성에 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방송사의 영화 프로그램 편성은 흥행에 성공한 상업 영화 중심으로 확실히 재편되었습니다. 저예산영화나 독립영화는 편성 방영되지 못합니다. 한국 영화가 상영 시장에서 할리우드 영화보다 흥행의 우위를 얻기 시작할 무렵 영화 방영권을 얻고자 하는 방송사들의 경쟁은 심화되어 방송 판권의 가격이 높아졌고, 그 결과 개봉 전 미리 방영권을 확보하기 위해 방송사들은 경쟁적으로 영화 투자에 뛰어들었습니다.

    흥행한 영화는 안정적인 광고가 보장되기 때문에 좋은 시간에 재방 삼방으로 편성되지만, 흥행이 안된 저예산 영화나 독립영화는 방영권 판매 수익을 얻기는커녕 방송을 통한 방영의 기회를 가지지 못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정은 케이블/위성 방송에서도 거의 반복적으로 재현됩니다. 케이블/위성 방송에는 상대적으로 영화채널이 많아 저예산영화들은 판매와 방영의 기회를 얻습니다만, 독립영화에게는 여전히 높은 장벽이 둘러쳐져 있습니다. 독립영화는 상영시장에서도 방송에서도 관객에게 보여질 기회를 가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정이 반복되면서 관객들의 영화 선택의 편향성은 더욱 강화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저예산영화나 독립영화는 관객들에게 점점 더 낯선 영화가 될 것이며, 관객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이 영화들을 외면하게 되지 않을까요?

    방송사들은 보도를 통해 영화 상영 시장이 편향되어 있다거나 독립영화가 기회를 얻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반복할 것이 아니라, 편향성을 극복하고, 관객에게 다양한 영화 관람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해야할 것입니다.

    특히 제한된 전파를 활용하는 공공적 역할을 담보해야할 지상파 방송사들은 더 이상 이런 역할을 외면해서는 안됩니다. ‘전파는 국민의 것’이라는 말을 그저 상투적인 문구로 사고해서는 곤란합니다. 시장에서 소외받는 독립영화, 저예산영화에 프로모션 기회를 제공하고 이 영화들을 편성 방영하는 것은 영상 문화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방송의, 그리고 공공적 역할을 담당해야하는 지상파 방송사의, 방송의 공공성을 더욱 담보해 내야하는 공영 방송의 역할이자 의무입니다.

    방송사 문화 다양성에 대한 역할을 제고해야

    최근 KBS가 국내 유일한 독립영화 전문 프로그램인 [KBS 독립영화관]을 폐지한다고 하여 영화단체들, 문화예술단체들이 폐지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독립영화관]은 국내 지상파 방송사 내에서 영상문화의 다양성에 대한 방송의 공공적 역할을 거의 유일하게 담당해온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독립영화를 방영하는 유일한 프로그램이자, 다른 방송의 영화 프로그램이 외면하는 저예산영화를 포괄해온 독보적인 프로그램이었으나, 낮은 시청률 등의 사유로 폐지가 검토된 것입니다. 이 사례는 우리나라 방송사의 영상문화에 대한 공공적 역할의 인식이 어느 수준인지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외국의 방송사들처럼 저예산영화, 독립영화의 제작까지 지원하며 편성 방영하는 걸 기대하진 않더라도 새벽 1시가 넘어 방영되었던 유일한 프로그램의 폐지를 너무나 쉽게 검토하는 모습은 매우 실망스러웠습니다. 다행히 이런 저런 사정으로 가을 개편이 진행되지 못하고, 우여곡절 끝에 [독립영화관]은 계속 방영이 되지만, 내년 봄 개편에 다시 한 번 [독립영화관]의 폐지가 검토될 것으로 예상되는 매우 답답한 상황입니다.

    문화 다양성에 대한 요구는 단순히 영화산업에 대한 요구만은 아닙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문화 다양성, 문화 향수권의 확대는 방송의 중요한 역할과 의무입니다. [독립영화관]을 폐지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영화가 방영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만드는 것, 다양한 영화가 제작될 수 있도록 방송이 일정한 기여를 하는 것이 바로 방송의 역할입니다. 방송의 영상 문화에 대한 접근이 보다 진전될 수 있기를, 그리하여 방송을 통해 더욱 다양한 영화들을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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