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타에도 추억이 있다
[내 맛대로 먹기]고구마줄기 파스타
    2020년 05월 29일 09:1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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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은 추억의 맛이라고 했다. 소설가 황석영은 ‘음식은 사람끼리의 관계이며, 시간에 얹힌 기억들의 촉매’라고 자못 멋스럽게 썼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먹는 음식들에 관한 기억을 더듬어보면 필시 그것과 관련된 사람, 사건, 기억들이 하나씩 떠오른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어린이 신문을 통해 접한 자장면은 선망의 대상이자 신비로운 존재였다. 지방 소도시에서 중학교를 다날 때는 시장 어귀에 매달린 진주햄 소시지가 그랬다. 고등학교 때는 빵 사이에 고기맛 덩어리, 채썬 양배추, 마요네즈 따위를 넣어 만든 햄버거라는 것에 대해서 풍문으로만 들었다. 지금은 혐오 식품 말고는 먹지 않는 것이 드물지만, 그 시절에 나는 돼지 비계나 소의 간처럼 물컹거리는 것이 씹히면 토할 정도로 비위가 약했다.

엄마가 만든 김치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김치인 줄 알았다가 그저 평범한 경상도 시골의 김치 중의 하나라는 사실도 대학시절 이후 여러 곳을 전전하면서 알게 되었다. 똑같은 재료를 갖고 얼마나 다양한 맛을 낼 수 있는지도 시나브로 깨치게 되었다. 전라도로 농촌활동을 갔다가 농가에서 막걸리와 함께 먹은 고들빼기 김치, 홍수로 고립된 낙농가에서 처음으로 맛본 온전한 소젖, 밤중에 경상도 어느 고갯마루를 넘다가 허름한 식당에서 만난 김치찌개와 같이 새롭거나 경이로운 맛에 대한 기억이 내 뇌세포나 미각세포에 자리잡고 있다가 요즘도 예기치 않은 순간에 불쑥 나타나고는 한다.

오늘은 파스타에 관한 이야기를 쓰려고 한다. 그런데 파스타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이 언제인지 모르겠다. 파스타에 얽힌 옛날 이야기도 떠오르지 않는다. 적어도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스파게티라는 음식에 관한 얘기는 들었던 것 같다. 스파게티가 수십 수백 가지에 이르는 파스타 중의 한 종류라는 사실도 뒤늦게 알았다. 남들보다 다소 늦게 알고 늦게 친해졌지만 언젠가부터 국수보다 파스타를 더 자주 해먹는 까닭은 냉장고에 어떤 식재료가 있든지 그것과 어울리는 파스타를 금세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해롤드 맥기(Harold McGee)라는 과학자이자 저술가가 있다. ‘요리의 과학자’, ‘주방의 화학자’라고 불리며 평생 요리를 과학적으로 연구하고, 그 연구 결과를 주방으로 보내 접시에 구현하는 일을 해 온 사람이다. 그가 쓴 <음식과 요리(On Food and Cooking)>라는 책 한국어판은 무려 1235쪽에 이르는 엄청난 두께를 자랑하는데, 어느 쪽을 펼쳐도 음식과 요리에 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거기에서 파스타에 관한 한 대목을 찾았다.

“곡물 가루로 만든 간편한 요리인 파스타는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음식들 가운데 하나다. 파스타는 이탈리아어로 ‘반죽’이라는 뜻이다. 파스타는 밀가루와 물로 찰흙 같은 덩어리를 작게 성형한 다음에, 거의 모든 다른 반죽 음식은 굽는 것과 달리 완전히 익을 때까지 물에 넣고 끓인다. 누들은 파스타와 같은 요리를 부르는 독일어에서 왔으며, 이탈리아식 이외의 파스타와 유사한 요리를 통칭한다. 촉촉하고 섬세하고 든든한 느낌의 질감과, 다양한 재료들과 잘 어울리는 중립적인 맛이야말로 파스타의 가장 큰 매력이다.”(해롤드 맥기 <음식과 요리>, 870쪽)

이탈리아의 표준 파스타는 듀럼밀(마카로니밀)로 만들며, 독특한 맛과 매력적인 노란 색, 풍부한 글루텐 단백질을 특징으로 한다. Durum은 라틴어로 딱딱하다는 말이다. 단백질과 글루텐 함유량이 16% 정도로 아주 높다. 밀은 자라난 기후에 따라서 단백질 함량이 다르다. 건조한 기후에서 자란 밀은 경질밀(강력분)인데 단백질(주로 글루텐)이 11-15%로 높은 편이며, 찰지고 쫄깃한 성질이 있어 빵을 만드는 데 쓴다. 습도가 높은 곳에서 자란 밀은 연질밀(박력분)인데 단백질 함량이 8-10%로 낮으며, 바삭하고 팍팍한 쿠키나 비스켓을 만드는 데 쓴다. 요즘은 우리나라에서도 듀럼밀을 구입하여 생파스타를 만드는 요리사나 애호가들이 제법 많다고 한다.

다시 내가 파스타와 친해진 사연으로 돌아간다. 바지락, 동죽, 전복과 같은 어패류를 갖고 여러 음식을 차려 내던 날, 어떤 식객이 나한테 말했다. 바지락 볶음 국물이 얼큰하고 감칠 맛이 좋은데 파스타를 삶아서 비벼주면 좋겠다고. 곧바로 파스타를 삶아 바지락 볶음에 버무리고 치즈를 뿌려 냈더니 모두들 좋아라 했다. 이른바 이성우 표 봉골레 파스타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실은 봉골레 파스타라고 하기보다는 파스타면으로 만든 바지락 볶음국수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그 후로 내가 차린 식탁에 바지락 파스타는 고정 메뉴가 되었고, 얼큰한 국물이 있는 파스타를 사람들은 기꺼이 즐겼다. 어느 사이엔가 우리집 주방 보관함에는 파스타면이 소면과 나란히 자리잡게 되었다. 그리고 틈날 때마다 이런저런 식재료를 꺼내 다양한 파스타를 만들어 보기에 이르렀다. 명란, 표고, 양송이, 전복내장, 우엉, 주꾸미 먹물 등 갖가지 재료들이 파스타를 장식했다.

이윽고 나는 온갖 좋은 재료가 없더라도 올리브유, 마늘, 파스타와 소금만 있으면 맛있는 한 끼 식사를 충분히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파스타는 면을 각자의 입맛에 맞도록 적당히 삶고 조리하는 타이밍과 올리브유와 면수를 잘 유화시켜 소스가 따로 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도 알았다. 마늘향이 잘 밴 파스타를 먹고 싶으면 통마늘을 얇게 저며 약물에서 천천히 볶는 것이 좋다. 그것을 기본으로 갖추고 나면 버섯이나 채소, 해산물을 더하여 서로 잘 어우러지게 하면 되는 것이었다. 물론, 좋아하는 치즈나 향신료, 허브가 있으면 얹어서 먹으면 더 좋다.

파스타는 알덴테(Al dente)로 먹어야 맛있다고들 한다. 알덴테는 파스타 중심을 약간 설익은 상태로 삶아 씹히는 맛이 있도록 조리하는 것을 말한다. 알덴테 상태에서 파스타 표면의 수분 함량은 80-90퍼센트이고, 중심은 40-60퍼센트 정도라고 한다. 파스타의 종류에 따라 알덴테 상태까지 삶는 시간은 제각기 다르므로 파스타 포장에 표시되어 있다. 알덴테 상태로 삶더라도 마무리하는 시간과 온도에 따라 식감은 달라질 수 있다. 익숙해지면 알게 되겠지만, 반드시 알덴테로 먹고 싶다면 마무리 시간을 감안해서 표시보다 2-3분 덜 삶는 것이 좋다.

최근 몇 년 동안에는 파스타에 관한 추억이 제법 쌓였다. 작년 여름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다가 즉석에서 해먹은 고구마 줄기 파스타 얘기도 그 중 하나다. 경남 산청의 산 중턱에 자리잡은 마을에 알음알음 동지들이 모였다. 그 곳에서 붙박혀 사는 옛 동지의 텃밭에는 고구마순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일행 중 한 사람이 고구마순 요리를 좋아한다고 하자 주인장이 바로 고구마 덩굴을 두 팔 가득히 안고 왔다. 예닐곱 일행들이 모두 바닥에 앉아서 고구마 순 껍질을 까기 시작했다.

– 고구마 줄기로 무얼 해먹을까?
– 고구마 줄기 무침이나 김치가 맛있지.
– 나는 볶음이 더 좋던데…
– 고구마 줄기를 밑에 깔고 생선조림을 하면 정말 맛있어요.

손톱 아래 까만 물이 들도록 모두 열심히 고구마 줄기를 손질했다. 그 날 저녁, 내가 차려낸 음식은 고구마 줄기 파스타였다.

<재료>

고구마 줄기 적당량 / 파스타 / 양념(소금, 들기름, 마늘, 청양고추, 대파, 들깨가루)

<만들기>

  1. 껍질을 벗긴 고구마 줄기를 팔팔 끓는 물에 소금을 약간 넣고 데친다.
  2. 삶은 고구마 줄기는 찬물에 담가서 식힌다.
  3. 고구마 줄기를 먹기 좋은 길이로 자른다.
  4. 물 1리터에 소금 1큰술 정도 비율로 해서 물을 넉넉하게 끓인다.
  5. 파스타를 넣어 4-5분 정도 삶는다.
  6. 파스타를 삶는 동안 팬에 들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약한 불로 저민 마늘을 볶는다.
  7. 마늘향이 충분히 나면 고구마 줄기를 넣어 볶는다.
  8. 파스타를 삶은 면수와 파스타를 넣고 섞으면서 볶는다.
  9. 총총 썬 고추와 대파를 넣고 마무리한다.
  10. 들깨 가루를 넉넉히 뿌려 먹으면 좋다. 취향에 따라 들깨 가루 대신에 치즈를 얹어 먹어도 된다.
필자소개
이성우
전 공공연맹 사무처장이었고 현재는 공공연구노조 위원장이다. 노동운동뿐 아니라 요리를 통해서도 세상과 소통하고 싶어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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