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낚시터에서의 민폐, 수다
    [낚시는 미친 짓이다⓸] 정숙(靜肅)
        2020년 05월 22일 02:3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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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낚시라는 게 워낙 오묘하다. 같은 자리에서 1m도 차이가 안 나는 데도 잘 잡히고, 안 잡히는 차이가 크게 나는 경우도 많다. 똑같은 거리에 던지고, 똑같은 미끼를 쓰는 데도 말이다. 더 이상한 것은 어느 날은 잡아서 가져가야지 하는 날이면 입질이 뚝 끊기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마치 낚싯대에서 살기가 뿜어져 나가기라도 하는 듯이.

    낚시대의 길이는 보통 칸으로 한다. 한칸이 1.8m, 즉 반 칸이 90cm다.

    용인에 신원지라는 저수지가 있다. 배스와 강준치가 있어서 흠이기는 하지만 물이 매우 맑고, 조용해서 좋다. 용인으로 이사 온 후 처음 그곳을 찾았던 날 잉어만 6마리를 잡았다. 이상한 날이었다. 보통 잉어는 한 마리가 잡히면 연속으로 잡히는 경우가 있다. 누군가는 잉어는 다니는 길이 있다고도 한다.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알겠지만 잉어는 보통 6~70cm를 훌쩍 넘긴다. 보통 30cm도 안 되는 잉어는 발갱이라고 한다. 잉어새끼다. 잉어는 힘이 상당히 세서 몇 분 동안은 씨름을 해야만 한다. 마치 벌 받는 것처럼 낚싯대를 세운 채로 버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줄이 터져 버리거나, 낚싯대가 부러지기도 한다. 온 몸이 후들거리기 일쑤다. 그런 걸 네댓 마리 정도 잡으면 그야말로 기진맥진한다. 신원지에선 그 다음에도 간간이 잉어를 잡기도 했다.

    문경에 있는 노동자를 위한 가은연수원에는 가마솥이 있다. 해서 문경을 갈 기회가 있을 때면 그곳에 들러 잉어를 잡아서 가져갈 생각을 하는 경우가 몇 번 있었다. 가마솥에 잉어를 넣고 푹 고아서 사람들에게 보신을 시켜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딱 한 마리만! 그러나 그런 날은 정말이지 단 한 마리도 구경을 못했다. 마치 “잡아서 놔주는 것을 아니까 잡혀주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국물도 없다.”라고 놀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낚싯대에서 살기가 느껴지나 하고 의심할 정도다.

    낚시터에서 제일 싫은 경우는 수다스러운 사람을 옆에 두고 하는 경우다. 게다가 술이라도 한 잔 걸친 사람이라면 질색이다. 한번은 강화도 길정저수지에서 낚시를 할 때다. 예의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시끄럽고, 공감능력이라고는 빵점에 가까운 사람이 있었다. 그가 우연히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는 가물치를 보았나 보다. 낚싯대를 들고 이리저리 옮기면서 첨벙거리곤 했다. 낚시터에선 보기 드문, 참으로 만나기 힘든 종류의 별종 인간이었다.

    보통의 경우 낚시인들은 남의 자리를 오가며 낚시를 하지는 않는다. 늦게 온 사람은 먼저 온 사람이 던져 놓은 자리를 피한다. 먼저 온 사람보다 더 긴 대를 쓰지도 않는다. 그가 열심히 집어(集魚)해 놓은 것을 방해하지 않는 것이 일종의 예의다. 무엇보다 조용해야 한다. 정숙이야말로 낚시인이 배워야 할 첫째 덕목이다. 자연과 함께하는, 그로부터 배우려는 차분함이 필수요소다. 프로 낚시인은 아무리 큰 물고기를 잡아도 첨벙댐이 없이 조용하게 잡아들인다.

    그날 만난 그는 분명히 초짜였고, 성격도 이상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요상하게도 진짜 그가 가물치를 잡았다. 작은 피라미를 미끼로 하여 대낚시로 60cm는 족히 될 가물치를 잡아 올린 것이다. 가물치는 잉어보다도 훨씬 힘이 세다. 보통의 낚싯줄로는 잡아 올리기 힘들다. 보통 릴낚시를 통해 힘을 뺄 수 있어야 잡을 수 있다. 아주 신기한 경우가 아닐 수 없다.

    그 때부터 더 큰 난리가 났다. 이 사람이 “이걸 회를 떠서 먹을까? 아냐 매운탕을 할까? 아냐 약을 내려 먹어야지” 등등 큰소리를 쳐댔다. 그리고는 살림망에 조심스레 담았다. 여기저기에 큰소리로 전화를 해 자랑하기도 했다. 그러더니 잠시 후 “아아악”하는 소리가 들렸고, 가물치가 요란한 물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알고 보니 살림망의 밑 부분을 제대로 묶지 못해 도망쳐 버린 것이다.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표정에서 웃음을 볼 수 있었다. 쌤통이었다. 도망친 가물치에게 축복 있으라!

    낚시터에서 받는 즐거움 중의 하나가 옆 사람이 대물이라고 보통 부르는 큰 물고기를 잡다가 놓치는 것을 보는 일이다. 거의 다 끌고 와서 바로 눈앞에서 떨어뜨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 경우 애석해하는 표정을 그 사람에게 보내면서도 실제로는 묘한 즐거움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러면서 다른 이의 불행을 보고 웃고 있는 자신에게 깜짝 놀라기도 한다.

    낚시를 하면 자신을 만나는 시간을 가지기가 쉽다. 가끔 소쩍새 정도가 울어대는 조용한 물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좋다. 물론 낚시에 몰입하면 아무런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붕어는 시끄러우면 잘 안 잡힌다. 최대한 정숙을 유지하고, 빛도 최소화해야 한다. 조용히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라고 말하는 것일까?

    <침묵연습> 4

    내가 항상 같은 자리, 같은 모습이길 바래?
    그건 오해야
    같은 모양을 한 물결을 본적 있어?
    얼마나 바쁘다구

    여기도 가보고 저기도 가보고 싶고
    이 이도, 저 이도 만나야 하구
    개성과 매력이 다 다르거든
    그 자리 그 모습이어도 날씨 따라
    기분 따라 다르지

    날 만나기가 그리 쉽다고 생각했다면
    그건 편견이지
    바람처럼 나는 자유거든

    내가 신호를 보내기도 했잖아
    얽매임을 각오한 온몸으로 보낸
    나의 신호

    그걸 눈치 챘어야지
    늦었어, 아니 이번엔 너무 빨라
    때론 멈추기도 하지
    나도 생각을 해야 하니까

    바람이 부네
    그때마다 나는 흔들리지
    바람 따라 물결 따라 쉬지 않는 내 영혼
    그걸 왜 몰라
    모르니까 헛된 손짓만 반복하는 거야

    다시 돌아갈지도 모르지
    아닐 수도 있어
    그래도 기다린다면 그건
    너의 숙명이지

    <신원지> https://blog.naver.com/logoros

    ※ 축조된 지 50년이 넘은 저수지라고 한다. 규모는 약 85.000평. 물이 맑고, 풍광이 좋다. 주인 아저씨가 친절하지만 연세가 있으셔서 보통 아들이 관리한다. 주인 아주머니에게 부탁하면 식사를 해 주시는데 맛이 좋다. 바로 길 건너에 음식점들이 많다.

    주소: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면 묵리 886-4

    전화 010-5284-0845(031-332-7634)/ 좌대: 다수(지난 겨울에는 10개동만 운영)/ 입어료 : 2만원

    필자소개
    이근원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 정책실장. 정치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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