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거리두기와
뒤늦은 벼농사두레 총회
[낭만파 농부] 막걸리 빚는 '막동이'
    2020년 04월 25일 11:4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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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싶었는데 이번에도 역시나. 얼마 전 끝난 4.15총선 얘기다. 막장정치의 끝판을 보여준 위성정당 논란 속에 정치 비전과 정책 경쟁이 자취를 감춘 선거였다. 그럼에도 뚜껑이 열린 투표함은 이 천하의 꼼수를 용인해주고 말았다. 아무리 코로나19 국면이라지만 그래도 그렇지. 불의가 보란 듯이 승리를 거머쥐고 정치는 양당체제로 퇴보하고 말았다.

역시 33% 득표정당이 의석 60%를 쓸어가고, 10% 정당은 고작 2%를 차지하는 왜곡된 대의구조가 문제다. 그러나 무엇보다 생태, 평등, 평화 같은 진보적 가치가 이번에도 철저히 외면 받았다는 점이 뼈아프다. 하긴 반평생을 번번이 기대가 꺾이다 보니 이번 생에는 아예 정치판을 포기하기로 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이젠 이 따위 뒷담화를 늘어놓을 이유도 없고, 그럴 자격도 없는 셈이다. 씁쓸한 일이지만 이 또한 차차 적응이 되겠지.

정치판이야 그렇다 치고. 대의 체제는 오늘날 자연스런 사회 조직원리로 자리 잡았다. 그 대의기관에 임기를 두는 것 또한 당연하게 여긴다. 이 시골구석의 ‘임의단체’인 우리 벼농사두레도 마찬가지. 올해 정기총회에서는 2년 임기가 끝나는 집행부를 선출하도록 돼 있다.

하필 그 총회가 고강도 2차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에 잡혀 있었다. 선거권과 피선거권이라는 기본권 보장과 어쩔 수 없는 현실 사이에서 고심을 거듭하다가 결국 온라인 회원투표를 통해 총회를 유보하기로 했다. 현 체제(회칙, 집행부)를 2년 연장하는 조건으로.

정기총회에서 벌어질 즐거운 소동을 놓쳐 아쉽긴했지만 그 원흉인 코로나19 기세가 한풀 꺾여 그나마 다행이다. 그 덕분에 예정됐던 총회 프로그램은 늦게나마 진행이 되었다. 2기 집행부 출범을 핑계로 마련된 자리에서는 ‘멋진 회원상’ 시상식을 열었다. 지난해만큼은 아니었지만 이번에도 사람들은 해학 넘치는 시상 내역에 열광했다. 서로가 내놓은 소소한 상품을 나누는 기분도 흐뭇했고.

올해의 ‘멋진 회원상’

그러는 사이에 농사철이 돌아왔다. 이젠 진짜로 농사 준비에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지난 주말에 벼농사두레 ‘경작설명회 & 두레작업 조정회의’가 열렸다. 경작설명회는 애초 총회 사전 프로그램으로 마련된 것이었다. 새롭게 벼농사에 도전하는 이들을 상대로 유기농 벼농사 한 바퀴와 작업공정을 알려주는 자리다. 올해는 청년층을 비롯해 8명(3팀)이 경작자로 합류했다. 이미 벼농사를 짓고 있는 이들도 지난해 농사기록 영상자료에 제 모습이 비칠 때마다 가벼운 탄성을 터뜨린다. 실은 같은 내용을 몇 번째 보고 듣는 것이지만 도움이 될망정 나쁠 건 없는 일이다.

경작설명회 모습

경작자를 다 합쳐도 스물 안쪽인데 서른 명 가까이 모여들어 비좁은 방안이 터져나갈 듯했다. 명색이 설명회에 조정회의지만 그게 핑계에 가깝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엄마 아빠 따라 나선 아이들도 계단을 오르내리며 저희들끼리 신이 났다. ‘회의는 짧게, 뒤풀이는 길게’ 벼농사두레의 철칙이다. 이날도 마찬가지, 두레작업 조정회의는 짧고 굵게 결론이 났다. 그리고 이어지는 즐거운 ‘수다’.

이날 결정에 따라 돌아오는 일요일에는 볍씨를 담그게 된다. 소금물로 쭉정이를 걸러내는 간단한 작업(염수선)이지만 이 또한 좋은 ‘핑계’가 된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벼농사두레 안에 막걸리 빚는 동아리가 생겼다. 이름하여 ‘막동이’. 내가 지은 쌀로 손수 막걸리를 빚어보자는 것이고, 벼농사두레 협동작업 때 농주로 그 막걸리를 내놓겠다는 것이다. 그다지 막걸리를 즐기지 않는 나로서는 회원 대신 ‘서포터즈’를 자임했을 뿐이지만 얼마나 그 뜻이 갸륵한가 이 말이다.

막동이 출범 모임

볍씨는 닷새 동안 ‘냉수침종’을 거쳐 촉을 틔운 뒤 모판에 넣는 작업(파종)이 이어진다. 파종작업 때도 막동이가 빚은 막걸리는 빛을 발할 것이다. 그 사흘 뒤에는 모판을 못자리에 앉히는 작업이 벌어진다. 짧은 시간에 많은 노동력이 필요한 고된 작업이다. 그 날도 막동이표 막걸리는 농사꾼의 지친 심신을 위로하게 될 것이다.

5월이 가까운데 밤 기온이 뚝 떨어지는 이상저온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설마 겨울로 되돌아가진 않겠지. 농한기는 이미 끝났잖아. 어쨌거나 한낮의 햇볕 아래 펼쳐진 봄빛은 눈부시기만 하다.

필자소개
시골농부, 전 민주노총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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