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가 20년 교수 그만두고 노동연구소장 된 이유
        2006년 09월 12일 03:0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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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동차 노동조합은 산별이 될 것 같습니다. 집행부들의 의지가 강하고, 매우 체계적으로 준비 중입니다. 뿐만 아니라 실제로 실천단계에 들어갔고, 방향도 제대로 잡고 있습니다. 느낌이 괜찮습니다.” – 창원노동사회교육원 강의. 3월 20일.

    대부분의 노동전문가들이 금속산업노조의 성립 가능성에 설왕설래하던 지난 3월, 그 성공을 확언한 이가 있었으니, 바로 임영일이다. 6월 30일 마침내 조합원 13만 명의 금속노조가 탄생하고, 임영일은 20년 6개월 동안 몸담았던 경남대학교 교수직을 사직한다. 지금 임영일은 영남노동운동연구소(영남노연)의 상근 소장이다.

    노동운동 하려고 때려친 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금속노조 탄생과 교수직 사직의 시기가 비슷하다는 사실을 거론하며 그가 "노동운동을 하기 위해 교수 자리를 때려치웠다"고 말한다. 그는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그는 아직도 공부하고 가르치는 연구자로 스스로를 규정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왜?

       
     

    “현재의 교육 현실에서 대부분의 대학은 교육이나 연구의 장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어요. 하지만 학교가 그렇게 된 것에 대해 좋거나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다만 나로서는 학생들의 취업 준비 같은 것에 별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고, 그런 도움을 줄 수 있는 젊은 학자들이 학생들을 만나야 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오래 전부터 관두려 했고, 지금이 그 시기라 판단했을 뿐이예요.”

    다른 대학에서 기회가 주어져도 다시 학교로 돌아갈 생각은 없다고, ‘영남노동운동연구소가 문 닫을 때까지’ 계속 일하겠다고, 이제 교수가 아닌 임영일은 담담히 말한다.

    그런데 영남노연의 전망이 밝지만은 않아 보인다. 영남노연은 지난 십여 년 동안 현장조직과 가장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연구소로 평가됐지만, 대기업 노조들이 안정화되면서 영남노연 같은 외부 정책 역량의 지원을 별로 필요로 하지 않게 되었고, 미조직 사업장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아직 정책적 필요에까지 이르지 못하고 있다.

    금속노조가 건설되는 과정에서 교수 임영일과 영남노연의 연구자들은 마치 현장 활동가처럼 일했다. 예전에 영남노연은 상급단위 교육에 치중했었는데, 산별전환 투표를 앞두고서는 영남권 금속연맹의 거의 모든 단위 사업장까지 교육을 다니고, 주요 사업장 내부의 정파 그룹 사람들을 만나 설득하는 일에 나섰다. 그것이 영남노연을 만든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산별화 같은 것이 잘 안 이루어질 때 ‘현장 조합원의 현실이나 정서’를 이야기하는 것은 간부 활동가의 알리바이예요. 간부들이 나서서 적극적으로 설득하면 되는 일을 자신들 스스로가 꺼려 하면서, ‘현장 조합원 때문이다’고 변명하는 거죠.

    일하지 않은 노조 간부 활동가들의 알리바이

    이번에는 집행부의 의지가 확고하더라구요. 집행부 이외의 정파 활동가들도 사보타지를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산별화에 대부분 협조적이었고요.

    원래의 노사관계 로드맵에 있던 2007년 복수노조 상황에 대한 우려가 현장에 널리 퍼져 있었고, ‘복수노조 상황에서 살 길은 산별화 뿐이다’는 문제의식이 이번 산별화 투표에 큰 영향을 미쳤죠.”

    그렇다면 산업별 노조는 도대체 어떤 일을 하는 것일까? 그는 산업노조의 핵심의제로 교육비, 주거비 등의 사회경제적 요구와 산업정책을 들고 있다. 유럽의 오래 되고 큰 산업노조들이 하는 사회적 코포라티즘 노선과 같다. 이런 방향에 대해 사회적인 체제내화라거나 조직의 관료화라는 반발이 적지 않았는데….

    “그 방향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고, 그 방향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노동조합이 혁명적이라거나 개량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좀 이상하죠. 노동조합을 평가하는 잣대가 과도하게 단일화되어서는 안 됩니다. 대중조직은 대중조직으로서의 계급적 대표성을 어떻게 확보하는가가 가장 중요하고, 사회적 코포라티즘 노선이 그 대안일 수 있습니다.

    노동운동의 노선은 노동조합의 활동방식 뿐 아니라, 정치적 노동운동의 이념 등까지 포함하는 노동운동 전체의 것입니다.

    예전에는, 운동방식의 체제내화나 조직형식의 관료화를 우려하며 산별에 반대하는 의견이 있기도 했지만, 이번 과정에서는 좌파적 경향에서도 그런 반대를 하지는 않았어요. 대신 산업노조의 편재가 기업별로 돼서는 안 되고, 지역별로 되어야 한다는 건강한 문제의식을 내놓았죠.”

    87년 노동체제의 종료

    산별화는 ‘1987년 노동체제’라 칭해지는 노동조합운동 경향이나 단계가 종료됨을 의미한다. 그런데 ‘1987년 노동체제’의 특징 중 하나였던 ‘노동운동 지도부와 현장 노동자들 사이의 높은 호응성 관계’는 이미 오래 전에 사라졌고, 산별화 과정에서도 좀 나아지는 기미가 전혀 없다. 간부들이 아무리 목소리 높여도, 조합원들은 심드렁하다. 민주노총 총파업은 민주노총 상근자들이 하는 것이지, 조합원들이 하는 건 아니지 않는가.

    “기업별 노조로는 그럴 수밖에 없죠. 이미 노동시장은 초기업적 의제 중심으로 되고 있고, 그런 의제가 개별 사업장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죠. 그런데 기업별 노조는 초기업적 의제에 대한 개입력이 없으니, 조합원 참여가 떨어지는 게 당연하죠. 또, 기업에서 많이 따봐야 다른 기업 노동자와는 무관한 문제이고, 전체 노동자에게는 희망이 아니지 않습니까.”

       
     
       
    ▲ 위 표와 그래프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은 노조 조직률과 단협적용률이 가장 낮은 편에 속한다. 임영일 소장은 한국의 노조운동이 화살표 방향대로 가능한 한 조직률을 높여 나가되, 그 과정에서 단협적용률을 더 높여 가능한 다수의 노동자들이 단협의 보호 아래 들어오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임영일, ‘산별노조의 조직과 운영에 대하여’. <연대와실천> 2006. 9.
     

    임영일은 산업노조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과장하지 않는다. 임영일은 산업노조가 현재의 고민을 해결하기 때문이 아니라, 현재의 노동 상황에 걸맞는 의제를 제기하고 투쟁하는 노동조합으로 재편할 수 있는 계기이기 때문에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임영일은 민주노동당의 제3정책조정위원회(노동·보건·복지 등) 위원장으로 일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책위원회는 비상근인 그에게 ‘일거리’를 제대로 만들어주지 못했고, 그는 그대로 산업노조 건설에 집중하느라 정책조정위원장으로서의 업무가 잘 이루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아까운 정책 인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당 시스템 자체가 잘못돼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당의 시스템은 노조나 시민단체처럼 정책 단위가 집행기관 밖으로 빠져 조언하고 조력하는 기능만 하고 있죠. 이래서는 사회에 대한 정책 제안자로서의 정당 역할에 잘 적응하기가 어렵지 않을까 싶어요.

    민주노동당은 아까운 정책 인력 제대로 활용 못해

    현재와 같은 기능별 편재보다는 정책 의제별로 편재하는 게 당에는 더 적합하지 않을까요. 적어도 중앙당은 쉐도우 캐비닛(Shadow Cabinet : 예비내각) 식으로 구성 운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민주노동당에 대한 걱정도 토로했다.

    “민주노동당의 가장 큰 문제는 정체성인 거 같아요. 당 전체의 정체성도 문제고, 당원 개개인의 정체성도 문제고…….

    외국 진보정당들은 창당 과정에서 그리고 전국정당화 과정에서 적어도 10년씩은 당 정체성을 토론하고 형성하거든요. 그런데 민주노동당의 특수한 창당 역사는 그런 과정을 생략했지요. 지금이라도 당 이념이나 정체성에 대한 집단적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당은 당내에서 죽어라고 싸우는 겁니다. 독일 사민당은 수정주의 노선을 가지고 20년을 싸웠잖아요.”

    노동조합이든 노동자정치든, 산업노조와 진보정당이라는 조직적 정답이 있는 것처럼, 이념적 방법에서의 정답 역시 이미 나와 있다.

    “노동운동은 70년대 교회가, 80년대 학생운동이 노동판에 수혈되면서 일어서게 된 겁니다. 우리는 이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 [산별노조 건설운동과 대기업노조]

    노동자 대중운동과 사회주의 지식인의 결합이라는 명제가 낡디 낡은 것일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을 이루지 못한 어떤 노동운동도 성공하지 못했음을 한국 노동운동은 모르고 있다. 임영일 같은 사람이 몇 명만 더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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