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부끄럽고 가슴 아프다"
        2006년 09월 03일 03:2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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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동당은 그 때 무엇을 하였는가’ 하는 물음 앞에 나는 할 말이 없다.”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이 3일 ‘난중일기’를 통해 ‘바다이야기’ 등 사행성 오락산업 파문을 막지 못한 책임에 대해 이같이 자성의 목소리를 남겼다. 노 의원은 지난해 사행성 게임물 관련 법안을 다룬 국회 상임위원회와 소위원회, 본회의 회의록을 차례로 정리하며, 일련의 과정에서 무책임했던 국회와 민주노동당, 그리고 스스로를 질책했다.

    노회찬 의원은 “작년 가을, 한 민원인이 직접 의원회관으로 찾아와 사행성 게임업소의 실태와 심각성을 얘기하면서 이를 근절시켜달라고 했다”며 “국회의원으로서, 민주노동당은 어떻게 나서야 하는지 적극적으로 고민하지 못하고 강건너 불을 보듯 속수무책이라 생각했을 뿐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리고 국회 문광위 회의록 등을 통해 경품용 상품권 폐지를 주요 골자로 하는 열린우리당 강혜숙 의원의 법률개정안이 문광위 대안으로 통합되고 폐기되는 과정을 정리했다. 노 의원은 “국회회의록에는 강혜숙안이 상정되고 폐기되는 전 과정에 걸쳐 어떤 의원도 이 법안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 않다”며 “반대하는 발언도 일절 없고 찬성하는 발언도 일절 없다”고 지적했다.

    또한 “경품용 상품권을 금지하자는 강혜숙안이 경품권상품권 발행을 전제로 하는 게임산업진흥법안으로 ‘통합’되었다”며 “형식은 문광위 대안으로 통합하되 내용은 폐기되어 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이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안’이 노 의원이 소속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과정도 밝혔다. 노 의원은 “특별한 쟁점이 없다는 심사보고와 함께 대체토론 없이 만장일치로 법사위를 통과했다”며 “본회의에서도 찬성 209인, 반대 1인, 기권 4인으로 의결되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부끄럽게도 그 법안이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어떤 문제가 있는지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나는 찬성 209인 중의 1인이 되었다”고 고백했다.

    노 의원은 “서민과 함께 웃고 울며 서민의 행복을 위해 일하겠다고 외쳐온 민주노동당 소속의원이기에 이 사태 앞에서 더욱 부끄럽고 가슴 아프다”며 “‘민주노동당은 그 때 무엇을 하였는가’라는 물음 앞에 나는 할 말이 없다. 얼굴을 들지 못할 뿐이다”고 말했다.

    다음은 노회찬 의원의 9/3 난중일기 전문.

    참으로 부끄러운 나날이다.

    <바다이야기>등 사행성 게임물 관련 법안을 다룬 국회 상임위원회와 소위원회 그리고 본회의 회의록을 한 장 한 장 읽어가며 부끄러운 마음은 점차 참담한 심사로 변해간다. 혼자 있는 방에서도 얼굴을 들기 힘들다.

    작년 가을 한 민원인이 직접 의원회관으로 찾아와 사행성 게임업소의 실태와 심각성을 얘기하면서 이를 근절시켜달라고 했을 때 상황이 이해되면서도 난감할 뿐이었다.

    국회의원으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또 할 수 있는지, 민주노동당은 어떻게 나서야 하는지 적극적으로 고민하지 못하였다. 강건너 불을 보듯 속수무책이라 생각했을 뿐이었다.

    불과 기름이 만난다고 했던가? <바다이야기>가 국가적 참사로 증폭되게 된 것은 상품권 불법환전과 게임기의 불법 개변조로 도박성이 극도로 높아졌기 때문이다. 작년 7월 이후 경품용 상품권 발행이 급속히 증가한 사실은 이를 확인해주고 있다. 게임산업개발원의 자료에 따르면 2005년 8월부터 11월까지 넉달 동안 상품권 누적발행액은 8조9천억원이며 작년 12월부터 올해 7월말까지 8개월 동안 발행액은 21조에 이른다는 것이다.

    3천5백만 유권자의 10%가 넘는 국민들이 국가가 허용한 도박장에서 판돈 30조의 늪에 빠져 가산을 탕진하고 있는 동안 국민을 대표한다는 국회는 과연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2005년도 국회 회의록을 읽다보면 최소한 국회 문화관광위원회에서 만큼은 작년부터 사태의 심각성이 거듭 제기되었던 것 같다. 상품권이 불법으로 환전되면서 과도한 사행행위가 조장되고 도박중독자가 양산되므로 게임경품에서 상품권등 유가증권과 귀금속을 불허한다는 취지의 법률개정안이 2005년 4월 11일 강혜숙 의원등 26명의 명의로 발의되었다. 10월 국정감사에서도 사행성 게임업소의 폐단을 염려하는 의원들의 지적은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경품용 상품권을 금지하자는 강혜숙 의원 법률개정안은 1년을 끌다 폐기처분 되었다. 그 과정은 여전히 미스테리이다. 강혜숙안은 2005년 11월 17일 문광위 전체회의에 상정되고 소위원회로 회부된다. 문광위 법안심사소위는 11월 22일 제2차 회의에서 이를 상정시키고 12월 5일 제3차 회의에서 강혜숙안을 본회의에 부의하지 않기로 즉 폐기하기로 의결한다. 12월 6일의 문광위 전체회의는 이를 재확인한다.

    경품용 상품권을 금지하는 강혜숙안이 지금 제출된다면 국회는 한달 이내 이를 통과시킬 것이다. 그러나 만일 작년 4월 제출된 강혜숙안이 작년 6월 임시국회에서 통과되었었다면 최소한 30조원의 국민재산이 게임산업의 탈을 쓴 도박장에서 탕진되는 일은 막았을 것이다.

    누가 경품용 상품권 폐지법안 통과를 가로막았는가? 문광위 회의자료에 의하면 문광위 전문위원과 문화관광부만이 반대의견을 천명하고 있을 뿐이다. 국회 회의록에는 강혜숙안이 상정되고 폐기되는 전 과정에 걸쳐 어떤 의원도 이 법안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 않다.

    이 법안을 다룬 두 번의 문광위 전체회의와 두 번의 소위원회에서 반대하는 발언도 일절 없고 찬성하는 발언도 일절 없다. 철저한 외면과 침묵 속에 고사 당한 것인가? 회의장 밖에서 처리방침이 합의된 것인가? 회의 속기록만으론 확인할 길이 없다. 공식적으로는 강혜숙안은 폐기되지 않았다.

    문광위 전체회의는 강혜숙안 등 게임관련 4개 법안을 통합하여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안>이라는 하나의 대안으로 제안하기로 결정하였다. 경품용 상품권을 금지하자는 강혜숙안이 경품권상품권 발행을 전제로 하는 게임산업진흥법안으로 <통합>되었다는 것이다. 형식은 문광위대안으로 통합하되 내용은 폐기되어버린 것이다.

    전국토가 도박장화 되어 가던 2005년 가을 문화관광부가 갈팡질팡하는 모습이 점차 역력해진다. 상품권 폐지에는 결사반대하던 문광부가 사태가 악화되자 뒤늦게 게임업에서 발을 빼려는 시도를 계속한다. 그리하여 게임산업진흥법안을 심의하는 과정에서 문광부는 <바다이야기>등 사행성이 높은 게임물은 사실상 도박행위이므로 게임산업진흥법의 대상에서 제외하자고 주장한다.

    대신 사행행위특례법의 적용대상이 되도록 해서 사실상 등록제에서 허가제로, 진흥대상에서 단속대상으로, 감독관청도 문광부에서 경찰청으로 변경하자는 것이다. 정부안으로 제출된 문광부의 이러한 시도는 의원들의 반대로 무산된다. 그리하여 경품용 상품권 발행이 허용된 채, <바다이야기>등도 계속 영업할 수 있는 상태로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안>은 의결 되고 법제사법위원회로 넘어오게 되었다.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안>은 2006년 4월 3일 특별한 쟁점이 없다는 심사보고와 함께 대체토론 없이 만장일치로 법사위를 통과하고 4월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찬성 209인 반대 1인 기권 4인으로 의결되었다. 부끄럽게도 그 법안이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어떤 문제가 있는지도 제대로 알지 못한채 나는 찬성 209인 중의 1인이 되었다.

    9월 1일 정기국회 개회식에서 국회의장은 이 사태와 관련하여 <국회도 자성할 부분이 있다>면서 <이번 사건을 거울삼아 국회가 정책 및 법안의 결과와 영향까지 예측하고 대책을 검토할 수 있도록 입법역량을 선진화해야 하고 그런 점에서 국회입법조사처의 실시는 시급한 과제다>고 말하였다.

    이번 사태를 통해 본 국회의 문제는 입법역량의 문제가 아니다. 입법조사처가 작년에 신설되었다면 관련법안처리가 달라졌겠는가? 문제의 본질은 국민들이 어떤 처지에 놓여 있으며 어떤 고통 속에 어떻게 살아가는지 국회의원들이 제대로 모른다는 사실이다. 유권자의 10% 이상이 합법 도박장에서 수십, 수백만원을 예사로 잃으며 도박중독자가 되어 왔는데 수년동안 이를 몰랐다니 그러고도 국민의 대표라 할 수 있는가? 전교생의 10%가 불량식품으로 식중독에 걸렸는데 이를 모르는 교사가 있을 수 있는가?

    카드대란과 마찬가지로 이번 사태는 정부의 범죄적 정책으로 인해 수백만의 서민대중에게 정신적, 물질적 손실을 입힌, 있을 수 없는 비극이다. 그러나 서민과 함께 웃고 울며 서민의 행복을 위해 일하겠다고 외쳐온 민주노동당 소속의원이기에 이 사태 앞에서 더욱 부끄럽고 가슴 아프다. <민주노동당은 그 때 무엇을 하였는가>라는 물음 앞에 나는 할 말이 없다. 얼굴을 들지 못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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