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전 2030'이 거짓말인 세 가지 이유
        2006년 09월 01일 02:1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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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신 출산 지원, 자녀 양육 지원, 수준 높은 공교육, 건강보험 보장
    공공임대주택 확대, 취업 기회 확대, 실업자 훈련, 연금 수급, 노인요양보험…
    2030년 우리 대한민국의 목표는 함께 가는 희망한국!
    경제력 뿐 아니라 삶의 질에서도 성숙한 선진국가를 만드는 것입니다.
    2030년, 대한민국의 희망찬 미래를 기대해 주십시오.
    <함께 가는 희망한국 VISION 2030> 중, 노무현 정부 관계부처 합동, 2006년

    황금주, 백자주, 송주, 예주, 죽엽주, 이화주, 오가피주를
    앵무잔, 호박잔에 가득 부어
    아, 올리는 모습, 그것이 어떠합니까?
    유영 도잠 두 선옹의, 유영 도잠 두 선옹의
    아, 취한 모습, 그것이 어떠합니까?
    <한림별곡> 중, 한림제유, 1216년

    노무현 정부의 역작이랄 수 있는 <함께 가는 희망한국 VISION 2030>를 보고 있자니, 뜬금없게도 박정희 시절 반상회보가 생각난다. 세월이 흐르고 생활이 윤택해진만큼 정부 홍보책자가 두툼해지고 세련되어지기는 했지만, 거기서 말하고자 하는 바나 풍기는 이미지는 예나 제나 그대로 판박이다.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국민소득 얼마, 라는 구호 뒤에 느낌표 찍는 것도 그렇고, 만화로 그려진 등장인물 옆에 찬란한 숫자와 그럴듯한 제도가 친절하게 뒤따르고 있는 것도 그러하다. 무지개 아래 사슴 뛰노는 풍광의 박정희 시절 반상회보보다 좀 나아진 게 있다면, 밝게 웃는 어린애가 먼 곳을 가리키는 표지 그림 정도랄까. 그 아이가 가리키는 손가락 끝을 보니 아득한 허공이다.

       
    ▲ 비전 2030 홍보 브로셔

    1. 짬뽕은 레디앙의 먹거리

    <비전 2030>은 대단히 훌륭하다. 가슴이 설렐 정도다. 2030년이 되면,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8만4천 불, 국가경쟁력은 세계 10위(2005년 일본은 21위), 삶의 질은 10위(2005년 미국은 14위, 일본은 35위)가 된다. 2030년의 한국에 비하면, 미국·일본·프랑스는 제3세계 후진국이다.

    당연히 살만한 세상이 된다. 능력과 의사가 있으면 누구나 일할 수 있고, 파업으로 인한 근로손실일수는 지금의 1/4로 줄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 조성된다. 육아비용 부담은 절반으로 줄고, 과외는 없어지고, 공공임대주택이 세 배 늘고, 국민연금 받는 노인이 네 배 늘고,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율은 100%가 된다.

    어떻게 해서 그리 아름다운 세상을 이룰 수 있을까? 물론 개혁을 통해서다. M&A 및 외국인 투자 활성화, 기업규제 완화, 교육시장 개방, 소규모 학교 구조조정, 공공기관 지배구조 개선, 자발적 복지체제 구축, 사회보험 적정 부담·적정 급여, 유연근로 시스템 확대, 혁신도시 건설, 동북아 금융·물류 허브, FTA 체결 확대, 경제자유구역 활성화….

    신자유주의로 ‘사회복지 선진화’를 이루겠다는 말이다. 노무현 정부의 귀감이자 사표(師表)인 삼성경제연구소와 함께 내놓은 보고서이니, 안 봐도 비디오 아니겠는가.

       
    ▲ 노무현 대통령과 한명숙 국무총리가 30일 비전2030 보고회의에 앞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사진=국정브리핑)
     

    노무현 정부가 하늘처럼 떠받드는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언제나 앞에 서는 나라들-핀란드, 캐나다, 아이슬란드, 덴마크, 스웨덴은 100여 년 동안이나 사회민주주의 노선을 견지해온 나라들이다. 심지어는 미국조차도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독점 규제와 소득세를 통해, 싱가폴은 강력한 국가개입을 통해 지금의 경제를 이룬 것이다. 그런데 <비전 2030>은 사민주의 100년을 넘보면서, 미국이 불과 20년 전부터 하고 있는 방식을 흉내 내고 있다.

    박정희가 기획하고 남한 인민이 함께 꿈꿨던 “잘 살아보세”는 그 후과가 어떠했든 대개 이루어졌다. 그것은 국가자본주의라는 일관된 기조와 경제개발5개년계획과 같이 치밀한 집행 계획 덕분이다.

    이에 비해 노무현 정부의 <비전 2030>은 그 원류가 어디인지, 어떤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지를 도저히 알 수 없는 잡탕이다. 레디앙이야 ‘짬뽕 한 그릇’ 먹고도 살 수 있지만, 나라의 미래가 짬뽕이어서는 곤란하지 않을까?

    2. 증세가 문제가 아니다, 조세역진이 문제다

    <비전 2030>은 구체적인 재정 투자 계획을 밝히지 않고 있다. 이처럼 거대한 계획에 얼마나 돈이 들지를 정확하게 계산하기가 어려운 것은 당연하지만, <비전 2030>이 재정 계획을 밝히지 않은 것은 그런 이유가 아니다.

    기획예산처 간부는 “재원 소요는 복지 수준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먼저 이뤄져야 결정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경제 관료라서 잘 모르는 모양인데, 복지는 합의나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 헌법에 정해진 국가의 의무다. <비전 2030>으로 인하여 대한민국 국가와 국민은 졸지에 “1만 원만 더 내시면 열 가지가 더 보장돼요”라고 유혹하는 보험영업사원과 가입자 처지가 되고 말았다.

    <비전 2030>은 2010년까지는 증세 없이 재원을 확보할 계획이다. 본격적인 재정 투자에 앞서 제도 개혁을 먼저 하고, 필요한 경비는 세입 세출을 조정해서 마련하겠단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그 제도 개혁과 세입 세출 조정을 통해 조달할 재정은 고작 4조 원이다.

    조세는 재원을 조달하는 것 뿐 아니라, 그 자체로써 분배를 개선하고 경제를 운용하는 기능을 한다. 아래 그래프를 보면 과세 전과 후의 지니계수가 스웨덴에서는 43%, 독일에서는 42% 변화하는데 비해, 한국에서는 6%에 지나지 않는다. 소득 대비 납세율을 따져보면,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납세율이 가장 부자들보다 7~8배나 많은 ‘거꾸로 누진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가 한국이다.

       

    이 상황에서 4년 동안 4조, 연 1조씩의 세입 세출을 조정하겠다는 것은 200조쯤 되는 국가예산의 0.5%를 개선하겠다는 것이고, 지니계수 개선율을 6.5%에서 6.6%쯤으로 눈꼽만큼 올리겠다는 말이다.

    현재와 같은 조세역진이 최단 4년, 어쩌면 24년 동안 계속된다면, 빈부격차가 더 심화될 것은 너무도 뻔하고, 결국은 보호적 지원적 복지 지출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정부가 추계하는 1100조 원이 아니라, 1경 원을 쏟아 부어도 ‘안전하고 기회가 보장되는 사회’를 이룰 수 없다.

    노무현 대통령은 “<비전 2030>이 구체적 재정 뒷받침 없는 정당의 선거공약집 수준으로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정부가 작성에 참여했다”고 말했지만, <비전 2030>은 휘황찬란한 미래-공약(空約) 만을 떠벌리는 한국 보수정치의 관습헌법을 수호하고 있다.

    3. 대통령으로서도 지키지 않은 공약! 노무현 처사의 무협신공?

    <비전 2030>이 그리는 미래상의 상당 부분은 2002년 겨울, 대통령 후보 노무현이 이미 밝힌 것이다. 어떤 것은 거의 그대로이고, 어떤 것은 목표 수치를 올려 잡은 것이다. 그렇다면 그 공약만 제대로 지켜졌다면, 지금 우리 국민은 <비전 2030> 비슷하게 살고 있어야 한다.

    대통령 후보 노무현은 7% 경제성장을 공약했다. 노 대통령 취임 이후 평균 경제성장률은 4%다. 줄이겠다던 국채는 133조 원에서 248조 원으로 되려 늘었다. ‘70% 중산층 시대’를 공언했지만, 이대로 가면 70%가 빈곤층이 될 지경이다. 스크린쿼터 사수, 국가보안법 폐지, 국민연금 납부율 유지 같은 공약은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다.

    대한민국 최고의 권력을 가지고서도 불과 3년 반 전의 공약도 못 지키는 노무현 정권이 야인으로 지낼 24년 후의 미래를 꿈꾸는 이유는 무엇일까? 노무현은, 전두환처럼 일해재단에 들어 앉아 수렴청정할 꿈을 꾸는가? 3천 리짜리 파도를 일으키며 9만 리를 난다는 붕(鵬)을 꿈꾸는가?

    2030 이후?

    강성한 몽고에 위협당하고, 무신에게 억눌리던 고려 문인들은 저희들끼리 모여 앉아 장자·노자·이백·두보·시경·서경·주역·춘추를 다 모아놓으면 얼마나 좋을까를 노래했다. 부시·김정일·한나라당에 업신당하고 민중에게 버림받은 한국의 자유주의자들은 미국 신자유주의와 스웨덴 사회주의, 네덜란드 노동당의 국가계획과 미국 민주당의 해밀턴 프로젝트를 죽 늘어 놓으면, 그 얼마나 아름답겠냐고 읊조리고 있다.

    미국 학자가 쓴 『인류의 미래사』라는 소설에 따르면, 한국은 세계 6대 강국에 진입하여 G6의 멤버가 된다. 언제쯤? 2030년에! 그리고 2044년에 3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개전 1년 만에 지구인의 70%가 죽는다. <비전2030>은 3차 세계대전 이야기는 빼놓았다. 국민이 걱정에 떨지 않게 하기 위한 배려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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