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위기를 향한 첫걸음 내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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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01월 30일 01:0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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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융-산업 분리의 전사(前史)

    1929년의 10월 24일 뉴욕 월가의 뉴욕주식거래소에서 주가폭락이 시작했다.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주식을 내다 팔려 쇄도했으나, 정작 주식을 사려는 사람의 자취는 사라졌다. 전 세계에 걸친 장기적이고도 혹독한 경기 침체의 서막이었다.

    노동인구의 25%가 실업자가 되었고, 잠 잘 곳 없는 사람, 굶주린 사람, 절망해버린 사람들이 거리에 넘쳐나기 시작했다. 마치 유령처럼 떠돌던 자본주의의 종말이 현실로 다가온 듯했다.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혹독했던 대공황(Great Depression)의 시작은 이렇게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생산, 금융, 유통 등 모든 경제시스템이 한순간에 붕괴되었던 1930년대 대공황. 그 원인이 과잉생산에 의해 것이든, 금융시스템의 허점에 의한 것이든, 당시 자본주의 경제학자를 포함한 많은 정책 전문가가 내세운 대공황의 해법 중 하나는 이른바 은행-산업 간에 직접적 연계를 분리하는 것이었다.

    은행과 산업의 분리는 ‘충격’이 확대되고 ‘공포’가 깊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자생적인 조치 중 하나였다. 당시 은행들은 아무런 규제 없이 주식에 투자를 할 수 있었는데, 이러한 금융시스템은 일부기업의 지급불능이 신용거래 관계가 있는 다른 기업 및 투자자에게 연쇄적으로 손실을 발생시키고 금융중개기관인 은행을 통해 경제 전반으로 확산되는 가능성을 항시적으로 내재한 것 있었다.

    은행의 지급불능 사태에 겁먹은 예금자들이 거래은행으로 몰려 환매를 요구하거나 예금청구를 하는 경우 그 공포는 현실화된다. 즉 은행과 산업의 분리는 ‘거품’이 일시에 꺼지는 금융공황 사태를 막아보기 위한 안간힘이었던 셈이다.

       
    ▲ 지난 1월 9일 금융인 간담회에 참석하여 인사하는 이명박 당선자 (사진=뉴시스)
     

    금산분리가 제도로 형성된 것은 1933년 글래스-스티갈 법(Glass-Steagall Act)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법은 은행이 증권회사를 통해 기업의 주식을 보유할 수 없도록 함으로써 은행과 기업을 분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은행과 산업의 결합 소지가 제거된 것이다.

    이러한 분리원칙은 1956년 은행지주회사법(Bank Holding Company Act)이 제정됨으로써 더욱 공고히 하게 된다. 은행지주회사법에서는 은행을 지배하는 회사를 은행지주회사로 정의하고 이 회사는 은행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업무만 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일반 기업과 은행을 동시에 소유할 수 없도록 했다. 이렇게 대공황의 교훈을 통해 형성된 금융과 산업을 분리시키는 제도는 지금까지 세계 모든 국가 금융제도의 근간이 되었다.

    위기로 향하는 이명박 인수위의 첫걸음

    최근 이러한 역사를 가진 금산분리 제도가 요동치고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주요 공약 중 하나인 금산분리 완화 방안을 적극 검토하기로 밝혔기 때문이다. 그 첫 번째 조치로 금융감독조직 개편안을 제시하였다.

    즉, 금융정책과 금융감독업무를 합쳐 ‘금융위원회’를 신설하는 금융감독체제 개편안이다. 이 개편안에서 인수위는 금융감독 정책의 사전규제 완화에 초점을 맞추면서 사후 감독 기능도 강화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이는 대표적인 사전 규제, 즉 ‘금산분리’를 철폐 또는 완화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이명박 당선자는 금산분리 원칙을 풀어 금융산업을 활성화하여 경제성장과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공약을 공공연하게 천명해왔다. 그러나 이것은 대기업의 성장이 경제성장으로 인식하는 대단히 큰 착각이거나 대국민 사기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금산분리의 완화라는 정책은 오히려 우리사회의 경제 질서를 무너뜨리고 금융업의 전문화를 가로막는 일이 될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금융자본은 산업자본을 지원하는 동시에 견제하는 구실을 하고 있다. 즉, 은행은 사전적으로 기업의 신용 및 성공 가능성 등을 평가하여 가장 생산성 높은 사업부터 여신을 제공함으로써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도모한다.

    그런데 이처럼 효율적 자원배분과 상시적 기업구조조정의 주체인 은행이 그 대상인 산업자본이 소유하거나 지배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재벌이 은행을 소유·지배할 경우 계열사가 부실해질 때 은행은 대주주인 재벌기업의 구조조정을 지원할 수 없을 뿐 더러 부실 계열기업에 대한 자금지원이 지속되어 기업구조조정을 지연시키게 된다. 국가적 차원에서 보았을 때, 이는 자원의 낭비이자 커다란 국가경제적 비용을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경험적으로 이러한 사례는 무수히 많다. 1998년 거평그룹은 한남투신을 인수한 뒤 그룹 계열사에서 발행한 채권 등을 매입하거나 무담보 대출을 해주는 방식으로 2,945억원을 부당 지원하였으며, 이후 자금난이 지속되자 계열사의 채권을 편법 조달하여 계열사의 운용자금으로 사용하였다. 그 결과 한남투신은 1998년 말 퇴출되었다.

    현대투신운용은 1998년과 1999년 사이에 현대투신에 시중보다 낮은 금리로 콜자금을 제공, 현대투신의 상품을 고가로 매입하는 방식으로 2,221억원의 부당이익을 제공한 바 있다. 이들 사례는 산업자본이 소유한 금융회사를 사금고화하여 소액주주 및 고객에게 어떻게 피해를 주는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금융회사를 이용한 경제력 집중도 우려된다. 재벌기업들이 금융회사를 소유하게 되면, 다른 경쟁업체에 비해 자금조달이라는 측면에서 절대적인 경쟁력 우위를 확보하게 된다. 이렇게 형성된 경쟁력은 여타 경쟁기업이나 혁신적 중소기업들의 도태로 이어질 것이다.

    즉 은행이 재벌의 사금고화 되고, 소수 지분을 가진 그룹 총수의 지배력과 해강 기업의 시장지배력을 강화하고자 금융회사의 자금을 동원하게 될 것이다. 대표적으로 삼성카드와 삼성생명을 이용하여 그룹 지배력을 유지하고 기업을 확대해 온 삼성이 대표적인 경우다.

    재벌들에게 금산분리의 철폐는 말할 것도 없이 황금알을 낳는 돈벌이 기회임은 분명하지만 국민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이 워낙 커 그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지는 못한다. 하지만 이명박 시대에 재벌들은 그 욕망을 굳이 숨기지는 않는다.

    금산분리 철폐를 주장하는 이들의 논거는 무엇일까? 금산분리 철폐(완화)론자들은 외국 자본에 대한 국내 자본의 역차별을 문제 삼고 있다. 외국 자본은 10%까지 은행 지분을 소유할 수 있지만 국내 자본은 4%를 초과하지 못해 은행들이 외국인 손에 넘어간다는 논리다. 나아가 현실적으로 은행을 소유할 만한 국내 자본은 산업자본(재벌) 밖에 없으니 금산분리를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대로 국내 7개 시중은행 중 3개사(씨티, SC제일, 외환)는 외국인 소유이고, 국민, 신한금융지주, 하나 등 3개 은행의 외국인 지분은 60~80% 대에 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공적자금이 투입된 우리금융을 제외하면, 시중은행이 사실상 외국인 ‘지배’에 있다. 외국자본에 의한 시중은행의 지배는 2002년 3,753억에서 2005년 9,258억으로 외국인 배당이 급증하면서 더욱 심각해진다.

    한 경제의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은행의 사회적 역할을 감안할 때, IMF 경제위기 이후, 시중은행 대부분이 외국자본의 손에 좌지우지되고 있는 현실은 심각한 상황이기는 하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 문제점을 위해 ‘금산분리’를 철폐하겠다는 것은 재벌들의 돈벌이 기회를 제공해주는 동시에 더 큰 위기로 한 발자국 더 다가가는 발걸음일 뿐이다.

    금산분리 완화가 아니라 금융의 공공성 확대가 해답

    외국자본의 국내은행에 대한 지배력이 높아진 상황에서 국내자본과 외국자본이 국내 은행산업에서 상호 견제하며 균형을 이루게 하기 위해서는 국내 금융자본을 육성하고 산업자본이나 외국자본을 활용하지 않기 위해서는 은행의 공공성 확대가 유일한 대안이다.

    즉 외환은행, 우리은행 등 은행들의 소유 관계를 정부지분의 확대, 국민주, 국민연금기금, 종업원주식 소유 또는 퇴직연금의 확대 등 공적 재원으로 다양화시키고 이를 통해 지배구조 개선을 모색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공적 재원의 다양화를 기반으로 하되 동일인은 예외 없이 은행주식을 초과하여 보유할 수 없도록 하여, 동일인이 은행경영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제도적으로 방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은행 소유의 노동자 참여와 다양한 공적 소유의 확대, 현행과 같은 지분비율의 규제를 통해 경제와 금융의 안정성을 도모하고 동시에 서민금융의 물질적 기반을 형성해야 한다. 형식논리에 불과한 역차별론 때문에 경제의 근본 질서를 뒤흔들고 금융산업의 전문화, 서민을 위한 금융이라는 큰 밑그림을 훼손되어서는 안된다.

    또한 서브프라임으로 촉발된 세계 금융시장의 혼란의 와중에 추진 중인 금산분리 완화(철폐)에 대한 논의는 일자리 창출과 경쟁력 강화라는 허울 좋은 명분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없이 화약을 짊어지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위험한 도박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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