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식국독자론을 회고하며
[‘21세기 한국사회 성격’ 탐구] 연재를 시작하며
    2020년 01월 17일 10:3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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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지난 해 [지구화시대 자본주의―‘후기 국가독점자본주의론’] 연재와 관련, 한국 변혁운동의 전진을 위해선 무엇보다도 우리가 지금 서 있는 자본주의가 어떤 단계인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당시 그 연구대상은 21세기 지구화시대의 현대자본주의 일반이었지만, 최종적으로는 한국사회 성격을 규명하는 문제를 염두에 두고 있음을 밝힌바 있다. 이제 그간의 세계 자본주의에 대한 논의를 기초로 지금부턴 우리의 직접적 현실인 한국사회를 살펴보도록 하자. 한국사회에 대해선 무엇보다도 우선 그 ‘성격’에 관한 논의가 시급하다고 본다.

[목차]

1.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론은 여전히 유효한가?
2. 신식국독자론의 두 가지 측면
3. 전기 신식국독자의 전환
4. 후기 신식국독자의 성립
5. 다극화 세계와 신식국독자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론은 여전히 유효한가?

1. 문제제기

현재 학계와 현실 사회운동 진영에서는 최근 한국사회에서 발생하고 있는 제반 문제들을 모두 신자유주의 탓으로 돌리려는 경향이 존재한다. 물론 신자유주의가 현재 자본주의적 지구화를 추진하는 데 있어 주요한 이념과 정책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한국사회도 이 같은 전 세계적인 신자유주의 물결의 한 가운데에 서 있다는 점에서 전혀 잘못된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일반 경제이론과 정책은 한 사회의 구체적 상황을 통하여 관철되며, 그 과정에서 나름의 ‘특수한’ 형식과 내용을 갖게 된다. 때문에 우리는 한국사회의 현실 문제를 단순히 신자유주의 일반의 문제로 돌릴 수만은 없다. 같은 신자유주의의 피해를 입는다고 하더라도 각국의 사정에 따라 그 피해 정도는 달리 나타날 수 있다. 예컨대, 이하의 인용문은 그 같은 사정을 잘 보여 준다.

“정리해고제 법제화의 효과는 미국과는 다른 노동시장 여건에 있는 한국 경제에서 극단적으로 나타났다. 미국은 컴퓨터소프트웨어, 컨설팅, 광고, 영화, 위락산업 등 세계 최강의 서비스 산업을 갖추고 세계 각국의 우수한 인력과 자본을 유입하여 세계 각국에 수출함으로써, 제조업에서 방출되는 인력을 꾸준히 흡수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능력을 결여한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 각국은 해고가 까다롭고, 노동시간 단축과 임금억제를 통해 고용문제에 대처한다. 생산적 서비스 산업이 대단히 취약한 한국에서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의 완성 결과, 비정규직 노동자 수가 급증하고 노동자 간 차별이 확대되었다.”(1)

위의 인용된 실례에 대해 어떤 이는 미국과 유럽은 선진국이기 때문에 한국과는 사정이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 그건 맞는 말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이는 신자유주의가 도입되는 방식이 나라마다 다르다는 것을 뜻하며, 또 그 결과도 다르게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같은 신자유주의 하에서 현재 한국사회의 심각한 ‘비정규직’ 문제는 세계 모든 나라의 보편적인 현상이기보다는 한국의 특수한 상황이 반영된 측면이 크다. 그럼에도 일부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자들은 이 같은 사회 자체의 구체성을 주시하지 않은 채 시종 신자유주의 탓만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현재 한국사회의 문제인 대외의존도의 심화, 국내시장의 지속적 위축, 국내 산업연관의 파괴, 계층 간 빈부격차의 심화는 비록 그것들이 신자유주의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손 치더라도, 단순히 신자유주의 일반의 현상으로만 파악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이 있다. 한편에선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와 같이 세계적인 다국적기업으로 발전한 국내 기업들이 존재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대규모 차별화가 진행되고 있는 현실은, 선진국이나 개발도상국을 막론하고 다른 나라에선 쉽게 찾아보기 힘든 한국적 현상으로 보인다. 이 같은 현상은 현재 학계나 운동진영에서 유행하는 것처럼 단순히 ‘신자유주의’라는 이론 틀만 가지고 한국사회를 진단하는 것의 한계성을 보여준다. 위의 비정규직 문제처럼, 왜 신자유주의의 탄생지인 미국보다도 유독 한국에서 그 자유주의적 원칙이 가장 극명하게 관철되는 지를 설명할 필요가 있다.

이 같은 문제의식이야말로 필자로 하여금 비록 지금은 잠시 무대 뒷전에 있지만 한 때 한국 변혁운동진영을 휩쓸었던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 이론에 대해 다시 관심을 갖게 하는 이유이다. 필자는 그것이 현재 신자유주의론이 채워주지 못하고 있는 지구화시대의 한국사회 제반 문제에 관한 인식상의 공백을 일정하게 메워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2. 사회구성체 논쟁의 회고

1980년대 학계와 사회운동진영을 들끓게 만들었던 사구체 논쟁은 1985년 2.12총선 후 민주화운동청년연합 내에서 이루어진 이른바 민주변혁논쟁으로부터 그 최초의 발단이 찾아진다. 그것은 흔히 CNP논쟁이라고도 불리는데, CNP논쟁은 시민혁명(CDR),민족혁명(NDR), 계급혁명(PDR) 등 세 가지 운동노선을 둘러싼 논쟁을 뜻한다. 이 같은 사회운동진영에서 처음 실천문제를 둘러싸고 발생한 논쟁은 이후 학계에도 반영되어 사회구성체 논쟁으로 심화 발전하게 되었다. 사회구성체 논쟁이 시작되기 직전 당시 진보학계에서는 박정희 통치 집단과 제도권의 ‘근대화론’에 대한 비판 작업으로서 종속이론이 먼저 도입되었으며, 다시 이에 대한 재비판이 진행되는 등으로 맹아적 형태의 사구체 논쟁이 진행되고 있었다. 진보학계에서 사회운동진영의 논쟁에 영향을 받아 사구체 논쟁의 본격적 단초를 연 것은 1985년 가을에 발행된 <창작과 비평>에 나란히 실린 이대근과 박현채 두 사람의 글이었다. 그중 전자는 주변부자본주의론을 옹호하였으며, 후자는 국가독점자본주의 입장에서 그것을 비판하였다. 이로부터 사구체 논쟁의 제1단계가 정식 시작되었다.

위 두 사람의 글이 발표된 이후 국독자론과 주변부자본주의론을 둘러싼 논쟁은 학계와 사회운동진영 전반으로 확대되었다. 주변부자본주의론은 일반적으로 수출주도형 경제개발에 따른 지나친 대외의존성과 경제잉여의 유출, 그리고 이에 따른 결과로써 서구 선진공업국에 대한 주변부화를 지적하는 등 한국의 제3세계적 특수성을 강조하는 이론으로 평가되었다. 이에 따라 이 이론은 ‘중심부-주변부’ 이원구조로부터의 탈피를 변혁의 중심적 과제로 제기하였다. 이에 반해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은 자본주의에 관한 정통 정치경제학의 시각을 빌려 한국사회에 있어 자본주의 발전과정의 보편법칙의 관철을 강조하였으며, 한국사회가 최종 극복해야 할 대상은 그 주변부적인 성격보다도 ‘자본주의 자체‘임을 부각시켰다. 이 같은 국독자론의 비판은 주변부자본주의론의 쁘띠부르주아적 계급성의 한계를 극복하는데 일정 기여하였으나, 다른 한편 이 이론은 후자가 가졌던 긍정적 관점인 한국의 대외종속적인 경제성장의 문제점을 간과한 측면이 있었다. 이리하여 한국이 정상적인 자본주의사회가 아님을 강조하는 ‘식민지반봉건사회론'(약칭 ‘식반론’)의 곧 이은 반격이 유도되었다.

당시 식반론을 학계에 공식적으로 제기한 것은 1986년 ‘한신 학보’에 실린 정민의 글이었다. 식반론은 한국이 기본적으로 대외종속적인 사회이므로 정상적인 자본주의이론을 가지고서는 분석할 수 없으며, 한발 더 나아가 이 이론은 한국사회의 자본주의적 성격을 부정하면서 한국은 여전히 봉건적 유제가 강하게 잔존하는 식민지반봉건사회라고까지 주장하였다.

식반론의 이 같은 문제제기에 대해 위의 국독자론은 한국사회가 그간 자본주의적 발전을 이루었으며 나아가 국가독점자본주의단계로까지 진입하였다는 자신의 기본적 입장을 옹호하였다. 이와 함께 국독자론은 식반론이 제기하는 문제의 긍정적 요소를 일부 수용하였는데, 즉 한국사회에 있어 ‘종속’ 문제가 심각하게 존재하며. 이 때문에 한국의 국독자는 서구의 일반 국독자와는 달리 신식민지적인 성격을 갖는 국독자 즉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약칭 ‘신식국독자’)라는 것이었다. 이 같은 신식국독자의 기본적인 특징은 재벌 등 독점이 발전할수록 이에 비례하여 한국경제의 종속 또한 심화 된다는 것이며, ‘독점강화, 종속심화’는 바로 이 점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테제로써 유명하다. 이리하여 논쟁은 ‘식민지반봉건사회론’과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론’ 양자의 대립으로 전환하면서 제2단계가 시작되었다.

이들 간의 논쟁은 한국사회의 자본주의적 발전을 비교적 정확하게 반영하였던 신식국독자론의 우세로 귀결되면서 이를 중심으로 한 때 정리되는 듯하였다.(2) 그러나 1980년대 후반 들어 식반론을 대신해서 새로운 세력이 논쟁에 가담하면서 논쟁구도는 좀 더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된다. 이들 중 하나는 한국사회의 구조적 ‘종속성’을 부정하고 한국자본주의의 지속적 발전 가능성을 제기한 ‘중진자본주의론’ 이었다. 다른 하나는 서구 사회민주주의이론을 한국사회에 그대로 적용하면서, 혁명이 아닌 개량적 방식에 의한 한국사회의 개조 가능성을 제기한 ‘한국식 사민주의론’ 이었다. 이들의 등장에 따라 앞서의 논쟁구도가 다시 바뀌었다.

여기서 후자의 이론들이 새롭게 제기된 배경을 보면, 1987년 6월 항쟁을 통해 ‘직선제 쟁취’라는 일정한 정치적 목표와 사회적 개혁이 달성되고, 특히 마침 이 무렵 한국경제가 거둔 성과가 크게 작용하였다. 한국경제는 1980년대 들어 제5공화국 하에서 실시된 구조조정을 통해 1970년대 후반 이래의 심각한 재생산구조 상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후 1980년대 후반 들어 마침 ‘3저 호황'(저유가·저달러·저금리)의 기회를 맞아 상당한 고도성장을 이룩하게 되었다. 이로써 한국이 1960년대 초반부터 실행해온 산업화 전략은 마침내 일정한 결실을 거두고 일차적 마무리를 짓게 되었다.

이상의 경제적 성과를 바탕으로 1990년대 들어 한국경제는 계속해서 세계적인 자유화와 개방화의 물결을 타고 다른 개발도상국에 대한 직접투자를 수행하는 수준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간 서구 선진국들만 수행하는 것으로 여겨졌던 ‘자본수출’이 한국에 의해서도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사실 이는 지금에 와서 보면 그리 놀랄만한 일은 아니었다. 자본수출의 의미가 종전 후 크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생산력 수준의 전반적 발전에 따라, 그것은 이제 과거 제국주의의 본질적 특징으로부터 자본주의국가의 일반적 행위로 변화되었다. 따라서 자본수출 국가의 반열에는 선진국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 산업화를 이룬 개발도상국도 낄 수가 있었다. 그렇지만 당시 한국의 자본수출은 학계와 사회운동진영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자본수출을 수행하는 한국경제는 신식국독자론이 그간 주장해온 종속성에 대해 학계와 현실운동진영 내 일부 인사들의 강한 의구심을 자아냈다. 한국에서 독점자본이 발전할수록 그만큼 종속이 심화되고 낮은 생산력수준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주장해온 신식국독자론은, 예상 밖의 한국자본주의의 발전 현상을 일시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한 채 적절한 이론적 해명을 주지 못하였다. 때마침 그 즈음 또 다른 외부로부터의 거대한 사건이 신식국독자론을 강타하였다. 그것은 다름 아닌 소련과 동구권의 붕괴였는데, 이는 사실상 앞서의 새로운 이론적 도전자들 보다 훨씬 강력하고 결정적이었다. 이 때문에 신식국독자론은 1990년대 들면서부터 더 이상의 흡인력을 갖지 못하고 점차 낡은 이론으로 취급되면서 어느 사이엔가 학계와 운동진영에서 자취를 감추게끔 되었다.(3)

그렇다면 신식국독자론은 과연 1980년대 후반 이후에는 한국사회의 변화된 현실을 설명하지 못하는 낡은 이론이며, 심지어는 애초 근본적인 오류를 지녔던 잘못된 이론이었을까? 필자는 그에 대해 얼마간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몇 가지 부분적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당시뿐만 아니라 지구화시대인 오늘날에 있어서도 한국사회를 이해하는데 있어 적지 않은 유용한 이론적 틀을 제공한다고 본다.

먼저, 신식국독자론은 1980년대 당시 한국변혁운동의 객관적 현실인식에 있어 커다란 공헌을 하였던 사실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정통 정치경제학적 방법론을 한국사회의 분석에 사용하였던 데서 볼 수 있듯, 신식국독자론은 ‘과학적 사회주의’ 이론인 맑스주의와 한국사회라는 구체적 현실이 결합된 산물이었다. 즉 그것은 맑스주의라는 일반이론을 한국사회라는 구체적 현실에 창조적으로 적용함으로써 생겨난 이론이었던 것이다. 때문에 그것은 서구 좌파진영에서 유행하던 국가독점자본주의 이론과는 다른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라는 새로운 ‘특수 이론이라 볼 수 있다. 이 이론은 매우 한국적이며 독창적이라고 할 수 있으며, 지금까지 세계 그 어느 곳에서도 이처럼 한국만큼 심화된 신식국독자론을 목격하기는 쉽지 않다.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 수 있다. 왜냐하면 국제적으로 볼 때 그 수많은 개발도상국들 중에서 비록 종속성을 갖긴 하지만 한국처럼 산업화에 성공한 나라는 별반 찾아보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이론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그 전까지만 하더라도 국지적인 전술 차원이나 혹은 기껏해야 과학적 인식이 결여된 추상적 전략 수준에 머물던 한국의 변혁운동은, 처음으로 사회 전반에 대한 객관적이고 총체적 인식이 가능케 되었으며 그에 기반한 과학적 전략이론을 펼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이론적 성과는 자연히 당시 현실운동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데 기여 하였다. 1987년 6월 항쟁과 연이은 7~8월 노동자 대투쟁의 성과는 이 같은 변혁이론의 발전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다음으로, 한편에선 이처럼 중요한 공헌을 하였음에도 신식국독자론이 점차 쇠퇴하게 된 되에는 그 자체 이론적 결함이 적지 않았음을 부정할 수 없다. 신식국독자론은 그 당시 완벽한 논리체계를 갖춘 완성된 이론이기보다는, 그 논쟁 상대인 주변부자본주의론과 특히 식반론과의 격렬한 이론투쟁을 거치면서 막 형성되는 과정에 있었던 ‘젊은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4) 그 때문에 구식민지 시대부터 수십 년 간의 역사를 지니면서 이미 충분히 체계화된 식반론과 비교할 때 아직 미성숙한 여러 가지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예컨대, 원래 신식국독자론은 한국사회가 갖는 양 측면, 즉 한국사회의 국가독점자본주의적 측면과 신식민지적 측면을 인식 상에 있어 동시적으로 반영하는 이론이어야 한다. 그 때문에 한국사회를 인식함에 있어 전자(국독자적 측면)가 의미하는 바의 생산력 발전에서의 성과를 직시하고 그 성공 원인을 밝힘과 함께, 이후에도 그 같은 발전의 상당정도 지속 가능성을 열어두어야만 하였다. 그와 함께 다른 한편 그 신식민지성의 기본적 제약성 또한 올바로 이해되어야 했다. 그리하여 그 ‘계기’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구조화되는지가 설명되어야만 했다. 즉 국독자적 측면에서의 생산력 발전의 가능성이 인정되면서도, 그 같은 과정이 종전 후 국제질서 하에서 어떻게 왜곡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지가 동시에 규명되어야만 했다. 당시의 신식국독자론은 아쉽게도 이들 양 측면을 올바로 결합해 내는데 까지는 이르지 못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신식국독자론은 본래 자신의 이론 틀이 가진 발전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그 가치를 충분히 발휘하지 못한 채 중도 하차하고 말았다.

신식국독자론의 이 같은 문제점은 크게 보면 당시 한국 변혁운동진영 전반의 이론적 한계와 관계된다고 보인다. 사실 신식국독자론이 요구하는 바 언뜻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국가독점자본주의와 신식민지 양 측면을 동시에 결합하는 과제는 생각만큼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이를 위해선 먼저 서구의 고전적 국독자에 대한 충분한 인식이 선행되어야 할뿐만 아니라, 현대제국주의에 대한 정확한 이해 또한 필요하다. 그리고 이 같은 인식에 도달하기 위해선 그와 관련된 객관 현실이 먼저 존재하면서 충분히 자신을 드러내야만 한다. 하지만 종전 후 국가독점자본주의와 현대제국주의는 필자가 지난 [지구화시대 자본주의―‘후기 국가독점자본주의론’] 연재에서 밝힌 것처럼 중간에 전기에서 후기로의 변모를 경험하였다. 특히 1980년대 후반에 발생한 냉전체제 붕괴 이후의 새로운 국제질서는 장기간 불투명한 상태에 놓여있는 실정이다. 이렇게 볼 때 신식국독자론의 이론작업을 위한 주객관적 조건은 당시 변혁운동진영에 있어서는 우호적이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 같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신식국독자론이 갑자기 진보학계와 현실운동진영에서 용도폐기 된 데에는 앞서 지적하였듯이 무엇보다도 당시 소련과 동구사회주의권 붕괴의 영향이 컸다. 국제 사회주의운동이 1990년대 들어 역사적 퇴조기에 접어든 것이 누구의 눈에도 명확해 지자, 국내의 많은 활동가와 이론가들은 자신의 기존 신념을 믿기지 않을 만큼 쉽사리 바꾸었다. 이 같은 비관적인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신식국독자론이 새로운 도전자들인 중진자본주의론과 한국식 사민주의론이 제기하는 문제들에 대해 제대로 검토도 수행해보지 못한 채 무대에서 사라져 갔던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계속)

[본문 주석]

1. 정성진 외, 2006, <한국 자본주의의 축적체제 변화:1987-2003>,pp100-101,한울아카데미. 이와 함께 다음 인용문도 참조. “유럽의 경우에도 우리나라보다 훨씬 덜하지만 과거에 비해 비정규직 일자리가 증가했어요. 그럼에도 한국만큼 중요한 사회문제로 부각되지 않는 이유는 복지제도가 잘 되어 있어서입니다. 직장에서 정규직만큼 대우 받지 못하더라도 기본적인 시민권 차원에서 국가가 보편적 복지 혜택을 보장하니 큰 문제가 안 되죠.”장하준 외, 2012,<무엇을 선택할 것인가>,p372,부키.

2. “어쨌든 학계에서 다수의 지지를 받은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론이 상당한 수준의 내적인 정합성과 논리적 완결성을 보였던 반면….” 김진업 편,2001,<한국자본주의 발전모델의 형성과 해체>,p54, 나눔의 집

3. 신식국독자론의 쇠퇴에는 이 같은 사정 외에도, 조직 측면에서 보자면 그 이론에 대한 가장 큰 현실 지지 세력이었던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약칭 사노맹)의 붕괴도 크게 한 몫 하였다고 할 수 있다. 사노맹은 해방 후 한국사회에 존재했던 전위조직 중 가장 규모가 컸는데, 정조직원과 후보조직원 및 적극 지지자를 포함하여 전국에 1000여 명의 회원이 있었다. 이와는 별도로 학생운동에는 민학련과 전학련 등 학생조직이 외곽조직으로 따로 건립되어 적지 않은 대오를 형성했다. 이들은 신식국독자론에 입각한 NDR론을 자신의 변혁전략으로 채택하였으며, 그와 함께 한국 최초로 사회주의 이념에 대한 ‘공개적 대중선동’을 실천하였다. 사노맹은 1989년 정식 출범한 후 1992년 까지 박노해·백태웅 등 중앙의 주요지도부가 차례로 검거됨으로써 사실상 조직이 와해되었다.

4. 식신국독자론의 발전에 있어 중요한 사건은 1987년 <한국 사회의 성격과 노동자계급의 임무>(약칭 <성격과 임무>) 의 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문건은 당시 정파조직인 노동자해방투쟁동맹의 조직문건으로 작성된 것인데(후에 이정로(실명 백태웅)가 저자인 것이 밝혀짐), 당시 조건에서 비합법 팜플렛 형식으로 출간되어 널리 유포되었다. 이 문건에는 한국사회구성체 성격에 대한 신식국독자론적 입장이 비교적 체계적으로 서술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에 입각한 ‘2단계 연속혁명론’으로서의 NDR 전략을 담고 있다. 이 문건의 출현은 곧 이어 타 정파의 이에 관한 비판 문건의 출현을 낳는 등 관련 논의를 활발하게 촉발시켰다. (편집부 엮음, 1988,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 논쟁Ⅰ>,벼리 참조) 한편, 진보학계에서는 윤소영과 이진경 두 사람의 공헌이 컸다. 예컨대, “학계에서 초기 국독자론을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론으로 전환시키는 데에 큰 몫을 한 이는 윤소영과 이진경이었다. 전자는 박현채의 국가독점자본주이론을 자본주의발전의 역사적 관점으로 해석하면서 현실상황에서의 재해석을 논의했고, 후자는 사회구성체론 자체의 방법론적 재검토를 통해서 기존 주장들의 이론적 불철저성을 비판하였다(박현채/조희연, 1989:497)”. <한국자본주의 발전모델의 형성과 해체>,p54. 당시 진보학계의 신식국독자론의 이론적 진척상황과 관련해서는 다음 윤소영 교수의 글 또한 참고가 된다. “신식국독자론을 체계적으로 구성하는 데 필요한 이론적 작업들이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이론적 작업의 성과를 집약한 최근의 성과는 아마도 <현실과 과학> 제2집(1989년―주)일 것이다. 그 책에서는 국독자론 자체와 신식국독자론에 대한 이론적·이론사적 검토, 그리고 한국사회를 신식국독자론으로 파악했을 때의 계급분석의 문제가 체계적으로 다루어져 있으며, 나아가 약간 상이한 입장을 내포하기는 하나 신식민지파시즘론을 신식국독자론과의 연관 속에서 검토하는 논문도 포함되어 있다.……위의 책은 이제 신식국독자론이 하나의 체계적인 이론들로 구성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편집부 엮음, 1989,<국가독점자본주의론 연구-제1분책 드라길레프 논쟁>, 벼리, p9.

필자소개
김정호
북경대 맑스주의학원 법학박사 , 노동교육가, 현재 민주노총 정책연구원 정책자문위원, 맑스코뮤날레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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