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년과 진보정치,
    ‘청년의 눈’으로 바라보고 진단하다
    [좌담] 정의당 청년·청소년 활동가 4인의 고민
        2019년 12월 31일 12:0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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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은 유난히 대형 이슈가 많았던 한 해였다. 민주적 개혁주의자를 자청했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로 드러난 586세대의 민낯과 지난해에 이어 재소환된 공정 담론, 여성 연예인들의 죽음으로 본 젠더 문제, 제주도 예멘 난민 사건으로 드러난 한국 사회의 난민과 이주민 혐오까지. 그런데 이 많은 이슈들에 진보정치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거나 실종됐다.

    <레디앙>은 지난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의 한 카페에서 청소년, 청년 4인 좌담회를 열고 다사다난했던 올 한해를 ‘청년의 눈’으로 되돌아보고 2020년 나아갈 방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노서진 정의당 청소년위원회 위원장, 왕복근 정의당 서울시당 부위원장, 이도영 정의당 당원모임 ‘모멘텀’ 운영위원, 한민호 정의당 강서구위원회 지역위원장이 함께 했다. 좌담 사회와 정리를 레디앙 유하라 기자가 맡았다. 

    청소년, 청년 4인은 조국 사태, 진보정치의 부재, 설리·구하라의 죽음으로 드러난 여성 문제와 이주민·난민 문제 등을 올 한 해 가장 기억에 남는 이슈로 꼽았다.

    “조국 사태는 586세대를 중심으로 한 기성세대가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봤고 그 안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지식인이라고 했던 이들이 어디까지 밑바닥을 보여줄 수 있는가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왕복근 부위원장)

    “진보정치의 역할과 이야기, 나아가야 할 방향이 보이지 않는 한 해였다. 노동 문제에 있어서거대 양당의 목소리만 논의되고 있다. 그 안에서 진보정당인 정의당의 목소리는 작거나, 없었다.” (한민호 위원장)

    “설리부터 구하라까지 많은 여성연예인의들의 죽음은 생각할 지점이 많은 문제다. 올 한 해 불법촬영에 대한 집회 등 여성의 목소리를 내곤 있지만 현실에서 청년 여성들이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노서진 위원장)

    “난민 문제나 홍콩민주화 운동 등 국제적인 문제로 인해 표상되는 한국 사회의 모습에 대해 진보정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소수자 중에도 더 많이 소외돼온 이주민, 난민 문제에 대해 진보정치가 어떤 목소리를 내야 할지 생각하게 된 한 해였다.”(이도영 운영위원)

    조국사태에 관한 그들의 시선
    “386세대의 윤리적 파산”
    “불평등한 구조 해소되지 않는 한 조국 사태는 또 벌어진다”

    유하라 <레디앙> 기자 : ‘조국 사태’에 대해 각자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노서진 : 7080년대 향수에 젖어있는 86세대들이 민주화를 위해 열심히 투쟁했던 건 인정하지만, 지금의 그들은 기득권이다.

    이도영 : 복잡해서 한마디로 규정하기도 힘들다. 불평등 문제에 더해 다층적이고 복합해진 사회 속에서 계층 갈등이 파편화된 문제까지. 이런 것들을 함께 보여준 한국 사회 모순의 총집합이다.

    한민호 : 조국 일가의 불·편법적 문제나 검찰개혁 등도 중요하지만 핵심은 경제 이너서클 안에 있는 사람들끼리 당겨주고 올려주는, 사회·경제적 불평등한 구조가 가장 큰 문제였다. 정치권은 이 문제에 대해 답하지 못했다. 이 불평등한 구조가 해결되지 않는 한 조국 사태는 언제든 터질 수 있는 사건이다.

    왕복근 : 386세대의 윤리적 파산이라고 본다. ‘우리는 과거에 악과 싸우며 힘들게 살았는데 이 정도는 해도 되지 않나’와 같은 보상심리가 있고, 이는 그 세대가 공유하는 공통적인 윤리적 감각인 것 같다. 지금은 그들의 그 윤리적 감각들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는 시점에 와있다고 생각한다.

    광화문과 서초동 집회 어디에도 청년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서초동은 4050대, 광화문은 5060대만 가는 집회였다. 두 집회 모두 한국 사회 문제에 대해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은 채 총선, 대선의 교두보 정도로 생각하면서 이뤄졌다. 청년들은 불평등한 구조에 대한 목소리를 원했지만 있지만 양쪽 집회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다. 이념 없는 정치의 그 논리가 얼마나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지 보여준 거다.

    공정하지 않은 공정 담론
    진보정치는 공정을 대체할 다른 언어를 만들지 못했다

    노서진 : 조국 전 장관의 자녀가 대학에 들어갈 때 낸 논문, 에세이 등이 문제가 됐는데 그런 것도 그 언저리에 있는 사람들이어야 분노를 할 수 있다. 그 근처도 못가는 비수도권 일반고 학생들에게 그런 문제들은 크게 와 닿지 않는다. 어떤 학생들은 조국 전 장관 자녀와 같은 기회를 아예 가지지 못했다는 것에 분노하고, 반면 자율형사립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나는 인턴을 가도 이 정도만 하는데 조국의 딸이라고 해서 더 좋은 곳에 인턴을 갔다’는 식이다. 분노의 방향 자체가 다르다.

    한민호 : 서울대생의 촛불집회도 같은 맥락이다. 조국 전 장관의 딸이 엄마가 교수로 있는 동양대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증명서를 받아갔다. 그런데 기성세대들이 동양대생들한텐 ‘너넨 (서울대에서) 촛불도 못 들것 아니냐’는 얘기를 했다고 한다. 차별이 몸에 와 닿아야 촛불을 드는 건데 지방에 있는 대학생들은 남의 세계의 일이다보니 촛불을 들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소위 SKY생들과 SKY 진입을 준비하는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 조국 사태로 비롯한 분노의 방향은 다르다. SKY가 주류가 돼 제기한 공정 담론 역시 누군가에겐 공허한 이야기일 뿐이다. 절대다수의 청년들에겐 공정을 대체할 다른 언어가 필요하다.

    모멘텀의 이도영

    이도영 : (조국 사태 이후 벌어진 학생 단위 집회들로) 공정이라는 담론이 얼마나 공허한 기표인지 드러났다고 본다. 서울대와 고려대에서 공정을 요구하며 크게 집회를 했는데, 그것 또한 그 울타리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에게만 제한된 공정이었다.

    고려대 집회 주최자 중 한 명이 세종캠퍼스에 다니는 학생이었는데 ‘너는 우리와 공정하게 경쟁해서 같은 대학에 들어오지 않았으니 빠져라’라고 했다. 공정이라는 담론이 얼마나 그들만의 리그에서 이뤄지는 것인지 잘 보여주는 사건이다. 특히 비수도권이고 입시경쟁에서 밀려나 소위 지방대에 가거나, 입시 자체도 하지 못한 청년 노동자들의 수많은 목소리는 아예 배제됐다.

    노서진 : 공정하다는 시험, 면접은 서열이 나오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그 공정한 시험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모두 공정하게 교육 받았는지, 공정하게 정보를 제공 받았는지 생각해본다면 그건 아니지 않나. 공정하다고 말하는 그 시험은 전혀 공정한 시험이 아니다. 심지어 그런 공정은 기득원이 아닌 사람들을 배제하는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다.

    진보정치는 공정한 판을 새로 짜보자고 얘기할 필요가 있었다. ‘당신들이 공정하다고 말하는 그 공정은 사실 공정하지 않다. 함께 공정한 구조를 만들고 새롭게 얘기해보자’는 의제를 던졌어야 했다.

    이도영 : 진보정치는 공정이라는 담론을 아예 ‘씹고’ 들어갔다. 불공정을 넘어 사회적 불평등 문제를 제시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분명히 현실에 존재하는 계층 갈등을 다 묻어버리고 다 같이 화합해서 잘해보자, 이런 건 진보정치의 방식이 아니다.

    한민호 : 결국 어떤 공정이냐의 문제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문제로 나온 공정도 마찬가지다. 둘 사이의 차이를 메우는 게 정치인데 진보정치는 그런 역할을 전혀 하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의 반노동 정책, 정의당이 실종됐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52시간 상한제 유예, 특별근로기간 인가 범위 확대 등 노동개악이 본격화되고 있다. 이 같은 정부의 반노동정책에 대응하는 원내 진보정당인 정의당에 대한 평가를 물었다. “대응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나요?”라는 질문이 되돌아왔다.

    왕복근 :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은 저성장 상황에서의 재벌에게 무릎 꿇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지금 나온 노동개악 법안은 제3자금지법 있었던 시절의 수준으로 노동조합뿐 아니라 노동단체에 대한 제약을 강하게 거는 내용이라 어떻게 해석해도 노동자 친화적이라고 해석할 방법이 없다. 정의당은 당연히 이런 거에 대해 얘기해야 하는데 논평 정도의 수준으로만 자기들의 역할을 다 했다고 생각한다.

    한민호 : 민주당은 탄력근로제 6개월 연장하자고 하고, 자유한국당은 1년 연장하자고 한다. 탄력근로제에 관해선 두 당의 주장만 보인다. 현행대로 유지하자거나 오히려 축소하자는 노동자를 대변할 목소리가 국회에선 전혀 들리지 않는다. 특정 사안에 입장을 밝히는 것을 넘어 당사자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필요하면 거리에 나가 함께 싸워야 했다.

    물론 선거제 개혁에 다 빨려 들어간 면도 있지만, 선거제 개혁을 하는 이유가 뭔지 생각을 해봐야 하다. 정의당이 거대양당보다 사회·경제적으로 다른 목소리 내는 정당이니까 우리의 목소리를 의석으로 보장하라는 것이 선거제도 개혁의 핵심이다. 정의당이 양당과 다르지 않은 목소리를 내거나 혹은 작은 목소리를 내면서 선거제 개혁의 정당성을 얘기할 수 있을까.

    노서진 : 문재인 정부는 교묘하게 노동개악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개악을 현장 노동자들은 잘 모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나이가 어릴수록 더 모를 수밖에 없다. 정의당이 노동자 정당이라고 한다면, (노동개악을 비판하는) 정의당의 목소리만큼은 현장의 노동자에게 들려야 한다.

    “진보정당, 노동정책이 노동자의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말해줘야”

    여러 계층의 청년이 있듯 청년노동 문제도 하나로 규정할 수 없다. 이들은 노동문제 역시 “세세하고 작은 정책”이 필요하다고 요구한다.

    이도영 : 청년노동은 하나의 단일한 개념으로 묶을 수 없다. 다만 그 안에서도 사각지대가 많다. 근로장학생, 대학원생들 보면 정말 죽을 지경으로 일한다. 그런 문제에 대해 정의당은 관심이 없다.

    서울시당 왕복근

    왕복근 : 예컨대 집에 손 벌리기가 어렵기 때문에 대학교를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울대나 연대, 고대생은 고액 과외를 하지만 서울의 중소대학에 다니는, 가정형편이 어려운 친구들은 아르바이트를 6개월 이상 하다가 그만둬도 학적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실업급여를 받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노동 상담을 할 때 많이 듣는 사례가 ‘최저임금 받으면서 사장이 폭언도 하고 집 설거지 시키고, 주말 봉사활동도 보내는데 회사 그만두면 실업급여 받을 수 있나’다. 대부분 못받는다는 대답밖에 해줄 수가 없다. 개인적으로 얘기할 땐 ‘웬만하면 회사 그만둬라. 한두 달 정도 못 버티면 집에 도움을 요청해라’라고 하지만 대부분 그럴 수 있는 여지도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이게 바로 청년 노동의 문제다. ‘사표 쓸 권리’, 실업부조에 대한 변경이 필요하다. 진보정당은 ‘사표 쓸 권리’를 어떻게 보장할지에 대해 세게 얘기해야 한다. 당신이 어떻게 사표를 쓸 수 있고, 사표를 썼을 때 어떻게 삶이 바뀌고, 무엇을 고민할 수 있고, 앞으로 삶을 어떻게 살지에 대한 시간적 여유를 주겠다고 얘기해야 한다. 노동자 권리 찾기는 당연한 얘기이고, 그것을 넘어서서 노동정책이 노동자의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해 말해줘야 한다는 뜻이다.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핵심 중 하나도 이런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정의당은 ‘반노동적 행위가 이뤄졌다 규탄한다, 시정해라’ 이 정도 얘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형 이슈들에 당연히 대응해야겠지만 지금 정의당은 큰 이슈에 좋은 말 몇 마디 하는 게 전부다. 큰 이슈는 찬반밖에 못하고 복지정책은 (각 정당마다) 대동소이한 정책이 나오는 시대다. 정의당은 작지만 세심한 정책으로 노동자의 삶을 어떻게 바꿀지 고민해야 한다. 문제는 정의당 내에 ‘정책은 쓸모없다’, ‘정책이 선거에 무슨 도움이 되냐’, ‘정책으론 정치가 이뤄지지 않는다’라는 생각들이 있어서 갈수록 정책의 중요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정의당의 정책들을 보면 민주노동당 이후 극히 발전한 게 없다. 이는 분명히 문제제기해야 하는 점이다.

    어느 여성 연예인의 죽음을 보며…
    “우리는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지난해 미투에 이어 가수 설리, 구하라 등 여성 연예인이 연달아 사망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올해도 페미니즘은 한국 사회의 주요한 화두였다. 그러나 정치권에선 여성이 겪는 혐오와 차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은 또 다른 여성들을 죽음으로 몰아가고 생존한 여성들에겐 큰 무력감을 준다.

    노서진 : 설리와 구하라의 사건을 보면서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우리가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였다. 우울했다. 정치와 정책을 얘기하는 게 무슨 소용이냐는 생각도 들었다.

    정의당에서도 여성 청년 당원이 부족하다고 하지만 말만 하고 여성 청년당원 캠프, 페미니즘 강연 외엔 실질적인 행동은 없다. 그 정도하고 충분히 했는데 왜 여성 당원이 늘지 않느냐, 하고 끝나버린다.

    혜화역 집회에 나온 여성들은 정당이나 단체에서 나온 게 아니라 개인이 모였다. 그 여성들이 정당으로, 정치로 들어오지 않는 이유는 정당과 정치가 여성문제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국 정당과 정치의 참여로 달라지는 게 없다고 보는 거다. 혜화역 집회에 모인 개인을 세력으로 만들어내지 못한 건 ‘정당은 내 삶을 바꿀 수 없다’는 불신 때문이다. 이런 것에 대한 고민 없이 ‘우리는 논평도 내고, 집회도 하고, 행사도 많이 하잖아’라는 건 너무 안일하다.

    왕복근 : 대선후보 토론회 당시 심상정 대표가 1분 발언 이후 나온 얘기가 ‘왜 그 이후에 아무 것도 하지 않나’라는 거다. 당이 메시지를 던지는 것에 너무 집중하고 있고, 핫해질 수 있는 것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이슈가 있을 때만 대응하는 것처럼 하다가 그 다음엔 조용히,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다. 여성문제도 마찬가지다. 굉장히 많은 법안을 논의하고 상정했지만 서울시에서 하는 생리대 조례 말고는 눈에 띄는 게 있는지 모르겠다.

    특히 정의당은 여성 문제에 너무 조심하는 경향이 있다. 이젠 2016년 메갈리아 논란을 떨치고 일어나서 본인 얘기를 해야 하는 시점이다.

    이도영 : 정의당 내에 여성주의에 상대적으로 친화적인 이들도 여성주의를 하나의 낮은 수준의 부문 이상으로 취급하지 않는 문제가 있다. 이건 한국 사회 운동 전체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조직노동자 중심의 운동문화, 거기에서 파생된 여성 배제적인 발언과 여성혐오적인 언행이 누적돼서 내려져온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노서진 : 맞다. 7080년대 운동권 감수성이 있다. 여성을 조직의 꽃으로 보는, 운동권 감성.

    이도영 : 그래도 희망적인 부분도 있다고 본다. 당내엔 여전히 여성주의자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점이다. 다만 당내 남성 당원들이 바뀌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논쟁을 두려워하는 진보정당은 ‘그만’
    “여성주의 논쟁의 장을 열어라”, “운동과 정치의 재연결”

    왕복근 : 정의당이 담론을 먼저 던지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어떤 여성주의가 있는가, 어떤 법을 통해 여성주의적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는가, 여성주의가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가, 이런 류의 얘기들이 전혀 되지 않고 있다.

    이도영 : 당이 논쟁을 두려워하고 당원 수에 연연하다보니 여성문제 자체에 접근하는 걸 두려워하는 것 같다.

    왕복근 : (논란이 있더라도) 까놓고 토론할 필요가 있다. 평일 낮에 국회 의원회관에서 전문가들이 모여서 하는 토론회가 무슨 의미가 있겠나. 당내 민주주의 기반이 제대로 서기 위해선 당원들이 토론할 자리를 당이 만들어줘야 한다. 법안을 발의하는 것만이 정치의 전부고, 어떤 사안에 대해 입장을 밝히는 게 정치의 전부로 얘기돼선 안 된다.

    강서구위원회 한민호

    한민호 : 예민한 사건들을 논쟁하면서 서로의 차이점을 확인하는 것 자체로도 의미 있는 일이다. 이런 논쟁이 없는 건 지도부가 관리만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몇 년 전 메갈리아 미러링 문제가 페미니즘 이슈에 영향을 줬는데 그 전략의 옳고 그름을 떠나 효과가 떨어졌다고 생각한다. 정의당은 이제, 그 이후의 페미니즘 전략 고민해야 한다. 분명히 우리나라는 남성 주도의 사회임에도 남성 청년들은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 자체가 심해지고 있다. 그들을 어떻게 설득하고 대화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페미니스트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노서진 : 이정미 전 대표가 낙태죄 법안을 낸 이후에 긴급토론회도 열리고 당내 논쟁 있었는데 그런 과정들이 일상적으로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 유죄 판결이나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 등 사법부의 진일보한 판결도 있었다. 정치와 운동은 이제 그 이후를 고민해야 할 시점에 와있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왕복근 부위원장은 운동과 정치를 잇는 다리를 복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왕복근 : 심상정 대표를 중심으로 운동과 정치의 이분법이 명확해져야 한다는 생각들이 만연하다. (당내에서) 운동은 과격한 얘기를 하는 것이고, 정치는 타협과 협의를 통한 결론의 도출처럼 정리되는 분위기다. 식상한 말이지만 운동과 정치가 함께 가야한다는 주장의 맥락은 운동이라는 형태에서 나오는 사회적 목소리를 정치로 가져가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정의당에선 책임정치라는 미명하에 현장의 목소리가 사라진 상황이다. 여의도 문법에만 놓이는 정당이 그와는 다른 이야기들을 마주할 수 있는 (운동이라는) 공간을 당이 끊어내고 있다는 거다. 이정미 전 대표가 발의했던 낙태죄 폐지 법안 논란도 마찬가지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여성주의 운동세력과) 제대로 된 논의와 협의 과정을 거쳤다면 그보다 더 전향적인 얘기들을 할 수 있었을 거다.

    한민호 : 정치와 운동의 분리는 당내 만연하다. 정치발전소의 최장집·박상훈 선생님의 정당론을 정의당이 잘못 받아들이고 있다. 박상훈 선생님은 신념윤리 없는 책임윤리는 의미가 없다고 한다. 근데 정의당은 급진적인 정책의 반대 논리로 ‘책임정치를 해야 한다’, ‘책임지지 못할 얘기를 해선 안된다’고 받아들이는 것 같아 안타깝다.

    들러리 아닌 진짜 청년정치 어떻게 구현할까
    “세대담론을 넘어선 새로운 청년의 이야기 필요”
    “청소년, 청년에 권력을 달라”

    선거가 다가오면 진영 구분 없이 정당들은 청년을 소환한다. 늙은 정치를 바꿔 보겠다는 포부다. 최근 민주당은 2호 영입인재로 27살 희망 청년으로 불리는 원종건 씨를 택했다. 그런데 막상 선거가 끝나고 구성된 국회의 모습을 보면 온통 28가르마의 넥타이를 맨 5060대 남성들뿐이다.

    왕복근 : 정치적으로 새로운 메시지가 없을 때 만만한 청년을 소환하는 느낌이다. 이번 선거에도 그런 지점이 또 드러나는 것 같다. 특히 청년 할당, 청년 몇 퍼센트 공천 이런 청년정치는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청년을 세대로만 사용하는 것이기도 하고 새로움이라는 뭉뚱그려진 이미지만을 청년에게 부여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청년의 문제는 다양한데도, 민주당 장하나·김광진 전 의원이 (임기가) 끝날 때까지 시달렸던 게 ‘너넨 왜 청년 얘기 안하냐’는 거다. 그런(세대담론) 강요를 해선 안 된다.

    한민호 : 한국 정당은 총선 때마다 ‘청년들한테 몇 자리 주겠다’, ‘어떻게 뽑을지 안을 가져와라’ 이런 식이다. 이런 청년할당제는 오히려 청년정치를 더 안 좋게 한다. 청년이 요구하는 방식도 아니다. 정말 청년정치를 할 거라면 우선 청년들끼리 모여서 청년이 왜 국회에 들어가야 하는지 고민해야 하고, 모인 청년들이 만든 방안을 지도부에 제시하고, 그걸 지도부가 받아서 청년이 뭘 원하는지 고민하고, 함께 키워나가는 게 중요하다.

    왕복근 : 청년정치가 세대담론을 넘어서는 것도 중요하다. 정의당은 35세까지가 청년인데, 그럼 그 나이 안쪽의 이야기만 해야 하나. 국회의원이 그렇게 할 순 없다. 세대 담론이 아닌 담론으로서의 청년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담론을 만들 공론장이 필요하다. 나는 청년정치가 오히려 새로운 사회에 대한 설계, 앞으로 10년 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이래야 한다, 는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청소년위원회 노서진

    노서진 : 청(소)년 정치를 구현하기 위해선 그들에게 실질적인 당내 권력을 주는 게 필요하다. 선거 앞두고 위원장 주는 식이 아니라 당내 주요 직책부터 청년으로 바꾸든지, 청년 의원을 많이 배치하는 식이어야 한다. 변화를 만들 수 있는 위치에 청년을 넣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동안 청(소)년은 (기성세대보다) 못해서가 아니라, 권력이 없었기 때문에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지 못했다.

    청년 정치의 시작은 청소년 정치에서부터다. 정치가 청년들에게 이것, 저것 요구하지만 청소년부터 이어지지 않으면 어렵다. 우리나라엔 왜 청소년, 청년 국회의원과 총리가 안 나오는 이유를 묻는다면, 청소년 때부터 정치에 참여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밖에 답할 수 없다. 청소년 때부터 정당에 가입하고 정당 활동을 하고 변화를 만들어내는 경험, 정치의 효능감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이도영 : 유럽 정당은 청(소)년 조직이 활성화돼있는 반면, 한국 정당은 학생위, 청년위에 시혜적으로 접근한다.

    청년을 단일한 계급성으로 묶을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청년 정치를 한마디로 규정하긴 힘들다. 그럼에도 청년정치가 중요한 이유는 청년이라는 세대담론이 있고 경제적인 세대격차가 없는 게 아니기 때문에 청년스피커는 분명히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어떤 청년이 우리를 대변할 스피커가 될 수 있을까, 이 부분을 확실히 짚는 게 중요하다.

    왕복근: 외국 청년 단위는 어떤 경험과 과정, 경로를 밟아서 정치인이 될 수 있는지의 루트가 있다. 14세부터 정당에 가입하고 청년 사민당 등을 통해 캠페인 활동을 하거나, 정책을 직접 입안한다. 노르웨이 노동당은 2박3일 청년 토론을 통한 결정사항을 당의 중요한 방향으로 한다. 한국 정당엔 청년 정치인이 어떤 방식으로 성장할지에 대한 전통과 맥락 전혀 없다. 미래세대를 만들 어떤 과정과 비전도 갖고 있지 못한 거다. 그렇기 때문에 외부에서 튀거나 전문직이거나 돈을 많이 갖고 있는 이들이 청년 정치의 대변인이 된다. 이런 구조를 유지하는 한 청년 정치는 불가능하다. 이 구조를 타파해야만 세대론에 갇힌 청년정치가 아닌, 앞으로 다가올 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대변자, 겪고 있는 문제들을 어떻게 새롭게 볼 것인지를 말하는 발언자로서의 역할이 가능하다.

    “개방형 경선제, 당의 책임 유권자에게 돌리는 것”

    21대 총선을 앞두고 각 정당은 제각기 혁신 공천을 표방하고 나섰다. 자유한국당은 물갈이론을 재탕하는 데에 그치는 분위기이고 집권여당인 민주당은 비례대표 의원을 당 지도부가 공천하는 기존의 방식을 탈피한 국민참여경선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정의당도 당원 외에 지지층에게도 비례대표 의원 투표권을 주는 개방형 경선제를 채택했다. 민주당과 유사한 방안이다. 지도부 깜깜이 공천을 해온 거대정당엔 비례대표 선출을 투명하게 한다는 점에서 혁신공천일 수 있지만 그간 비례대표 의원을 당원 투표로 뽑아온 정의당 내에선 오히려 후퇴한 공천방식이라는 비판이 많다.

    왕복근 : 한국정치에서 개방형 경선제는 당의 계파성, 내부정치의 불투명성 해소를 위한 용도다. 개방형 경선제가 진보정당에 맞는 제도인가. 진보정당이 늘 자랑스럽게 얘기해온 진성당원제는 당원의 손으로 우리의 의원을 뽑는다는 취지다. 당내 어떤 인사들은 (진성당원제가) 당내 폐쇄적 구조를 강화한다면서 진보정당의 장점을 약점으로 만들어 버리는 발언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것에 우려가 크다.

    노서진 : 우리당, 우리 조직, 우리 후보 이런 생각이 중요한데, 개방형 경선제로 뽑힌 후보들에게 과연 우리 후보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을까.

    이도영 : 이념 없는 정치 문제가 잘 드러나고 있다고 본다. 조직표 동원 문제도 다시 생길 수 있다.

    한민호 : 전국위원회 출마 때부터 개방형 경선제에 반대했다. 당원에겐 좋은 후보를 선출할 책임과 권리가 당원에게 있다. 개방형 경선제는 우리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고 그 책임을 유권자에게 돌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의당에 이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정당이 갖고 있는 권한과 책임을 포기하는 것이다.

    개방형 경선제, 정말 외연확장 가능할까

    이도영 : 개방형 경선제 논의하면서 청년 정치참여 문제와 관련해 ‘청년층에겐 피선거권까지 열면 어떻겠냐’는 얘기까지 나온다. 청년들이 당내에서 활동을 할 당위가 사라지는 것 아닌가.진보정치인으로서 정치적으로 뭔가를 해보고 싶어서 당에 들어온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식이라면 굳이 당에 들어와서 활동할 필요가 없다. 실제로 비당원인 친구가 ‘선거권 연다며 그러면 굳이 입당 안 해도 되는 것 아니야?’라고 하더라. 정당이 당원을 모아야 하는데 학생 비당원들은 입당조차 사라진다.

    노서진 : 다른 나라 사례를 봐도 당내에서 청소년, 청년이 정치인으로 성장하는데 정의당은 당내 청소년, 청년이 성장할 환경을 만들어주기는커녕 오히려 막고 있다. 우스갯소리로 ‘내 꿈은 외부영입 인사’라는 말이 돌 정도다. 굳이 정의당 안에서 활동하면서 역량을 키울 필요 없이 외부에서 좋은 직함 얻은 다음에 당에 들어와서 개방형 경선제 하는 게 낫지 않겠냐는 거다. 뭐 하러 당에서 활동하느냐는 말까지 나온다.

    왕복근 : 당이 운동과 정치의 결합을 위해서 당원들을 다 밖으로 내보내려고 하는 것 같다.(웃음)

    정당이면 동네에서 활동을 해서 입당을 시켜야 그들이 우리의 우군이 되고 우리의 정치를 전달할 위치에 놓이는 거다. 보수정당들은 50년간 그 루트를 만들어왔던 것이고 그것이 지역에서 튼튼한 것 아닌가. (보수정당이 50년 간 쌓아온 것을) 개방형 경선제로 할 수 있다고 얘기하는 거다. 또 이건 우리가 우리 손으로 지역에서 당원을 늘릴 능력이 없다고 말하는 꼴이다. 외연확장과 같은 논리로 개방형 경선제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으면 한다.

    개방형 경선제를 해야 한다면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약자들, 그동안 정치적인 권력에서 소외된 이들을 어떻게 안으로 끌어당기면서 정의당의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의 플랫폼으로 사용해야 한다.

    한민호 : 개방형 경선제 취지가 비례정당을 극복하고 지역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당원 가입까진 힘드니까 선거인단으로 등록해서 정의당 외연확대하자는 거다. 그런데 개방형 경선제는 비례후보에만 적용이 된다. 문제는 지역에서 선거 뛰는 사람이 누가 개방형 경선제에 참여할 사람을 모집하려고 하겠나. 취지와도 맞지 않는다. 민주당에서도 비슷한 걸 하는데 본게임에 들어가기 전에 기세 싸움에서 밀리면 어떻게 하지, 이런 걱정도 든다.

    예비당원 청소년은 안 되고 비당원 유권자는 된다?
    선거연령 만16세 당론이면서…개방형 경선제에 청소년 당원 참여 불가
    “당내 청소년 당원 패싱한 것”

    노서진 : 개방형 경선제에 청소년이 참여할 수가 없다. 비당원은 후보 선출에 관여하면서 예비당원은 비례대표 의원 후보에 투표도 할 수 없다. 이게 얼마나 웃기고 어이없는, 앞뒤가 안 맞는 상황인가.

    당은 선거관리위원회가 유권해석을 받고 “안 된다. 청소년 빼겠다”고 했다. 청소년 당원이 개방형 경선제에 참여할 수 없다는 확답도 중앙에서 통보받는 식이었다. 관련한 논의도 없었다. 선관위가 안 된다고 했다면 참여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함께 모색할 수 있었을 텐데 당은 (청소년 단위와 논의하지 않은 것에 대해) 사과만하고 끝났다. 이건 청소년 당원, 청소년 단위를 패싱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청소년이 선거인단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다. 선거운동을 하거나 선거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때만 문제가 된다. 그렇다면 당은 일단 참여시키고 선거운동을 제한하는 식의 방법을 찾을 수 있는데 하지 않았다. 당의 의지 부족이다.

    개방형 경선제뿐 아니라 다른 일에서도 청소년을 배제하고 그 다음에 사과하는 일이 반복됐다. 같은 당원 동지라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계속해서 배제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고, 당이 청소년 문제에 관심이 있긴 하나, 이런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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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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