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화와 망각 사이···
    프랑스의 독일강점기 청산은 진행형
    [책소개] 『레지스탕스 프랑스』(이용우/ 푸른역사)
        2019년 12월 21일 12:0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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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수 년 전부터 프랑스의 과거사 청산 문제를 줄기차게 연구해온 동덕여대 이용우 교수가 ‘독일강점기(1940~1944) 프랑스 과거사’ 시리즈 세 번째 저작을 내놓았다. 첫 번째 저작 《프랑스의 과거사 청산》(2008)이 해방 전후의 대독협력자 처벌 문제를 주로 다루고 두 번째 저작 《미완의 프랑스 과거사》(2015)가 대독협력(자) 문제와 레지스탕스 둘 다를 고르게 다루었다면 이번 저작 《레지스탕스 프랑스-신화와 망각 사이》는 레지스탕스 쪽으로 무게중심을 좀 더 이동시켰다.

    역사교과서 영화 등을 통해 본 프랑스의 과거사 인식

    전작(《미완의 프랑스 과거사》)에서는 홀로코스트 협력, 초기 레지스탕스 등 독일강점기(1940~1944) 자체의 주제들도 일부 다루었지만 이번 책에서는 독일강점기의 협력 혹은 저항사 자체를 다루는 게 아니라 종전 직후(1946)부터 최근(2015)까지 전적으로 전후戰後 수십 년 동안 프랑스인들이 자국의 강점기 과거사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3부로 나눠 살폈다.

    1부 ‘논쟁하기’는 1980~90년대 벌어진 세 건의 과거사 논쟁을 다룬다. 여기에는 나폴레옹 이후 가장 오래 집권한, 레지스탕스 출신 미테랑 전 대통령의 불명예스러운 이력을 둘러싼 논쟁(1장)도 포함된다. 2부 ‘전수하기’에서는 전후 프랑스인들이 레지스탕스 역사를 서술하고 전술하는 방식을 살피기 위해 역사서와 역사교과서를 분석했다. 그 대상은 5종의 레지스탕스사 개설서와, 반세기 동안 발간된 23종의 역사교과서(1962~2015)들이다. 3부 ‘재현하기’에서는 가장 대중적이고, 따라서 효과적인 사회 교육 매체인 영화 네 편을 통해 독일강점기 프랑스의 저항과 협력의 역사가 어떻게 기억되고 있는지를 살폈다.

    ‘레지스탕스의 나라’ 프랑스 인구 1.2%만 참여했다

    이용우 교수의 이번 저작에서 특히 이목을 끄는 것은 하나의 신화와 한 장의 포스터다. 부제에도 내건 “신화와 망각 사이”에서 신화란 전후 수십 년 동안 프랑스 국민들이 스스로 믿었고 믿고 싶어 했던 신화, 독일강점기 4년 동안 프랑스 전 국민이 레지스탕스를 중심으로 단결했다는 이른바 ‘레지스탕스(주의) 신화’다.

    6장에서 다룬 세 편의 레지스탕스 영화 가운데 〈철로 전투〉(1946)가 이러한 레지스탕스 신화의 탄생을 보여준다면 〈그림자 군단〉(1969)은 그러한 신화의 붕괴를 나타내고 7장의 〈라콩브 뤼시앵〉(1974)은 정반대의 신화를 보여준다. 모두가 레지스탕스였다는 황금빛 신화가 무너진 자리에 모두가 대독협력자이거나 기회주의자였다는 ‘흑색 전설’이 들어섰다. 그러한 배경에서 마지막 레지스탕스 출신 대통령 미테랑의 강점기 정반대 경력이 부각되고(1장), 반세기 전 파리 경찰청이 작성한 유대인 파일이 문제시되었다(2장).

    파리 한복판서 무장투쟁을 벌인 유격대의 주역들은 외국인

    한 장의 포스터란 나치 독일이 제작한 ‘붉은 포스터’로, 이 책에서 세 차례나(3장, 5장, 6장) 소환된다. 1943년 여름과 가을 파리 한복판에서 독일점령 당국에 맞서 유일하게 무장투쟁을 벌인 ‘이민노동자 의용유격대’ 대원들을 묘사한 포스터로, 맨 윗줄에서 “해방자들?”이라 묻고는 맨 아랫줄에서 “범죄군단에 의한 해방!”이라고 답한다. 외국인들로 구성된 이 공산당계 레지스탕스 조직에 대해 3장에서는 이들을 묘사한 한 TV 다큐멘터리 영화의 방영을 둘러싼 논쟁(1985)을, 6장에서는 이들의 삶과 투쟁을 재현한 한 극영화(2009)를 통해 각각 다루었다. 5장에서는 프랑스 역사교과서에 가장 많이 실린 레지스탕스 관련 포스터로 ‘붉은 포스터’가 직접 언급된다.

    사실, 이 포스터와 그것이 표현하는 외국인 레지스탕스 조직은 레지스탕스 신화의 대척점에 있다. 프랑스 전 국민이 레지스탕스를 중심으로 단결한다는 신화에는 외국인 투사들이 낄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프랑스 레지스탕스를 ‘외부인’에 의한 범죄행위로 묘사하려는 나치 독일의 선전 논리(‘붉은 포스터’가 보여주는)는 먹혀들지 않았지만 전후 수십 년 동안 외국인 레지스탕스의 존재는 망각되었다. 30년 만에 이들을 망각의 늪에서 끄집어냈지만 오도된 논쟁에 휩싸이는 과정(3장)과 너무 늦게 극영화로 재현된 점(6장)에 대해 저자는 아쉬움을 표한다.

    일제 잔재 청산이란 숙제를 안고 있는 우리의 반면교사

    부제를 “신화와 망각 사이”로 달았지만 저자는 프랑스 레지스탕스와 관련하여 신화화보다는 망각을 좀 더 경계하는 듯하다. “레지스탕스 신화가 무너진 지 거의 반세기나” 흐른 지금, “현재의 프랑스인들 대다수에게 레지스탕스는 잘못된 신화가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망각의 대상이 되는 게 문제일 것”(5쪽)이라는 주장이나 “외세의 지배에 저항하고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위해 투쟁한다는 것 자체가 시공간을 떠나 보편적 가치를 잃지 않는 한 …… 여전히 망각에 맞선 기억의 의무, 시민적 의무라는 측면을 배제할 수 없을 것”(175쪽)이라는 진단은 이를 보여준다.

    지은이는 이 책의 저술 의도를 “이웃나라에게 훨씬 더 길고 고통스러운 점령과 지배를 당했고, 훨씬 더 많은 협력자를 양산한 한국의 과거사에 대해서도 논쟁하고, 전수하고, 재현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라 했다. 이 책을 통해 우리의 과거사 청산은 어디로 가고, 어디쯤 와 있는지 돌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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