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늘에서는 비익조 되고,
    땅에서는 연리지가 되자
    [풀소리의 한시산책] 양귀비와 현종
        2019년 12월 11일 09:4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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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움
    – 용 혜 원

    그대
    이름만
    부르고
    싶었습니다

    어디서나
    그대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대
    얼굴만

    올랐습니다

    모란. 양귀비의 상징이기도 한 이 꽃은 현종이 화단에 남겨두었다고 해서 어류화(御留花)라고도 합니다

    엄혹한 독재시대를 경험한 세대에겐 ‘충(忠)’이라는 글자에 대한 반감이 있는 이들이 많습니다. 물론 저도 그랬고요. 그러다 한문을 본격적으로 공부하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유학자들은 ‘진기지위충(盡己之謂忠)’이라고 충성 ‘충(忠)’을 정의합니다. 오로지 한 가지 생각밖에 없어서 다른 생각이 스며들 틈이 없는 것이 ‘충’입니다. ‘순수’ 그 자체입니다.

    사랑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용혜원의 「그리움」이라는 시를 보면, 그대 이름만 부르고, 그대 목소리만 들려오고, 그대 얼굴만 떠오릅니다. 오로지 ‘그대’로 가득 찬 ‘그리움’, ‘사랑’을 노래합니다. 세파에 찌들어 때 묻은 영혼의 입장에서는 부럽기 그지없는 ‘순수’입니다.

    역사를 보면 온 삶을 바쳤다는 의미의 ‘순수’한 사랑을 한 이들이 제법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양귀비와 당(唐) 현종(顯宗)의 사랑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겠지요. 비극으로 끝났지만 말입니다.

    755년 안록산이 난을 일으켰고, 756년 안록산이 수도 장안(長安)으로 쳐들어오자 현종은 촉(蜀)으로 피난을 떠납니다. 그러나 사단은 장안에서 100여리 거리에 있는 마외역(馬嵬驛)에서 일어납니다. 호종하던 군사들이 양귀비와 그 일족을 난(亂)을 일어나게 한 원흉으로 지목합니다. 양귀비 일족을 처형하지 않으면 더 이상 호종하지 않겠다고 농성합니다. 다른 방법이 없는 현종은 양귀비 일족을 처형하고, 양귀비에게 자결을 하도록 합니다. 양귀비는 비단 천으로 목을 매 죽습니다. 이때 양귀비의 나이 38세이고, 현종은 72세였습니다.

    이듬해 안록산의 난이 평정되자 현종은 장안으로 돌아옵니다. 이미 왕위를 황태자에게 물려 준 현종은 감로전에서 죽은 양귀비만을 그리며 쓸쓸한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5년 뒤 옥피리를 처량히 불고, 궁녀에게 목욕을 시켜달라고 하고는 다음날 죽습니다.

    현종이 죽고 50년 뒤 시인 백거이(白居易, 772년 ~ 846년)는 두 사람의 사랑을 다룬 장편서사시(長篇敍事詩) 「장한가(長恨歌)」를 씁니다.

    長恨歌(장한가)

    … 前略(전략)

    七月七日長生殿(칠월칠일장생전)
    夜半無人私語時(야반무인사어시)
    在天願作比翼鳥(재천원작비익조)
    在地願爲連理枝(재지원위련리지)
    天長地久有時盡(천장지구유시진)
    此恨綿綿無絶期(차한면면무절기)

    긴 사랑의 노래

    … 전략

    칠월 칠석 날 장생전에서
    밤 깊어 사람 없자 은밀히 속삭였죠
    하늘에서는 비익조가 되고
    땅에서는 연리지가 되자고
    하늘과 땅은 장구해도 끝날 날이 있지만
    끊임없는 우리 사랑은 다할 날이 없으리

    청화지(華清池)에 있는 양귀비 입욕상(入浴像) – 위키백과

    비익조(飛翼鳥)는 날개가 하나뿐인 전설 속의 새입니다. 한쌍이 함께 해야만 날 수 있답니다. 연리지(連理枝)는 두 나무가 위에서 붙어서 한 나무가 된 것입니다. 하늘에 있든 땅에 있든 늘 함께 하자는 얘기지요.

    「장한가(長恨歌)」는 120구 840자에 이르는 장편서사시입니다. 시(詩)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첫째, 현종의 총애를 받는 부분, 둘째, 안록산의 난으로 피난길에 오르고 양귀비가 죽는 부분, 셋째, 양귀비가 죽은 다음 양귀비를 그리워하는 현종과 이를 안타깝게 여긴 도사(道士)가 선녀가 된 양귀비를 찾아가 만나는 부분입니다. 위는 「장한가(長恨歌)」의 마지막 부분으로 선녀가 된 양귀비가 도사와 헤어지면서 말한 부분입니다. 예전에 현종이 장생전에서 이렇게 말했다고요.

    양귀비(楊貴妃, 719년 – 756년)의 본명은 양옥환(楊玉環)입니다. 옥환이 어렸을 때 아버지가 죽어서 숙부 양현교(楊玄璬) 슬하에서 자랐습니다. 옥환은 어려서부터 총명했다고 합니다. 숙부에게 학문과 시문을 배우고, 기생 출신 하녀에게서 춤을 배웠습니다. 옥환은 인물이 빼어났을 뿐만 아니라 총명한데다 가무까지 뛰어나 장녕공주(長寧公主)나 현종의 딸 함의공주(咸宜公主)와 친하게 되었고 잔치에 자주 초대되었다고 합니다. 현종의 18번 째 아들인 수왕(壽王) 이모(李瑁)가 옥환의 미모에 빠져 사랑하게 되고, 이 둘은 결혼하게 됩니다. 그때 옥환의 나이 16세입니다.

    22세가 되던 740년 옥환은 다시 한 번 삶의 전환을 맞이합니다. 사랑하는 후궁 혜비 무씨(惠妃 武氏)의 죽음으로 현종은 실의에 빠졌습니다. 환관 고력사(高力士)는 옥환이 혜비와 닮은 것을 알고 현종에게 추천합니다. 옥환을 본 현종은 옥환에게 매료됩니다. 환관 고력사는 옥환을 설득합니다. 결국 현종은 옥환을 화산의 도사로 출가시킵니다. 옥환의 남편 수왕 이모(李瑁)에게는 다른 여인을 소개해주고요. 그리고는 옥환을 태진궁(太眞宮) 여관(女冠)으로 삼아 궁궐로 불러들입니다. 현종은 745년 옥환을 귀비(貴妃)에 봉하고 정식 후궁으로 삼습니다. 이때 양옥환, 즉 양귀비의 나이 27세이고, 현종의 나이는 61세입니다.

    리치라고도 불리는 여지(荔枝)입니다. 광저우(廣州) 이남에서 나는 열대과일인데, 양귀비가 특히 좋아하였다고 합니다. 상하기 쉬워 당 현종은 잘 달리는 말을 역마처럼 이어서 달리게 해 여지를 장안까지 운송했다고 합니다. 사진 – 위키백과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은 또 한명의 위대한 시인의 삶을 바꿔놓기도 했습니다. 바로 우리가 잘 아는 이백(李白, 701년 – 762년)이 그 주인공입니다. 양귀비를 만난 다음 현종은 온천이 나오는 휴양지인 화청궁(華淸宮)을 대대적으로 중건합니다. 침향(沈香)나무로 지은 침향정(沈香亭) 뜰에 양귀비가 좋아하는 모란을 심고 그 꽃이 만개했을 때 이백을 불러 시를 짓게 합니다. 이백은 술에 취해 있었지만, 즉석에서 시(詩) 청평조(淸平調) 3수(三首)를 짓습니다. 시를 볼까요.

    淸平調(청평조) 其一(1)

    雲想衣裳花想容 (운상의상화상용)
    春風拂檻露華濃(춘풍불함로화농)
    若非群玉山頭見(약비군옥산두견)
    會向瑤臺月下逢(회향요대월하봉)

    구름 같은 치마저고리 꽃 같은 얼굴
    봄바람 이는 난간에 이슬 맺힌 농염한 꽃
    군옥산 산정 위에 살던 서왕모련가
    달빛 아래 요대 거닐던 유융씨려나

    其二(2)

    一枝濃艶露凝香(일지농염로응향)
    雲雨巫山枉斷腸(운우무산왕단장)
    借問漢宮誰得似(차문한궁수득사)
    可憐飛燕倚新妝(가련비연의신장)

    한 떨기 농염한 꽃 이슬 맺힌 향기
    무산의 운우지정 애간장만 끊게 하네
    한나라 궁중 여인 중 누가 비슷할까
    가련한 조비연이 새 단장을 한듯하네

    其三(3)

    名花傾國兩相歡(명화경국양상환)
    常得君王帶笑看(상득군왕대소간)
    解釋春風無限恨(해석춘풍무한한)
    沈香亭北倚欄干(침향정북의난간)

    모란과 경국미인 서로 좋아해
    임금님도 웃음 띠고 바라보누나
    봄바람에 끝없는 사랑 풀어내려고
    침향정 북쪽 난간에 기대섰다오

    군옥산(群玉山)은 서왕모(西王母)가 살던 산입니다. 요대(瑤臺)는 전국시대 초(楚)나라 시인 굴원(屈原)의 시 「이소(離騷)」에 의하면 유융씨가 살던 곳이라고 합니다. 유융씨는 제곡(帝嚳)씨 비(妃)로 은(殷)나라의 시조 설(契)의 어머니인 간적(簡狄)입니다. 서왕모와 유융씨는 전설상 미인입니다. 양귀비의 모습이 전설상 미인이 환생인 듯하다는 뜻이겠지요.

    현종과 양귀비는 이 시(詩)를 아주 마음에 들어 했고, 이백(李白)의 명성은 높아만 갔습니다. 그러나 이 시는 동시에 이백이 현종의 미음을 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수에 나오는 조비연(趙飛燕)은 한(漢)나라 성제(成帝)의 황후였습니다. 비천한 출신이었지만 황후까지 오른 전설적인 미인입니다. 그러나 성제가 죽은 다음 끝내 궁에서 쫓겨나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환관(宦官) 고력사(高力士) 이백을 시기하여 양귀비를 조비연에 비긴 것은 불손하다고 참소합니다. 이백은 결국 궁궐에서 내쳐집니다.

    황매입니다. 양귀비가 좋아했던 모란이 심어지고 이 꽃은 쫓겨났다고 하여 출단화(黜壇花)라고도 한답니다.

    총애 받는 이가 있으면 내쳐지는 이도 있겠지요. 좋아하는 꽃이 있으면 밀려나는 꽃도 있고요. 고려 문신 이규보(李奎報, 1168년 – 1241년)는 양귀비 관련 시가 몇 수 지었습니다. 그 중 하나인 「지당화를 논하여 이 소경 수에게 부치다(論地棠花寄李少卿需)」란 시를 볼까요.

    君言伊昔君王乘政閑(군언이석군왕승정한)
    養花壇上選花看(양화단상선화간)
    帝所留者是御留(제소류자시어류)
    此花見黜名黜壇(차화견출명출단)

    그대 말했지 옛날 임금이 한가한 틈을 타
    화단에 꽃 가꾸며 꽃을 가리니
    임금이 남긴 꽃을 어류화라 하고
    쫓겨난 이 꽃을 출단화라 한다지

    양귀비가 모란을 좋아해 침전 주변에 모란을 심고, 대신 당(唐)나라와 상극인 황매를 캐냈다고 합니다. 그래서 모란을 어류화(御留花)라 하고, 황매를 출단화(黜壇花)라고 했답니다.

    양귀비와 당 현종의 사랑에 얽힌 일화는 워낙 많습니다. 세기적인 로맨스이니까 당연한 것이겠죠. 사랑은 세기적인 것만 있는 건 아닙니다. 우리네 일상에도 늘 사랑이 껴들 틈은 남아 있죠. 사랑이야말로 인간을 존재케 하는 커다란 이유 중의 하나이니까요. 김기연의 가슴 뛰게 하는 시 「프로포즈」로 모든 사랑하는 이들을 응원하면서 이번 한시산책을 마치고자 합니다.

    프로포즈

    – 김기연

    여윈 들녘 부플리는
    사월의 비
    보시락 보시락

    숲의 사타구니 들썩이는
    쑥꾹새
    쑥꾹 쑥 쑥꾹

    웅크린 찔레덤불
    여민 가슴 움찔움찔
    물오른 새순 꼿꼿하게 내미는데

    아찔하여라
    가만가만 다가선 내 맘

    필자소개
    민주노총 전국민주버스노동조합과 전국운수산업노동조합에서 일했고, 한국고전번역원에서 공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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