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모사] 이정미 동지, 부디 편안히 잠드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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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8월 21일 07:1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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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미 동지, 부디 편안히 잠드소서..

    이정미 동지!
    이제는 당신을 떠나보내야만 합니다.

    지금도 훤칠한 키에 웃음을 머금고
    손을 흔들며 성큼 다가올 것 같은 당신을
    어찌 떠나보낼 수 있을까요.

    “엄마는 살 거니까 얼른 집에 가라”던 하루 전날 동민이 동현이와의 약속도
    “고맙다 말하지 않겠다. 살아서 훌륭한 활동가로 살면서 꼭 값겠다”던 동지들과의 약속도 뒤로 한 채,
    자신의 몸보다 더 소중하게 여긴 가족과 동지들을 남겨두고
    당신은 먼 하늘나라로 훌훌 떠나갔습니다.

    좋은 간호사가 되겠다는 당신의 꿈은
    1994년 처음 청구성심병원에 입사해서 맞닥뜨린
    중소병원의 참담한 현실 앞에서
    부당한 자본의 횡포에 맞서 싸우는 투쟁의지로 바뀔 수밖에 없었습니다.

    13건이나 부당노동행위 사실을 지적받은 사업장,
    노동부 특별감독을 두 차례나 받았고,
    민주노총이 대표적인 노조탄압 사업장으로 선정한 청구성심병원에서
    당신은 노조 교육부장으로, 위원장으로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묵묵히 그러나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청구성심병원 조합원들과 ‘민주노조’를 지키기 위한 싸움을 진행했습니다.

    70년대나 있을법한 조합원총회장 ‘똥물투척, 식칼테러’도,
    연이은 10명의 조합원에 대한 부당해고도
    민주노조를 사수하고 조합원을 보호하겠다는
    당신의 굳은 투쟁 의지를 무너뜨리지 못했습니다.

    “힘든 투쟁이 될 텐데… 제가 체력이 자신 없긴 하지만…
    그래도 집단산재투쟁은 해야될 것 같아요.
    몸의 병은 언제든 고칠 수 있지만, 마음의 병은 시간을 놓치면 안 되잖아요”
    위절제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고 있던 당신이
    2002년, 병원측의 모진 괴롭힘으로 병을 얻은 조합원들의
    정신질환 집단산재투쟁을 시작하자는 말을 꺼냈을 때,
    우리는 당신을 아무 말 없이 쳐다보아야만 했습니다.

    2001년 10월 보건의료노조 부위원장으로 당선될 때
    “힘들고 어렵게 싸우면서도 조직으로부터 소외된 중소병원 투쟁을 힘이 닿는 한 지원하고 싶다”고 말한 약속을 미련하게도 당신은 투병 생활 중에도 지켜나갔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방지거 병원에서 무슨 일이 있다 하면 밤중에도 택시를 타고 달려갔고,
    오랜 위장폐업철회투쟁에 생계가 어려운 방지거 조합원들을 항상 맘에 걸려하면서
    몰래 개인 사비를 털다가 나중엔 방지거 투쟁기금을 마련하겠다고
    아픈 몸으로 재정사업에 나서기도 했지요.

    작년 10월에 서울아산병원 응급실로 실려 가기 전까지
    방지거병원지부장 치료비를 마련해야 한다며
    여기저기 동대문시장, 남대문시장을 다닌 가슴 아픈 기억을 우리가 어찌 잊을 수 있을까요.

    2002년 성빈센트 파업투쟁이 어려워지자
    청구성심병원 투쟁 사례 교육 간담회를 한 적도 있었지요.
    힘들어서 의자에 앉아서 간담회를 하면서도
    조합원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모아가고,
    맨밥 도시락을 싸와서 한 숟가락씩 꼭꼭 씹어먹고
    시멘트바닥에서 앉아서 파업투쟁에 대해 논의하고
    새벽에 수원에서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던 당신을.
    다음날엔 담당 부위원장이라면서 성가병원 파업투쟁장에 가 있던 당신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요.

    아픈 중에도 왜 활동을 쉬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냥… 제가 살아가는 이유인 것 같아요.”라고 대답하던 당신을
    “몸이 아플 때도 활동을 그만두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어요.”라고 말하던
    “꼭 살아서 훌륭한 활동가로 살면서 보답하겠다”던 당신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요.

    당신은 큰 사업장과 작은 사업장,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이 없고,
    진정한 노동자연대를 실현할 수 있는 그런 노동조합을 꿈꾸었습니다.
    노동조합을 시작할 때의 순수함으로, 조직 내 질시와 모멸이 없는 그런 노동운동을
    “중소병원노동자들은 어디 가서 상담할 데도 없어요. 저는 큰 것 바라지 않아요.
    노동조합 없는 중소병원노동자들이 상담이라도 할 수 있고
    지속적으로 교육이나 홍보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제 당신이 그렇게 가슴 설레며 기다리던
    새로운 산업노조가 9월 1일이면 창립대회를 합니다.

    이제 그 작은 출발을 하려 하는데,
    누구보다도 병노협 출범을 기뻐하고 앞날을 걱정하던 당신을
    출범식을 며칠 앞두고
    오늘 우리는 당신을 떠나보내야 합니다.

    지금에 와서
    왜 우리가 당신을 말리지 못했던가,
    왜 투병생활에 집중하게 하지 못 했던가
    후회를 하고 가슴을 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후회와 한을 가슴에 묻고
    당신이 이루려했던 민주노조, 사람이 존중받는 그런 노동운동을 만드는 짐을
    우리가 나눠맡고 가려합니다.

    부디
    자본의 착취와 탄압도,
    노동자간 차별도, 질시와 모멸도 없는 평등한 세상에서
    평안히 잠드소서.

    사랑합니다.

    현정희 / 서울대병원노조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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