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움켜쥘 수 없는 메마른
    물의 얼굴이어도 좋아라
    [풀소리의 한시산책] 설도의 사랑
        2019년 11월 27일 10:2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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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울

       문태준

    축축한 돌멩이를 만나 에돌아 에돌아나가는, 물이 흘러가는 소리를 들어라
    문득 멈추어 돌이끼로 핀, 물이 그리워하는 소리를 들어라
    사랑하는 이여, 처음도 끝도 없는 이 여울이 나는 좋아라
    혀가 굳고 말이 엇갈리는 지독한 사랑이 좋아라
    손아귀에 움켜쥐면 소리조차 없는, 메마른 물의 얼굴이어도 좋아라

    그렇군요. 지독한 사랑을 하면 혀가 굳고 말이 엇갈리는군요. 시인의 이 구절을 보면서 나는 문득 제대로 말도 못하고 바보처럼 떠나보낸 옛사랑이 생각났습니다. 그래도 다행입니다. 그때 내가 지독한 사랑을 했었으니 말입니다.

    계곡의 또랑 여울

    오늘 소개할 사랑 이야기는 당나라 시대 설도(薛濤)와 원진(元稹)의 이야기입니다. 남의 나라 이야기라 낯설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아래 시는 낯설지 않을 겁니다.

    春望詞(춘망사) 3

      설도

    風花日將老(풍화일장노)
    佳期猶渺渺(가기유묘묘)
    不結同心人(불결동심인)
    空結同心草(공결동심초)

    춘망사 3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랴는고

    어딘가 익숙하죠. 우리 가곡 「동심초(同心草)」의 가사이기도 하니까요. 이 시의 원작자가 설도입니다. 어떤가요? 그리움과 외로움이 철철 넘쳐나나요?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고, 그 사랑을 그리는 마음이 마치 내가 지금 그러고 있는 것처럼 애절하게 느껴집니다.

    이 시는 김소월의 스승이자 시인인 김억(金億, 1896~?)이 옮겼습니다. 그리고 김성태가 곡을 붙여서 가곡 「동심초(同心草)」가 탄생합니다. 김억은 뛰어난 제자 소월의 시를 보면서 시적 재능이 모자람을 한탄했겠지만, 번역 솜씨는 참으로 감탄스럽습니다. 한문에 능통한데다 시적 재능까지 있었기에 이런 번역이 가능했겠지요.

    설도 초상. 명나라 구영(仇英) 작(作). 출전 – 위키백과

    설도(薛濤, 768년? ~ 832년)는 당나라의 수도인 장안(長安)에서 태어났습니다. 일찍이 아버지 설운(薛鄖)을 따라 성도(成都)로 왔습니다. 성도는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劉備)가 수도로 삼았던 곳이기도 합니다. 설도는 어려서부터 총명하였다고 합니다. 나이 8세에 시를 지을 정도로 시적 재능도 뛰어났다고 합니다. 14세에 아버지가 죽고 가세가 기울어 16세에 기녀가 되었습니다.

    설도는 시적 재능으로 동시대의 문인들로부터 사랑을 받았습니다. 백거이(白居易), 유우석(劉禹錫), 왕건(王建), 장적(張籍) 등이 모두 설도와 시(詩)로 교류했던 문인입니다. 만인의 연인으로 통했던 설도가 진정으로 사랑했던 이는 원진(元稹, 779~831)이었던 것 같습니다. 원진은 설도보다 11살 연하입니다.

    원진은 권력 다툼에서 밀려 809년 성도에서 가까운 동천(東川, 혹은 통주(通州))에 좌천되었습니다. 감찰어사(監察御史)로 성도에 왔다는 설도 있습니다. 아무튼 이 해 원진은 설도의 문학적 명성을 듣고 직접 찾아왔습니다. 설도 역시 원진의 문학적 재능을 알았기 때문에 둘은 금방 친해졌습니다. 원진 역시 15세에 과거에 급제할 정도로 천재인데다, 어려서부터 시적 재능으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설도는 원진과 4년을 함께 보냈지만, 원진이 월주자사(越州刺史)로 부임해 가면서 그들의 사랑도 끝나게 됩니다. 원진이 월주에서 시인이자 노래를 아주 잘하던 유채춘(劉采春)과 새롭게 사랑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설도는 다시는 사랑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기적(妓籍)에서 나와 여도사(女道士)로 여생을 마쳤다고 전해집니다.

    항저우 서호 풍경. 설도가 살았던 완화계(浣花溪)도 이와 비슷한 풍경 아닐까요

    아래 「송우인(送友人)」 시는 아마도 원진을 떠나보내며 쓴 시가 아닌가 합니다. 볼까요.

    送友人(송우인)

    水國蒹葭夜有霜(수국겸가야유상)
    月寒山色共蒼蒼(월한산색공창창)
    誰言千里自今夕(수언천리자금석)
    離夢杳如關塞長(이몽묘여관새장)

    벗을 보내며

    물 많은 고장 갈대 위에 서리 내리는 밤
    차가운 달빛과 산빛 모두 희디희구나
    누가 말했나 천리 기약 이밤부터라고
    이별 꿈 먼 변방 요새만큼 아득하여라

    설도는 원진이 월주 자사로 부임해 떠난 뒤에서 많은 시를 보냈다고 합니다. 물론 완전히 결별하기 전에 말입니다. 여기에 원진은 답시(答詩)를 보냅니다. 볼까요.

    寄贈薛濤(기증설도)

    錦江滑膩峨眉秀(금강활니아미수)
    幻出文君與薛濤(환출문군여설도)
    言語巧偸鸚鵡舌(언여교투앵무설)
    文章分得鳳凰毛(문장분득봉황모)
    紛紛辭客多停筆(분분사객다정필)
    個個公卿欲夢刀(개개공경욕몽도)
    別後相思隔煙水(별후상사격연수)
    菖蒲花發五雲高(창포화발오운고)

    설도에게 부치다

    매끄러운 금강과 빼어난 아미산이
    탁문군과 설도로 변해서 나왔네
    말솜씨 앵무새 뺨칠 듯하고
    글솜씨 봉황 깃털 나눈 듯하네
    시인들 잇달아 붓을 멈추고
    공경들 모두 성도로 가고 싶어하네
    이별 뒤 그리움 물안개로 가렸지만
    창포꽃 피어나고 오색구름 떠있겠지

    나는 이 시를 볼 때마다 마치 마지못해 쓴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별 뒤에도 그리움은 여전하고, 창포꽃 피고 오색구름 떠 있는 당신이 사는 완화계로 가고 싶다고 하지만 왠지 상투적으로 느껴집니다. 참고로 만년의 설도는 완화계(浣花溪)라 불리는 시냇가에 살았는데, 주변에 창포를 가득 심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설도의 시 가운데 ‘오색구름 신선이 오색구름 수레를 몬다(五雲仙馭五雲車)’는 구절이 있어 ‘오색구름’을 시어(詩語)로 선택한 듯합니다.

    여섯 째 구 끝에 나오는 ‘몽도(夢刀)’는 ‘성도(成都)’의 별칭입니다. 진(晉)나라 왕준(王濬)이 칼 세 개가 서까래에 걸려 있는 꿈을 꾸고, 다시 칼 하나가 더해지는 꿈을 꾸었답니다. ‘삼도(三刀)’는 ‘주(州)’를 뜻하고 ‘더해지는 것’은 ‘익(益)’을 뜻하는데, 꿈대로 익주자사(益州刺史)로 발령받았습니다. 익주의 수도가 성도이기 때문에 ‘성도’를 ‘몽도’라고도 합니다.

    블라디보스토크 루스키섬 북쪽 바다. 물안개가 피어올라 구름이 되었습니다.

    설도의 가여운 사랑이야기를 보니 우울한가요? 사랑은 어쩌면 내 마음 속에만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서로 사랑한다고 믿는 것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럼에도 믿을 건 사랑밖에 없음에 우리는 또 사랑을 합니다. 모든 사랑하는 이들을 응원하면서 김용택의 시로 한시산책을 마무리합니다.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 김용택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이 밤 너무 신나고 근사해요
    내 마음에 생전 처음 보는
    환 한 달이 떠오르고
    산 아래 작은 마을이 그려집니다
    간절한 이 그리움들을
    사무쳐 오는 이 연정들을
    달빛에 실어
    당신께 보냅니다

    세상에
    강변에 달빛이 곱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흐르는 물 어디쯤 눈부시게 부서지는 소리
    문득 들려옵니다

    필자소개
    최경순
    민주노총 전국민주버스노동조합과 전국운수산업노동조합에서 일했고, 한국고전번역원에서 공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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