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격차가 침식하는 거리,
    ‘계급도시’ 도쿄의 격차를 파헤친다
    [책소개] 『계급도시』 (하시모토 겐지/ 킹콩북)
        2019년 11월 22일 10:0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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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격차는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 되었다. 게다가 격차는 도시의 경관을 바꾸어 놓았다. 작은 주택이 즐비한 오래된 동네에 오피스 빌딩과 주상복합 아파트가 올라간다. 부자들은 부유한 지역에,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지역에 몰려든다. 거주민은 서로 다른 집단을 밀어내며 도시를 분단하는 역사적 경계는 더욱더 깊어진다. 지역 간 격차가 커지고 지역 내 격차도 커진다. 바로 ‘계급도시’의 출현이다. 이 책은 이론, 역사, 통계, 현장 연구 등 다양한 관점으로 ‘계급도시’의 현실에 다가간다.

    이 책은 하시모토 겐지의 《계급도시: 격차가 거리를 침식한다》(階級都市: 格差が街を侵食する, 筑摩書房, 2011)를 한국어로 옮긴 글이다. 저자는 일본을 대표하는 계급 사회학자로 경제 격차, 소득 격차뿐 아니라 교육 격차, 성별 격차, 세대 격차 등 불평등 문제를 다방면에서 다뤄왔다. 저자는 ‘격차사회’라는 표현이 유행하기 전부터, 양극화 현상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필연적 결과이며 지배 체제를 재생산하는 계급 기획의 일환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관점 아래 저자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격차 변화를 연구했고 소득 및 과세 자료, 직업 분포 등의 통계 자료를 사용해 격차 확대의 일반적 현상을 논증했다.

    도시의 양극화, ‘계급도시’의 출현

    이 책은 저자의 이런 관심사를 도시 공간으로 확장한 결과이다. 이 책에서는 격차(한 사회의 불평등 정도)를 기준으로 도쿄라는 글로벌 시티의 양극화를 살펴본다. 저자에 따르면 격차는 자본주의 동학이 만들어낸 결과이며 ‘격차사회’의 도시 구조는 계급 관계가 시각화된 것이다. 원래 도시는 신분, 인종, 민족, 젠더 등 다양한 분단선으로 구획되고 제국주의, 식민지, 전쟁 등 역사적 체제와 사건이 각인된 것이지만,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계급 관계가 공간적으로 표현된 불균등한 공간이다. 이런 공간을 분석하려고 저자는 도시사회학, 정치경제학, 비판적 지리학, 계급사회학 이론을 빌려와 ‘계급도시’라는 개념을 새롭게 가공한다. ‘계급도시’란 계급 간 격차뿐 아니라 그 격차가 공간적으로 표현된 도시를 말한다.

    이 책을 끌고 가는 핵심 질문은 1장에서 제기하듯이 명확하다. 이른바 ‘계급도시’는 실재하는가? 달리 말해 도시는 양극화되고 있는가, 도시 양극화는 공간 격차와 어떻게 연결되는가? 물론 이런 질문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주택 문제를 제기한 이래 도시의 문제는 언제나 계급 갈등과 연결됐고, 북미의 도시사회학은 대도시의 빈민 문제를 시야에 넣었으며, 비판 지리학이 주장하듯이 거대 도시는 양극화로 몸살을 앓는다.

    굳이 이런 학술적 주장이 아니라도, 거리를 걷다보면 도시의 격차를 누구든 쉽게 알 수 있다. 어느 지역에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 어느 지역에 지가가 높은지, 어느 지역에 학군이 좋은지 감각적으로 다가온다. 심지어 같은 지역 안에서도 격차가 확연히 느껴진다.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난 곳에는 주상복합 건물이 올라가고 그 옆에는 낡고 오래된 건물이 날카로운 대비를 이룬다. 교외 지역에는 ‘글로벌’을 표방한 신도시가 생겨나고 구 도심에는 사람도 가게도 빠져나가 한산함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놀랍게도 도시 양극화는 실증적으로 검증된 경우가 많지 않다. 특히 도쿄는 전 세계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글로벌 시티 ― 국가의 아래 위를 넘나들며 전 지구적 자본주의를 지탱하고 조정하는 거대 도시 ― 로 알려져 있지만, 도쿄를 둘러싼 공간 격차는 단편적인 사례나 ‘느낌적인 느낌’ 말고는 객관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다. 도시를 연구 대상으로 하기에 데이터 수집에 어려움이 있기도 하지만, 기존의 많은 연구가 서구 도시에 한정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상황에는 고도성장기 직후라는 사회 분위기가 영향을 미쳤다. 1990년대 거품경제가 붕괴하고 일본 사회는 장기침체에 들어섰지만, 일억 총중류라는 대중적 통념이 여전히 강해서 격차 확대라는 실제 현실은 인식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2천 년대 중반 ‘격차사회’라는 유행시킨 르포 기사가 도쿄의 격차 문제를 백일하에 드러냈고, 그 이후 ‘하층사회’로 질주하는 도쿄의 양극화 문제가 언론과 학계, 대중의 시야에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책의 목표는 도쿄를 대상으로 도시 양극화를 체계적으로 입증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저자는 세 가지 접근을 택한다. 첫째, 에도시대 이래 지금까지 도쿄의 격차를 다루는 담론을 역사적으로 분석한다. 둘째, 소득 및 과세 자료를 사용해 도쿄 23구의 격차를 통계로 보여준다. 셋째, 도쿄의 대표적인 격차 지역을 답사해 공간의 격차를 실제로 체감한다. 이런 방법을 거쳐 도쿄는 소득이 낮고 노동자와 서민이 거주하는 ‘시타마치’, 소득이 비교적 높고 중산층이 살아가는 ‘야마노테’, 전 지구적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초엘리트 계층과 고소득층이 거주하는 ‘도심4구’라는 삼중 구조를 드러낸다.

    도시의 정치경제학, 자본주의가 만드는 도시

    도쿄의 양극화를 논증하기 앞서 2장에서는 공간을 바라보는 몇 가지 이론을 소개한다. 이 장을 끌어가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왜 하필 도시가 이런 형태를 띠고 있는가? 도시 공간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변해가는가? 도시에서 일어나는 잡다한 현상, 예컨대 주택난, 지가 상승, 재개발, 젠트리피케이션, 교통 문제, 환경 문제, 교육 문제 등의 이면에는 어떤 기제가 숨어 있는가? 결과적으로 도시의 공간적 양극화는 어떤 이유로 생기는가?

    사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공간 이론에서도 이런 질문에 쉽게 답하지 못했다. 오히려 도시 문제를 개별 사례로 다루거나 경제학에 기반한 입지론, 기술관료적·공학적 접근에 치우친 나머지 공간의 생산과 분화, 변화는 하나의 중심 원리로 설명되지 않았다. 이 책에서는 유럽과 미국의 도시 발전을 다루는 고전이론부터 창조나 문화, 생태, 환경을 다루는 최근 논의를 일일이 열거하기보다는 ‘계급도시’를 만드는 자본주의 동학을 다루는 이론틀로 곧장 나아간다. 그것은 정치경제학에 기초한 비판 지리학, 도시사회학, 그리고 사회이론에서 발전한 이론이다.

    2장에서는 자본주의 존속이라는 문제설정 아래 도시의 기능을 정의하고, 마르크스·엥겔스부터 카스텔, 하비, 사센을 거쳐 알튀세르와 브르디외까지 자본주의 도시의 생산과 변화·유지를 설명하는 접근을 소개한다.

    이에 따르면 첫째, 도시는 노동력 공급 및 재생산에 필요한 집합적 소비재, 예를 들어 주택이나 학교 등 공동 소비수단을 공급하는 소비의 장이다. 둘째, 도시는 공장, 교통 등 건조환경을 공급하고 공동 생산수단을 집적하는 생산의 장이다. 셋째, 도시는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연결하고 초고층 빌딩이나 교외의 대규모 택지 등 새로운 공간을 창출해 자본의 잉여를 흡수하는 투자의 장이다. 넷째, 도시는 의도적인 도시계획 등으로 사회의 권력 관계를 공간적으로 표현하는 장이다. 따라서 도시는 지배 이데올로기와 하비투스를 재생산하는 지배의 공간이다.

    도시의 고고학, 도쿄의 강남, 도쿄의 강북

    이처럼 2장에서는 도시의 문제를 자본주의의 생존, 계급 대립과 재생산 문제로 전화한 다음, 저자는 도쿄라는 구체적 장소로 눈길을 돌린다. 일단 3장에서는 역사 문헌, 문학 작품, 신문과 잡지 기사를 이용해 에도시대부터 현재까지 도쿄의 양극화가 어떻게 진행됐는지 보여준다. 또한 이런 담론이 도쿄 사람들의 심리와 태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본다. 이에 따르면 도쿄의 공간 격차는 개화기 이전부터 형성됐다고 한다. 에도시대 무사와 귀족은 고지대의 높은 성안에 거주하고 하층 계급은 저지대인 성 밖에 살았는데, 전자를 ‘야마노테’라고 하고 후자를 ‘사티마치’라고 불렀다. ‘시타마치’는 구 도심(에도성과 그 주변)을 중심으로 서쪽 지역을 주로 서쪽에 있었고 ‘야마노테’는 동쪽 지역에 주로 분포했다. 그러니까 해발 고도와 방위는 사는 지역, 사람들의 신분, 직업, 습관, 문화 등을 날카롭게 구분했다.

    개화기와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도쿄는 이런 구조를 동서로 더욱 확대했다. 구 도심을 중심으로 서쪽의 고지대는 주거 조건이 좋고 한적한 고급 주택이 들어서고 도심 지역에는 관공서, 대학, 오피스 빌딩이 올라간다. 그곳에는 귀족과 관리, 엘리트 계층, 자본가와 전문가, 관리자 집단이 많이 거주한다. 반면에 동쪽의 저지대와 임해부는 널따란 공장지대가 펼쳐지고 공장 주변으로 오래된 목조 주택, 쪽방, 소규모 가내공장, 낮고 작은 집합 주택, 상점 거리가 이어진다. 노동자와 이주민, 빈민, 그들을 상대하는 자영업자, 그들을 고용하는 소규모 공장주인 등이 열악한 주거 조건을 견디며 사는 곳이다.

    근대화를 거쳤지만 동쪽과 저지대는 프롤레타리의 동네(’시타마치‘), 서쪽과 고지대는 부르주아 동네(‘야마노테’)라는 구분이 확고해진 것이다. 게다가 지리적, 계급적 차이는 사람들의 심리와 태도에도 영향을 미쳐 ‘야마노테’ 사람은 ‘시타마치’ 사람을 업신여기고 ‘시타마치’를 미개인의 습관을 지닌 다른 나라로 취급한다. 그들에게 ‘시타마치’는 연민과 시혜의 대상이자 위험의 대상이다. 마찬가지로 ‘시타마치’ 사람도 ‘야마노테’에 대한 양가 감정을 지닌다. 그들은 ‘야마노테’의 화려함을 선망하지만 계급적 차이를 확인하고 르상티망을 가지거나 지레 절망한다. 그들은 ‘야마노테’의 발전에 자신이 희생됐으며, 양쪽을 가르는 스미다강을 건널 수 있는 국경선으로 여긴다.

    도시의 계급사회학, 격차가 커지는 도쿄

    4장에서는 1980년대 이후 도쿄의 지역 간 격차, 지역 내 격차를 객관적 데이터로 증명한다. 저자는 과세 자료와 소득 자료를 활용해 일본 전체, 도쿄 전체, 도쿄 23구 각각의 불평등 정도를 종단적·횡단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총량 소득의 지표적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이 책에서는 전체 인구를 자본가계급, 노동자계급, 구 중간계급(자영업자 등), 신 중간계급(전문가, 관리자 등)으로 구분하고 지역 간, 지역 내 계급구성의 분포를 조사하며, 각 지역별 빈곤층의 집적 양상을 살펴본다.

    이에 따르면 도심4구, ‘야마노테’, ‘시타마치’는 소득에서부터 계급구성, 빈곤율에 이르기까지 커다란 차이를 보여준다. 도심4구에서는 전통적인 자본가계급과 전 지구적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고소득의 엘리트 계층이 밀집하고, 야마노테에는 학력수준과 소득이 비교적 높은 관리자 및 전문가 계급이 분포하고 일부 자본가계급이 거주한다. 반면에 ‘시타마치’ 지역에는 소득도 낮고 학력도 낮은 노동자계급, 구 중간계급, 빈곤층, 자영업자 등이 집중한다. 이로 인해 도쿄 23구의 지역 간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진 것으로 확인된다.

    다른 한편 지역 내 격차도 커진 것으로 드러난다. 도심4구에서는 초국적 엘리트와 자본가계급, 고소득 전문직이 늘어났지만, 이런 계급에 봉사하는 불안정 노동자가 여전히 존재한다. 게다가 일부 도심에는 재개발을 기다리는 상점 거리나 쪽방촌이 곳곳에 분포한다. ‘야마노테’ 지역은 도쿄 전체의 소득이 늘어나는 동안 비례적으로 성장했지만, 소득 구간상 중간보다 약간 낮은 노동자 가구가 오히려 늘어나 지역 안에서는 격차가 약간 커졌다. 마지막으로 ‘시타마치’ 지역에는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 도심으로 출퇴근하는 신중간계급이 늘기도 했지만, 불황의 여파로 실업이 증가하고 불안정 노동이 늘어나 평균 소득이 하락하고 빈곤화가 진행됐다.

    결론적으로 도쿄에서는 지역 간 격차도 커지고 지역 내 격차도 커지는 격차의 일반적 확대가 나타났다. 게다가 이런 추세는 1990년대 이후 잃어버린 20년을 거치면서 안착됐고 2008년 전 지구적 금융 위기 뒤에는 더욱 빨라졌다.

    도시의 인류학, 격차가 교차하는 풍경

    5장에서는 도쿄의 계급 격차가 실제 공간에서 어떻게 표현되는지 필드워크로 살펴본다. 저자는 도심 지역의 중심업무지구를 대표하는 롯본기 주변을 걸으면서, 도쿄를 상징하는 포스트모던 풍의 마천루 사이에서 낡고 허름한 목조 주택과 판자촌을 찾아낸다. 그곳에는 전 지구적인 기업에 일하는 자본가, 관리자, 전문가, 관료뿐 아니라 구 식민지 출신의 이주민, 부두 노동자, 공공·임대 주택의 거주자 등이 엇갈리듯 살아간다. 롯본기힐즈 주변은 글로벌 시티 도쿄의 현실을 눈앞에 전시하며 격차를 실감하기에 가장 적합한 동네로 꼽힌다.

    바로 옆에는 ‘구 야마노테’(도심이 확장되기 전 야마노테)를 대표하는 분쿄구가 위치한다. 도쿄 대학이 자리한 언덕 위, 그 아래 ‘태양이 없는’ 골짜기, 양쪽을 연결하는 언덕길을 오르내리며, 저자는 지형과 대응하는 계급 관계를 명확히 보여준다. 이곳에도 롯본기 근처 도심만큼은 아니지만 날카로운 공간-격차 대비가 나타난다. 고지대 언덕 위에는 부유층이 거주하는 고급 주택, 그들을 상대하는 고급 상점과 상업 시설이 이어지고 저지대 지역에는 낡고 오래된 상점가, 손님이 없어 셔터가 내려진 시장터, 작은 목조 주택, 집합 주택이 펼쳐진다. 20세기 초 골짜기 밑에는 격렬한 파업이 벌어지기도 했고 지형과 계급의 관계는 가난한 사람들의 현실과 함께 문학 작품의 주제가 되기도 했다.

    시야를 조금 돌려 도쿄 외곽, 북쪽으로 나아가자. 도쿄 북쪽에는 기다란 단층선을 따라 절벽 위에는 중산층이 거주하는 대규모 아파트가 재개발로 들어서고, 저지대는 원래 농촌 지역이었다가 공장지대로 변한 곳이 많다. 최근에는 젠트리피케이션이 곳곳에서 일어나지만 여전히 작은 공장과 주택, 아파트형 공장 따위가 펼쳐진다. 이곳에서 저자는 새로 이주한 주민과 기존 주민의 갈등을 살펴본다. 비교적 소득이 높고 전문직·관리직으로 구성된 이주민은 노동자와 자영업자로 이뤄진 선주민의 부모와 아이들을 무시하고 차별적으로 대하며, 자기들만의 ‘게이트 커뮤니티’를 추구하려고 한다.

    조금 더 외곽, 정확히는 도쿄 동북쪽 아다치구로 걸어가자. 아다치구는 도쿄 23구 가운데 가장 가난한 동네로, 예전부터 노동자의 마을로 불렸다. 게다가 ‘격차사회’라는 말이 탄생한 지역으로 모든 사회경제지표가 낮은 곳이다. 소득도 낮고 학력 수준도 낮고 평균 수명도 낮다. 그곳에는 도쿄의 빈민, 이주민, 불안정 노동자, 소수자, 가난한 청년과 여성이 몰려 있다. 아침을 굶는 아이들이 많으며 성매매로 부업을 하는 여성도 적지 않다. 가히 도쿄 안의 제3세계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곳에도 젠트리피케이션의 열풍이 도달해 주거, 상업, 공업이 혼재한 마을 풍경이 변해가고 있다.

    도시의 정치학, ‘계급도시’에서 혼종도시로

    마지막으로 6장에서는 이런 계급도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다룬다. 앞선 장들에서 도쿄는 부유한 도심4구, 상대적으로 부유한 ‘야마노테’, 모든 사회경제적 지표가 떨어지는 ‘시타마치’라는 명확한 서열 구조가 확인된다. 서구에서 진행된 연구에 따르면 불평등이 심한 도시는 범죄율과 사망률이 높을 뿐더러 특정 계층만이 아니라 모든 주민의 건강과 행복이 나빠진다. 게다가 지역 간 격차는 아이들의 교육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쳐, 가난이 대물림될 가능성이 커진다. 모든 증거에 따르면 격차가 줄어들수록 개인과 공동체에 이득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격차를 줄일 것인가? 가장 먼저 소득 격차의 완화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서로 다른 지역에 서로 다른 사람이 모여 산다면, 경제 격차가 줄어들어도 이런 사회를 바람직한 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 분명히 아닐 것이다. 루이스 멈포드가 지적하듯이 서로 다른 계급, 서로 다른 사회계층이 분리된다면, 그 자체로 차별이나 배제가 늘어나고 사회 갈등이 악화되고 민주주의가 후퇴한다. 따라서 공간 격차가 유지되거나 커지면, 소득 격차가 줄어들어도 그 효과는 줄어들고 심지어 소득 격차의 확대가 가속된다.

    반면에 서로 다른 사람이 어울려 산다면, 서로 다른 문화가 교차해 혼종적인 새로운 문화가 탄생하고 아이들이 주변에서 다양한 역할 모델을 찾을 수 있어서 가난의 대물림도 완화될 것이다. 실제로 저자가 전국 단위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다양한 계층이 같은 교실에서 공부할수록 향학열이 전염돼 대학 진학률이 높아졌다고 한다. 그러므로 소득 격차의 감소뿐 아니라 거주지 분리, 공간의 격리 차제가 극복돼야 한다.

    이런 원칙 아래 이 책에서는 주민 구성의 다양성이 격차 완화에 도움이 되고 불평등이 적은 도시에 기여한다고 바라본다. 그러니까 저자는 도시계획의 기본 단위로서 지역 사회는 고소득 계층과 저소득 계층, 이주민과 소수자 등이 공존하는 혼합형 사회가 좋다고 주장한다. 계급도시를 극복하려면 모든 지역에는 의식주를 해결하는 사회기반시설이 골고루 갖춰지고 공적 활동에 관계된 시설과 제도가 차별 없이 구비될 필요가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주민의 구성에서도 사회 전체를 대표하는 다양성이 보장돼야 한다.

    거주민의 다양성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은 사회 정책과 공간 이론에서 ‘소셜 믹스’라는 개념으로 알려져 있다. 저자의 말을 인용하면, “소셜 믹스는 다른 계급에 속한 사람과의 접촉을 촉진하며, 이로 인해 하층계급의 생활 습관을 개선하고 건강이나 교육 수준을 향상한다. 이질적 문화가 접촉하여 문화교잡이 일어나고 문화가 발전한다. 소셜 믹스는 경제 활동이나 정치 참여, 양질의 교육에 참여할 기회를 평등하게 하고, 인종이나 계급 간 적대심을 완화하여 상호이해를 촉진한다. 게다가 고용 균형과 경제 안정이 일어나, 재정 확보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고 공공시설이나 공공서비스의 확충에 기여한다. 나아가 다양한 종류의 주택이 공급되면, 주민들은 지역 사회 안에서 자신이 필요한 주택을 손쉽게 마련하고, 마이너리티나 빈곤층도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가능하면 정착한다. 그 결과 주민들은 다양한 부류의 사람과 일상적으로 교류하게 되고, 도시는 점점 더 민주적 교류의 공간이 된다.”

    물론 이는 이상적인 주장이다. 실제로 소셜 믹스는 수많은 정책에 영향을 주었지만 형식적 혼합에 치우친 나머지 기대한 바의 효과를 보지 못하거나 역효과를 내기도 했다. 그런데도 저자가 소셜 믹스를 잠정적 대안으로 꼽는 것은 대안적인 정치, ‘정의로운 도시’를 지향하는 데는 이와 같은 규제적 이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르페브르에 따르면 현대 사회는 도시화된 사회이며, 촌락 지역마저도 도시와의 연결 속에서 존재한다. 심지어 오늘날 세계는 도시와 촌락, 제1세계와 제3세계가 분리할 수 없도록 긴밀히 연결돼 있다. 따라서 더 평등한 사회, 더 평등한 지구를 만들기 위해서는 도시에 대한 상을 바꾸는 작업이 중요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저자는 계급도시가 아니라 혼합형 사회, ‘혼종도시’라는 규제적 이념을 제시한다. 이는 결국 이상적인 공동체를 어떻게 기획할 것인가, 마르크스적 의미에서 각자의 발전이 모두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공동체의 기반은 무엇인가, 필요와 노동이 아니라 개개인의 활동이 펼쳐지는 폴리스의 이상은 어떻게 구축될 것인가, 어떤 도시가 이런 공동체, 폴리스의 건설에 도움이 될 수 있는가라는 고민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저자가 주장하듯이 무조건 어울려 산다고 격차가 줄어들고 도시의 분단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가시적·비가시적 장벽이 여전히 남아 있다면, 다양성이 격차의 완화가 아니라 차별로 이어질 것이다. 수많은 연구와 경험에 따르면 기득권자는 자신과 다른 집단을 아웃사이드로 만들고 지역사회에 밀어내려고 한다. 젠트리파이어, 게이티드 커뮤니티는 가장 최근의 사례일 뿐이다. 실질적 장벽이 없는 혼주사회, 다양성이 질적으로도 양적으로 보장된 도시. 저자에 따르면 격차가 작은 사회는 이런 기초 위에 가능하다.

    도시에 대한 권리, 정의로운 도시

    이 책에서는 도쿄를 대상으로 ‘계급도시’라는 현실을 정확히 보여준다. 간단히 말하면 자본주의 도시는 불평등을 양산하는 ‘격차사회’로 이어지고 격차는 필연적으로 공간에 표현된다. 반대로 공간의 격차는 계급 간 분리를 더욱더 강화한다. 다만 이 책은 일본의 현실, 그것도 도쿄라는 도시에 한정된 결과이다. 따라서 저자의 분석을 얼마나 보완하느냐, 제1세계 도쿄가 아닌 한국의 현실에 어떻게 전유하느냐, 도시에서의 운동, 혹은 저항을 어떻게 활성화할 것인가 문제는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이다.

    도쿄와 서울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시야에 넣고, 자본의 운동이 만들어낸 탐욕의 도시가 아니라, 각 지역마다 각각의 색채를 유지하면서도 지역 간 격차가 작은 도시. 그러면서도 서로 다른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도시. 특정한 계급이나 기득권자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두의 욕구와 필요, 활동에 기여하는 도시. 나와 가족의 이익이 아니라 이웃과 공동체의 이익에 봉사하는 도시. 각자의 개성이 살아나고 공동의 문제를 다루는 민주적 도시. 이를 위해서는 저자가 제시하하는 혼합형 사회뿐 아니라, 형식적 평등을 실질적 평등으로 전환시킬 더 구체적이고 추상적인 규제적 이념이 필요해 보인다.

    아마도 르페브르가 제시하고 하비가 강조한 ‘도시에 대한 권리’는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도시에 대한 권리는 그곳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 특정한 시민이나 계급, 계층, 집단이 아니라 모든 사람 ― 심지어 다른 지역과 국가의 주민까지 ― 이 보편적인 경제권, 정치권, 사회권, 문화권 등을 요구하고 향유할 권리를 말한다. 이런 권리는 보편적이면서도 구체적인 정책과 담론에 열려 있어서 도시에서의 다양성을 추구할 권리, 바꿔 말해 차별받지 않을 권리, 자신이 자신이고자 하는 권리도 당연히 포함된다. 저자가 바라듯이, 이런 도시에는 사는 곳에서 신분의 꼬리가 붙지 않으며 자신이 살고자 하는 곳에 원하는 기간만큼 머물 권리, 이른바 거주권도 포괄적으로 확보될 것이다.

    물론 ‘도시에 대한 권리’는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자본의 동학에 따라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민주주의와 인권선언의 역사가 증명하듯이, 이런 권리는 도시를 구성하는 행위자들이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싸울 때 확보된다. 그리고 반란과 저항은 추상적 권리를 구체적 요구로 현실화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자본주의의 생존이라는 근대 도시의 지도 원리를 다른 원리로 바꾸어낼 수 있을 것이다. 저자가 주장하듯이 이 책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이들에게 사고 실험과 활동 근거로 작용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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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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