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의 삶과 인권에
“나중에”는 너무 늦습니다
[청년칼럼] '서울대 난민인권 공동행동’ 출범과 난민·학생 연대
    2019년 11월 19일 01:3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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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의 인권에 “나중에”란 없습니다. 삶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사람들에게, 삶의 터전에서 뿌리 뽑힌 사람들에게 “나중에”는 너무 늦습니다. 작년 예멘 난민들이 제주도로 입국했을 때, 난민 수용에 반대하는 이들은 “국민이 먼저다”를 외치며 “난민 반대”를 주장했습니다.

과연 난민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 나라에서 국민의 인권은 보장될 수 있을까요? 다수와 다른 종교를 믿는다고 해서 차별받는 나라라면, 다른 나라에서 종교 박해를 피해 찾아온 사람이 환영받지 못하는 나라라면, 어떤 종교를 믿는 어떤 사람의 인권도 절대 안전할 수 없습니다. 일자리 부족과 범죄를 난민에게 덮어씌우는 근거 없는 가짜 뉴스가 횡행하는 나라라면, 난민이 아닌 어떤 사람도 자신의 정체성에 따라 차별과 혐오의 희생양으로 지목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서울대 난민인권 공동행동’이 출범했습니다. 관악 여성주의 학회 달, 디어스누, 사회대학생회, 사회변혁노동자당 서울대분회, 서울대녹색당, 정의당 서울대학교 학생위원회/학생모임,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 등의 단위들이 함께 연대체를 구성하고 “난민도 살아남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서울대 난민인권 공동행동’은 가장 먼저 이란 난민 김민혁 씨 아버지의 난민지위 인정을 촉구하기 위해 학교 현장 내에서 난민 인권 의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자 했습니다.

김민혁 씨 아버지 난민 자격 인정 요구 및 서울대인 연서명 발표 회견. 서울대저널 제공.

종교적 박해의 위험으로 인해 이란으로 돌아갈 수 없는 김민혁 씨가 난민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게 되자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습니다. 아주중 선생님과 학생들, 그리고 수많은 시민들의 연대 속에서 김민혁 씨는 난민 지위를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 새로운 터전을 마련할 희망은 김민혁 씨 아버지의 난민지위 불인정 결정으로 인해 다시금 꺾이고 말았습니다. 종교적 박해의 위험이라는 동일 사유를 두고도 다른 결정이 내려지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다행히 미성년자 자녀의 보호자라는 명목으로 강제추방은 면했지만 난민 지위 불인정으로 인해 일자리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야 합니다. 지난 여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여러 의원실을 방문하며 난민 인권을 호소하는 김민혁 씨의 친구들과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긴 싸움의 한가운데에서 지칠 법도 하건만, 김민혁 씨 아버지와 연대하는 분들은 여전히 희망을 가득 안고 어려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서울대 난민인권 공동행동’은 김민혁 씨 아버지, 그리고 비슷한 처지에서 고통받고 있는 모든 난민들의 생존권을 보장하라는 성명을 작성하고 학교 곳곳에 대자보를 붙였습니다. 아울러 김민혁 씨 아버지의 난민 지위 인정과 난민 권리 보장을 요구하는 서울대 학생 일동의 연서명을 모집하여, 단체 7개와 학생 115명의 서명을 받았습니다. 10월 14일에는 서울대 아크로폴리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연서명 결과를 발표하고, 김민혁 씨 아버지의 난민 지위 인정 요구와 함께 현재 법무부가 추진하려는 난민법 개악 등 반인권적 제도를 규탄하는 목소리를 냈습니다. 여러 언론들, 그리고 무엇보다 학교 현장의 많은 학생들이 한국의 난민 인권 실태가 얼마나 심각한지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셨습니다.

‘한국의 난민 인권을 말하다’ 강연회. 곽명철 제공.

11월 7일에는 기자회견 이후 후속 사업으로 ‘한국의 난민 인권을 말하다’ 강연회가 개최되었습니다. 총 2부로 구성된 강연회에서 1부는 난민 인권 활동가인 ‘난민과손잡고’ 대표 김어진 씨가, 2부는 난민 당사자인 김민혁 씨와 그 친구들이 연단에 섰습니다. 김어진 씨는 ‘난민을 통해 본 한국 사회와 글로벌 사회’라는 제목으로 난민 문제가 단순히 어려움에 처한 개인들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을 둘러싼 사회적 구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라고 이야기했습니다. 한국이 무기 판매를 통해 지원한 예멘 내전 과정에서 한국제 폭탄에 집을 잃은 예멘 난민들이 제주도로 입국하고, 한국이 터키에 판매한 자주포와 수류탄이 지금도 시리아와 쿠르드 난민들을 내몰고 있다는 현실은 난민을 만들어내는 전쟁과 자본의 세계체제에서 한국도 한 축을 담당하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보호는커녕 화재가 발생해도 철창을 열어주지 않아 난민들이 목숨을 잃는 외국인보호소, 생계를 위해 가장 어렵고 위험한 노동으로 내몰리지만 산업재해를 당하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난민들의 노동현장,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해 진통용으로 마신 소주병들이 가득한 난민들의 방. 이것이 우리 사회가 애써 모른척했던, 우리 사회에서 가장 소외당하고 억압받는 난민들의 그림자 가득한 현실이었습니다. 어떤 경제적 근거도 없이 난민 유입이 한국인의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주장하는 난민 혐오는 결국 난민을 복지 혜택도 받지 못하는 저임금 노동자로 착취하는 구조에 일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김민혁 씨와 친구들이 연단에 오른 강연 2부에서 그들은 지금까지 겪어온 ‘반난민 바람에 맞선 17개월’의 경험을 생생하게 이야기했습니다. 경제적 어려움은 물론이고 난민과의 연대에 소극적인 학교와 주변 사람들의 불친절한 시선, 장시간 동안 반복적이고 위압적으로 질문을 쏟아내는 난민심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연대했던 아주중 오현록 선생님과 시민들의 도움으로 지금까지 싸움을 이어올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김민혁 씨는 아버지가 난민 지위를 인정받고 나면 모델이 되고 싶다며 모델 대회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를 통해 난민도 당당하게 한국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다른 난민들의 권리 증진에도 도움이 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김민혁 씨가 직접 만든 명함 디자인을 보고, 한쪽에는 ‘難民’ 다른 쪽에는 ‘REFUGEE’라고 쓰인 문구 때문에 잠시 울컥했습니다. 스스로 난민임을 가시화하면서 모든 난민들의 인권이 당연하게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의지가 느껴져서, 그리고 동시에 난민이 끊임없이 한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난민’이라는 명칭으로서만 불리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난민이 발생하지 않는 세계 사회가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그 이전에 난민이 당당한 사회 구성원이자 존엄한 인격체로 당연히 존중받을 수 있는 한국 사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난민이 스스로 난민임을 부각하며 싸우지 않아도 모든 난민의 인권이 당연히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 난민이 특이한 존재로 대상화되지 않고 한 인간으로서 자신을 실현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 첫걸음에서, 한국이 김민혁 씨 아버지의 난민지위 불인정으로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고자 하는 이들의 희망을 꺾어버리지 않기를, 그리고 난민법 개악으로 그렇지 않아도 심각한 난민 인권을 더욱 후퇴시키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난민 인권에 “나중에”란 없습니다. 지금 내딛는 한 걸음이 누군가의 삶을 살리는 걸음이요, 인간 존엄성을 위해 당연히 지금 디뎌야 할 걸음입니다.

글쓴이 : ‘서울대학교 난민인권 공동행동’ 활동가. 정의당 서울대학교 학생위원회 위원장.
정의정책연구소 청년포럼 위원

필자소개
정의당 서울대학교 학생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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