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동을 망치는 '독수리 5형제'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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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8월 14일 09:1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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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지의 주인공인 유비 3형제는 소설의 주인공 치고는 허망하게 죽는 편이다. 관우는 육손의 계략에 빠져 죽고, 장비와 유비는 이에 대한 복수를 하려고 하다가 죽는다. 일반적인 소설은 주인공이 죽으면 끝나는데, 삼국지는 주인공들이 죽고도 한참을 계속한다.

    권불 10년, 운동진영도 마찬가지

    심지어 제갈공명은 죽어서도 사마중달과 싸워 이기기도 한다. 어찌 보면 주인공들의 죽음을 이렇게 간단히 다루는 것은 삼국지라는 소설의 특성 상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영웅들의 무용담이기는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주인공들이 주창한 대의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생명은 생물학적으로 신체기능이 멈추면 끝나지만, 한 집단이 내건 명분이나 대의는 그것이 대중들에게 뿌리박는 것이라면 한 개인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삼국지의 주인공들의 죽음은 안타깝기는 하지만 비교적 가볍게 다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한다.

    사실 명멸하는 개인들은 항상 우리의 일상 곁에 있는 것이다. 서구사회가 300년에 한 것을 30년만에 압축적으로 이루어낸 한국 사회에서 개인과 집단의 명멸은 역시 초스피드로 이어졌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는 말은 3김과 같은 특출난 경우가 아니면 거의 모든 개인에게 해당되었다. 이는 운동진영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탐관오리와 소인배를 경멸하며 일세를 풍미했던 의기 있는 인사들이 안락한 생활 속에 호의호식하며 초라하게 타락하여 공기업이나 각종 협회의 이사자리를 꿰 찬 반면, 계훈제 선생처럼 소탈한 지사는 병원비가 없어 말년에 초라한 죽음을 맞았다.

    변화된 상황에 적응 못해 맞은 유비 3형제 죽음

    그러나 중요한 것은 개인의 권위와 영광은 아니었을 것이다. 민주화보상법이라는 초라한 법률이 만들어져 많은 분들이 혜택을 입었지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세상을 바꾸는 것, 아니 최소한 그 동력을 만들어내는 것이었을 것이다.

    유비가 죽은들 상황이 바뀐 것은 없다. 의외의 야심가였을 수도 있는 당대의 책략가이자 정치가인 제갈공명이 있었고, 강유와 같은 새로운 인재가 있었다. 무능한 왕이지만 정통성을 이어갈 수 있는 핏줄이 있으니, 천하삼분지계라는 전략을 더욱 높게 끌고 가야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삼형제의 죽음에 슬퍼하여 소설이 끝났다면 삼국지는 그야말로 통속 소설일 것이다.

       
    ▲ 2004년 4월15일 서울 여의도 민주노동당 앞에서 개표방송을 보며 기뻐하는 당원과 지지자들.(서울=연합뉴스)
     

    어찌 보면 유비 3형제의 죽음은 변화된 상황에서 자신의 역할을 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자의반타의반으로 선택한 것인지도 모른다. 백전노장인 관우가 신진기예인 육손에게 패하였다는 것은 새로운 질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였다는 것이고, 복수는 서두르지 않는 법인데, 복수를 서두르다 그 여파로 죽은 유비와 장비 또한 자신의 역할이 다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왕후장상이 되어 나라를 통치하려면 예전의 건달패와는 다른 것인데, 마음속의 열정이 끓어 넘치니 참을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이 부분에서 약간은 숙연해지기도 한다. 사실 원내진출 이전 나는 어떻게 되어도 좋으니 원내만 진출했으면 하고 올인했던 민주노동당의 수많은 이름 없는 얼굴들은 원내진출 이후 모든 것이 게임으로 변질되어 버리고, 개인들 간의 권력투쟁으로 비화되어 버린 상황에서 쓸모가 없어져 버렸다.

    "세월이 그대로 배반해도 억울해하지 말라"

    그러나 억울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때가 되면 죽거나 퇴장하여 또 다른 미래를 준비하게 하는 것이 당연하고, 내가 없다고 해서 민주노동당에 큰 일이 생길 이유 또한 전혀 없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운동을 망치는 것은 다른 모든 영역에서와 마찬가지로 내가 없으면 지구를 누가 지키는가 하는 ‘독수리5형제’ 의식인지도 모른다.

    내가 지구를 지키지 않아도 지구를 지킬 사람은 너무나 많다는 것을 느끼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인 것 같기는 하지만.

    불현듯 유비 3형제가 죽은 이후 촉에게는 새로운 기회와 도전이 열렸듯이 진보정당에게도 새로운 계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얼마 전 어떤 사람이 ‘민주노동당 의원단은 교황 선출하는 추기경모임 같다’라는 말을 한 것을 들으면서 베트남 공산당에서 고위간부들이 대거 은퇴한 ‘아름다운 퇴장’이 생각났다. 베트남공산당은 아마도 그러하기 때문에 혁명과 독립에 성공하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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