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은, 금강산 남측시설 철거 지시,
    평양선언 미이행 불만 및 대미 메시지
    정치권, “유감” “섣부른 결정” “철회 촉구” 등 밝혀
        2019년 10월 23일 01:0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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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북협력 상징인 금강산의 남측 관광시설 철거를 지시했다. 지난해 9월 남북 정상이 평양공동선언에서 합의한 금강산 관광 재개를 이행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 표시인 동시에, 합의의 조속한 이행을 촉구하는 뜻으로 해석된다.

    김 위원장이 미국을 담당하는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을 대동하고 이러한 발언을 했다는 점에서 “미국을 향한 메시지”라는 분석도 있다. 난항을 겪고 있는 북미 대화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자력갱생의 의지를 다시 한 번 밝혔다는 것이다. 금강산의 남측 시설 철거 지시가 비핵화 논의에 속도를 내지 못하는 한미 양국을 향한 것인 셈이다.

    북한 노동신문은 김 위원장이 금강산 일대 관광시설을 현지지도하면서 “관광지구에 꾸려놓은 봉사건물들이 민족성이라는 것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며 “건물들을 무슨 피해지역의 가설막이나 격리병동처럼 들여앉혀 놓았고 건축미학적으로 심히 낙후할 뿐만 아니라 그것마저 관리가 되지 않아 남루하기 그지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현지지도에는 장금철 노동당 통일전선부장, 김여정·조용원·리정남·유진·홍영성·현송월·장성호를 비롯한 당 간부,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 마원춘 국무위원회 설계국장 등이 수행했다.

    김 위원장은 “손쉽게 관광지나 내어주고 득을 보려고 했던 선임자들의 잘못된 정책으로 하여 금강산이 10여년간 방치되어 흠이 남았고, 땅이 아깝다. 국력이 약할 적에 남에게 의존하려 했던 선임자들의 의존정책이 매우 잘못됐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어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너절한 남측 시설들을 남측의 관계 부문과 합의하여 싹 들어내도록 하고 금강산의 자연경관에 어울리는 현대적인 봉사시설들을 우리 식으로 새로 건설하여야 한다”고도 지시했다.

    그는 “금강산이 마치 북과 남의 공유물처럼, 북남관계의 상징, 축도처럼 되어 있고 북남관계가 발전하지 않으면 금강산관광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고 잘못된 인식”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세계적인 관광지로 훌륭히 꾸려진 금강산에 남녘동포들이 오겠다면 언제든지 환영할 것이지만 우리의 명산인 금강산에 대한 관광사업을 남측을 내세워 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데 대해 우리 사람들이 공통된 인식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방송화면 캡처

    작년 평양 남북공동선언 미이행에 대한 불만
    최선희 부상 동행, 미국 향한 메시지 성격도 있어

    금강산 남측 시설을 두고 김 위원장이 이처럼 감정적 표현을 쏟아낸 배경으로 지난해 평양공동선언에서 합의한 금강산 관광 재개를 남측에 촉구하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23일 오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느쇼’와 인터뷰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금강산 관광 특구 개발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고, 문제가 안 풀리는 것에 대한 격분 내지는 상실감이 얼마나 큰지가 드러나는 대목”이라며 “집권의 전 기간을 투자하다시피 해서 지금까지 만들어온 게 하나도 진척이 없으니 남측 시설이 ‘흉물 같다’고 얘기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의원은 “북측이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한테 (금강산 관광이 재개되면) 내금강, 백두산 관광 개발까지 가져가시라는 놀라운 제안을 했었다”며 “그런데도 남측에서 아무 반응이 없으니 약이 오르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국제 제재 때문에 응답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실제로 북한은 ‘관광 사업을 대대적으로 하고 싶은데 남측이 파트너가 아니면 다른 길을 택하겠다. 이제 남측하고 손 안 잡고 북한의 독자 사업으로라도 가겠다’는 이야기를 한 것”이라며 “국제 공조, 한미 동맹을 이유로 우리가 계속 반응을 안 보이면 북한은 아마 독자 개발을 할 것 같다”고 내다봤다.

    김 위원장의 행보가 남측은 물론 미국까지 한미 양측을 향한 메시지라는 분석도 있다.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해 미국이 북한에 대한 제재를 해제해야 한다는 요구라는 뜻이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YTN 라디오 ‘노영희의 출발 새아침’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미국과 대화가 잘 진행되지 않으니, 자력갱생을 외치면서 미국의 압박이 있더라도 북한 스스로 헤쳐 나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반복하는 것”이라며 “‘남에게 의존하는 선임자들의 정책은 잘못됐다’고 했는데 큰 맥락에서는 자력갱생을 강조하는 그런 틀에서 나온 말”이라고 말했다.

    신 센터장은 최선희 부상을 대동한 것에 대해 “메시지를 한국에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에게도 동시에 전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면서 “제재 완화, 금강산 관광 같은 것을 할 수 있도록 미국이 양보를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낸 것”이라고 말했다.

    박지원 대안신당 의원도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북한에서는 약속했던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를 안 해주느냐고 맹비난을 하는 것인데 그 행간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과 지금도 전화하고 있다면서 ‘대규모 재건’이 있을 것으로 얘기했다. 북미 정상 간에는 대화가 이뤄지고 있는 것 아닌가”라며 “최선희 부상을 데리고 가서 그러한 얘기를 한 것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는 “북한은 북미대화를 시작하면서 최소한 경제제재 해제 조치 일환으로 맨 먼저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상징적으로 풀어달라고 요구했다”며 “‘남측 관계자들과 협의해서 (철거)한다’고 한 것은 미국에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며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대규모 재건을 언급한 것은 북미 정상 간에는 무엇인가 대화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민주 “남북교류의 답보상태, 상황적 한계 있어···인내와 노력 필요”

    우리 정치권은 북미대화 난항 등 합의 이행의 현실적 어려움을 언급하며 금강산 남측 시설 철거 지시 철회를 촉구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유감”을 표했다. 이재정 대변인은 이날 오전 국회 브리핑에서 “남북 교류와 평화의 대표적 상징인 금강산 관광인 만큼 북측의 조치는 안타깝고 유감”이라고 밝혔다.

    이 대변인은 “국제사회의 대북재제와 북미대화의 난항이라는 어려움 앞에서 남북교류가 일정부분 답보상태에 놓일 수밖에 없던 상황적 한계도 없지 않았다”며 “그러나 오랜 시간의 반목과 갈등을 봉합하고 화합하는 길에는 남북 모두의 인내와 노력이 필요한 일”이라고 했다.

    그는 “지금이라도 남과 북은 차분한 진단과 점검을 통해 남북 상호간 교류와 협력을 진척시키기 위한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며 “북은 물론, 우리 정부 역시 남북 교류협력을 위한 적극적 노력에 나서야 한다”고 당부했다.

    박주현 민주평화당 수석대변인은 “남북경협에 소극적인 우리 정부를 향해 강한 불만을 표출한 것이며, 강한 압박을 통해 제제 해제의 물꼬를 트려는 목적으로 비춰진다”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남북교류 협력의 상징인 금강산 관광시설을 철거하는 것은 섣부른 결정”이라며 “남북 교류의 문을 걸어 잠그는 공세적 조치들은 평화를 가로막는 철조망을 쌓는 것과 같다. 북한도 한반도 평화에 인내와 자신감을 갖기 바란다”고 했다.

    김종대 정의당 수석대변인은 “북한이 관광 중단의 탓을 우리 정부에 전가하며 일방적으로 남북협력을 파기한다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 기존의 남북합의에 대한 중대한 위반일 뿐만 아니라 북한이 더더욱 고립을 자초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김 수석대변인은 “국제 제재가 완화되지 않는 한 사태가 호전될 수 없는 국제정세의 구조를 이해하고 남북이 힘을 모아 돌파구를 열어야 한다”며 “북한은 남측 시설 철거 방침을 철회하고 문재인 정부와 한반도 평화번영의 신경제 지도를 완성하는 길로 즉시 나서야 한다. 금강산은 겨레의 공동자산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남북 상생의 길로 나오라”고 촉구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난하고 나섰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원내대표-중진의원 회의에서 김 위원장의 발언을 언급하며 “문재인 정권은 아직도 금강산관광 재개에 목매고 있다. 한마디로 러시아한테 당하고, 북한한테 당하고, 정말 아무한테나 당할 수 있는 나라 만들고 있다”며 “문재인 대통령은 말로만 평화 외치지 말고 평화를 담보할 안보와 동맹 챙기시라”고 말했다.

    최도자 바른미래당 수석대변인은 “북한은 끊임없이 싫다고 하고 있는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끊임없이 ‘평화경제’를 강조하고 있다”며 “평화가 아닌 긴장과 위협만 고조되고 있는 남북관계의 현실을 애써 보지 않으려는 정신승리는 이제 중단되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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