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지한 이해없이 ‘개독질’만 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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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01월 29일 03:2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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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에 아프가니스탄 피랍사태 등을 계기로 한창 인터넷에서는 ‘개독’이란 말이 성행한 적이 있다. 공격적 선교행태, 다른 종교와 다른 생각에 대해서 인정하지 않는 기독교의 배타성에 대해서 비난하는 단어다.

    물론 아프가니스탄 피랍사태 때에 감정이 앞서서 오로지 기독교의 모든 것을 비난만 했던 일부 네티즌들의 행태가 옳았던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예수천국 불신지옥’과 천편일률적인 공격적 포교와 교리문답, 다른 이의 반론을 귀담아 듣지 않고, 이해하지도 못하는 기독교의 태도에 대한 함축어였던 ‘개독’ 은 참으로 많은 공감을 얻었으며, 기독교 일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를 내는 계기가 되었다.

    서두를 개독이란 말로 시작한 이유는, 바로 다함께 전지윤 씨(이하 존칭생략)의 이재영 의 「다함께가 신당을 반대하는 진짜 이유들」에 대한 반박 글이 참으로 ‘개독스러웠기’ 때문이다.

    이 글은 다함께가 신당을 반대하는 진짜 이유들에 대해서는 ‘한심한 중상’이라고만 말하고 자신들의 교리문답을 구간반복 재생하며 투고 글의 지면을 마구 늘리고 있다.

    ‘진짜’ 이유들을 말하는데 다함께의 표면적 이유를 왜 반박하는가? 이렇게, 진지한 이해는 없고 한심한 난독증만 보여준 이 글에서 전지윤은 재반박을 재반복으로 대체하고 있다.

    ‘신문팔이 학생’ 폄훼 왜곡 아니다

    전지윤의 이재영 비판은 다함께에 대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인식을 ‘폄훼, 곡해’라며 옛날 얘기와 자기네 신문 이야기를 동치시키는 착각을 저지르고 있다.

    미안하지만, 다함께가 자신들에 대해 뭘 어떻게 생각하든 남들이 보기엔, 남의 집회 시위에서 누가 뭘 하든 말든 아랑곳 없이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맞불! 800원 입니다!”를 외치는 학생들이 맞다. 발언자의 말을 경청하지도 않는 무례한 자들을 ‘신문팔이 학생’들로 볼 수밖에 없는 일이다(1,000원 내면 가끔씩 잔돈이 없다고 답한다).

    그게 어떻게 폄훼, 곡해인가? 다함께는 다른 이들의 일반적인 인식을 무작정 부인하기 전에 자신들이 어떻게 신문을 팔아왔는지부터 생각해보라. 조중동도 보수단체 집회에서 그런 식으로 신문 팔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재영의 민주집중제에 대한 비판에 대해, 캘리니코스 책을 그가 읽어보지 않았다는 말과 함께 그 주장의 근거와 논증을 깡그리 무시해버린다. 아니, 그 사람 원전 못 읽으면 그 사람의 주장을 전부 이해하지 못한단 말인가?

    토론과 주변 사람들이 주장하는 ‘숭상하는 이’의 주장이 정말 얼토당토 않으면, 책을 읽어보지 않고도 충분히 반박할 수 있는 법이다. 전지윤 씨가 외스타 에스핑-안데르센(Gøsta Esping-Andersen)이나 베른슈타인 등의 저서, 혹은 김일성의 주체사상 총서를 다 읽어보고 사민주의나 NL의 주장을 반박하는 것이란 말인가?

    혹은 다함께 사람들의 정치적 주장과 반대들은? 책 다 읽어보고 말하는 건가? “일단 성경을 다 읽으시고”와 뭐가 다른가?

    물론 레닌의 당 이론이 의식의 불균등성을 기반으로 하는 것은 맞다. 그리고 그 불균등은 누구나 인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민주집중제와 그에 반대하는 이들의 차이는, 의식 불균등성에 대한 인식 차이가 아니다.

    의식의 불균등성이 권리와 주장의 불평등을 낳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대한 인식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재영은 민주집중제가 혁명을 위해 옳다 그르다를 문제로 삼지 않았다. 혁명이든, 사민주의든, 누구나 맞을 수 있고, 누구나 틀릴 수 있다는 각자 주장과 권리의 평등을 인정하는가, 아닌가가 문제의 핵심이다.

    현재 민주노동당의 민주집중제 실상

    민주집중제의 실상은 무엇이었던가? ‘말빨’이랑 쪽수 되는 정파가 다른 주장 다 무시하고 자기 주장 관철시키고 강요하는 것이었을 뿐이다. 그게 민주주의인가? 그런 ‘당원 민주주의’를 우리는 현재의 민주노동당에서 보았다.

    우리도 토론은 했다. 그리고 표결. 행동의 통일과 집회 시위에 나오라는 추궁과 강요. 국가보안법 폐지 올인 투쟁, 주한미군 철수, 북핵 자위권, 일심회는 국가보안법의 피해.

    그런 강요와, 이에 따르지 않으면 행동을 통일하지 않았고 게으르다는 비판이 나왔다. 그게 다함께가 반대하는 패권주의다. 그리고 그 패권주의는 쪽수만 되고 말빨은 안 됐다!

    민주집중제는 찬성하는데 패권주의는 반대? 하기사 패권주의 반대를 말하면서 강남 지구당 접수사건에 대해 일언반구의 사과와 반성도 하지 않는 자들에게 무엇을 바라겠는가.

    이재영은 민주집중제에 대해서, 타인의 주장에 대해서 그 주장의 중요도를 동등하게 평가하지 못하고, 혁명적이냐 아니냐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다른 이의 판단을 억압하는 성질을 본 것이고, 그것을 알 카에다, 소련, 중국, 북한의 독재정권과 비교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진지한 이해는 찾아볼 수 없고, 그저 옛 역사에 대한 지루한 이야기, 레닌이 ‘짱’이고 다른 곳과는 어떻게 다르고 등등. 왜 민주집중제에 대한 철학적 문제제기, 즉 ‘충분한 설득없이 타인의 주장을 묵살하고 자신의 주장만을 강요하는 것이 옳은가?’라는 것에 대해서는 반론하지 않는 것인가.

    그냥 민주집중제의 당위성에 대한 그들만의 설명만 있을 뿐. 하긴 테러단체와 다름 없다라는 말에 강력히 반발할 만도 하다. 아프가니스탄 갔으면 피랍되었을지도 모르니.

    그리고, 정당이 민주집중제를 왜 선택하면 안 되는지에 대해, 국가 맹아인 정당에서 선택하면 안 된다는 말에, 뜬금없이 ‘맑스주의 국가’를 들먹인다. 지금 우리가 사는 국가가 맑스주의 국가인가.

    민주노동당은 대한민국이란 나라와 상관없는 ‘맑스주의적 정당’인가? 민주노동당의 강령, 당헌당규를 살펴보아도, 그 어디에도 민주노동당이 행동주의적 전투정당이란 말은 없다.

    ‘맑스’와 ‘하느님’

    이에 대한 동의도 설정되어 있지 않을 뿐더러, 그들의 맑스주의 국가인지조차도 모르는 일이다. 맑스란 말을 하느님이란 말과 바꿔보라. 그들이 말하는 근거가 어떻게 근거로서 가치가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재영의 ‘진짜 이유’에 대해서, ‘숭상’과 숭배는 다르며, ‘기생’은 정당하다고 이야기하는 전지윤. 반자본주의자와 좌파는 민주노동당이라는 진보정치의 선진적 부위에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사민주의자들의 ‘기생’을 비판한다.

    그들은 ‘기생’이란 말, ‘숙주’란 말의 뜻을 알긴 아는가? 기생은 ‘숙주’에 살면서 그 숙주를 죽이고,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는 것이며, 숙주라는 것은 기생충에게 그 삶의 터전을 주는 것이다.

    자, 민주노동당은 누가 만들었는가? 전지윤이 말하는 사민주의자인가? 아니면 이재영 이 말하는 다함께인가? 민주노동당의 가치에 동의해서 들어온 것이 아니라, 민주노동당을 도구 삼고, 민주노동당을 통해 자신들의 가치를 투영하고 이를 실현시키려는 이들의 뜻을 무참히 짓밟는 자들이, 진보를 말하고, 좌파를 말하는가?

    맑스주의를 말하는가? 그런 맑스라면 우리는 맑스주의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맑스도 맑스주의자는 결코 아니었다.

    정당이라는 것은 같은 주장에 동의하는 정치적 결사체를 의미한다. 동의하지도 않는 정당에 와서 쪽수에 영합하여 남의 뜻을 훼방하고 그 사람들이 수십 년 운동해왔던 결실들을 개량이니 뭐니 하면서 방해한다면, 그건 타인의 삶을 방해하는 것이다.

    나는 잘 살고 있는데 끊임없이 내가 지옥에 가고 있다고, 천국 가야 한다고 짜증나게 만드는 꼴이다.

    자신들의 당조차 떳떳하게 만들지 못하는 자들이 무슨 분당 반대, 패권주의 반대를 이야기하면서 지구당 접수사건과 다수파의 패권주의에는 뻔뻔하게 영합하며 그 단물을 빨아먹고 있는가?

    사실, 이것은 개신교의 일부 호화 교회 목사들이 불법으로 재산을 세습하고 권력을 유지하면서 좌파 정권 종식과 믿음 소망 사랑을 이야기하는 그것과 같다. 자, 종교인 과세를 반대해보라!

    그리고 이후 그의 글은 자신들의 종래 주장을 뻔뻔스럽게 반복하고, 이재영의 글은 전혀 진지하게 이해하지 못한 채로 자기 말만 디립다 하다가 끝맺고 있다. 이 지독한 난독증! 그리고 뭔 놈의 반대는 그리 많은지!

    스스로는 정당도 못 만드는 다함께

    일전에 전지윤의 상근자 노조 반대에 대한 반박으로 「그들과 나는 세계관이 다르다」(「답이 안 나온다 정말」, <레디앙>, 2007. 10. 22)라고 글을 쓴 적이 있다.

    정말, 민주노동당을 만든 이들과 다함께 사람들은 세계관이 다르다. 그냥 자기네들 정당 하나 새로 차리면 될 것을, 참 구차하고 찌질하다. 그들 스스로는 정당 하나도 제대로 만들지 못한단 말인가?

    불가능하다면, 그리고 그들이 민주노동당의 당원이라면, 민주노동당의 강령, 당헌당규 정신에 동의하고 그에 맞춰서 활동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자기네들 뜻에 맞지 않으면 모두 반대한다는 그 지긋지긋한 땡깡, 나이 어린 애들도 아니고. 정당하려면 철이 좀 들어야 한다.

    나는 이재영과 같은 신당파가 아니다. 난 당 혁신파에 가깝다. 비대위의 혁신안을 지지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다함께의 이 같은 주장은 정말 “혁신해봤자 소용 없겠구나” 하는 절망을 강화시킨다.

    진지한 이해나 설득은 되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 말만 구간반복 무한재생을 하고 있다. 잠재적 분당파는 어디에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다. 다함께는 유령을 반대하고 있다. 아니, 그들로 인해 유령이 부활하고 있다. 하기사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떠돌게 된 것도, 신성동맹이 있었기 때문이긴 하다.

    다함께는 더 이상 내 안의 유령을 꺼내려는 준동을 중지하라. 왜, 또 개량이라고 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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