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존슨 총리의 극우 행보와
노동당 좌파 코빈 대표의 노선과 고민
[기고] 예측 어려운 브렉시트 논란과 영국의 혼란
    2019년 09월 30일 10:1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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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영국 현지에서 노딜 브렉시트를 둘러싼 영국 정치의 갈등을 지켜보고, 여러 사람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고 돌아온 서영표 제주대 교수의 기고 글이다. 영국이라는 먼 나라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에게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는 국제정치의 현안이기도 하고, 또 한국 정치에 주는 시사점도 적지 않다. 일독을 권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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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정치상황이 심상치 않다. 시쳇말로 ‘뼈 때리는’ 말을 할 때도 최소한의 격식을 차리던 모습조차 사라졌다. 막말과 조롱을 쏟아내는 새로운 총리 보리스 존슨(Boris Johnson)과 그의 극우적 노선을 뒷받침하는 핵심참모 도미닉 커밍스(Dommic Cummings)가 이러한 사태를 촉발하기는 했으나 그들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을 것 같다. 욕설에 가까운 말들, 고성과 야유가 하원(House of Commons)을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있다. 보수당(the Tories) 출신이지만 중도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하원 의장(Speaker of the Commons) 존 버코우(John Bercow)의 입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말은 ‘질서’(order)다.

보수당의 분열

혼란에 빠진 것은 하원의 외형적 모습뿐만이 아니다. 협상 없는 유렵연합 탈퇴(no-deal Brexit)도 불사하겠다는 존슨의 강경 노선을 저지하기 위해 노동당 의원 힐러리 벤(Hilary Benn, 노동당 좌파 정치의 거두 토니 벤의 아들)에 의해 대표 발의된 법안에 찬성하는 의원은 즉각 출당시키겠다는 존슨의 경고를 무시한 21명이 당에서 쫓겨났다. 그 와중에 유럽 잔류를 당론으로 채택하고 있는 자유민주당(LibDem)으로 당적을 옮기는 보수당 의원까지 생겨났다.

더 중요한 것은 출당된 보수당원들의 면면이다. 전직 재무장관 필립 해몬드(Philip Hammond)와 케네스 클라크(Kenneth Clarke)를 필두로 데이브드 고크(David Gauke), 도미닉 그리브(Dommic Grieve) 등 영향력 있는 정치인들이 출당 당했다. 윈스턴 처칠의 외손자인 니콜라스 솜즈(Nicholas Soames)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이들은 협상 없는 브렉시트가 몰고 올 경제적 파국에 대해서 우려하면서 ‘하나의 국가’ 보수당(one-nation Tories)의 가치를 천명했다. 우경화된 존슨 정부가 국가를 단결시켰던 온건 보수주의의 가치를 저버리고 있다는 것이다.

출당의 결과는, 2017년 선거에서 과반을 넘기지 못해 극우정당인 북아일랜드 민주통합당(Northen Ireland’s Democratic Unionist Party)의 도움을 받아 유지한 다수당의 지위를 상실하는 것이었다. 존슨은 총리가 된 지 두 달만에 6번의 표결에서 모두 패배하는 진기록을 남기게 된다. 존슨의 동생인 조 존슨(Jo Johnson)조차 ‘가족과 국가의 이익’의 충돌을 언급하면서 사퇴하고 내각의 일원이었던 앰버 러드(Amber Rudd)가 먼저 출당된 21명에 동조하며 공개적으로 총리를 비난하면서 점입가경의 사태가 전개된다. 이런 상황에서도 꿈쩍하지 않는 존슨을 요즘 유행하는 말로 표현하면 ‘맨탈갑’이다.

보수당의 분열과 혼란은 전직 총리들이 나서서 존슨과 대결하고 있는 것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존슨 총리가 도미닉 커밍스에 의해 설계된 강경노선을 관철시키기 위해 관례적인 기간 보다 훨씬 긴 5주 동안의 정회를 선언하면서 사태가 극단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의회에 재갈을 물리는 조치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정치적 문제이며 법원에서 결정할 사안이 아니라고 해석한 잉글랜드 법원과 달리 스코클랜드 법원은 5주 동안 의회를 정지시킨 조치를 불법이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으로 올라간 최종 판결 청문 과정에서 마거릿 대처의 뒤를 이어 총리를 역임했던 존 메이저(John Major)가 적극 개입했다. 이 사달을 만든 장본인인 데이비드 캐머런(David Cameron)도 여기에 가세했다.(브렉시트 여부를 국민투표에 붙인 것이 바로 그였다.) 캐머런은 이달 중순 『기록을 위하여』(For the Record) 라는 회고록을 출간했다.

협상 없는 브렉시트가 식품과 의약품 부족 사태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옐로우헤머라는 이름이 붙여진 정부 내 회람 문건(Yellowhammer document)이 공개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이번 주 초 대법원에서 5주 동안의 정회는 불법이라고 11명 만장일치로 판결하면서 소집된 하원은 아수라장일 수밖에 없었다. 대법원 판결 직전까지 여론조사에서 넉넉한 차이로 노동당을 앞서고 있었던 존슨의 보수당이지만 사태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 예측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보수당의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의회와 국민의 대결?

고집불통과 ‘막말’ 이미지의, 그래서 영국의 트럼프라고 불리는 존슨과 그의 핵심참모인 도미닉 커밍스의 전략은 52%의 국민이 민주적으로 결정한 브렉시트를 엘리트 집단인 하원이 가로막고 있다고 공격하는 것이다. 물론 야당도 할 말은 있다. 2010년 구성된 캐머런 정부의 연정 파트너로 참여하면서 보수당의 긴축 정책에 적극 동조했던 자유민주당의 젊은 당수 조 스윈슨(Jo Swinson)은 예로우해머문건에서 드러났듯이 브렉시트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 지 충분한 정보가 주어져 있고 그동안의 학습효과가 있기에 브렉시트 결정을 되돌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자유민주당의 원래 입장은 제2국민투표였다. 그런데 이번 달 14-17일 개최된 전당대회에서 채택한 입장은 여기서 할 발 더 나가서 자신들이 다수당이 되어 정부를 구성하게 되면 브렉시트 무효를 추진하겠다는 것이었다. 브렉시트 무효를 명확하게 표방한 자신들을 선택하는 것은 국민투표와 마찬가지라는 논리다. 자유민주당이 다수당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상황이 조금 묘하다. 그동안 관료적이고 엘리트적인 웨스트민스터가 민의를 왜곡한다고 비판한 것은 좌파들이었다. 그런데 전통적 보수당원들의 입장에서조차 극우적이라고 지탄받고 있는 존슨이 민의를 들먹이면서 의회를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브렉시트가 40년 동안의 신자유주의체제가 축적해온 모순이 우익적 방식으로 표출된 것이라고 본다면 지금의 사태는 지난 100년 동안 정상으로 간주되어온 대의민주주의가 더 이상 유효하지 못하다는 것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조금만 더 사태를 긍정적으로 해석한다면 존슨은 의도하지 않게 기존의 체계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정상’이라고 간주되어온 제도가 덜컹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덜컹거림이 항상 좋은 방향으로 향하는 것은 아니다. 브렉시트라는 현상 자체가 대중의 불만이 국가주의와 인종주의에 오염되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존슨과 커밍스의 노림수는 명확하다. ‘벤 법안’을 ‘항복 법안’이라고 주장하면서 유럽연합의 포로가 되기를 자처하고 있다고 야당들을 원색적으로 비난함으로써 다가올 총선에서 확실한 지지기반을 다지는 것이다. 어쩌면 실제로 더 이상의 협상기한 연장은 없다고, 그래서 협상 없는 결별도 불사하겠다고 협박함으로써 유럽연합에게 더 많은 양보를 얻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노딜 브렉시트는 유럽연합에게도 커다란 타격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협상은 군사작전이 아니다. 서로 간에 제안을 하고 협의를 하고 결론을 도출해야 한다. 하지만 ‘협상이 진전되고 있다’는 존슨과 그의 내각의 언급과는 달리 문서로 드러난 협상은 보이지 않는다. 파국도 불사하겠다는 것인가?

전당대회에서 연설하는 노동당 제레미 코빈 대표

이번 주 초 노동당 전당대회에서 노동당 대표 제러미 코빈(Jeremy Corbyn)이 언급했듯이 보수당은 기성체제(the Establishments)의 옹호자가 아니라 기성체제의 일부다. 기성체제란 곧 자본을 의미할 것이다. 협상 없는 브렉시트는 옐로우해머스문건에 드러난 것처럼 식량부족과 의약품 부족을 초래하면서 민중에게는 고통이 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보수당과 자본이 브렉시트를 통해 구상하고 있는 영국은 그나마 유럽연합의 규정에 묶여 있는 노동의 권리, 인권 규약, 환경 규제를 모두 해체하는 것이다. 긴축(austerity)으로 고통당해 왔던 영국인 대다수는 완전히 자유화된 경제에서 더 큰 고통을 감내야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소수의 부자들은 세금 감면, 탈세, 온갖 방법을 동원한 절세를 허용해주는 자본의 천국에서 배를 불리겠지만. 이들을 도와주는 법률회사와 회계법인들은 호황을 맞을것이다. 그리고 파렴치하고 부도덕적인 금융자본의 지배는 계속될 것이다.

코빈 좌파의 딜레마

제러미 코빈의 좌파노동당이 치고 들어갈 지점이 여기에 있다. 때로는 민족주의적인 방식으로, 때로는 극우적 방식으로, 때로는 좌파적 방식으로 표출되고 있는 대중의 불만을 기존체계 모순을 인식하는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능력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역부족이겠지만.

코빈의 오래된 동지이자 그림자 내각의 재무장관인 존 맥도넬(John McDonnell)이 연설에서 농담처럼 말했듯이 코빈은 ‘우연히’(accidentally) 노동당 대표가 되었다. 그러나 사건으로 드러난 ‘코빈 현상’은 그동안 축적되어온 경제적 모순과 양극화, 빈곤이 기존의 정치적 구조와 중첩되고 극우와 좌파가 서로 교차하는 이데올로기적 지형에 의해 과잉결정되어(over-determined) 나타난 것이었다. 우연은 언제나 복합적 구조의 효과로 나타나며, 그래서 필연은 언제나 우연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다. 하지만 필연이 우연을 통해서 드러나기 때문에 필연이 이미 정해진 목적을 향해 간다고 해석하는 것은 부당하다. 다양한 요소들 간의 상호작용은 한 순간도 멈추지 않기에 우리는 언제나 과잉결정의 효과만을 직면하기 때문이다.

타리크 알리(Tariq Ali)가 ‘극단적 중도’(extreme centre)라고 이름붙인, 계급정치를 버리고 자본주의의 비판을 포기한 중도좌파의 ‘투항’은 신자유주의에 의해 쌓인 불만이 좌파적 방식으로 표현될 수 있는 길을 막아버렸다. 불행히도 이런 불만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것은 극우파들이었고 결과적으로 인종주의적인 우익포퓰리즘이 팽배하게 된다.

코빈 현상은 ‘극단적 중도’에 의해 막혀 버린 좌파적 통로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극단적 중도’인 노동당 당권파의 거센 도전을 모멘텀(Momentum)그룹과 같은 아래로부터의 운동을 통해 이겨낼 수 있는 가능성도 보여주었다. 자신만만했던 테레사 메이(Theresa May)가 요청한 조기 총선에서 모든 여론조사와 전문가 예측을 깨고 의석수를 늘리며 선전할 수 있었던 것도 코빈좌파가 던져진 희망의 메시지 때문이었다. 『소수가 아닌 다수를 위하여』(For the Many, Not the Few)라는 제목의 선거 강령집과 2018년 진행된 기층 당원들과의 협의와 토론은 다양한 창의적 아이디어를 생산했다. 영국이 겪고 있는 고통은 긴축으로 체험되고 있는, 그리고 양극화와 빈곤을 만들어 내고 있는 자본주의 모순으로부터 연원하며 이것을 해결하는 길은 사회주의라고 설득할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하지만 코빈주의는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가능성’으로만 존재했다. 유럽대륙의 급진좌파의 시각에서 볼 때 낡은 80년대식 케인즈주의 좌파를 넘어서지 못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선언적으로는 급진적이지만 실제에서는 타협적이었던 1974년 윌슨 정부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 물론 당내 중도파였던 헤럴드 윌슨(Harold Wilson)에 비해 코빈은 확실한 좌파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지만 말이다.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고 저변을 확대해가는 기획을 제시할 수 있는 역량과는 별개로 기존 체계로부터의 공격을 극복하는 것도 만만치 않는 과제다. 언론은 노동당의 좌우 분열은 과장되게 보도하지만 코빈좌파의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의도적인 사보타지라고 할 수 있다. 드러내놓고 적대감을 표시하기도 한다. 전직 노동당 총리(2007-2010) 고든 브라운(Gordon Brown)의 최측근이었던 이언 오스틴(Ian Austin)은 코빈의 노동당을 참지 못하고 탈당했다. 그리고 하원에서 공개적으로 코빈을 노동당의 수치라고 몰아붙였다. 국제 관계에서는 호전적인 노동당 우파들이 보기에 평화주의를 고수해온 코빈의 입장은 분노의 대상이었다. 이스라엘의 대팔레스타인 정책을 비판하는 것을 반유대주의로 비난하는 조직적인 공격이 그 핵심에 있었다. 노동당 좌파를 상징하는 인물 중 한 명이었던 켄 리빙스턴이 근거가 약한 시온니스트와 나치의 협력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면서 출당 당해 사태를 약화시킨 측면도 있었지만 코빈을 반유대주의로 공격하는 것은 악의적인 것이었다. 리차드 쿠퍼(Richard Kuper) 같은 활동가들의 캠페인에도 불구하고 기득권층의 공격은 강력하다. 노동당 우파였던 추카 우먼나(Chuka Umunna) 자유민주당으로 당적으로 옮기면서 내세웠던 핑계도 반유대주의였다.

그러나 코빈의 좌파노선을 무엇보다 힘들게 하는 것은 브렉시트 논란 자체이다. 브렉시트 논란은 코빈좌파가 말해야 하는 자본주의 모순과 사회주의적 경제정책을 삼켜버렸다. 브렉시트 논란 안에서는 모두가 ‘잔류’(remain)와 ‘탈퇴’(leave)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코빈좌파를 더욱 어렵게 한 것은 노동당 지역구가 잔류와 탈퇴로 양분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탈퇴는 인종주의적 극우노선으로 환원될 수 없는, 유럽중앙은행(ECB)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그리고 국제통화기금(IMF)의 트로이카가 강요한 신자유주의 노선에 대한 적대감도 잠재되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남부유럽의 금융위기, 특히 그리스의 경험은 이들의 횡포가 얼마나 파국적이었는지 잘 보여주었다.) 나이젤 파라지(Nigel Farage)가 이끄는 극우적인 브렉시트당(Brexit Party)과 반브렉시트당으로 전락해버릴 위험을 감수하고 브렉스티 반대에 올인하고 있는 자유민주당 사이에서 모호한 입장을 가진 기회주의 집단으로 비난받게 되는 것이다. 노동당 우파 노선 지지자들 중 자유민주당으로 당적을 바꾸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당 바깥으로부터의 압박만 있는 곳은 아니다. 당 내에서의 저항도 강력하다. 당 대표로 선출된 이후 줄곧 당내 우파들은 코빈을 견제해 왔다. 대표가 되자마자 안젤라 이글(Angela Eagle)과 톰 왓슨(Tom Watson) 등이 대표를 불신임했고 다시 대표 선거를 치루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이번에도 톰 왓슨이 분란을 일으켰다. 당대회를 앞두고 다가오는 총선에서 잔류의 입장을 강령에 담아야 한다는 주장을 공개적으로 밝힘으로써 코빈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잔류와 탈퇴로 양분된 조건에서 코빈의 입장은 전략적으로 모호함을 유지하는 것이다. 총선에서는 잔류와 탈퇴를 내세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만약 노동당 정부가 구성된다면 6월 안에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는 입장을 제시했다. 그 결과가 무엇이든 국민의 선택을 따르겠다는 것이다.

사태를 더 복잡하게 한 것은 왓슨이 부대표였다는 것이었다. 이런 내부 갈등은 모멘텀그룹을 만든 존 랜스만(Jon Lansman)이 당대회에서 아예 부대표직을 없애는 안을 제시했다가 부결된 사건으로 표출되었다.

다가오는 총선, 사회주의 정부의 가능성?

앞에서 언급했듯이 존슨 총리는 의회를 민주주의의 걸림돌로 공격하고 있다. 번번이 하원 표결에서 패배하면서 들고 나온 카드가 조기총선이다. 조기총선안마저도 부결되었지만. 국민들이 판단하게 하자는 주장이다. 노동당을 포함한 야당들은 ‘벤 법안’이 담고 있는 내용, 즉 이번 10월 31일까지, 실제적으로는 19일까지 협상에 이르지 못할 때는 1월 말까지 기한을 연장하겠다는 것을 명확히 한다면 총선을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조기총선은 총리에 대한 불신임안이 하원에서 처리되거나 의원의 2/3가 찬성할 때만 가능하다. 과반조차 무너진 상황에서 야당의 지지 없이는 조기총선은 가능하지 않다. 어제 스코틀랜드 민족당(SNP)의 니콜라 스터전(Nicola Sturgen)은 야당과 무소속이 연합해서 총리를 불신임하고 임시내각을 구성한 후 총선을 하자는 안을 제시했다. 스코틀랜드 민족당은 코빈 총리도 받아들일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자유민주당은 코빈은 절대 불가라는 입장을 고수한다. 이미 조 스윈슨은 TV인터뷰에서 코빈을 극단주의로 몰아붙이고 총리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비난했다. 흔히 사용하는 프레임으로 존슨과 코빈을 모두 극단주의로 묶어 버렸다. 한 때 노동당 좌파였으나 블레어주의로 돌아선 마거릿 베켓(Margaret Beckett)의 이름까지 임시내각의 총리로 거론되고 있다.

필자는 코빈의 노동당 좌파 정부를 염원하고 있다. 하지만 앞에서 보았듯이 상황이 녹녹하지 않다. 관건은 좌우로부터 모두 공격을 받으면서도 브렉시트에 대해서는 전략적 애매함을 유지한 채 좌파노동당의 경제-사회정책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에 있다. 언론은 결코 코빈의 편이 아니다. 정치권은 코빈을 극단주의자로 공격할 것이다. 스윈슨의 경우처럼 극단주의 범주 안에 존슨과 코빈을 함께 묶는 전략은 매우 효과적으로 먹혀 들 것이다.

혹자는 말한다. 코빈은 훌륭한 전략가일 수는 있지만 훌륭한 리더는 아니라고 말이다. 토니 벤이 보여주었던 카리스마와 지도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일 것이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이번 당대회 연설에서 코빈은 이 시대의 리더의 자질로 ‘듣는 능력’을 꼽았다. 코빈의 리더십은 카리스마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보여왔던 겸손하고 열린 태도에 있다. 이것은 언론이 과장하고 있는 극단주의자로서의 코빈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더 중요한 것은 코빈의 노동당이 제시하는 정책이 논의될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소유의 대안적 모델들』(Alternative Models of Ownership), 『보편적 기본서비스』(Universal Basic Services), 『전국 정책포럼 2018』(National Policy Forum)에 담겨진 정책들이 노동당을 넘어 대중에게 전해지고 토론될 수 있는 실천들이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 내용에 대한 분석과 논의는 단지 노동당, 그리고 영국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도 시급한 과제다. 더 깊은 통찰과 논의가 필요한 주제인 것이다. 여기에서는 그 개요만 언급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림자 내각의 재무장관이 존 맥도넬의 당대회 연설에서 드러난 것처럼 긴축에 반대하고 불평등을 해소하는 노동당의 사회-경제정책의 핵심은 노동자(노동조합)에게 더 많은 힘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본서비스를 공적인 소유로 되돌리는 것이다. 노동자에게 더 많은 힘을 부여하고 전국의료서비스를 지키고 전기, 물, 가스 등 기본서비스와 교육의 공적 성격을 강화하는 것과 더불어 맥도넬이 강조한 것은 협동조합 부분에 대한 강력한 지원이었다. 맥도넬 자신이 편집한 『다수를 위한 경제학』(Economics for the Many)이 담고 있는 주류경제학과 그것에 기초한 경제정책 비판, 그리고 대안적 경제정책들은 모두 정부의 역할과 대중의 참여를 동시에 고려하면서 공적 영역을 확장하는 동시에 공동자원(commons)의 영역 또한 넓히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위에 언급한 책에 공동저자로 참여한 가이 스탠딩(Guy Standing)이 지난달에 출간한 책 『커먼스의 약탈: 공적 자산을 나누기 위한 선언』(Plunder of the Commons: A Manifesto for Sharing Public Wealth)은 이런 입장과 공명하고 있다.

올해의 노동당 당대회는 스웨덴의 어린 학생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가 촉발한 기후행동의 전 세계적 시위와 겹쳤다. 기후변화 대응과 에너지전환에 대한 코빈 정책팀의 관심이 매우 높다는 점에서 양자 사이의 거리는 멀지 않다.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의 기획도 위에서 언급한 원칙에 입각해 제시하고 있다. 에너지 정책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 개입과 공적 성격의 강화, 하지만 분산화된 다양한 형태의 재생에너지 지원, 그리고 녹색경제로의 전환을 통해 새로운 일자리의 개선. 맥도넬은 당대회 연설에서 녹색기술의 발전과 저발전국 지원을 연결하는 국제적 연대의 비전까지 제시했다. 우리에게 시시하는 바가 크다.

영국의 정치가 어디로 갈지 예측하기 힘들다. 영국 정치의 미래에 대해 영국인들에게서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말은 ‘잘 모르겠다’였다. 결코 낙관적이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하지만 어린 학생들이 등교를 거부하고 거리로 나와서 외친 기성세대에 대한 질타는 희망을 갖게 한다. 그들의 열망에 귀를 귀울이고 이미 실천되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대안적 삶을 새로운 기획(project)로 제시할 때 우리는 새로운 사회가 나갈 수 있다. 척박한 황무지처럼 느껴지지만 희망의 씨앗은 이미 뿌려져 있다.

필자소개
제주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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