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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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8월 05일 12:1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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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간 우리는
    전국팔도를 떠돌며
    너희의 집을 만들어주었다
    너희들의 더럽혀진 영혼을 버릴 하수구를 만들어주었고
    학교와 공장과 교회를 만들어주었다

    너희는 우리가 만들어준 배관을 타고 앉아서야
    먹고 싸고 따뜻할 수 있었다
    너희는 우리가 연결해준 전선을 통해서야
    말하고 듣고 소통할 수 있었다
    우리는 너희를 위해 결코 무너지지 않을
    세상의 모든 천장과 벽과
    계단과 다리를 놓아주었다
    아무말없이, 불평도 없이

    하지만 너희는 그런 우리에게
    착취와 모멸만을 주었다
    불법다단계 하청인생
    일용할 양식조차 구하지 못하던
    일용공의 날들
    우리의 밥은 늘 흙먼지 쇳가루 땡볕에 섞여졌고
    우리들의 국은 늘 새벽진흙탕이거나 공업용기름끼였다

    우리는 사회적으로도 늘 개차반
    쓰미끼리1) 인생이었다
    나중에 나중에 줘도 되는 근로기준법의 마지막 사각지대
    못나고 공부 못하면 저렇게 되는 불량표지판
    말 안 듣고 버릇없는 것들이 가는 인생 종착역
    죽지못해 사는 인생이 우리의 자리였다

    그런 우리의 요구는 소박했다
    옷 갈아입을 곳이라도 있다면
    점심시간 몸 누일 곳이라도 있다면
    일주일에 하루만이라도 쉴 수 있다면
    일한 돈 떼이지 않을 약속이라도 받을 수 있다면
    원청사용자들과 이야기라도 해볼 수 있다면
    너희의 노예로 더 열심히 일하고
    충성하겠다는 약속이었다

    하지만 너희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못배우고 더러운 노가다들이 감히
    신성한 우리 자본의 왕국 포스코를 점거하다니
    밀어버려, 끌어내, 목줄을 짤라 버려
    58명 구속에 가담자 전원 사법처리
    그리고 시범케이스로
    하중근 동지의 머리를 깨부셔놓았다

    그래서 우리도 이젠 다르게 생각한다
    전면전을 선포한 너희에게 맞서
    우리가 그간 해왔던 건설과는
    전혀 다른 건설을 꿈꾼다
    더 이상 너희의 재생산에 봉사하는 건설이 아니라
    일하지 않는 너희의 비정상적인 비만을 위한 건설이 아니라
    진정한 사회의 주인으로 우리가 서는
    새로운 세계를 설계한다

    그것은 더 이상
    우리가 너희의 하청이 아니라
    우리가 너희의 원청이 되는 투쟁이다
    우리의 노동에 빌붙어 과실만을 따먹는
    너희 인간거머리들, 인간기생충들을 박멸하는 투쟁
    진정한 사회의 주인
    건설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명백히 하는 투쟁이다

    비켜라
    비키지 않으면
    이 망치로 너희들의 썩고 굳은 머리를 깨부술 것이다
    물러서라
    물러서지 않으면
    이 그라인더로 너희의 이름을
    역사의 페이지에서 영원히 지워버리고 말 것이다
    사죄하라
    사죄하지 않으면
    우리 가슴에 박힌 대못을 빼내
    너희의 정수리를 뚫어놓을 것이다
    이 성스런 건설노동자의 투쟁 앞에
    돌이켜라. 썩은 시대여
    항복하라. 낡은 시대여

    이 시는 4일 포항에서 열린 ‘민주노총 결의대회’에서 발표된 것입니다.

    * 송경동 / 시인. 민족문학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부위원장. 시집으로 <꿀잠> 펴냄. 
    1) 쓰미끼리 : 급여를 까닭없이 몇 십일에서, 몇 달씩 미뤄서 주는 건설업계의 관행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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