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이 왜 '문제'인가?"
        2006년 08월 03일 07:1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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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전 수석에 대한 여당의 비토는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지난달 28일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은 이병완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새 법무부장관으로 임내현 당 법률구조위원장 등을 추천했다. 당시 우상호 대변인은 "’문재인 반대’라고는 하지 않았지만, 적절한 통로와 방법을 통해 부정적인 민심을 전달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렇다고 여당이 문재인 비토론을 공식적으로 거론한 적도 없다. 세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후임 법무장관 후보로 문 전 수석이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거론된 적이 없다. 검토 대상에 올랐다는 얘기가 비공식적 채널을 통해 전달됐을 뿐이다. ‘공식적’인 후보로 오르지도 않은 사람을 ‘공식적’으로 반대하는 건 모양새가 우습다. 우상호 대변인이 굳이 ‘문재인 반대라고는 하지 않았다’고 단서를 붙인 것도 그래서다.

    김근태 의장 왜 ‘묵계’를 깨뜨렸나

    ‘문재인 비토론’이 당의 공식 논의구조를 통해 당론으로 정해진 것도 아니다. 아직까지는 ‘이심전심’의 당내 여론일 뿐이다.

       
    ▲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과 노무현 대통령 ⓒ연합뉴스
     

    여론과 당론은 다르다. 여론은 그저 ‘의견’의 집합일 뿐이지만 당론은 정치적 ‘책임’을 수반한다. 이번 법무장관 인선 건의 경우 당론화란, 당의 입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에 대한 각오와 대응까지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당청간 파국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그것을 감수하기에는 지금 여당의 체력이 너무 약하다.

    ‘문재인 비토론’은 그것이 공식화되는 순간 당청 양측의 퇴로를 모두 없앤다. 문 전 수석을 임명하지 않으면 노대통령이 지는 꼴이 된다. 문 전 수석을 임명하면 당의 의견을 묵살한 것이 된다. 결국 노대통령이 죽거나, 당이 죽거나, 당청이 갈라서거나 해야 한다. 모두에게 위험한 게임인 것이다. 이를 피하기 위한 묵계가 바로 ‘문재인 비토론’의 비공식적 전달이었다.

    그런데, 김근태 의장이 이런 묵계를 깨버렸다. 2일 밤 기자들과 만나 문 전 수석의 법무장관 인선을 공식적으로 반대해버린 것이다. 당 안팎에서는 이를 김 의장의 단독 ‘거사’로 보고 있다. 김병준 교육부총리의 사퇴를 계기로 형성되기 시작한 당 우위 기조를 확고히 하는 한편, 이런 기류를 주도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차제에 당내에서의 지도력을 확고히 하려는 포석이라는 것이다.

    김의장 ‘거사’는 "보기 안 좋다"

    김 의장의 거사에 대한 당내 반응은 다소 난데없다는 것이다. 김 의장 측근 그룹에서도 이런 반응이 나오고 있다.

    여당 핵심 당직자는 "김 부총리 인선 과정에서 초기에 당의 입장을 제대로 전달하지 않아 문제를 키웠다는 비판을 받았는데, 그에 대한 부담이 작용한 것 아니겠느냐"며 "공식 후보로 확정되지도 않았는데 특정인의 이름을 거명한 것은 지나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또 다른 당직자는 "김 의장 발언은 당내 논의를 거치지 않은 개인의 생각"이라고 선을 그었다.

    장영달 의원은 "대통령의 권한을 너무 침해하는 모습도 보기 안 좋다. 대통령이 특정인을 거명도 안했는데 미리 논평하는 것은 옳지 않다. 당청갈등이 있는 것처럼 비치는 것도 좋지 않다."고 비판적인 시각을 보였다. 김한길 원내대표도 3일 기자간담회에서 "인사 문제는 조용히 교감하는 것이 좋을텐데 분위기가 이렇게 되다보니… 인사 얘기는 그만하자"며 마뜩찮은 속내를 내비쳤다.

    물론 ‘문재인 비토론’ 자체에 대해서는 당내 이견이 거의 없다. 이들의 생각은 "문재인이 아니라 노무현 대통령이 문제"라는 것으로 요약된다.

    문제는 문재인이 아니라 노대통령

    김 의장은 "개인적으로는 문 전 수석이 법무장관에 가장 적합하고 훌륭한 인물이라고 본다. 문 전 수석 개인에 대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국민들이 적합하다고 보지는 않는 것 같다"고 했다. 노대통령의 측근이기 때문에 반대한다는 뜻이다.

    이목희 전략기획위원장은 "문 수석은 인품 좋고, 유능한 사람"이라며 "대통령 측근이 전진배치 되는 것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문제"라고 했다.

    여당의 핵심 당직자는 "문재인이 문제가 아니다. 노무현이 문제다. ‘왕의 남자’는 다 싫다는 것 아니냐. 능력, 인품 다 상관없다. 그게 국민들 정서 아니냐. 당은 그걸 따르겠다는 거다."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국회 법사위 소속 여당 초선의원은 "부산정권 발언 등 실수도 몇 차례 있었고, 무엇보다 노대통령의 사람이라는 상징성이 크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여당 의원들의 주장은 "문재인 법무장관 카드는 전형적인 ‘코드인사’로 검토 대상에서 아예 제외해야 한다. 현 정권의 실패는 국민여론을 무시한 ‘오기인사’ 때문으로, 측근 챙기기 인사를 포기하지 않는 한 소란과 갈등의 악순환은 계속될 것"이라는 한나라당의 주장과 별반 다르지 않다.

    여당스러운 민주노동당의 원칙적 논평

    이번 일만 놓고 보면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반노무현의 기치 아래 연합을 하는 형세다. "법무부장관 임명을 둘러싸고 코드인사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업무 적합성을 놓고 임명의 타당성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민주노동당의 원칙적인 논평이 여당 것 아닌가 싶을 정도다.

    여당 내의 반노무현 기류와 이를 도발적으로 공식화한 김 의장의 ‘거사’에 대해 청와대가 강력히 반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무엇보다, 김병준 부총리건에 이어 이번에도 인사 문제에서 밀리는 모습을 보일 경우 조기 레임덕이 불보듯 뻔하다. 노대통령으로서는 퇴로가 없어 보인다.

    청와대 이병완 비서실장은 3일 "참여정부의 원칙과 기조에 동의하는 분을 국무위원으로 임명해야 한다는 것은 기본요건"이라며 "능력도 인품도 훌륭한데 그래도 (문재인 전 수석은) 안 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해하기 힘들다"고 비판했다. 이를 노대통령의 육성으로 들어도 무방할 듯 하다.

    아무튼 주사위는 던져졌고, 노대통령 앞에 열린 길은 셋 중 하나다.

    대통령 앞의 세갈래 길

    먼저, 노대통령이 당의 입장을 유보없이 수용하는 방법이 있다. 이는 곧 노대통령의 정치적 사망이 시작됨을 의미한다. 이 경우 최대 승리자는 김근태 의장이 될 공산이 크다. ‘거사’를 이루는 것이다. 물론 노대통령의 기질상 이렇게 천천히 정치적 죽음에 이르는 길을 택할 가능성은 많지 않아 보인다.

    노대통령이 당을 설득하거나 제압하면서 문 전 수석의 법무장관 임명을 강행하는 경우도 생각해볼 수 있다. 청와대 우위의 당청관계로 되돌아가는 시나리오다. 이 시나리오의 최대 피해자는 김근태 의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 ‘거사’의 실패다.

    노대통령이 문 전 수석의 법무장관 임명을 강행하면서 당청관계가 결정적인 파국을 맞을 가능성도 있다. 이는 곧 여당이 정계개편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시나리오의 최대 피해자 역시 김근태 의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 여당의 간판을 누가 가장 필요로 하는가를 보면 쉽게 판단이 된다. 김 의장의 대권 제1보인 ‘뉴딜’은 여당의 수장이기 때문에 가능한 프로젝트다. 대통령과 갈라서면 시작도 해보기 전에 끝난다. 그렇다고 지금 김 의장의 지분으로 정계개편을 주도하기도 쉽지 않다. 낮은 여론 지지율을 볼 때 대표선수의 입지를 얻는 것도 불가능에 가깝다. 다시 계파 수장의 지위로 되돌아갈 공산이 크다. 

    자신의 거사에 대한 김 의장의 사후 평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김 의장의 한 측근이 "기자들이 묻기에 솔직히 말했을 뿐"이라며 "언론이 자꾸 코드인사니 뭐니 하면서 주변적인 문제를 키운다"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을 뿐이다. 몇 년 전 불법 정치자금을 고해성사하던 김 의장의 모습이 지금 자꾸 떠오르는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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