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더 용감해지면
[그림책] 『슈퍼영웅 지침서』(엘리아스 볼룬드, 앙네스 볼룬드/ 북뱅크)
    2019년 09월 09일 02:3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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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기억

다 잊은 줄 알았던 기억들이 되살아납니다. 수업 시간마다 반복되던 기합과 구타, 그리고 폭력이 교육이던 시절들 말입니다. 체육 선생님이 무서워서 체육 시간이 싫었지만 한 번도 체육 시간을 빼먹은 적이 없었습니다. 수업을 빠진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저에게 수업을 빠질 자유가, 학교를 그만둘 자유가, 학교를 선택할 자유가 있다는 걸 몰랐습니다. 인간에게 자유가 있다는 걸 몰랐습니다.

전쟁과 광기의 시대에는 살인을 정당화했습니다. 군인들이 지배하던 시대에는 상명하복과 폭력이 질서였습니다. 선량한 사람들은 너무 무서워서 아무 말도 못 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그분들의 희생으로 우리는 민주국가를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민주국가가 되어도 개인 간의 폭력과 범죄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정치제도가 바뀌는 것과 인간이 성숙해지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선과 악은 인간의 내면에서 끊임없이 전쟁을 벌일 것입니다.

달리는 리사

“적에게서 달아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 자신에게서 달아날 수는 없습니다.” -본문 중에서

리사는 달립니다. 앞만 보고 죽도록 달립니다. 로베트 일당이 쫓아오기 때문입니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도서관입니다. 도서관까지만 가면 녀석들은 리사를 쫓아오지도, 괴롭히지도 못할 겁니다. 하지만 도서관을 코앞에 두고 리사는 비틀거리다가 그대로 넘어지고 맙니다. 로베트 일당은 넘어진 리사에게 다가와 위협합니다.

그 순간, 도서관에서 카롤린 사서 선생님이 나옵니다. 로베트 일당은 선생님을 보자 부리나케 달아납니다. 도대체 왜 리사는 로베트 일당에게 쫓기고 있었을까요? 과연 내일은 안전할까요? 리사는 언제까지 로베트 일당을 피해 도망다녀야 할까요?

슈퍼영웅 지침서

놀랍게도 리사는 도서관에서 ‘슈퍼영웅 지침서’라는 책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책에서 알려주는 대로 슈퍼영웅의 능력을 터득하기 위해 연습하고 또 연습합니다. 그래서 리사는 정말 슈퍼영웅이 되었을까요? 아니면 슈퍼 웃음거리가 되었을까요? 여러분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리사가 슈퍼영웅이 되었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과연 ‘슈퍼영웅 지침서’가 정말 존재하는가 아닌가 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세상에 ‘슈퍼영웅 지침서’라는 책이 정말 있을까요? 여러분은 슈퍼영웅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까? 지금 이 세상엔 슈퍼영웅이 필요할까요? 도대체 슈퍼맨이나 스파이더맨이 정말 있기는 있는 걸까요?

나는 아직도 슈퍼영웅이 되고 싶다

어린 시절 저는 정말 슈퍼영웅이 되고 싶었습니다. 물론 제가 어린 시절의 슈퍼영웅은 스파이더맨이나 아이언맨이 아니었습니다. 아톰, 마징가제트, 태권브이 같은 영웅들이었지요. 개인적으로 저는 ‘마루치 아라치’의 마루치한테 끌렸습니다. 로봇보다는 무술 소년이 더 현실적이고 매력적이었던 모양입니다.

초등학교 때에는 형한테 맞는 게 싫어서 집에 가기 싫었고, 중학교 때부터는 선생님한테 맞는 게 싫어서 학교에 가는 게 싫었습니다. 초등학교 때에는 무술을 배워서 형을 이기고 싶었고 중학교 때부터는 나를 때리는 선생님한테 복수하는 게 꿈이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슈퍼영웅이 되고 싶습니다. 전 세계의 독재자들과 범죄집단을 싹 쓸어서 감옥에 가두고 싶습니다. 무기를 팔고 전쟁을 일으키고 범죄를 저지르고도 반성할 줄 모르는 인간들을 혼내주고 싶습니다.

진짜 슈퍼영웅 지침서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선악을 구별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사람보다 돈이나 학벌을 중요시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악당도 입법권이나 사법권이나 경제력을 장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누구나 슈퍼영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선량한 사람들이 용기를 내서 말해야 합니다. 선량한 사람들이 행동해야 합니다. 선량한 사람들이 용기를 내서 권력에 도전하고 정치를 하고 사업을 해야 합니다.

폭력에 맞서려면 힘을 키워야 합니다. 폭력을 피해 도망 다닌다면 그들은 언제까지나 우리를 괴롭힐 것입니다. 악당들이 권력을 잡지 못하게 하려면 선량한 사람들이 권력을 유지해야 합니다. 악당들이 경제력을 쥐고 있다면 선량한 사람들이 경제력을 되찾아야 합니다. 선량한 사람들이 법을 만들고 선량한 사람들이 법을 실행하고 선량한 사람들이 법리에 따라 공정한 판단을 내려야 합니다. 선량한 사람들은 더 이상 도망쳐서는 안 됩니다. 악당들에게 맞서 싸워야 합니다. 우리 모두 슈퍼영웅이 될 수 있습니다.

소녀 리사가 더 이상 도망치지 않고 무술을 연마하는 것처럼 지구인 모두 무예와 지혜를 연마하면 좋겠습니다. 악당들에게 맞서 싸우면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 좀 더 용감해지면 좋겠습니다. 지구는 좁고 우리는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습니다.

필자소개
이루리
동화작가, 그림책 평론가, 도서출판 북극곰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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