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지대계의 위기'
기후위기 시대의 교육개혁 어떻게?
[에정칼럼] 우리에게 '백년'의 시간은 보장되어 있나
    2019년 09월 06일 12:48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신임 법무부 장관의 임명을 둘러싸고 온 나라가 시끄럽다. 특히, 지명된 장관 후보자 자녀의 대학입시 문제가 불거지면서 이 부분이 가장 예민하게 정쟁화되는 모양새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일, 대학입시제도 전반에 대한 검토를 요청한 것으로 전해진다.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를 국정운영의 주요 기조로 내세운 문재인 정부로서는 가장 예민하고 치명적인 사안에 부딪힌 셈이다.

그리고 같은 시기, 우리는 또 다른 장면을 목격하고 있다. 바로 스웨덴의 청소년 기후활동가 그레타 툰베리로부터 시작된 등교거부 운동이다. 그레타 툰베리는 기후변화에 대해 관심을 가진 뒤, 이에 대해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상황을 직시한 그레타 툰베리에게 찾아온 것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라기보다는 답이 없다는 절망감, 그리고 우울증이었다고 한다.

기후위기가 만들어 낼 절망적인 미래에 어떤 정치인도 책임 있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에 문제의식을 가진 그는 스웨덴에 유례없는 폭염이 찾아온 2018년 여름, 총선을 앞둔 스웨덴 국회의사당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하는 것으로 ‘기후를 위한 등교거부’(Skolstrejk For Klimatet) 운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 등교거부 운동은 총선 이후에도 매주 금요일 이어지고 있고,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끼쳐 이제는 더 많은 사람들이 금요일 등교거부 운동에 결합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같은 문제의식에서 ‘청소년 기후행동’이 만들어졌으며, 오는 9월 27일 ‘기후를 위한 결석시위’를 힘 있게 준비해가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레타 툰베리는 이렇게 질문한다. “어떤 사람은 나더러 지금은 미래를 위해서 공부를 해야 할 때라고 말한다. 미래라니? 아무도 미래를 구하기 위한 행동에 나서지 않는다면, 사라져버릴 지도 모를 미래를 위해서?” (제24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올 3월 15일 전 세계에서 진행된 10대 학생들의 기후변화 대응 촉구 ‘등교 거부’ 시위

다시 한국의 상황으로 돌아와 그레타 툰베리의 질문을 되새겨본다. 아쉽게도 그레타 툰베리의 질문은 대통령이 요청한 검토에서 주요하게 다뤄질 것 같지 않다. 정해진 교육과정을 마치고, 어떤 계기로든 오랜만에 학교의 교실을 찾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내놓는 인상평이 있다. “학교가 제일 안 바뀌는 것 같아.” 그렇다. 교육 문제는 한국에서 모든 정치적인 순간마다 가장 첨예하게 다뤄진 이슈였지만, 그 지난한 과정들에 비해 학교는 정말 잘 바뀌지 않는다.

감시가 쉬운 감옥을 모티브로 했다는 학교 건물의 형태뿐 아니라, 학교 안에서 이뤄지는 모든 상호작용과 그 관계망, 권력구조, 어느 것 하나 쉬이 변하지 않는다. 학급 당 학생 수를 줄여도, 전국적으로 ‘자율학기제’를 도입해도 학교라는 공간의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 수차례 개정된 교육과정도 마찬가지다. 선택중심 교육과정이 도입되고(7차 교육과정), 문과생이 삼각함수를 배우지 않고(2011 개정 교육과정), 문이과 통합과정을 개발하고(2015 개정 교육과정) 하는 변화들은 결국 ‘그래서 대학입시는 어떻게 되는 건데?’라는 질문으로 귀결되었고, 학교는 여전히 대학을 가기 위해, 혹은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경쟁적 공간일 뿐이다.

그래서 대학입시 제도를 전반적으로 검토하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주문과 그 주문을 접수한 행정부가 내놓을 대안이라는 것에 어떤 기대도 걸기 어렵다. 이 과정은 결국 ‘수학능력시험을 어느 정도로 더 절대화 할 것인지’, ‘기존의 학생종합기록부 전형을 어떻게 보완해 갈 것인지’ 류의 해법에서 저울질하다가 적당히 타협하는 개혁안이 될 것이다. 그리고 경험적으로 확인했듯이, 이 교육개혁 역시 어떤 것도 제대로 바꾸지 못하고 실패하고 말 것이다.

‘어떤 교육제도가 공정한가’(결국은 어떤 대입제도가 더 공정한가)라는 질문은 우리 사회가 부딪힌 여러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하기에 전혀 충분하지 않은 질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질문을 교육 개혁을 위한 유일한 질문으로 설정하고, 이 논의에 교육개혁을 둘러싼 모든 사회적 자원을 투여하는 것에 반대한다.

교육 개혁을 위한 질문은 더 다양해야 하고, 특히 우리가 마주한 위기적 징후들을 정확히 직면해야 한다. 저성장과 기후위기가 대표적인 그 징후이자 현상들이다. 이미 과학자들은 지금과 같은 탄소기반 시스템을 유지할 경우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8년에서 12년 사이일 것이라 경고하고 있고, 어떤 이들은 이 경고조차도 보수적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탄소기반 경제가 그 동안 우리 사회의 성격을 ‘확장 가능한 성장’으로 규정하는데 핵심적인 기반이었다면, 이제 우리가 마주한 미래는 축소 지향적인 저성장 시대가 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우리 모두의 생존을 위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확장 가능한 성장을 목표로 하는 교육 정책이 경쟁과 각자도생 정신에 기반했다면, 축소지향적인 저성장 시대를 살아가가 위한 교육은 평등과 협력에 기반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위기의식과 관점을 한국의 교육이 얼마나 공유하고 있는지 자문해보면, 절망적인 기분이 든다. 단적으로,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갈 시민에게 필요한 여러 덕성이 시험을 통해, 더 공정한 대입제도를 통해 만들어질 것이라 기대할 수 있겠는가?

나는 지금부터 촉발될 교육에 대한 우리 사회의 모든 토론이 우리가 직면한 위기적 징후들을 전제하고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우리의 질문은 ‘기후위기 시대, 어떤 배움이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가?’ 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배움이 청소년, 그리고 시민들에게 ‘멸종’하지 않을 권리와 방법에 대해 적극적으로 전하고, 함께 지혜를 모으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기후위기 시대의 학교, 저성장 시대의 대학, 그리고 공공성에 기반한 평생교육은 어떤 형태여야 하는지, 공적 자원은 어떻게 집행되어야 하는지 질문의 방향을 재설정해야 한다. 기후위기 과목을 수학능력시험에 포함시킨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지 않겠는가.

생각보다 상황은 급박하고,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턱없이 부족할지도 모른다. 교육이 백년지대계라고 하지만, 우리에게 과연 백년이란 시간이 보장되어 있는가?

필자소개
녹색당 공동정책위원장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