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국의 ‘대국민 해명회’
    [기자생각] 사과의 진정성과 몰랐다
        2019년 09월 03일 09:34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밤늦게까지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대국민 해명회’가 이어졌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내어준 국회 회의실에서, 당 수석대변인의 사회로 이뤄졌다. 자유한국당은 딸과 모친, 배우자 증인 채택을 포기하겠다며 청문회 일정만 늦추자고 한발 물러섰지만 민주당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은 물론 정의당까지 청문회를 대신할 것으로 보이는 기자간담회에 반대했으나 여당과 조국 후보자는 그들이 주장해온 ‘국민 청문회’를 강행했다. 조국 후보자는 그렇게 국회 한복판에 서서 지난 몇 주간 봇물처럼 쏟아져 나온 자신과 가족이 받는 의혹을 해명할 절호의 기회를 얻었다.

    기자간담회 모습(방송화면)

    시종일관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기자들의 질문에 막힘없이 답했다. 딸이 혼자 거주하는 오피스텔에 밤늦은 시간 남자 기자들이 찾아왔다며 언론에 자제를 당부할 때를 제외하곤 감정에 큰 흔들림도 없었다. 그를 둘러싼 이중성 논란은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개혁주의자가 되려고 노력했지만 아이와 주변 문제에 대해 불철저했고 안이했다. 그동안 밝혀온 개인적 소신을 전 삶에 관철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언행불일치 문제에 대해 달게 비판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진정성 여부를 떠나 어찌됐든 그는 사과했다. ‘청년 조국’, ‘교수 조국’, ‘민정수석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조국’ 등 각기 다른 인격을 지닌 사람인가 싶을 정도의 언행불일치에 실망이 컸던 그의 지지자들의 마음을 달랠 만했다.

    반면 구체적 의혹에 대해 그는 “몰랐다”는 말로 결백을 입증하려 했다. 사모펀드, 딸 특혜입시, 웅동학원 문제에 기자들의 질문이 집중됐다. 우선 딸 특혜입시 의혹에 대해선 금수저 집안이라 “혜택을 본 건 사실”이라고 인정했지만 이명박 정권이 만든 제도 하에서 합법적으로 이뤄진 일들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10대의 딸은 담임 선생의 지도에 따라 논란의 인턴십을 열심히 수행한 것뿐이며, 자신은 딸 교육에 무관심한 아버지였다고 했다. 조국 후보자 딸에게만 찾아온 연속적인 행운(장학금)에 대해서도 자신은 잘 알지 못하는 일이라고 했다.

    우리 사회를 휩쓸었던 론스타 먹튀 사건이나 모 통신사 하청노동자들을 서울 하늘에 오르게 한 사모펀드에 대해서도 “이번에 처음 공부했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론스타 문제 해결에 나선 교수들의 성명서에 이름을 올렸지만 이날 간담회에선 “경제를 잘 모른다”며 사모펀드에 문외한이라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했다. 자신의 재산 총액이 50억 중 5분의 1을 맡긴 곳이 어떻게 운용되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몰랐다”는 말로 해명한 셈이다. 웅동학원 역시 자신은 각종 사회활동을 하느라 거의 관여하지 않았다고 했다. 조국 후보자는 “많은 한계와 흠결, 미흡함에도 불구하고 해야 할 일을 함으로써 그러한 실망을 누그러뜨리는 것이 제 역할이라 생각한다”며, 후보직에서 사퇴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자신의 한계를 ‘금수저’라고 규정했다. 조국 후보자는 “저는 금수저가 맞고, 강남좌파가 맞다. 금수저이고 강남에 살아도 우리 사회가 공평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수 있고, 다음 세대가 살아갈 사회가 어떤 사회이길 바라고, 꿈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부족했다. 아무리 그런 고민을 하고, 공부했더라도 실제 흙수저인 사람들의 마음을 얼마나 알겠나. 그것이 제 한계다. 진보개혁 학자라면서 금수저, 흙수저 문제 해결하지 못했느냐 비난 받아야 한다. 기성세대와 대한민국 정부, 저 역시 모두가 비난받고 또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세상의 희생양이 된 청년들을 향해 이 정도라도 사과하고 반성할 엘리트 기성세대가 몇이나 되겠나 싶지만 또 한 편으로 그의 말은 어딘가 찜찜하다.

    다수의 국민들이 그가 부자라는 사실 그 자체에 화가 난 게 아니다. 오히려 한국 사회에서 부자는 존경과 열망의 대상이다. 특히 조국 후보자처럼 부자이면서도 불공정에 대해 말하는 지식인이라면 더 그렇다.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수저계급론을 “조국, 당신이 바로 잡지 못했다”는 과도한 질책을 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조국이라는 학자, 고위공직자 혼자 해낼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한 정부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오랜 시간 쌓여온 적폐인 만큼 몇 대의 정부를 거쳐 많은 이들의 양보와 노력이 필요한 일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는 학자 시절 특목고와 자사고 위주의 입시 교육을 ‘아동 학대’라고 비판했고, 자녀에게 주식이나 부동산, 펀드를 가르치는 것을 동물의 왕국에 비유했으며, 한국에선 론스타로 대표되는 사모펀드에 대해 강한 문제제기를 해왔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한 말처럼 살지 않았다.

    삶이라는 작은 울타리 안에서도 실현하기를 거부한 자신의 소신을, 한국 사회가 해내야 한다고, 보수정부는 기득권의 편이라 하지 못했다고 주장해온 것이 조국 후보자다. 그렇다면 그가 법무부 장관이 돼야할 유일한 이유인 사법개혁 의지는 믿을 수 있는 약속일까.

    노동존중 세상을 만들겠다던 약속은 뒤로 하고 온갖 핑계를 갖다 붙이며 노동개악을 거침없이 해내는 현 정부의 모습을 목도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 약속은 파기됐고 비정규직 문제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장시간 노동은 계속되고 있고 법은 노동자의 편에 서있지 않다. 언제나 말은 쉽다. 어이없지만 자유한국당도 기득권을 비판하고 모두가 잘사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말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자신이 한 말을 책임지는, ‘행동’의 문제다. 조국 후보자는 “권력기관 개혁, 공정한 법질서…저의 그런 역할이 끝나면 도덕성, 실력, 모든 점에서 저보다 나은 흙수저 출신 장관이 저를 밟고 올라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흙수저 출신 장관을 원하는 게 아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책임감 있는 공직자를 원하는 것뿐이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