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원한 저항아 '슈테판 하임'의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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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7월 31일 09:0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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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 구형구씨가 현재 <레디앙>에서 연재되고 있는 ‘세계의 사회주의자’에 독일 작가 슈테판 하임을 소개하는 글을 보내왔다. <레디앙>의 기획에는 들어있지 않았던 인물이지만, 다양한 사람들을 소개하는 이 란의 취지에 따라 구씨가 보내온 원고를 싣는다. <편집자 주>

    ‘슈테판 하임'(Stefan Heym).
    독일의 사회주의자이며 작가다. 국회의원도 잠시 지냈으니 정치인으로 분류해도 무방하겠다.
    우리에게 그다지 잘 알려진 인물은 아니지만, 그의 생애를 살펴보면 참으로 독특하고 파란만장하다.

    그는 1913년 독일 켐니츠에서 유태인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유태계 독일인, 태생부터가 순탄치 않음을 예고한다).

    일찍이 고교시절인 1931년에 파시즘에 반대하는 시를 썼다가 퇴학당한 뒤 훔볼트 대학에 진학하여 철학, 독문학, 신문학을 전공했다.

       
     

    나치가 집권하자 유대인인 그의 집안에는 비극이 닥쳤다. 부친은 자살하고 가족들은 유대인 수용소에서 학살당했다. 그는 다행히 미국으로 망명하여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미국 시카고 대학에서 하이네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은 뒤, 본격적인 작가로 활동하여 명성을 얻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미군 장교로 입대하여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전했다. 자기 가족을 학살한 나치를 무찌르고 승전국 장교로 조국 독일에 입성한다.

    군 복무를 마치고 미국에서 작품 활동을 계속했으나, 양진영간 냉전이 본격화하고 매카시즘의 광풍이 미국을 휩쓸면서, 사회주의자인 그는 미국에서 감시와 탄압의 대상이 되어갔다. 결국 1952년에 훈장과 미국 시민권을 반납하고 독일로 돌아간다.

    그는 이미 둘이 된 조국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했다. 그의 고향은 서독 지역에 속해있었다. 그러나 사회주의자 슈테판 하임은 자본주의 서독이 아닌 사회주의 동독을 선택했다.

    세계인이 선망하는 미국 시민권을 내던지고 사회주의 조국으로 돌아온 그는 극진한 환대를 받았다. 그러나 꿈에 그리던 사회주의 조국이 그가 꿈꾸던 이상과는 한참 멀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동독으로 돌아온 바로 이듬해인 1953년 신문에 비판적 칼럼을 기고하면서부터 동독 정권과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특히 1965년에는 1953년 6월17일에 발생한 노동자, 학생들의 반정부시위를 묘사한 <6월의 5일>을 발표하여 결정적으로 미움을 샀다. 이 작품은 1974년 서독에서 출판되어 서방진영에 널리 알려졌다.

    1979년에는 동독 당국의 검열을 거부한 채 서독에서 <콜린>을 발표하여 마침내 동독 작가동맹에서 추방되기에 이른다. 그렇다고 그가 서독에서 환영받은 것도 아니다. 1969년 서독에서 출판된 <라살> 때문에 고발되어 벌금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동독에서 그의 가장 큰 즐거움은 극작가 브레히트와의 두터운 친분이었을 것이다. 같은 유대계 독일인인 두 사람은 삶의 역정이 신통하게도 흡사했다. 그들의 우정은 1956년에 브레히트가 작고하면서 짧게 끝을 맺었다.

    슈테판 하임과 동독 정권과의 갈등은 동독이 붕괴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그럼에도 그는 서독과의 급격한 흡수통일에는 반대하는 입장에 있었다. 그러나 어쨌든 동독은 서독에 흡수통일 되었고, 언제나 그랬듯이 그것은 슈테판 하임이 바라는 세상이 아니었다. 동독의 브레히트 묘비에 “유대인 돼지새끼”라는 낙서가 쓰이는, 대략 그런 세상이 온 것이다.

    통일 이후 자본주의 독일에서 그는 좌파진영에 가담하여 잠시 정치활동을 하기도 했다. 1994년에 동독 공산당 후신인 민사당 후보로 총선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 당시 81세의 최고령 의원이었던 그는 관례대로 개원식에서 임시의장을 맡았다. 그의 개원연설에 당시 집권당이던 기민당 의원들은 박수를 거부했다. 노골적인 수모였다.

    뿐만 아니라 동독에서 가장 유명한 반체제 작가였던 그를 동독 비밀경찰 슈타지의 첩자로 몰기까지 했다. 결국 현실정치에 환멸을 느낀 그는 이듬해 의원직을 사퇴하고 말았다.

       
     

    그후 80이 넘은 나이에도 <라덱>(1995년)과 자전적 소설 <파르크프리더>(1998년)를 발표하는 등 노익장을 과시하며 활발한 작품활동을 지속하였다.

    2001년 12월 16일, 향년 88세, 예루살렘에서 열린 하인리히 하이네 회의를 마치고 부인과 함께 사해 연안 호텔에서 휴식을 취하다 심장마비로 삶을 마감했다. 파란만장한 생애에 비한다면 편안한 죽음이라고 할까.

    슈테판 하임이 썩 위대한 인물은 아닐 수도 있다. 관점에 따라서는, 그가 거쳐 간 각각의 시대들을 좀더 투철하게 살아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그의 생애를 곱씹어 보면 참으로 다양한 생각들이 다가온다.

    나치독일의 압제, ‘자유의 나라’ 미국으로의 망명, 사회주의 동독, 통일된 독일….

    자본주의와 현실사회주의를 넘나들며, 서로 많이 다른 각각의 공간과 시간들을 거치면서, 그는 언제 어디서나 저항했고, 배척받았다. 그가 정주하고 환영받을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적어도 지금까지는 어디에도 없음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미래에는? 과연 그런 세상은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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